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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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맛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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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4-03-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나 이번 주말에 읽을 건데! *_* 읽고 수다떱시다잉

다락방 2014-03-14 14:46   좋아요 0 | URL
오잉? ㅎㅎㅎㅎ 재미나게 읽어요, 네꼬님!!

버벌 2014-03-1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이거 샀어요. 오늘 결제해서 (ㅠㅠ) 내일이나 올텐데.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ㅋㅋ

다락방 2014-03-17 13:20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엄청 기대하고 읽진 말아요, 버벌님. 엄청 기대하고 읽으면 그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게 별로 없어요. 주말에 이 책 왔을라나요?
 

그 남학생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시험지를 걷으면서 이름을 보게 된 루시아가 혹시 성당에 다니냐고 물었을 때 그애는 루시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니, 라고 짧게 대꾸했다.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그때부터 요한은 매너도 재치도 없으면서 잘난 체만 한다는 이유로 루시아가 특히 싫어하는 남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안나는 아니었다. 아니, 라고 말하는 다음 순간 요한의 눈길이 자신을 향했고 그리고 분명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 생각했다. 짧긴 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안나의 얼굴은 그래서 빨개진 것이었다. 과외공부를 끝내고 돌아갈 때처럼 또 한번 안나와 루시아는 갈림길에서 갈라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안나에게로 오는 편지가 분명했다. (p.20)

















오래전에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이 함께 쓴 <사랑 후에 오는것들>을 읽었을 때, 공지영 편을 읽으며 아 역시 이맛이야, 했던 기억이 났다. 여자가 연두빛의 트레이닝 복을 입고 조깅하는 장면에서였는데, '연두'란 단어가 그렇게나 좋아서였다. 연두색의 트레이닝 복이라니, 이건 한글로 쓰여졌으니 가능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츠지 히토나리라면 결코 자신의 등장인물에게 연두색 트레이닝 복을 입힐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 소설이 좋았는가 아닌가 하는것과는 별개로(기억나지 않는다) 그 연두색 트레이닝 복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국내 소설을 읽으면서 '이맛이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특히나 칙릿을 읽을 때는 그 글이 한글로 쓰여져서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오랜만에 은희경의 책을 읽으면서 또 이 맛이야, 했다. 이 맛 때문에 결국은 국내 문학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특히나 위 인용문장 다음다음페이지에 나올 이 문장을 읽을 때는 그 맛이 더했다.



안나가 요한에 대해 알고 싶은 건 그것보다 훨씬 많았다. (중략)키가 작고 마른 여자애를 좋아한 적이 있는지 어제 입었던 블라우스와 오늘 입은 조끼 중 어떤 게 더 어울리는지 말해줄 수 있는지 루시아의 말대로 커트머리에 핀을 꽂으면 촌스러운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갑과 하모키나 중에 무엇을 받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뭘 할 건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요한은 루시아의 남자친구였다. 하느님이 잘못 포장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pp.23-24)



분명히 요한의 시선이 안나를 향했다고, 안나는 이번만큼은 그 시선이 자신의 것이었다고 확신했는데, 아 이런, 


요한은 루시아의 남자친구였다


라니. 이 문장을 읽는데 덜컥, 철렁, 하는거다. 사실 나는 평소에 은희경을 좋아한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그의 소설중 몇 개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루시아의 남자친구였다, 라는 간단하고 짧은 한 문장이 전해주는 충격이 너무나 커서, 아 이런것이 내공이구나, 했던거다. 은희경이 이걸 하고 있구나, 하고. 그리고 뒷장을 넘기고 또 넘기며 계속 읽는데도 자꾸만 저 문장이 생각나는거다. 요한은 루시아의 남자친구였다.



아....싫어......



그때부터였다. 요한은 루시아의 남자친구였다, 를 읽을 때부터 나는 내가 이 단편을 어딘가에서 읽었음을 알게됐다. 나 이거 읽었는데, 대체 어디에서 읽었을까, 뭘까, 하고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검색해봤는데 나오질 않았다. 아 정말 읽었단 말이다, 싶어 은희경의 이름을 넣고 그의 작품이 실린 책들을 훑어보다 발견했다. 바로 이거다! <2009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오, 이거였구나. 아..찾아냈더니 속이 다 시원해. 어쨌든 계속.



