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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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래피가 .. 내겐 힘들구나. 37쪽까지 읽다가 포기하고 덮어버렸다. 이 책을 좋아할 사람이 떠올랐지만, 아 나는 진짜 못읽겠고...
별 하나는 이 책 안읽고 준 것이다.
이 책을 호기심에 접할 사람들을 위해 언급하자면, 초반부터 오줌 얘기 엄청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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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의 감정과 또 읽고나서의 감정에 대해 적고 싶은데, 무얼 어떻게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깊은 사색과 고민, 성찰이 느껴지는데, 이게 가능하다는 게 너무 놀라워서, 그 자체에 감동하게 된다. 매번 '똑똑한 여자 너무 좋아' 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말 자체가 가볍게 느껴진다. 많이 공부하고,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있게 둘러보고,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걸 글로 풀어내는 모든게 리베카 솔닛에게 가능했다. 아, 더 어떻게 말해야하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면서 어머니와 자신 사이의 갈등과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삶, 그것을 돌아보는 과정에 살구와, 거울, 얼음 등을 가져와 연결시킨다는 게, 내가 읽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고 이렇게 적는데도 소름이 끼친다. 뭐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다있지? 그러니까 이 책이 얼마나 좋으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거다.


매 장이 다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나는 체 게베라와 나병 환자들에 대한 부분에서 아주 많이 놀랐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나 무지했던 '나병'과 거기에 자연스레 따라오며 연결되는 '고통'이란 것에 대해서.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은 그 할머니가 아니라 당시 나의 남자친구였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가 나병 환자들의 손과 발을 상하게 하는 건 정작 병 자체가 아님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나병은 신경을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만들 뿐이고, 그렇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면 환자들은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된다.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다. 스스로가 제 손가락과 발가락, 발, 손을 베이고, 화상을 입고, 멍들게 하고, 벗겨지게 하다가, 결국 그 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p.151)



고통의 역할이라고 해야할까. 우리가 무언가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 그러니까 손과 발을, 입을, 머리를 보호하려고 하는 건,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고, 바꿔 말하면 고통을 느끼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 당연한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이 나병의 증상에 대한 언급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 '고통은 뭐지?' 하는데 생각이 미친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고통은 필요한 거란 말인가, 라는 생각. 지키기 위해서 고통이 수반된다는 건가. 나병 환자들의 손과 발을 상하게 하는 게 병 자체가 아니라, 감각을 느낄 수 없어서라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돌보지 않게 된다니... 이 부분이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거다. 



고통, 뭐지?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오래된 지혜를 새롭게,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재확인한 나는 나병과 고통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p.152)



나병과 고통에 관한 글을 찾아 읽던 리베카 솔닛은 그것을 감정이입으로 연결해 글을 써낸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 그 사람 혹은 그런 사람들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그런 감정이입이 차단될 수도 있다. 사회 전체가 자신은 경계에 있는 소수자들과 무관하다고 여길 만큼 무감각해지도록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맺은 인간적 관계를 지워 버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감정이입 덕분에 당신은 고문, 배고픔, 상실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다음엔 마치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바능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 버린다. (p.157-158)





나병과, 고통과, 감정이입과, 결국은 확장된 단계인 사랑에 대한 글쓰기라니. 매 장마다 내게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나도 이런 글쓰기가 가능할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내게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은 '아니' 였다. 이런 글쓰기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새삼 리베카 솔닛이 있어서, 마사 누스바움이 있어서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너무 멋지다 이 사람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라 해야할까, 너무 좋아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던 부분은, 리베카 솔닛이 어머니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고 또 아픈 남자친구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다 그랑 헤어졌을 때,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본인에게 절망적이라 느껴졌을 바로 그 때, 아이슬란드로부터 걸려온 전화, 올리브 키터리지 식으로 말하자면 그 '무지개'같은 전화, 그 전화가 오는 부분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레이캬비크에서 온 전화, 전화를 건 사람은 내게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하자 상대는 놀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아이슬란드라는 그 먼 미지의 땅, 북풍 뒤에 숨은 그곳이, 내가 가야 할 바로 그곳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전화는 마법 같은 구원처럼,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p.106)




