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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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작정하고 여자를 팔아먹는 역사의 기록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성별은 남자'로구나 생각했다. 모든 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만이 인간으로 대우받는 곳. 이 적나라한 기록을 읽는 일을 그래서 열뻗치는 일인데, 그렇다해도 이 기록을 읽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책 주문할 때 강준만의 또다른 기록, 《룸살롱 공화국》도 주문했다.


또한, 이 책이 지금 '다시' 쓰여진다면 더 의미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합법화 되면 안되는지, 성매매 반대를 외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 현재를 사는 여자들이 어째서 '성구매자만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한 목소리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강준만이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강준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서 여자가 인간일 수 있게 되는 날은 언제 올까.

나는 그 날을 되도록 앞당기고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여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투표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여자들을 응원할 것이고.







원래 이름이 순이건, 순자건, 순희건, 에레나는 집을 떠나 도시를 방황하다 기지촌으로 흘러든 수많은 젊은 여성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에레나는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 사회의 가난과 또 보내놓고 손가락질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p.65)

일국의 정신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볼 수 있는 문교부 장관이 감히 매매춘을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건 당시 대한민국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영 국가‘ 체제였다는 걸 웅변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매매춘 여성들에게 안보 교육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국가 경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교양 교육을 시행하여 외국인에게 최대한 서비스를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 교육 내용은 "일제강점기 정신대를 독려하였던 독려사와 너무 흡사하여 ‘신판 정신대 결단식‘ 같았다." (민경자, 한국매춘여성운동사)
물론 박 정권의 그러한 매매춘 장려 정책은 ‘수출 정책‘의 일환이었다. 방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p.86)

"정부는 외채의 압박을 줄이고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의 개발이었으며, 이를 핑계로 외화 획득의 원천은 이제 기생 관광의 루트를 통해 부분 해소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관광산업의 정책적 육성은 짧은 시일에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통용될 수 있었고, 많은 관광산업 유형 가운데에서도 기생 관광은 자금의 회전과 비축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파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 아닌 기생 문화의 복원. ……1970년대 한국 관광산업의 본질은 바로 이렇게 사라진 전통문화 가운데 성을 수단으로 하는 ‘원색의 소재‘를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신종 매춘으로 관광 기생업이란 명칭이 보편화된 것이다. (p.87-88)

"유신 직후, 한국 정부는 관광 진흥 정책에 따라 관광진흥법에 근거를 두었던 국제관광협회(현재의 한국관광협회)에 ‘요정과‘를 설치하고 관광 기생들과 관광 요정 문제에 관한 본격적 실무에 착수한다. ‘윤락행위등방지법‘(1961.11.9)제정 1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일본 제국 군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공창제도를 미 군정이 폐지하고 한국의 군사정부가 이를 새로운 법으로 대체한 지 10여 년 만에 정부는 그들 스스로 떠나보낸 자들을 다시 불러들여 유린의 대가를 긁어모으려는 ‘악의 논리‘와 공모·타협하기 시작했다. 요정과의 업무 방향은 사실상의 ‘매춘 허가증‘과 다름없는 접객원 증명서를 발부하고 교양 교육을 시행하면서 전국 관광 기생들의 행정적 존재 근거를 합법화하는 데 맞춰졌다." (p.88)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으면 이왕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를 시도한 김에 그들이 큰 돈이라도 벌 수 있게끔 보호 장치까지 만들어줬어야 했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남성을 상대로 갖은 수모와 모욕을 당해가며 번 수입임에도 관광 기생에게 돌아오는 ‘화대‘는 여행사 커미션, 호텔 통과세, 밴드 악사비, 요정 종업원 팁, 버스 운전사 급료, 요정 지배인 몫, 접대 화대, 마담에 대한 사례, 호텔 객실 담당 팁, 교통비 등의 무수한 중간 착취자에 의해 거의 착취당하고 손에 쥐는 것은 생계비도 될까 말까 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총수입의 80퍼센트를 중간 착취당했으며, 정부는 화대 착취 구조를 묵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박종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p.89-90)

"70년대 국가가 이렇게까지 해서 정책의 전환을 의도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외국인들이 많은 돈을 쓰고 가게 하자는 기묘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진정으로 기존의 매춘 여성들이나 빈곤 여성들을 끌어안아 범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조성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기생 관광 문화를 즐긴 주 고객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해방 공간 속에서마저 단절되지 않고 존속된 과거 일제 공창 문화의 잔재와 이를 ㅅ스스로 척결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사회 의식적,실천적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전도된 성 문화를 강화시키고 기생의 사회적 수요를 팽창시킨 한국의 관광정책은 결국 기생 관광을 일본에 역수출하는 새로운 현상까지 야기시킨다." (p.90)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 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대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국민의 도덕적 타락, 비인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못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까지 해서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까.…… 이 통에 10여 년을 지켜 내려오던 ‘4·19의 4월‘이었던 달이 금년에는 갑자기 ‘관광의 4월‘로 탈바꿈했다. 어제도 오늘도 신문에는 일본의 무슨 재벌, 무슨 사장이 서울과 지방의 어디 어디에 몇 층의 호텔 건설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p.94)

박 정권의 적극적임 매매춘 국책 사업화에 대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난 건 오직 여성계뿐이었다. 1973년 7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한일교회협의회에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이우정은 기생 관광 문제를 거론하면서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 30일에는 ‘관광객과 윤락 여성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 대응 방안을 토론하였고, 12월 3일에는 교통부 장관과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섹스 관광의 시정과 건전한 관광 사업책의 강구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발송하였다. 또 《매춘 관광의 실태와 여론》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운동은 대학생에게도 영향을 끼쳐 이화여대, 한신대, 서울대 학생의 섹스 관광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섹스 애니멀 고 홈‘ 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호응하여 일본에서도 스물 두 개 여성 단체가 연합하여 일본인의 한국 내 섹스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p.95-96)