이 책은 은희경의 단편집인데, 실린 단편들중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주인공인 '이원'에게 너무 짜증이나고 답답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원은 태현이 말한대로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뭔가 남들 하는 방식하고는 핀트가 안 맞는'(p.161) 캐릭터이고, 물론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그 민폐를 끼치는 성격이 너무 짜증이 나는거다. 




이원은 실을 빨간색으로 골랐던 것과 같은 이유로 무늬가 안 들어간 목도리를 원했다. 원장이 지시했다. 그럼 한 줄은 겉뜨기로 뜨고 다음 줄은 안뜨기로 뜨세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이원은 그다음부터는 듣지 않았다. 원장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설명을 마친 원장이 아시겠죠? 라고 물었을 때 이원은 엉뚱하게 대답했다. 원장님, 저는 무늬를 안 넣으려고요. 그냥 겉뜨기로만 할게요. 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설명을 잘 들으셔야지 혼자 멋대로 생각하면 어떡해요. 겉뜨기로 뜬 걸 뒤집으면 안뜨기가 되잖아요. 뜨개질은 뒤집어가면서 왕복하는 거예요. 뒤집었을 때는 반대로 떠야죠. 네. 이원이 곧바로 대답하자 원장이 조금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성격이 급하세요. 급하신 분들이 설명은 잘 안 듣고 나중에 딴소리를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이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뒤집어 뜬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을 뿐이지 급했던 건 아니었다. 또 첫 단계에서 납득을 못했는데 다음 단계의 설명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들으나 마나 모를 것이라서 안 들은 거였다. 이원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은 대개 그런 경우였다. (pp.168-169)



아...진짜 빡친다. 어차피 모를거라 안듣고 나중에 딴소리 하는 캐릭터라니. 이원의 이런 성격은 수시로 묘사되는데, 정말 싫다. 물론 어떤 면은 나와 같기도 해서 더 싫은건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해된다고 해서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는 이해고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다. 아, 작가가 너무 잔인해. 이런 캐릭터를 이토록 잘 그려놓다니. 아, 이 단편을 읽는게 이 책을 읽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ㅠㅠ



마지막 단편 <금성녀>에 이르러서는 마치 요리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도 있을만큼 그 맛이 극에 달했다. 처음 단편과 그 다음 단편, 그 다음 단편을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연관성이 맨 마지막 단편에 이르러서야 어렴풋이 보였으니까. 그 어렴풋이 보이던 것이 책장을 넘길수록, 끝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진다. 아, 이 맛이야.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게다가 금성녀의 주인공 '마리'와, 그녀를 장지까지 모시고가는 '완규'와 '현' 모두가 마음에 든다. 둘 다 모두, 어른들께 잘하는 청년들인 것 같아 괜히 좋았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간절히.



비는 그쳤지만 숲과 땅은 완전히 젖어 있었다. 나무 사이를 뚫고 질척질척한 흙길을 올라가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담배를 사겠다며 가게에 들어간 현이 묵직해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와 접이식 의자 한 개를 들고 나왔다. 완규가 뒤따라 들어가서 간이탁자를 날라왔다. 마리 할머니는 의자에 앉고 현과 완규는 뒤에 선 채로, 세 사람은 비닐봉지 속의 캔맥주를 한 개씩 꺼내들었다. 갈증이 났었는지 미지근한 맥주가 제법 시원하게 넘어갔다. (p.222)



화장실을 자주 가는게 너무 불편해서 맥주를 잘 안마시게 되는데, 어휴, 저 장면 읽는데 어찌나 갑자기 맥주가 땡기던지. 나도 그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캔 마시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차 타고 가다가 나 때문에 자꾸 휴게소 들르면..난 민망하고 무안할거야. ㅠㅠ그렇지만 자꾸 쉬마려울 텐데.. ㅠㅠㅠㅠㅠ




새벽에 깨서 잠이 오질 않았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이 너무 휙휙 넘어가서 기분이 좀 좋아졌다. 결정적으로 책 속의 여자가 평소에 흠모하던 연예인과 초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호텔을 가서 잠을 자게되는..........하하하하하. 이런 일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얘기는 다음 페이퍼로 패쓰.