리베카 솔닛이 어쩌면 암일지도 모를 무엇에 대해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그녀를 문병오고 그녀를 도우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빚'과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대해 쓸 때도 느꼈지만, 우리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른 어딘가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딘가에 선의를 베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돌고 돌다가 쌓이고 쌓이다가, 내가 무너질 것 같았던 때에 기적처럼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기만 한걸까. 그 우연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게 아니다. '나로부터' 비롯되었고 그렇게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마법 같은 구원의 전화가 걸려온 뒤의 글도 숨이 막힐것 처럼 좋아서,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고, 숲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하루하루의 대혼란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두 사람이, 본인들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우연히 함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유사함에 혹은 차이에 끌린다. 각자의 두려움과 한계를 오랜 기간 극복하고, 두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겨난다. 수백 만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 안에서 헤엄치고, 어찌어찌해서 여정을 완수한 단 하나의 정자가 역시 단 하나의 어머니 세포와 만나 우리를 낳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냘픈 그 짝짓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그 혼란을 겪은 후 지상에 나오게 된다.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너무나 연약한 유년의 몇 해 동안, 단 한순간이라도 어머니가 한눈을 팔았더라면 당신은 촛불처럼 훅 꺼져 버렸거나, 욕조에서 익사했거나,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삼키다 목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모두 각자의 부모님이 서로를 만날 당시의 작은 우연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불난 집에서 탈출한 사연이나 혹은 할아버지가 폭격을 간신히 피한 이야기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어떤 선택이 있었고, 우리가 축복을 받든 저주를 받든 아니면 둘 다를 받든, 그 모든 일은 그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 선택을 끝까지 좇다 보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의 삶이란 매우 희귀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상한 진화의 결과 같은, 이미 멸종했어야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우연한 작용 덕분에 살아남은 한 마리 나비 같은 것. 우연이라는 단어(coincidence)는 주로 사고와 관련하여 쓰이지만, 말뜻 그대로 보자면 함께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우리 삶의 패턴은 제각기 떠돌아다니는 것들이 아니라, 잠시라도 함께 박자를 맞추어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무용수들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힘이 짝으로 만나는 순간, 생명이 만들어질 때의 온기가 있는 순간, 우리의 부모일지도 모를 알 수 없는 이들 사이에서 은밀한 연애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순간 우리 삶의 패턴은 완성된다. (p.106-107)





이 장은 통틀어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생각나게 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리베카 솔닛이 하는 이 얘기를 그대로 소설로 풀어낸 게 아닐까 싶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속의 작은 기쁨과 큰 기쁨이 그리고 밀물이, 이 모든 것들로 구성되어지고 비롯된 게 아닌가. 




도움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가급적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고 싶다. 여태 나의 삶은 그런 식으로 굴러왔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내가 받지 않으려고 해도 나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모습이 될 수 있었으며 이 삶을 살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은 혼자서 다 잘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야, '정말 강한 사람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견디기 보다는, 내가 이 부분을 힘들어하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 고 내 약점을 인정하고 손을 내밀어 보는 쪽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거다.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내가 진단을 받은 증세뿐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 훨씬 더 많이 치료를 받게 될 것 같다고 적었다.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삶을 강제로 잠시 멈춰야 했다.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좀처럼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나의 경우 과거에 유난히 도움을 주지 않던 부모가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빚을 엊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며, 또한 빚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빚을 진 사람들이 그 부담감 때문에 바로 답례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들이 꼭 주고 싶어 하는 선물들이 있고, 때론 빚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기도 한다. (p.179-180)




호의는 비상식량, 비가 올 때나 겨울, 수확이 없는 시기를 대비해 비축해 두는 식량과 비슷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상상했던 것보다 많음을 발견하는 일은 뿌듯하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모여 들었고, 나는 아름답게 보살핌을 받았다. 친구 안토니아가 중간에서 병문안 오는 사람들의 일정을 조정해 주었다. 나중에 회복기가 되자 삶이 늘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보낸 꽃다발에 묻혀 지내고, 모두 나를 도와주려 하고 걱정해 주는 삶. 하지만 그건 내가 그것들을 필요로 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필요로 할 때마다 그것들을 얻을 수도 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그것들이 거기 있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든 것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p.181-182)