1972년부터 본격화된 보수 진영의 반대 운동은 마치 부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전개되었다. 1972년 8월 25일 전국유림대표자회의는 ‘500만 유림의 총의‘로 가족법 개정을 반대하는 결의를 표명하였고, 1972년 10월 5일엔 유도회 주관으로 가족법 개정을 반대하는 34만 명의 서명날인을 받은 원본을 국회 사무처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가족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에 대해선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로 간주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데 앞장서왔다면 또 모르겠다. 오직 남성 우월주의적 기득권만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런 이중 잣대는 조선조를 지배한 이른바 ‘열녀烈女 이데올로기‘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p.108)

1985년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미국의 잡지 《더 스포팅뉴스The Sporting News》에 별책 부록으로 서울올림픽을 홍보하는 광고를 무려 46면에 걸쳐 내보냈다. 그런데 그중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기생 관광의 메카라 할 요정에서 외국 남성들에게 안주를 먹여주는 컬러 사진이 44면과 45면, 두 면에 걸쳐 천연덕스럽게 실렸다.
단순한 음식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한 손님 옆에 한 사람씩 앉아 젓가락으로 외국인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가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른바 ‘기생 파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 특집을 위해 《더 스포팅뉴스》에 거액을 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1984년 11월 취재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든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p.116)

이에 분노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 단체들은 본격적인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개 질의서를 통하여 여성을 이용해 관광 수입을 올리려는 정부를 비난하는 한편 정부 당국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해명, 사과와 함께 올림픽 정책의 시정을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85년 3월에 인신매매 조직이 대거 검거되자 이 문제를 사회문제로 여론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인신매매를 고발한다‘는 공개 토론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바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성폭력‘으로 개념화한 한국여성의전화는 인신매매 과정에서 여성이 성적인 도구로 전락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신매매를 성폭력의 한 형태로 보았다. 토론회는 인신매매의 유형 사례 발표에 이어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섯ㅇ매매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우정이 성매매의 비인간성에 대해 발제했다. 그리고 지은희가 ‘매춘의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해 그리고 박인덕이 ‘매춘 여성 문제를 여성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의 발제를 하였다. (p.116-117)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그런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1986년 1월 기생 관광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11개 대형 요정 업체에 총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 형식으로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에서 발행하는 외래 관광객용 지도에도 기생 관광 장소인 요정의 위치를 각국어로 친절하게, 또 상세하게 밝혀놓기도 했다. (p.117)

기생 관광 이벤트는 주도면밀했다. 올림픽 개최일이 다가오면서 외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접대부 아가씨들에게 이른바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실시했는데, 물론 이 소양 교육의 핵심 메시지는 국가를 위해 외국 관광객들에게 최대한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소양 교육을 담당한 강사들은 "아가씨들이 벌어들이는 외화가 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거나 "전후 일본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여자들이 자신들의 성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의 덕"이라는 미담도 잊지 않았다. (p.117-118)

한 외국인의 증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발을 땅에 딛자마자 뚜쟁이가 달려들어요. 세계의 여러 공항깨나 출입해봤습니다만, 뚜쟁이가 공항에서부터 일하는 곳은 내가 알기는 김포밖에 없습니다. 설마 이런 일들이 정부의 인정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하지 않겠죠?"(강견실, 매춘 관광과 한국 여자 재인용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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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07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가는 강준만 선생님의 서술을 따라 읽는다해도 ‘한국 매매춘의 역사‘를 읽는건 정말 힘들거예요.
뭐, 이런 놈의 나라가 있나...
너무나 당연시했던 기생관광을 결국 근절시키는데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이 있었다는 걸, 인용해주신 글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네요.
그냥 쉽게 되는 게 하나 없죠..... ㅠㅠ

다락방 2018-06-07 15:51   좋아요 1 | URL
이 나라는 계속해서 여자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그게 어느 한 남자가 그런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그런 거였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여성들은 반발했고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네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지... 읽다가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미치겠더라고요.

단발머리님, 이 나라가 여자들한테 왜이러는걸까요?

6/9 시위에 가서 소리치고 와야겠어요.

블랙겟타 2018-06-1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 룸살룸 공화국 책을 나왔을 때 바로 사서 읽었었거든요.
그당시 강준만씨 책을 꽤 샀던 시절이라..
저는 정치교양 서적으로 생각하면서 읽었었는데 다시 꺼내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다락방님이 표현하신 ‘대한민국의 성별은 남자‘에 저에게도 생각이 많이 들게 하네요..

다락방 2018-06-15 08:51   좋아요 1 | URL
일단 룸살롱 공화국 샀는데 아직 읽기는 전이고요..이걸 읽다보면 또 내가 얼마나 빡이칠까...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걸 읽기 전에 소설 몇 권을 좀 더 읽어둬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시간차가 있으니 블랙겟타님이 지금 ‘다시‘ 룸살롱 공화국 책을 읽는다면 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또 그때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조만간 제가 읽고 페이퍼 쓰면 우리 그 때 또 이야기 나눠요!
 

언제부터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지간에 분량이 얇은 걸 읽고 싶어서 '어라, 이런 책이 내 책장에 있군' 하고는 빼내었는데, 책장에 꽂힌 그 순간부터 존재가 잊혀졌던 이 책은 대체 얼마만에 내가 펼쳐본 것인지, 색이 바래있었다.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읽지 않아도 바랬다면... 내가 책 보관을 잘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얼른 읽고 내보내자, 바래서 제값으로 중고 판매가 안된다면 그저 방출하여 읽고 싶은 누군가에게 주자, 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아, 이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진다. '볼라뇨' 라니, 그 이름도 유명하여 내가 기필코 그의 책을 읽어보려 했건만, 나는 도무지 이 얇은 책 한 권을 들고 며칠을 낑낑. 결국 힘겹게 절반쯤 읽어내고는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다 읽으면 끝에 결국은 '아아 이것은 문학이구나, 문학인 것이야, 이런 게 문학이다!'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계속 잡고 있었던건데, 다른 책에서 느껴보는 걸로...