게다가 커피가 가득 든 머그잔을 양 손에 잡으려니 따뜻한 게 아닌가. 이게 좋았고, 다른 부서 남자직원들이 아침부터 올라와서는 화이트데이라고 초콜렛을 주고 갔다. 풍성해진 나의 간식. 게다가 사탕이 아니라서 더 좋아. 난 사탕 안먹으니까. 초콜렛 완전 사랑♡ 초콜렛 하트뿅뿅이다. 알러뷰뿅 ♡








그나저나 생일 선물로 스탠드를 받고 싶은데 생일이 5개월이나 남았다...우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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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3-1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지금 위시리스트에 몇번까지 있어요?!

다락방 2014-03-14 14:33   좋아요 0 | URL
6번까지 있다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벌 2014-03-15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스탠드가 필요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누군가 사주기를.. 그런데 제가 못참고 사버릴것 같아요. 워크램프요 ㅠㅠ

다락방 2014-03-17 13:20   좋아요 0 | URL
좋은 스탠드 검색했으면 추천 좀 해줘요. 전 도무지 고르지를 못하겠단 말입니다! ㅎㅎ

그렇게혜윰 2014-03-15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개월 남은 저를 보고 위안을 삼으셔요ㅋ 전 9개월동안 목록을 꾸준히 채워 남편에게 청구하려구요. 작년에 무방비로 맞았다가 빈손으로 지나갔어요ㅠㅠ

다락방 2014-03-17 13:21   좋아요 0 | URL
흐음. 9개월이라니..아이코야. 그렇게헤윰님, 너무나 까마득합니다. 5개월 남은 저는 그나마 행복해해야 하는겁니까!! 아무래도 못기다리고 제가 제 돈 주고 사지 싶어요. ㅎㅎ

건조기후 2014-03-17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나가 요한에 대해 알고 싶은 건 그것보다 훨씬 많았다. (중략)
저는 저 중략에 있는 말들이 참 좋더라고요. 진짜 궁금한 건지 그냥 뭐든 물어보고 싶어서 막 내지르는 건지 모를 말들. 결국엔 크리스마스에 뭘 할 건지로 끝맺기 위한 길고 긴 과정이요.. ㅎ
결국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으니까, 요한이 루시아 남자친구라도 좋아요.

다락방 2014-03-18 08:52   좋아요 0 | URL
저도 중략에 있는 말들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다 옮길까 생각했었는데, 키보드 열나 두들겨야 되겠더라고요. 힘들어 힘들어 포기 ㅎㅎㅎㅎㅎ

저는 요한과 루시아가 혹은 요한과 안나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가 아니라서 좋아요. ㅎㅎ 그런거 딱 싫거든요. 어릴때 남자 한 명 만나서 결혼해서 그 남자랑 오래오래 사는거. ㅎㅎ
 
로마의 휴일 - The Ruby Collection
윌리엄 와일러 감독, 오드리 헵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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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상형은 이제부터 성숙하고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남자. 그레고리 펙 처럼. (하트 뿅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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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아저씨 여기저기 너무 돈을 꾸고 다니네. -_-

단발머리 2014-03-13 08:28   좋아요 0 | URL
내 이상형은 이제부터 성숙하고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남자. 도민준처럼. (하트 뿅뿅뾰리뾰로롱@@)

다락방 2014-03-13 09:29   좋아요 0 | URL
나이 많은 아저씨도 괜찮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레고리 펙 처럼 생기면 말이죠. 오호호호호 ^0^

Mephistopheles 2014-03-1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배우만큼 마초와 멜로 양쪽으로 다 잘 어울리는 배우도 찾아보기 힘들죠...^^

다락방 2014-03-13 10:08   좋아요 0 | URL
키가 191 이나 되더라고요. ㅎㅎ 아 너무 멋져요 ♡
그레고리 펙 검색해봤는데 그가 나온 다른 영화는 본 게 없는 것 같아요. <오멘>은 봤는데, 오멘에서 무슨 역할이엇었는지 모르겠네요. 아웅. 멋져요. 뒤늦게 이게 뭔짓인지 원 ㅋㅋ

Mephistopheles 2014-03-13 10:49   좋아요 0 | URL
오멘에선 데미안 아버지로 나와요. 자기 아들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걸 알고 죽일려고 하다가 되려 경찰에게 사살당해요. 마지막 그 데미안 꼬맹이의 사악한 미소가 아직도....기억에...