의리 없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머니를 성공적으로 맡기고 난 후에, 어쩌면 이전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의 경험은 좀 더 결정적인 단절을 의미 했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취소하거나 일정을 조정했다. 쓰고 있던 책의 발간을 늦췄고, 못 하겠다고,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가장 잘생기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옷으로 가리고 있던 자신들의 상처에 대해, 혹과 낭종과 흉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끄러운 질환이나 비정상적인 모습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해 주었다. (p.182)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나는 '못하겠다'고 말했다는 부분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못하겠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느냐' 고 묻는 부분. 내게 필요한 것도 그게 아닌가 싶었다.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못하겠다는 말을 너무 못하면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이 책은 진짜 너무 좋았다.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정말 너무 좋았다.

특히 위에 인용했던 어머니와 탄생에 대한 부분은 너무 좋아서 낭독도 해보았다. 중간에 발음이 꼬였지만, 다시 하자니 너무 길어서 그대로 한 번 올려보겠다.








여러분 이 책 읽자. 정말 좋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읽자.


내내 아이슬란드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다고. 그곳의 고즈넉한 풍경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곳은 내가 기존에 했던 여행처럼 지하철을 타고 다니거나 걷기만으로 충분할 것 같지가 않은데, 그렇다면 나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떠나야 하는 게 아닐까. 게다가 기존에 했던 다른 여행들처럼 며칠만을 예정한채로 훅 갔다가 훅 오기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가만, 랩 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빌을 위로하기 위해 함께 만났던 곳도 아이슬란드 아니었나?
가만히 조용히, 아이슬란드에서의 며칠을 생각해본다.
함께 간 사람과 고즈넉함을 같이 바라볼 수 있다면, 같이 느낄 수 있다면 뭔가 평생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슬란드가 주는 분위기라는 게, 뉴욕이나 하노이가 주는 느낌과는 아주 다르니까.
별다른 일정 없이 머물다가, 가지고간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다가, 동행에게 나직하게 읽어주기도 하면서 며칠을 지내다 오면, 그 후의 삶은 그 전의 삶과 다르지 않을까.


아, 이 책은 진짜 뭐지. 되게 복잡한 마음이다. 너무 좋고 고요하고 이상하게 흥분시키고 조금 다른 삶을 꿈꾸게 한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고, 호의를 베푸는 삶을 살고 싶고, 고통을 받는 자들과 연대하고 싶도록 만든다. 내 안에 가득한 사랑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싶고, 그리고 더 공부하고 싶다. 멀고도 가까운, 이 제목에서 뜻하는 바는, 책 속에서 언급되는데, 거기에 대해 인용하며 이 긴 글을 마치겠다. 

퇴근해야 되니깐. -0-



"가까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뉴욕에서 몇 년을 지낸 후 뉴멕시코의 시골로 이사한 조지아 오키프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인사말을 덧붙였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감정은 그 자체의 거리를 가진다. 애정은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것, 자아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침대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낯선 이들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도 있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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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6-2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정성 가득 서평과 감상이라니~ 이 책을 안 읽고 배길 수가 없겠네요. 낭독도 잘 들었어요. 이렇게 목소리까지 아름다우시면 어쩌나요~전 그렇지 않아도 락방님께 반한 처지인데~~

다락방 2017-06-28 18:35   좋아요 0 | URL
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저는 낭독 목소리보다 실제 듣는 목소리가 훨씬 좋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 반하셔야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좋아요!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을 거예요! >.<

다락방 2017-06-2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160 인용문 마지막 줄 오타인 것 같은데 책 있으신 분 좀 알려주세요 ㅜㅜ 제가 책을 회사에 두고 와서 어떤 단어를 잘못 쓴건지 확인이 안되네요. 아니, 저 마지막, ‘찬선‘ 이 뭐여?? ㅜㅜㅜㅜㅜ

다락방 2017-06-28 18:36   좋아요 0 | URL
앗 낯선 인가보다, 문맥상!