안녕..너에게 세이 굿바이...






피츠제럴드의 이 책이 문학동네에서 새로나왔다는 소식을 북플을 통해 접하고는 흥분하고 말았다. 아 어쩌지. 그러니까 나는 이걸 다른 출판사의 것으로 아주아주 오만년전에 읽었더랬다. 나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몇 년 후에 이 책의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 거다. 이미 내가 읽은 책은 팔아버린 상황. 그래서 나는 다른 출판사의 이 책으로 또 사두었다.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두었는데, 그 책 역시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 뒤로는 한 번도 펼쳐보질 않았어..그런 참에 문동에서 새로 나온 소식을 듣게 된것이야...나는 집에 문동책 많고...이 세계문학전집 꽂혀있는 곳에 이 책을 새로 장만해 꽂아두면 넘나 아름답겠지..그리고 가독성도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아아 몰라몰라 이 책을 사자...하게된 것이다. 인간, 뭐죠? 아니, 인간이라고 퉁칠 순 없다. 나의 문제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문제, 나의 취향..

나.. 뭐죠?

어쩌면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 다른 출판사의 밤은 부드러워는.... 저혼자 색이 바랜 채로 내가 펼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 아, 어떤 사랑은 어떤 기다림은 하염없으며 부질없어라.







강준만의 이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역시 사둔 지 오래라 색이 바랬어. 책들이 색이 바래는 건 제 탓입니까?

아무튼지간에 열받아가며 읽고 있다. 대한민국, 이 나라의 성별은 남성이다. 한국남성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그리고 전두환 정권 때도, 나라는 여자를 외화벌이로 팔아넘겼다. 그리고 그 때도 그것에 여성단체와 이화여대를 비롯한 여성들은 반대했었다. 도무지 이 말이 안되는 상황에 대해서..


이건 지금 절반쯤 읽었는데, 다 읽고나면 분노의 밑줄긋기가 나올 것이다. 우리, 분노는 함께해야 하는 것...


그런데 책의 처음, 강준만이 한국 사회에 대해 쓴 책의 목록을 보노라니, 이 매매춘에 대한 것도 있지만 룸살롱에 대한 것도 있다더라. 이 책을 얼른 읽고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오늘 한겨레에 실린 강준만의 칼럼을 읽다보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과 백래쉬에 대한 모든 것들을 다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의 일에 대해 언젠가 강준만의 이름으로 책이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http://v.media.daum.net/v/20180603193605087


누군가는 부지런히 기록하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운동하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읽는다. 그런 식으로 세상은 다음세대로 또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기록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매매춘 관련에 관한 책을 읽고 있노라니 자연스레 이런 책도 눈에 띈다. 성매매를 하지 않는 남성들의 이야기라는데, 어떤 이야기들일지 궁금하다. 룸살롱 공화국도 그리고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에 대한 책도 다 읽어보자.


아, 그렇지만 잠깐씩 그 사이사이 텀을 줘야지. 안그러면 내가 홧병으로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수요'의 차원에서 성매매를 이야기하는 남성 모임 〈수요자 포럼〉의 첫 번째 책. '내부자'인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에 관한 열일곱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남성 필자들에게는 성매매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성매매를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의 순간마다 성매매와 분리되지 않는 남성문화의 면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학자도 활동가도 아닌 그들의 글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성매매 안 하는 남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그 시선은 성매매 호객을 하는 여성과 퇴락한 성매매 집결지를 향하고, 욕망을 죄악시하는 교회와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만화책을 오간다. 오랜 시간 둔감했던 성폭력 문제 그리고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향하기도 한다. 필자들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쉬쉬해 온 성매매 문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온 남성문화에 관해 말하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남성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성매매는 과연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결론보다는 더 많은 질문과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알라딘 책소개 中에서




나는 잊지 않을 것이고 나는 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한 모든 일들을 유지할 것이고,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하려고 할 것이다. 친구들과 6/9 시위에 나가기로 했다. 지난 번 시위에는 나랑 친구랑 둘이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둘이 더해졌다. 트윗을 보니 이번 시위엔 윤김쌤도 나온다고 하셨어. 어쩌면 그 곳에서 나는 쌤을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나는 윤김쌤 너무 좋아.



계속 읽고 계속 쓰고 계속 나대야겠다. 시건방지게.



이 모든 분노와는 별개로,

나는 여름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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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5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5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6-05 16:15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언제 사서 또 언제 읽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마다 그 해에 필요한 양식을 생각해 밭에 심을 곡식의 양을 결정했듯이,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현금에 맞추어 돈을 벌려고 했다. 필요한 것이 마련되었다고 판단되면, 그 해의 남은 시간 동안에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았고, 돈을 더 벌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하고자 했으며, 이렇게 일단 기본 생활 수단이 마련되면 다른 일들에 관심을 돌려 열중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회 활동,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와 작곡 같은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그 때 농장 시설을 손보고 고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p.37)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버몬트 시골로 들어가 살기로 한다. 이 책은 버몬트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20년간의 기록인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조화로운 삶이 '이 둘이었기에' 가능하다 생각했다. 스콧 니어링이 쓴 이 책의 끝에는 아내인 헬렌 니어링의 말도 실려있는데, 헬렌 역시 이 삶에 대해 동의하고 크게 만족하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이 삶에 뛰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시골로 들어갈 당시에 헬렌의 나이는 지금의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너무 어렸다.


헬렌 니어링은 1904년생, 스코트 니어링은 1883년생, 이 둘이 사랑에 빠진 해는 1928년, 시골로 들어간 해는 1932년.