다락방 2014-03-13 11:00   좋아요 0 | URL
저 오멘 시리즈 무척 좋아해서(?) 책도 읽고 영화도 4편인가까지 봤거든요. 성인 데미안 까지...근데 오멘에서 데미안의 아버지..였군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제가 그 아버지를 멋있다고 생각하질 않았던걸 보면, 역시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중요한...거군요. -0-

관찰자 2014-03-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맥락에서.

얼마 전,
주윤발 아저씨가 젊었던 시절의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하하, 주윤발이네!" 하면서 대강 보다가
엄머나.
주윤발 아저씨가 엄청 잘생긴 배우였구나, 무릎을 탁! 쳤다니까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그렇지
그 기럭지하며, 어깨하며
그러니까 그렇게 트랜치 코트가 잘 어울렸지.. 하게 된다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레고리 팩도 그렇고, 역시 트랜치 코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라면 멋있는게 아닐까요? 흠.

다락방 2014-03-14 11:09   좋아요 0 | URL
그레고리 펙은 어떤 포스가 있어요. '남성다움'을 아주 잘 어필한달까요. 전 이렇게 남성적인 남자한테 너무 끌려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쑝가서 봤네요. ㅋㅋㅋㅋㅋ

moonnight 2014-03-1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고리 펙이 멋지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너무 예뻐서 남배우쪽으로 눈길이 잘 안 간다는. +_+;;;;;;;;;;;;;;

다락방 2014-03-14 11:09   좋아요 0 | URL
정말 예쁘죠! 옆모습 보여주는데 속눈썹이 아주 그냥..어휴...제 옆모습 보고 시무룩해졌어요. ㅠㅠ
 
아르헨티나의 옷수선집
마리아 세실리아 바르베타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여성의 순결과 정절은 대체 언제부터 주장되었던 것일까. 여성도 똑같이 욕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못했던걸까. 대체 왜, 여자들이 결혼전에 순결을 잃으면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모두들 겁을 집어먹었던 걸까. 이 책의 주인공, '마리아나'는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댈 때마다 열정에 헐떡거리지만, 마리아나의 엄마가 '말로써' 그녀가 그 길로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수시로 막아댄다. 그랬다간 큰일난다고. 오랜기간 사귀면서 사랑하는 남자와 1박2일의 여행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마리아나는, 그렇다면 그 남자와 헤어지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여야 할까. 아, 그 남자에게 몸을 주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지 뭐야, 라고 안도해야 할까. 아니면 앞으로 내 인생에 사랑 혹은 남자는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남자와 할 수 있는 모든건 다 했어야 했어! 라고 후회와 좌절을 해야할까.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자유분방하게 성을 즐기는 듯한 여자 '아날리아'를 만났을 때, 급속히 친해지고 격렬히 증오하게 된다. 


책 뒷표지를 보면 이 책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는데, 사실 나는 이 책에서 '예술'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게 큰 감흥을 준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장까지 읽고나면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마지막장에 다가가면서 시작되는 내용의 난해함.


별 넷. 별 넷이라는건 참으로 애매하다. 나는 아주아주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건 아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 넷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사실 사랑할 것 같지 않지만 뭐랄까, 어떤 성의나 노력 때문에 별 넷은 줘야할 것 같은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거다. 


책을 몇 장 읽다가 별 생각없이 이 책의 가격을 보았는데 정가가 15,500원이다. 어, 비슷한 책들에 비해 가격이 좀 세군, 하는 생각을 했는데, 몇 장 넘기다가 왜 센 건지 알게됐다. 이 책의 구성은 '조너선 사프런 포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포어의 책의 그 구성에 열광한 게 아니라 포어 책의 그 내용에 열광했고, 그래서 이 책의 '실험적인' 구성이 내게 어떤 매력이나 장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자, 그 예술적인 구성을 살펴보겠다. 