책읽는나무 2017-06-28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글샘님의 리뷰를 읽고 아~읽어봐야지! 그랬는데 다락방님의 리뷰까지!!^^
여기저기서 좋은 서평들이 많은 책이네요.아껴 읽고 싶은 책인가 봅니다.
저도 낭랑한 낭독 잘 듣고 갑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편안해서 좋네요.
가을에도 또 책 읽어 주세요ㅋㅋ

다락방 2017-06-29 08:01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이 책 정말 좋습니다.
빠르게 넘어가진 않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에요.
저는 조만간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어려워서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책을 통째로 베끼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베끼는 과정에서 또 이해하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베끼다보면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말이지요.

네, 책은 또 읽어드리겠습니다! 으흐흐흐흣

비연 2017-06-2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좋았습니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죠..
.. 그나저나 ‘책읽어주는 락방님‘, 너무 좋습니다!

다락방 2017-06-30 12:48   좋아요 1 | URL
으흐흐흐 책읽어주는 게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비연님.
이 책 정말 좋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깊은 고민과 생각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어요. 리베카 솔닛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여러차례 들었어요.

단발머리 2017-06-3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좋았어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또... 원서를 사서는 (이건 또 무슨... 버릇 ㅠㅠ)
아무튼 줄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 역시 두 번째 읽을 때는 천천히 읽었어요.

저는 다락방님의 진짜 음성을 직접 들어본 사람으로서... 흠흠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의 목소리는 정말 너무 좋아요. 실제로 들었을 때 진짜 좋아요. 완전 귀호강~~~
근데 이런 녹음 목소리는 다른 사람 것인마냥 또 좋네요.
저 같은 경우 가끔 노래하는 걸 녹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재생시 온 가족이 대피합니다.
실제로 좋게 들려도 녹음하면 완전 다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다락방님은 책 읽어주기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꼭이요^^

다락방 2017-06-30 12:49   좋아요 1 | URL
크- 원서라뇨!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원서라니! 그러고보니 제가 [일곱번째 파도] 원서를 주문한 일이 떠오르네요. 지금 제게로 오고 있습니다. 아마 일주일정도 후엔 받아볼 수 있을거예요. 아니, 대체, 왜...

리베카 솔닛의 이 책을 저도 원서로 사야겠어요. 이왕 필사할거라면 원서로 해도 좋을것 같아요!
그렇지만..그렇게 사둔 원서가 많고 ㅠㅠ 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ㅠㅠ 봐봤자 읽을 수도 없고 ㅠㅠㅠ
저도 이에 구몬영어를 좀 해볼까 싶어 어제 레벨테스트지 받아 풀었답니다. 결과를 기다려봐야 해요. 흙흙


제 목소리를 좋다고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은 진짜 제가 엄청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아셔야 해요, 진짜로요, 진짜로.

clavis 2017-07-02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하면 저 진짜 스토커 되는거죠?? ㅎㅎ제가 이 시각까지 못 잔 이유가 있었어요!바로 이 글을 읽기 위해서♡♡

가을에 책 또 읽어주세요2
글구 락방님 따라서 저도 어떤 기회에 동화책 읽어드리고 다녔는데 넘나 반응좋아서 낭독영업 왕왕 뛰어보려합니다..

먹임이 사랑임을 아시는 락방님은 제가 실제로 아는 여인 중에 가장 똑똑한 여자 중 한 분이시지요♡아아 나는 락방님을 맹신합니다ㅋ락방님 좋아요♥감성과 지혜를 겸비하신 락방님 좋은 글 계속 많이 써 주시고 가을아 빨리 와라,와서 락방님 우리게 글 또 읽어주시게♥♥★