그러니까 시골에 들어가 살자, 고 결정하고 들어가 살게 됐을 때 헬렌은 고작 20대 후반이었던 거다. 스코트 니어링은 40대 후반이었고. 사람은 저마다 다르지만, 헬렌은 정말 처음부터 이 삶을 원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건 철저히 내 기준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좀처럼 도시의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가 살자고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스무살 차이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결정을 따른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헬렌을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쨌든 20년간의 버몬트 생활을 정리하고 다른 시골로 가서도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했고, 80세의 헬렌 니어링은 혼자 시골에서의 삶을 지속했다고 한다.




나는 가끔, 어쩌면 가끔보다는 자주, 도시의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도시의 번잡함,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만큼의 크기로 도시에서의 삶을 원한다. 어디든 들어갈 곳이 있다는 것이 좋고,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삶도 좋지만, 알지도 못하는 낯선이들이 가득찬 거리도, 카페, 비행기도 좋다. 나는 헬렌이 시골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그 나이보다 열 살이상 더 많지만, 여전히 '정리하고 시골에 가 조화로운 삶을 산다'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내가 한적하고 건강한 삶을 원함과 동시에 분주한 삶 역시 원하기 때문이다.



헬렌과 스코트는 시골로 내려가 순수하게 자연에 동화된다. 고기와 술과 담배를 일절 가까이 하지 않고, 돌과 나무로 집을 짓는다. 사탕단풍나무로부터 시럽을 받아 그것으로 그나마 약간의 돈을 마련하고, 식탁에 오르는 거의 모든 것들은 자연에서 얻은 날것 그대로의 식품들이다. 그들은 아침으로는 과일만 먹고, 점심은 본인들이 농사지은 것으로 수프를 만들어 먹고, 저녁은 샐러드를 먹는다. 이 식단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딱히 환영받는 식단이 아니라서, 이곳에 쉬면서 머무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발길을 빨리 돌리게도 만들지만, 열에 하나는 '정말 건강한 식단'이라며 좋아하기도 한다. 헬렌과 스코트는 하루에 네 시간 일을 했다면 네 시간 쉬는 규칙을 만들어냈다. 먹을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해야한다, 그러나 넘치게 만들지는 말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초와 벽난로로 빛과 열기를 해결하는 곳에서 헬렌과 니어링은 일하고 생각하고 쉬면서 살아간다. 숱하게 찾아오는 손님들과 함께 일하고 식사하기도 하며 토론하기도 즐겨한다. 자기들이 손수 지은 집의 한쪽 벽면은 책으로 채워두었고.



헬렌과 스코트가 선택한 삶이 더 건강해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도시에서 사는 지금의 내 삶보다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은 것 역시 자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혼자'라면 그 삶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다. 헬렌과 스코트가 이 삶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둘이 함께였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낮에 농사짓고 땀흘리는 거야 혼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늘의 노동이 얼마만큼 고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보람을 느끼고 혹은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를 토로하는 것 역시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헬렌도 또 스코트도 상대가 없어도 이 삶을 선택하고 유지해갈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히 내 노동과 다음 노동 사이에 이야기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자연스레 '나였다면'을 생각해보게 된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나 혼자서라면 지금에야 한적한 삶을 원한다 해도 선택할순 없을 것 같다. 한 낮의 여유로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실컷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없다면, 나는 그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혼자서 하노이 여행을 할 때 깨달았다. 내가 혼자 돌아다니며 내 발길 닿는대로 걷고, 또 내가 원할 때에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신났는지, 혼자서도 흥분을 막 하게 되는거다. 짜릿해, 행복해, 너무 좋아, 꺅, 하다가, 밤에 숙소로 돌아오니, 내가 오늘 얼마나 신났는지를 나눌 사람 없이 혼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 너무 외로운 거다. 그러니 만약 내가 원해서 시골로 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당연히 일정부분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거다.


"오늘 새소리 들었어?"

"응. 아침부터 노래하던데?"

"지금은 좀 잠잠하네. 술마실래?"

"그러자, 내가 삼겹살 구울게."


뭐 이렇게 되어야 살만한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러니까,


"저녁 뭐먹지?"

"나 요즘 카레 만드는 거 엄청 잘해. 카레 만들어 먹자."

"응. 와인 딸까?"

"응. 테라스에서 저녁 노을을 보며 마시자."

"(창밖을 내다보다) 앗. 해 벌써 지기 시작해. 빨리와, 어깨동무 하면서 일단 보고, 그 후에 먹자. 이거 놓치지 말자."

"우앙 굳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살아야 시골에서의 삶이 내게는 가능해지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단순하지 않은 게, '아무나'랑 함께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혼자이니만 못해...


"오늘 새소리 들었어?"

"시끄러."


이러면 어떻게 같이 살아?


"저녁 뭐먹지?"

"난 오늘부터 저녁 굶어."


이러면 .... 나는 베란다에서 맨날 혼자 저녁 먹어야 돼...그러면 이것은 함께인가 아닌가...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으니, 우리의 모든 것들이 같을 수도 없고 모두가 공통된 것을 지향할 수는 없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적한 곳에 가서 살기로 한다면, 사실 이건 한적한 곳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면,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에 있어서는 같은 시선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또한 바라보는 방향 역시 같아야 하고. 그래야 우리가 서로 다른 많은 점들을 부딪치고 화해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이 말이다.



헬렌과 스코트는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같이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으로 돌아와 채식만 하는 삶을 오래 함께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전기가 없어도, 가스가 없어도.. 그래도 그 둘이 즐겁게 또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 둘이 서로 원하는 바가 일치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의 삶을 즐거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헬렌과 스코트가 그랬듯이, 그것이 '채식만' 하는 삶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술도 담배도 고기도 없는 삶...