위는 본문의 구성인데 이렇듯 사진(그림)이 본문 중간에 작게 삽입되어 있다거나 혹은 독특한 글쓰기로 일반 소설과는 좀 다른 본문 디자인을 보여준다. 게다가 각 꼭지가 끝날때마다 '견본' 이란 이름을 붙여 여러가지 그림 혹은 약도 등이 삽입된다. 아래와 같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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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03-1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상이다." 이 표현 저도 언젠가 써먹고 싶어지네요. 리뷰에서는 사용해 본 기억이 없는데.. 아주 적절한 걸요. ^^

다락방 2014-03-13 09:29   좋아요 0 | URL
고심해서 쓴 것 같긴한데 그렇다고 제가 좋아할 수는 없으니, 이걸 참 어쩌나 싶더라고요. 제목 보고 제가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 ㅎㅎㅎ
 



영화속의 룸메이트 관계인 두 여자 '리아'와 '한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매춘을 한다. 매춘을 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으면서 그들은 기대로 부풀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훨씬 더 짧은 시간에 벌 수 있다며. 누군가의 집으로, 모텔로, 엘리베이터로, 차로 불려가면서 그들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신나게 먹고 마신다. 식당에서 쫓겨날 지경으로 신나게 깔깔대고 웃었던 그녀들이, 그러다가 돌연 울음을 터뜨린다. 돌연 울음을 터뜨리고, 이걸 관두자, 고 말한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할 수도 없는 이 일을, 관두자고.


성(sex)을 판다는 것은 내게 언제나 풀지 못할 숙제로 여겨졌다. 그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를 생각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그걸 내가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답이 돌아왔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팔고, 가진게 몸뿐인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적 노동을 판다. 가진게 자신의 성 뿐이라 그걸 판다, 라고 했을 때, 그걸 과연 '그건 안돼!' 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여기서 나는 늘 대답을 못하겠는거다. 그건 좀 다르지, 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대체 뭐가 다른건데, 라고 다시 되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는거다. 아이디어를 파는 건 되고 성을 파는건 왜 안돼? 막연하게 '안되는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거기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댈 수가 없는거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여자들이 웃다가 울어버리는 그때부터 성을 파는 일이 다른 일과 같지 않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밝힐 수 없는 일. 사회적 인식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이 당당하지 못해지는 그런 일. 그렇다면 그 일을 왜 하게 되는가. 돈 때문이었다. 돈이 필요해서 한 일이었다. 먹고 마시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돈. 그 돈을 위해 그녀들은 깔깔대고 웃었지만 종국엔 울게되고, 남자친구에게 정체가 탄로났을 때 절망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는데, 그 돈이 수중에 들어와도 기쁘지가 않다. 게다가 다른 일보다 더, 모멸감을 견뎌야 한다. 발가벗겨진채로 남자들 앞에 서야하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옷을 입고, 만져달라는 대로 만져주고. 그 돈이 기쁠 수 없는 이유였다. 그 돈은 성을 팔아 얻은 대가가 아니라, 모멸감을 견딘 대가였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딘 대가. 돈이 아니었다면 이 일을 했을 것인가? 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올 직업이라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다 돈 때문이었다. 돈이 가진 힘이 너무 세서, 우리는 그 돈에 휘둘려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웃다가 울다가 한다. 돈 따위,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었고, 돈이 가진 힘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힘을 갖고 싶은거였다. 돈 때문에 일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돈의 노예가 된다. 노예 따위,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서 삶이, 



어렵다. 늘 당당하고 싶지만, 늘 당당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 그렇게 의도치않게 노예가 되어버려서. 노예가 되어 굴복할 수밖에 없어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어서.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우리는 노예가 되곤 한다. 결국 성을 팔도록 하는 사회, 그런 환경이라면, 더이상 도망갈 데가 없었다는 건 아닐까. 저 모멸감과 수치심을 선택했다는 건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사람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아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막다른 골목에서도 도망칠 수 있도록, 벽에 최소한 구멍을 뚫어줘야 되는건 아닐까. 막다른 골목에서, 더이상 갈 데가 없어서 선택한 거라면, 그건 선택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은게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 포스터의 '오늘밤은 누구랑 할까?' 라니...안습이다. 쩝.