다락방 2017-07-02 17:11   좋아요 0 | URL
우와- 책 읽어주시고 좋은 반응을 얻으셨다니, 정말 좋으네요 클래비스님! 앞으로도 늘 좋은 일 하시고 좋은 반응도 잔뜩 받아들여서 에너지 푱푱 샘솟는 클래비스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주 그냥 저에 대한 칭찬이 폭발하는 댓글이라서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댓글이네요. 똑똑하다, 감성과 지혜를 겸비했다, 하시니 ㅠㅠㅠㅠㅠㅠㅠㅠ 감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제가 진짜 넘나 감사드리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클래비스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또!! 책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저 오늘부터 [헬페미니스트 선언]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발췌해서 읽어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지옥의 페미니스트 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얏호~~~

clavis 2017-07-0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빠른시일내에 읽어서 지옥은..초큼 그렇고..그렇지만 천국의 페미니스트란 어쩐지 강렬함이 사라지니 지옥의 페미니스트 저도 할랍니다!!

다락방 2017-07-02 17:15   좋아요 1 | URL
네, 천국의 페미니스트란...어쩐지 존재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같지 않습니까? ㅋㅋㅋㅋ 지옥의 페미니스트들이 세상을 다 뒤집어놓으면, 그때는 천국이 되지 않을까....생각해봅니다. 우리, 그 길을 함께 걸읍시다!!

clavis 2017-07-0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ㅠ서로의 손 맞잡고ㅠ락방님이 있어서 쒼나쒼나요♡♡
 
I‘ll be there for you.



















남자랑 여자가 알고 지낸지도 6년쯤 되었다. 6년간 매일 만난 것도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난 후에는 3년후에 만나고, 그리고 나서는 2년 후에, 그리고 나서는 1년 후에... 식으로 몇차례 만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웃게 하고 서로의 우울함을 달래준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남자는 뉴욕의 공항에서 갈등한다. 엘에이에 사는 여자에게 가고 싶은 마음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가야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이 여자한테 가고 싶은데 다른 쪽에 내 일이 있다... 그리고 남자는 벤처자금을 신청해둔 상태였다. 



얼마전 읽은 《마티네의 끝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방해물이 되는건 여러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서처럼 다른 사람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처럼 '내 욕심' 이기도 하다. 자기가 정해놓은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벤처자금을 받고 자신의 사업을 일으켜야 했다. 그게 그 순간 그에게 당면한 과제였고, 그래서 그는 여자가 있는 엘에이를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벤처자금을 받는데 성공한 그는 환호성을 지르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는 결국 망한다. 시작했던 사업을 접고 부모님이 계신 집에 돌아가야 하는 거다. 분명 5-6년 후면 사업도 성공하고 아내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업도 실패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게 된 것. 



여자는 소소하게나마 사진 찍어 주는 일을 한다. 예식장이나 생일파티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고 있으며, 작게나마 전시회도 연다. 그런 여자앞에 오랜만에 다시, 남자가 등장한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부터 남자는 그녀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본 조비의 <I'll be there for you> 인데, 그 노래로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거다.






아주 오래 걸렸지만, 남자는 자신이 과거에 장담했던 그 모습이 아니지만, 일년전에는 여자와 사업을 두고 갈등하다 사업을 선택했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그녀에게로 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기타도 잘 못치고 노래도 잘 못부르면서. 