아침 과일

점심 수프

저녁 샐러드



아침에 과일을 먹으면서 우리는 흔히들 같이 먹는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마시지 않았다. 또한 마른 자두는 물론 사과 소스를 가볍게 떠 먹는 일도 없었다. 토스트와 커피, 그것에 따라 나오는 콘플레이크나 부풀린 밀도 먹지 않았다. 우리의 아침밥은 과일이었다. 오직 과일만 많이 먹었다. 과일은 철에 따라 딸기, 나무딸기, 검은 딸기, 월귤로 바뀌었다. 우리는 숲이나 밭에서 딸기를 따서 한 사람이 한 그릇씩 먹었던 것 같다. 멜론과 복숭아도 제철이 되면 따 먹었다. (p.147)



나는..도무지 이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구나. 한적한 시골로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원하는 건,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육덕진 아침 식사인데.... 그리고 같이 저녁에 술도 마셔야 인생이 즐거울 것 같은데.... 저 식단보고 나는 넘나... 아아, 나는.... 이런 걸 추구하는 남자랑 함께 살 수 없다...그 사람이랑 시골에 가서 사는 삶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스코트는 이 식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열에 아홉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아홉이야...나는 다른 하나가 될 수 없어..아홉이야.....  나는 호텔 조식을 사랑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그런데 난처한 일이 생겼다. 밥상에 앉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커피, 시리얼, 베이컨, 달걀, 토스트, 팬케이크, 시럽 따위가 눈에 띄지 않아서이다. 다만 사과와 해바라기 씨, 검은 당밀 음료만이 놓여 있었다. 이런 먹을 거리는 많은 손님들을 서둘러 제 갈길로 가게 했다. (p.205)


버몬트 사람들의 보수주의를 잘 보여 주는 일로 꼭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스무 해 동안 살면서 우리는 흰 밀가루, 흰 빵, 흰 설탕, 파이, 과자의 문제점에 대해 이웃들과밤을 새면서 수없이 많이 토론을 했다. 그리고 채소를 날 것으로 먹는 것이 건강에 좋으며, 썩어 가는 동물의 시체를 먹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 스무 해 동안 우리의 충고에 따라 먹는 습관을 바꾼 집은 하나도 없었다. (p.171)


숲 속 농장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 열 가운데 아홉은 다음과 같이 말하거나, 마음에 새기고 떠났다.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것은 좋은 생활 방식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그이들에게는 훌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 생활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이들보다 건강에도 좋고 값도 훨씬 덜 드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인정했다. 우리가 자기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를 누린다는 사실도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이들 스스로는 이런 생활을 따를 수 없었고, 그러게 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p.208)




그러니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시골에 가서 사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단, 다른 즐거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맛있는 먹을거리, 그리고 술... 지금은 내가 술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 전에 한 잔씩 마시면서 오늘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내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 그 삶이라면 좋은 영화를 놓치고, 다른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걸 확 줄여버리는 그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돈 많이 벌지 않는 것도 내가 다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술도 고기도 금지' 라고 한다면, 그건 시골에서 같이살 수가 없다..도시라면 살 수 있어. 왜냐하면 나는 나가서 다른 사람이랑 술과 고기를 먹으면 되니까...



그래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이냐?

내가 혼자일 때 원하는 것은?


도시.


그렇다면 내가 살아하는 사람과 함께일 때 원하는 것은?


그건 시골이든 도시든 상관없지만, 고기랑 술도 함께...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는 못살겠는데' 하게 되었으므로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이 쓸모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늘 궁금했다. 어떻게 그 생활을 유지하는지, 그게 궁금했어. 또한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도 새삼 되새겼다.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사는 것,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 다른 사람의 나와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


나 역시 큰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원하는 바는 헬렌과 스코트보다 훨씬 크고 많긴 하지만(술과 고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마어마한 고기나 어마어마한 술을 마시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하실에 돈을 쌓아놓고 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돈이 좋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필요하다는 것은, 내가 먹고 마시는 데 부족하지 않을만큼 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나는 돈이 있으려면 내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고. 헬렌과 스코트가 시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반드시 하고, 또 먹고살만큼의 자원이 오늘 내게 준비되었다면 여유롭게 취미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종국엔 채식주의자가 될까?

시간이 흐르면 사람도 변하는데, 나는 채식주의자로 변하게 될까?

나는 술을 끊게 될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술도 너무 좋고 고기도 너무 좋다. 그리고 술과 고기를 앞에 두고 사랑하고 친근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너무 좋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오래, 가능하다면 눈감는 날까지 그렇게 즐겁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계속해서 내 몸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열심히 걷고, 운동하고,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즐거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내 건강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는 후렌치후라이를 너무 먹고 싶었고, 여기에 맥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맥주는 내가 즐겨 마시는 술도 아니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지만, 감자튀김에 맥주 너무 간절했고, 또 그렇다고해서 커다랗게 술판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어. 집에 가서 와인 마시자, 감자튀김 사가자, 생각했지만, 감자튀김은 식으면 너무 맛이 없지... 나는 문제 해결에 뛰어난 사람. 혼자서 마시는 술과 감자튀김을 모두 이뤄낼 방법을 찾았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치킨 한 조각, 감자튀김,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멍때리면서 혼자 즐겼다. 아, 너무 좋으네. 지금 KFC 에서는 맥주를 할인중이라 한 잔에 2천원. 그래서 저 한 상차림이 6,100원이었다. 저렇게 한 번 더 먹어도 12,000원.


멍하니 바깥을 보면서 먹고 마시다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이어폰을 통해 들으면서 계속 마셨다.

혼자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어. 앞으로 종종 여기를 들러야겠어.



나는 이 지상에서 당신과 술과 고기가 필요하다.