(왼쪽은 양장, 오른쪽은 반양장)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버텨나간다. 그리고 저마다의 기준으로 책을, 음식을, 영화를, 음악을, 사랑을 선택한다. 사랑을 선택함에 있어서 누군가는 예쁘고 잘생기면 용서가 되기 때문에 상대의 단점을 눈감아주려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예쁘고 잘생긴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의 성정을 봐야한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뜨겁고 열정적인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상대와 불같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몸소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훗날에 다가올 고통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그 열정을 피해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이 들면서 내 성향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오래전의 나와 또 달라서, 사랑을 선택할 때 많은 걸 고려하지도 않고 재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좋으면 사귀는거지, 라고 사귀다가 뭔가 불편한 게 생기면 헤어지는거지, 하고 헤어진다. 어차피 사랑이란 감정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보고, 내가 가장 편하기 위해서는 내가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무모하게 덤벼들기 보다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느라,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좋아했던 사람, 가장 열정적으로 다가왔던 사람을 놓치고 말았다. 그게 내내 아쉽고 후회가 되서, 그때 내가 왜그랬을까, 아직까지도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지지만, 한 편으로는 만약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해도, 지금에와서 거기에 따른 결과를 가지고 아쉬워할거란 생각이 든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때의 나같았다. 그녀는 클레브 공작과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편인 클레브 공작은 부인이 자신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아내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반해있고, 아내인 동시에 애인처럼 사랑하는데, 아내는 그저 남편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그에 대한 하소연을 들을라치면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게 대체 무슨말이냐, 대꾸하곤 했지만, 느무르 공을 만난 뒤의 공작부인은 아, 이것이 남편이 말한 그것이었구나, 하는걸 깨닫는다. 그래, 클레브 공작부인의 열정적 사랑은 남편이 아닌 느무르 공을 만나서 침투하고, 폭발해버린 것이다. 아무리 그 열정을 잠재우려고 해도, 가라앉히려고 해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그를 잊고 지우는 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다.



그의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클레브 공작부인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불길이 다시 거세게 일어났다. 그녀는 하릴없이 느무르 공이 방금 누워 있다가 떠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무엇인가에 압도당한 채 그곳에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 이 남자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서 느무르 공은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그녀만을 성실히 사랑해온 남자,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고통마저 존중하여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그녀를 보러 오는 남자, 재미를 누리던 궁을 떠나 그녀를 가두고 있는 벽들을 바라보러 오는 남자. 그녀를 만나지도 못할 곳에 와서 홀로 몽상에 젖는 남자. 이런 애정만으로도 그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설령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이젠 그녀가 그를 사랑하겠다고 할 만큼.(pp.202-203)



당신은 당신을 보기 전에는 제가 알지 못했던 감정을 제게 불러일으켰어요. 저는 처음에는 놀랍고 그 후에는 동요와 흥분을 일으키는 그런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걸 고백할 수 있어요. (p.209)



연애에 도통했던 느무르 공은 자신의 그간 연애생활을 싹 정리할만큼 클레브 공작부인을 사랑했다. 한번이라도 더 그녀를 보기위해 갖은 애를 쓰고, 그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신경을 쓴다. 혹여라도 자신의 어떤것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혹여라도 그녀의 어떤것이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을까 애를 태운다. 그러니 그의 사랑을 그녀가 알고, 또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걸 알게 된이상, 이 사랑이 불발로 끝날리는 없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 불태울 수있을만큼 불태우겠지, 그게 느무르 공과 내가 했던 생각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 느무르 공에겐 장애물이라 여겨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유부녀'란 신분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그들을 가로막는 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들에겐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일 달콤한 순간들만이 기다릴거라고, 느무르 공과 내가 생각한다. 그러나,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겁을 먹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아프고 싶지 않았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자신이 열정을 불태운 후에 기다리는 것이 고통일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그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궤뚫고 있던 셈이다. 지금의 나라면, 이여자야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할때까지 해보라고, 가보란 말야, 안하고 후회하느니 저질러보라고! 하겠지만, 언젠가의 나도 저질러버리지 못했던 사람인지라 섣불리 그녀에게 충고할 수 없다. 지금은 자신있게 안해보고 후회하느니 저질러보고 고통받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 고통을 차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저는 제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은 당신의 애정에 대한 너무 약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제 감정을 자유롭게 다 드러내는 것은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일 거예요. 당신의 사랑을 더는 받지 못하는 일은 제게도 참 끔찍한 불행이라고 저는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그 힘든 의무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 불행에 저를 내맡기기로 결정했지만,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자유롭고 저 역시 자유로우니 우리가 함께해도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남자들이 영원한 약속 안에서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요? 그런 기적이 제게 일어날까요? 제 모든 행복이 될 그 열정이 결국에는 사그라지는걸 분명 지켜봐야 할 거예요. (중략) 저는 우리 사이의 장애물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요. 그 장애물이 당신으로 하여금 승리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고, 의도적이지 않았던 제 행동으로 혹은 우연으로 당신이 알게 된 것들 때문에 물러서지 않을 희망이 생긴 거지요." (p.212)