이렇게 어렵게 결심하고 용기를 내어 노래했으니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준다면 아름다운 로맨스가 되었겠지만 후훗. 세상은 그렇게 내 맘대로 굴러가는게 아니다. 여자는 약혼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자는 뒤돌아 가야한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고백했음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남자가 사업과 여자를 두고 고민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만약 그 때,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고민하는 대신, 여자에게 기다려달라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있잖아, 내가 안정된 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너와 함께하고 싶어, 그런데 너를 사랑해, 이런 나를 조금 기다려줄 수 있겠니? 라고 말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가끔 우리는 상대와 의논하면 더 나은 문제에 대해서 혼자만 고민하고 제대로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티네의 끝에서》에서도 그랬다. 남자는 자신의 음악생활에 슬럼프를 겪게 되고 이걸 어쩌나 싶어 우울해하지만, 그걸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티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 역시 자신의 앞에서 테러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는 결코 남자에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이 그런 상태, 자신의 어려움과 힘든 점을 서로에게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그 방해에 속절없이 끌려가버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좀 더 굳건한 관계였다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잘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나 요즘 기타가 잘 쳐지지 않아서 마음이 좀 안좋네,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나 그 날 이후의 트라우마로 상담을 받고 있어, 라고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그걸 계기로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를 '잃는' 대신 서로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보다 더 강한 결속력으로 맺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마키노는 예전에는 당연한 듯 가득 채워졌던 창조적인 삶의 충실이 하필 지금 이런 때에 자신에게서 완전히 빠져나간 불우함을 저주했다. 만일 음악가로서의 행복과 요코의 존재가 가져다준 행복이 일치했다면 오늘 이 시간을 얼마나 환한 환희와 함게 보냈을 것인가.
그는 자신이 결코 후자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악은 그의 삶의 근거이고 그가 자신에게서 찾아잴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고 보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연주가로서 패기를 잃은 것이 너무도 창피스러운 요즘 같은 상태로는 언젠가 요코와의 사랑조차 결코 마음껏 누릴 수 없으리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p.206-207)

 

자릴라는 왜 마키노에게 PTSD 에 관해 털어놓지 않느냐, 분명 기댈 곳이 되어줄 게 틀림없다고 몇 번이나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요코는 그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전에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 혹시라도 마음대로 마키노에게 그런 얘기를 전하기라도 한다면 너와의 신뢰 관계는 끝나버린다고 선언했다. (p.234-235)




나 역시 내가 완전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원한다. 내가 좀 더 완성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멋있고 더 똑똑하고 더 근사한 사람인채로 그에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는 자신이 부족하다 여길 것이고, 그러니 좀 더 나은 모습인 채로 상대에게 갈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리가 잡힌 후에, 좀 더 완성된 인간이 된 후에, 우울함은 좀 털어낸 후에, 그 후에 상대에게 가야지, 라고 생각하면, 상대는 물론이고 시간과 상황이란 것이 내 뜻대로 기다려주질 않는다. 상대에게는 그동안 상대의 사정이 생길 것이고, 그리고 나와 상대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주 작은 변화들로 또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것들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주 작은 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진정 강한 사람은, 나의 약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나와 당신 사이에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함께 얘기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봐봐, 그러니까 추운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아 춥네, 한마디면, 함께 자고 있다가 안아주게 되잖아, 약한 모습과 우울한 모습 아직 채워지지 않은 모습도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영화 속에서 남자가 자신이 가고 싶은 곳과 가야하는 곳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때 여자에게 '너에게 가고 싶은데 나는 지금 당장은 여기에 가서 이걸 해야해, 이런 나 어때? 기다려줄 수 있겠어?'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혼자 공항에 앉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자 나오는 답은 뻔하니까, 상대에게 물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안정적인 모습이 된 뒤에 상대에게 당당하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정적이 된 후에 상대가 기다려주리란 보장은 어디있지? 또 시간이 흐른다고 자기가 안정적이 되란 법도 없잖아? 영화속에서 남자도 망해버렸는걸? 그러니 안정적 모습이 되기까지 함께 있게된다면, 그들 사이엔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이게 되지 않을까? 혼자 가기에 힘든 길을 같이 가서 좀 덜 힘들게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책 속에서 여자가 트라우마를 혼자 앓고 있었던 것도, 영화 속에서 남자가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것도, 다 내모습인 것 같다. 혼자 고민하는 모습이. 혼자 고민 백날해봤자 쥐뿔 아무 답도 안나와.... 진정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나의 약함을 상대에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해. 





다다다닥 글을 쓰고 있는데 코에서 뭔가 후루룩 나오는 것 같아, 어어, 코피인가, 하고 얼른 휴지를 가져다댔는데, 오오, 콧물이었다. 이 더위에 왜 콧물이 후루룩 나와버리지. 왜 줄줄 콧물이 나오지?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서 내가 지금 상태가 메롱이고, 얼른 집에 가고 싶고, 그래서 앞으로는 술을 끊어야겠다!! 술을 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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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7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7-06-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피 아닌 콧물인거 다행이죠? ㅎㅎ
에이. 다락방님이 술을 끊는다구욧? 거짓부렁~~~~

다락방 2017-06-27 13:59   좋아요 1 | URL
헤헤헤헤 콧물도 이제 안나요. 아침에만 잠깐 났어요.