그 여자는 나를 휘저어놓고, 들뜨게 한다. 종종 그 여자를 달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꼭 그 마음만큼 그 여자를 달에서 도로 데려오고 싶어진다. 나한테는 이 지상에서 그 여자가 필요하다. 그 여자는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고 영리하며 재치있다. (p.178-179)





조화로운 삶은 마음이 맞는 부부나 단체가 시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무엇보다 함께 이루려는 목표를 갖고, 생활에 필요한 일들에 달려들어 해낼 수 있는 능력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으로서는 혼자 해내는 게 쉽지 않다. (p.217 헬렌 니어링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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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31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승전술고기.....
다락방님글을 읽고 있자니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 하나 떠올랐어요. 그 사람 이름이 장비라고 하는데.....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6-01 08:0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다락방은 장비입니까? ㅋㅋㅋㅋㅋ

그래도 예전만 못해요. 예전엔 술도 고기도 진짜 엄청 먹었는데 이제는 나이 들어그런지 예전만큼 못먹어요. 슬퍼.. ㅠㅠ

세실 2018-05-3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우가 숲속에 2년 살았을때 외로웠던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데 정말?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어머 KFC에서 맥주도 판매하는군요~~~
술, 고기 저도 좋아해요.
어제 소고기에 엑스오 양주 마시는데 그냥 막 술술~~~
이런게 행복이죠^^

다락방 2018-06-01 08:02   좋아요 0 | URL
감정이라는 게 모두 다같이 같은 크기로 느끼는 게 아니라서,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심심하다‘는 감정을 못느끼고 살거든요. 그렇지만...음..... 2년간......음.....제 기준으로 생각해도 ‘정말?‘ 이라고 되묻게 되네요. 어쩌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당당하고 싶어 그렇게 말한 건 아닐까 싶고요.

KFC 가 전 지점이 다 가능한건 아니지만 맥주를 팔더라고요. 혼자 간단하게 맥주하거나 또 친구랑 둘이 간단하게 2차하기에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게다가 맥주에 곁들일 최고의 안주, 치킨과 감자튀김이 있잖습니까! 우하하하하. 너무 좋아요! 네네, 먹고 마시면서 사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헤헷.

단발머리 2018-05-3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어링 부부의 건강 식단 참 좋기는 한데, 저도 적응 못하는 아홉에 들것 같네요.
술도 고기도 좋아 우리는 떠날 수 없는건가... 이 도시를...........

다락방님 추천 한 상차림 참 근사하네요.
저희 동네 KFC는 문 닫고 맥날만 성행한다는 슬픈 소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6-01 08:16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도시를 무척 좋아해요. 여행을 간다고 해도 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집 밖을 나섰을 때 커피와, 영화와, 술과, 고기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도 많았으면 좋겠고요. 낯선 이들이라도.
물론 직장생활에서 사람에 치이거나 할 때면, 시골로 가서 한적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라고 물어보면 아닐 것 같더라고요..휴..

KFC 에서 혼맥하는 시간은 정말 좋았습니다, 단발머리님.
인간은 먹고 마시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

비연 2018-05-3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FC에서 맥주를!

다락방 2018-06-01 08:17   좋아요 0 | URL
그러합니다! 닭과 감자튀김이라니, 환상의 조합 아닙니까!!

2018-06-01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1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01-1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년전에도 오늘과 같은 고민.. 난 채식주의자가 될까? 아니야.. 안될거야...
새벽세시 저 문장 좋아요 ㅋㅋ 저두 밑줄 그어놓음. 달에서 다시 데려오고 싶대.. 어쩔 ㅠ 레오야 ㅠㅠ

다락방 2021-01-13 08:36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속 시끄러우니까 달로 보내버리고 싶은데 그렇지만 또 없으면 안되니까 다시 데려오고 싶어. 이 지상에서 필요하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장편소설 《달콤한 노래》를 어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의 시작 부분에서 이미 결말을 알려주긴 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읽기가 두려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끔직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올 터였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고민했다. 끝까지 읽고 내일 새 책을 들고갈 것인가, 아니면 끝부분은 내일 읽을 것인가..



아침에 읽기 싫은 부분이기도 했지만 잠들기 전에 읽기는 더 싫었다. 분명 꿈을 꿀텐데, 그런 식의 꿈을 꾸고 싶지가 않았어...해서 나는 책을 덮고 자기 위해 누웠다. 잔인한 결말은 내일 읽자, 하고.



분명 초저녁에는 졸렸는데 자리에 눕자 잠이 오지 않았다. 마침 엊그제 넷플릭스 가입을 해둔 터다. 흐음. 그렇다면 뭔가를 볼까...산드라 블럭이 나온다는 로맨스 영화를 볼까, 에로틱한 영화를 볼까, 주루룩 훑어보다가 드라마 《아웃랜더》가 눈에 띄었다. 오래전에 원작 소설 '다이애너 개벌든'의 책을 읽은 터라, 그냥 훑어만 보자, 하고는 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지는 않고 좌르륵 빨리감기로 해서 주인공인 '클레어'와 '제이미'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들에 집중했다. 나는 그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는 게 좋았다.




































아웃랜더와 호박속의 잠자리 작가 '다이애너 개벌든'음 엄청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전에도 내가 이곳에 몇 번 언급했던 작가인데, 다양한 쪽으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거다. 게다가 글도 잘 써! 알라딘에 이 책들의 작가소개를 보면 이렇게 써있다.



동물학 학사 학위, 해양생물학 석사 학위, 그리고 생태학 박사 학위과정을 밟았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 월트 디즈니를 위한 연작 만화를 쓰기도 했으며 12년간 대학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Voyager>, <Drums of Autumn> 등이 있으며, 국내 출간작으로는 <호박 속의 잠자리>의 전편인 <아웃랜더>가 있다. 현재 애리조나주의 스콧데일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 클레어 시리즈를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 속에서 주인공 클레어가 과거의 스코틀랜드로 날아가는만큼, 아직 의학기술은 발전하지 못했고, 민간의학이라 해야하나, 그런 걸로 사람을 치료하고 돌봐주는 장면들이 펼쳐지는 거다. 게다가 과거의 스코틀랜드를 얘기하며 역사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게 펼쳐낸다. 그 과정에서의 제이미와 클레어의 로맨스는 더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데, 클레어가 '현재'를 사는 여자이며 동시에 '과거'로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그 과거에서의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문화에서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이미는 신사이다. 그래서 클레어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남자들은 '버릇 없는 아내를 혼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체벌로써' 이루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동정으로 결혼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이미, 아내인 연상의 클레어를 원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한 제이미에게, 버릇 없는 아내의 엉덩이를 때리라고 하는거다.