느무르 공과 절대 결혼하지 않기로 한 이유들은 의무로 볼 때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지만, 마음의 평화로 볼 때는 매우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반드시 질투라는 고통이 올 것이고 느무르 공의 사랑도 반드시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빠질 불행의 심연이 어떨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도덕도 예의도 어쩌지 못하는 불가능한 시도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녀는 오로지 떨어져 있으면서 시간이 지나는 것만이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뿐만 아니라, 느무르 공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떠나 철저히 은둔하며 살기 위해 아주 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pp.218-219)



그녀가 생각한 사랑의 본질은, 그래, 정확히 궤뚫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가져오는 열정, 열정이 가져온 사랑은 일시적이고 유효하다. 그 열정 그대로 오랜 기간을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거라 생각한 열정뒤의 고통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지금의 나는 그녀같은 선택을 하지 않겠다 장담하지만, 막상 그 사랑 앞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나조차도 모르는 거다. 그렇지만, 그 유효한, 일시적인 사랑을 하는 상대에 따라 그 사랑은 다른 성격으로 변할 수 있다. 열정으로 시작된것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관계를 만들 수 있고,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한 질투도, 어쩌면 겪지 않게 됐을런지도 모른다. 미리부터 겁을 먹고 그 안으로 기꺼이 뛰어들지 않았기에, 그녀는 질투도, 열정이 식는 고통도 겪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랬기에 그 열정이 주는 뜨거움과 짜릿함 그리고 그 뒤에 어떤식으로 이어질지 모를, 어쩌면 밝은 미래까지 포기한 셈이다. 또한 그 사랑에 뛰어들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먼훗날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다가와, 아플때 아프더라도 기꺼이 한 몸 불사를 걸 그랬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게 될것이다. 또한, 그와 그 사랑을 하지 않고 마음에 품으며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남은 평생 다른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내안의 열정을 불사르고 그걸 해내고 고통스러워하고 잊어야, 또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건 자명한 사실이다. 누군가를 내내 가슴속에 품고 있다면, 다가올 다른 사랑도 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크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 사랑을 해내고,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건 옆에서 지켜보는 나의 선택인 것이지, 그 사랑에 허우적대고 있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린다한들,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은 일단 거기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먼훗날을 생각하지 못하니까.



사랑의 노예,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한 선택이 열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든 빠져나오려는 것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는 지금 사랑이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랑의 노예라고. 우리는 가끔, 그렇게 사랑의 노예가 된다. 사랑이 시키는대로 하고, 사랑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하는, 노예.






지난 주말엔 여동생 집에 다녀왔다. 나는 그날밤을 조카와 둘이 잤는데, 여태 조카랑 둘이 자본적이 없던터라, 무척 좋았다. 새벽에 몇차례 조카가 깨길래 그 때마다 토닥토닥 이모 여기있어, 라고 해주고 다시 자는데, 새액새액- 잠든 조카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는게 그렇게나 좋더라. 집으로 돌아가기전, 조카에게 말했다. 이모는, 조카랑 잔게 가장 기억에 남아. 너무 좋아. 조카는 이모 와있어서 뭐가 제일 좋았어? 그러자 조카는 이렇게 말했다.



응. 이모랑 쉬한 거.


아니........왜 쉬한게 제일 좋아. ㅠㅠ 

1박2일 있으면서 조카랑 놀았는데, 고작 그만큼을 있으면서 온 몸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더라. 결국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떡실신했다. 고작 1박2일에 이지경이 되었는데,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대체 매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게다가 돌봐야 할 어린 아이들이 둘씩 셋씩 된다면. 하아- 세상의 모든, 육아에 힘쓰고 있는 엄마와 아빠들에게 진심을 담아 격한 응원을 보낸다. 



내 핸드폰의 비밀번호는 이 세상에 나 말고 단 한사람, 조카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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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3-1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인용해 주신 대목을 읽으니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 나서 참 좋네요. 아, 조카는 커서 이모의 따뜻함을 정말 아름답게 추억할 것 같아요. '이모'란 존재는 참 특별한 것 같아요. 엄마와는 다른.. 육아를 힘들다고 이야기해 주는 글이 왠지 지지가 되는 것 같아 좋네요.