클레어는 위험에 노출됐었다. 위기의 순간이 분명 있었고, 그래서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제이미는 벨트로 클레어의 엉덩이를 때리고자 한다. 이에 클레어는 맞선다.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다, 그건 하지 말아라' 하고. 나 역시 '그건 아니야, 그러지마, 그러는 순간 화나, 정떨어지는 거 시간문제야' 라고 생각했지만, 제이미는 끝내 반항하는 클레어를 자기 무릎위에 엎어놓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거다. 바깥에서 이 소리를 들었던 다른 남자들은 '역시 그래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당연히 이 장면은 나에게도 불편하고 클레어에게도 그랬다. 클레어는 제이미를 사랑하고, 지금이 자기가 기존에 살던 세상과 다르다는 걸 인지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분명 화나는 일이다. 그러니 클레어가 제이미와 다시 사이 좋아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클레어는 '다시는' 제이미가 이러지 않도록 어떻게든 강하게 인식시켜야 했다.


그 일이 있고난 뒤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 틈에 평소에 제이미를 좋아했던 여자가 제이미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러나 제이미는 클레어를 정말 사랑했다. 그 여자에게 '나는 내 아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클레어에게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거다. 며칠 내내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다. 클레어의 화는 당연히 아직 풀리지 않았고. 이에 제이미는 용서해줄 수 없겠냐면서, 혹시 너 나랑 그만 살고 싶은 거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클레어는 그렇지는 않다고, 그만 살고 싶은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은 섹스를 하게 되는데, 나는 '흐음, 이렇게 쉽게 용서하면 안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그 장면을 계속 보았다. 격렬한 섹스로 가기전 클레어가 위에 올라 있는 여성상위체위에서, 쾌락에 몸둘 바를 모르는 아래에 있는 제이미를 향해, 클레어 역시 아직 그에게 들어가 있는 채로, 저기, 옷을 벗느라 늘 가지고 있다 떨어진 제이미의 손 칼을 가져와서는 얼른 칼집에서 빼네 제이미의 심장을 겨눈다. 아직 그들은 섹스중인데, 클레어는 그 칼을 제이미의 심장에 바짝 대고는 말한다.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니 심장으로 내가 아침을 해먹을 줄 알아."



그러자 제이미는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의 시리즈인 저 잠자리와 아웃랜더를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희미한 내용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클레어가 과거의 스코틀랜드로 넘어간 것, 거기에서 제이미랑 결혼을 한 것, 그러다 나중에 현재로 오게된 것등등..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건 클레어가 현재로 돌아오게 되어 현재의 남편과 함께 살고 있을 때, 제이미도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 그녀의 삶을 엿봤다는 것 ..정도인데, 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검색해보니 드라마는 지금 시즌4까지 나온 모양이다. 나는 시즌1을 대충 훑어서 7회까지 보게됐고. 드라마가 원작을 얼마만큼 반영할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현재의 남편도 열심히 클레어를 찾는 중이다. 그래서, 과거로 가는 것까지 찾게 되는걸까? 나 이 시리즈 정식으로 시작해볼까?



책은 출간됐을 당시에 아는 사람들에게선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 읽기는 했지만, 번역 상의 문제를 많이 지적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혹여 그 사이에 다시 나오진 않았을까 싶어 검색해봤더니, 여전히 위의 책들이다. 기존에 사보고 팔아버려서... 다시 사서 읽을까? 이왕이면 개정판이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저 시리즈는 저게 끝인가? 아마존 검색해봤는데 뭔가 외전으로 짧은 스토리가 있는 것 같긴한데..저게 전부인가?


드라마를 시작해볼까? 너무 길던데..그렇지만 제이미랑 클레어가 이야기 나누는 거 보고싶다.

드라마를 시작해볼까? 너무 길던데.. 역시 볼 시간이 없어. 언제 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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졔졔 2018-05-2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 노래, 저도 읽으려고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렸어요. 아, 읽기 두렵네요ㅠㅠ

다락방 2018-05-28 16:25   좋아요 0 | URL
책은 잘 읽히는데 저는 피해자(희생자)가 아동일 경우에 너무 힘들어서요 ㅠㅠ
최졔님 다 읽고나면 감상 남겨주세요!

비연 2018-05-2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피해자가 아동인가요.. 저도 이거 보관함에 두었는데... 읽기 겁나네요..ㅜ

다락방 2018-05-28 17:53   좋아요 0 | URL
네, 아동 피해자가 등장하는 책이라 .. 저는 읽기 좀 힘들었어요. 비연님, 다른 분들 리뷰도 참고해보세요. ㅠㅠ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승국의 허벅지에 고개를 얹고, 그것만으로 불안했는지 앞발로 바지를 잡고 테이는 잠들었다. 덕분에 승국은 불편해 보이는 정장 바지를 갈아입지도 못했다. 형제는 볼륨을 낮춘 채 티브이를 봤다. 한 아이돌 가수가 그룹에서 탈퇴한다는 연예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탈퇴하는 아이돌들 이해가 가. 같은 회사를 7년, 8년 다니면 그만둘 수도 있는 거지, 욕할 문제가 아닌 거 같아."

"그러게 말이다." (p.83)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읽으면서 '아, 소설은 이야기였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 소설은 이야기였다.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 혹은 나와 관계없는 저 먼 곳의 사람들, 또한 나의 이야기. 각자가 가지고있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그려지는데, 그 일들마다 섬세함이 살아있어, 작가는 이 오십명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조사를 했을까, 그 노고에 감탄했다.


이야기는 이야기마다의 힘을 갖고 있다.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어느 하나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의 아픈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들이 선하다. 선한 의지를 갖고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내게는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진다.