다락방 2014-03-13 09:32   좋아요 0 | URL
클레브공작 부인이 이해되면서 안타깝고 그렇더라고요. 그 격렬한 감정을 한발 더 내딛지 못하는게 답답한데, 그랬기 때문에 그 감정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해되고요.

조카가 과연 시간이 흘러도 절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럴까요? 이제 학교 들어가면 흥, 이모따위! 하는거 아닐까요? 흑흑. 제가 조카랑 함께 술 마시려면 십오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저는 노년이 되어있겠더라고요. 슬퍼.. ㅠㅠ

육아는 감히 제가 시도 해볼 생각도 못해요, 블랑카님. 제겐 너무나 벅차게 느껴지는 일이라서요. 블랑카님 정말 대단하신거에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14-03-12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3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03-13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찜합니다. 제가 요즘 [오래오래] 읽거든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랑 [오래오래]랑 모두 결혼 제도 밖에서 사랑을 찾는 여인네들이 계속 나와서요. 이러다가 자유부인될까 걱정스럽지만서도, 다락방님 멋진 리뷰에 이 책을 안 읽을래야, 안 읽을 수가 없네요. 특히, 이 구절이요.

저는 제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은 당신의 애정에 대한 너무 약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제 감정을 자유롭게 다 드러내는 것은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일 거예요. 당신의 사랑을 더는 받지 못하는 일은 제게도 참 끔찍한 불행이라고 저는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그 힘든 의무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 불행에 저를 내맡기기로 결정했지만,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자유롭고 저 역시 자유로우니 우리가 함께해도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남자들이 영원한 약속 안에서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요? 그런 기적이 제게 일어날까요? 제 모든 행복이 될 그 열정이 결국에는 사그라지는걸 분명 지켜봐야 할 거예요.

키햐~~ 넘 근사한데요. 도전합니다, 도전!

아무개 2014-03-13 09: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지 않았으면서 <오래오래>를 다락방님께 저도 권했던 기억이 나네요 ^^

다락방 2014-03-13 09:39   좋아요 0 | URL
제가 그간 읽어온 여자들은 결혼 제도 밖에서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이 책, <클레브공작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선택할지언정 그 상대와 '함께' 가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아요. 이해되면서 인상적이고 답답하면서 공감도 되고 .. 독특한 캐릭터였어요. 독특한데, 충분히 그럴만하달까요.

<오래오래>는 처음 책 나왔을 때부터 찜해두고 있었는데 아무개님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여즉 구입도 안하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엔 구입할 책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

단발머리 2014-03-13 16:00   좋아요 0 | URL
음... 그렇군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여주인공은 결혼제도 안으로 막 들어서려는 남자를 막아서서 자신을 사랑하게 해놓고, "저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하고 떠나더라구요. 처음엔 이해가 안 됐죠. 그녀는 결혼의 억압 가능성을 미리 간파했다고 할까요. 어찌보면 클레브 공작 부인과 비슷한것 같아요.

"남자들이 영원한 약속 안에서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요?"고 묻잖아요.
저는 아니라는 쪽에, 남자만 그런게 아니라 여자도 아니라는 쪽이거든요.
그러니, 결국엔 그 사람을 떠날 수 밖에요. 그럼, 어쩌자는 건지요.
사랑하고, 떠나고, 또 사랑하고 떠나고. 그런거예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4-03-14 11:12   좋아요 0 | URL
저도 '아니'라는 쪽에 거는 사람입니다. ㅎㅎ
결국 인간은 누군가를 떠나고 사랑하고 떠나고 사랑하고 반복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같은 사람에겐 그게 남들보다 더 쉽게 반복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법적으로 정착을 매듭짓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는 각자가 찾아내야 할것 같아요. 자, 그럼 나는 어쩔것이냐, 하고요. 인간은 정말 불완전한 존재에요, 단발머리님. 그치요?

자작나무 2014-03-1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아쉬운 것은 갈수록 사라져가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 그것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다락방 님의 사랑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동의합니다

다락방 2014-03-14 11:10   좋아요 0 | URL
제 열정도 많이 사그러든것 같아요. 예전같지 않다고 종종 느껴요. 열정은 그 특성상 한 사람안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