위의 인용문은 늙고 병든 개가 허벅지에 고개를 얹었기 때문에, 불편해도 그 자세를 유지하는 '승국'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한데, 내가 소설을 읽을 때 '착하기만한 이야기'에 대해서 딱히 매력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착한 이야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은 한국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술렁술렁 잘도 넘어간다. 오십명이나 되는 인물들이 나와서 모두들 어딘가에서 만나고 연결되어 지는데도 '아 아까 이렇게 나왔던 인물이구나' 알면서도 이름은 까먹게 되긴하지만,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마당이 있는 집》과 연달아 읽노라니, '아 한국소설 읽는 거 너무 즐거운 경험이다'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섬세하게 펼쳐지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으니, 저마다의 이야기가 자꾸 다른 기억들을 불러낸다는 데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사건이나 사고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소소한 일상에 있어서도 그렇다. 소개팅을 한 남녀가 그 후로 두 번 더 만났다가 끝내는 어그러지고 마는,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 정말 지극히 작고 아무것도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 소소한 이야기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아주 오래된 내 소개팅이 떠올랐고, 한 번 더, 라는 그의 답에 그러마고 답해 한 번 더 만나놓고, 사소한 이유들로 '계속 만나자'는 그에게 '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 내게 있었던 그 일이 내게 무슨 상처로 남아있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 남자의 이름과 얼굴마저 잊을만큼 별 거 아닌 일이긴 했지만, 대체 인연이란 건 어디서 어떻게 얽히는 것이고 어떻게 어긋나는 것인가에 대해 한참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 이야기 말고도 나를 머무르게 한 이야기는 이 책 곳곳에 숨어 있었다. 대체로 작은 일들에 대해서.



모든 인물들이 한데 얽히는 마지막에서, 나는 바라는 결말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발 그렇게 되는 결말을 쓰지는 말아줘'라고 바랐달까. 만약 결말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내내 재밌게 읽었지만 작가를 미워하게 됐을 것 같다. 작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결말이어서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구에서 한아뿐》,《보건교사 안은영》을 몇 해전에 읽었었고 그 후에 가장 최근에 읽은 게 이 책, 오십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내가 읽어본 작가의 전작들보다 좋았다. 그리고 최근작이 더 좋다는 것이 나는 어쩐지 더 좋았다. 나랑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나랑 비슷한 세대(나보다는 훨씬 젊지만!)의 작가가, 더 성숙해진 것 같아서이다. 자꾸 자라는 느낌. 같이 자라자고, 우리 같이 나아가자고 하고 싶다. 작가의 발전이 눈에 보였다. 나는 착하기만 한 소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앞서 밝힌 바 있지만, 그래도 작가가 지금처럼 착한 이야기들을 자꾸 자꾸 써주었으면 좋겠다. 예의 그 세심한 시선도 유지하면서.




"극장 들어오면 영화 보고 싶네요."
이번엔 정말요, 마저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영화 좋아하는군요, 말고 뭐 좀 똑똑해 보이는 말 없나. 게다가 도넛을 입에 너무 많이 넣고 씹고 있었기에 리액션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제가 도넛 샀으니까, 다음에 극장 문 열면 영화 보여주실래요?"
"네."
천재소녀가 두번째 데이트를 제안했다. 혁현은 천재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 대답했다. 그 빠름이 좀 민망할 정도였다. 사실 혁현은 도넛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대로 멈춰 평생 도넛만 먹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데이트겠지? 이거, 데이트겠지?
"데이트예요."
혁현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천재소녀가 말했다 뒤늦게 카페인이 몸에 도는지 귀가 울렸다. 천재소녀가, 채원이 수술이 있다며 먼저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원까지 쫄래쫄래 따라가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도넛 가게의 화장실에서 앞발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럴 만한 날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알고 있었어, 내가 좋아한다는 걸. 내가 내내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부터 알았을까?
아마도, 눈만 보고. (p.99-100)

"그럼, 저 맨입으로 고맙다 하지 말고 맛있는 거 사줘요."
그러자 천재소녀의 똑똑하고 조그만 머리가 혁현을 향한 채 가만 멈추었다. 알아들은 것이다, 데이트 신청이라는 걸. 혁현은 발바닥에까지 땀이 나는 걸 느꼈다. 병원 바닥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화처럼 아래층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럼 내일 아침 7시 반에 옆 건물에 있는 도넛 가게 괜찮아요?"
"네, 좋아요."
그날밤 혁현은 거의 자지 못했다. 천재소녀가 아침을 사주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술이 8시에 시작인데 7시 반이라니. 물론 바빠서겠지만 선 긋기가 아닐까. 빵 쪼가리나 먹고 빨리 헤어지자는 그런 이야긴가. 도넛을 좋아하는 것인가. 혁현을 싫어하는 것인가. 도넛을 좋아하며 혁현을 싫어할 수도 있다. 가슴이 거대한 도넛에 눌리는 듯해 얕게 잠들었다.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니 아침이었다. 안 그래도 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거울을 보니 처참했다. (p.98)

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좋아해서 지키고 싶었던 거리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나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는데, 어쩌면 더 좋은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혜련은 기가 막혀서 혼자 더 웃었다. (p.248)

"아니. 각자 결혼했지. 다른 건 안 무서워해도 자기 아버진 무서워했거든. 성질이 똑같은 데 더 센 분이었어. 부잣집에 시집갔는데 남편이 금방 요절해버려서 힘들게 살았다더라고."
"저런."
이번엔 세훈이 저런, 하고 옛날 사람처럼 말했다. 약간 쑥스러워서 얼굴이 붉어졌지만 쪽문 식당은 어두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연락할 수는 없잖아. 나도 가정이 있었으니까. 아내와 사별하고, 3년을 넘겨 예의를 지킨 다음에 연락했는데 뭐 너무 늦은 거였지. 몇번 만나지도 못하고."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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