술 끊을거예욧! 다시 마시기 전까지만요...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끊지 마세요..
그러다 이렇게 당차고 야무지고 야물딱진 리뷰를 못쓰게 되면 우리들은 어쩌나요???정말 어쩌면 좋지요???

다락방 2017-06-27 14:32   좋아요 2 | URL
아니 클래비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래비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진짜 어쩔 수 없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술을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진짜 클래비스님 때문에 술 마시는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ㅑ ㅎ ㅑ ㅎ ㅑ ㅎ ㅑ
원래 예술의 세계란 이렇듯 비정한 법..글때매 술 몬 끊으시는걸로ㅋ

다락방 2017-06-27 14:50   좋아요 2 | URL
그쵸 예술과 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것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6-2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는 참 어려운거 같아요ㅠㅋ 이 글을 읽고 좀 더 용기를 내보겠습니다ㅎ

다락방 2017-06-27 17:43   좋아요 0 | URL
오, 좋은 댓글이네요, 고양이라디오님.
고양이라디오님께 용기를 내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글이라면, 저 스스로에게도 참 만족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용기를 내요!

보슬비 2017-06-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주말고 절주해요~ 우리~~~~ ㅋㅋㅋㅋ 요즘 제가 그래요.
술 때문에 나이 듦을 느껴요. -.-;;

다락방 2017-06-28 08:24   좋아요 0 | URL
아휴 술 많이 마셨더니 다음날 너무 피곤하고요 ㅋㅋㅋㅋㅋ 절주...해야겠군요. ㅋ
조금씩만 마셔야 되는데 월요일에 저도 모르게 그만 들이부었네요. ㅎㅎㅎㅎ

비연 2017-06-28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끊겠어! 앞에 오늘까지만.. 이라든가 이번주까지만.. 이라든가 이런 말들이 숨겨진 거죠?ㅎㅎ
저랑 한번 와인 마셔야죠, 락방님!

다락방 2017-06-28 08:2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다음번 술 마실 때까지만? ㅋㅋ
비연님, 그러게요. 우리 와인 한 번 마셔야죠!
우리가 알라딘 내에서 알고 지낸게 대체 얼마입니까!!
 


















오늘 출근길에는, 개봉할 당시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를 다시 보았다. 물론 아직 40분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12년만에 다시 보는 영화는 처음부터 새로웠다. 첫 장면은 그들이 만나기 7년전으로 시작하는데, 그러니까 2005년에 개봉한 영화이니 대략 1998년을 보여주는 것일테다. 그때 애쉬톤 커쳐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계속 웃었다. 스타일이 아주 구린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쉬톤 커쳐는 저 긴 머리를 자꾸 손으로 귀 뒤로 넘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머리 잘라주고 싶어서 돌아버리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머리 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그렇지만 남의 외모에 뭐라고 하면 안되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머리 보는데, 아아, 역시 헤어스타일 중요하구나 싶었다. 애쉬톤 커쳐가 하나도 안멋있어 보이고 찌질해 보이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헤어스타일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속에서 아만다 피트와 애쉬톤 커쳐는 뉴욕으로 가기 위한 공항에서 처음 눈이 마주치고, 비행기 안에서 어, 특별(?)해진다. 그렇다해도 아만다 피트는 애쉬톤 커쳐와 그저 스쳐지나가려 할 뿐, 깊은 관계 혹은 아는 사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쉬톤 커쳐는 자꾸 아만다 피트에게 말을 걸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지하철 안에 나란히 앉아 애쉬톤 커쳐가 자신에 대해 블라블라 하면서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되었다'고 말한다. 



- 졸업은 6월에 하잖아?

- 그렇지.

- 그럼 1년 가까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 둘은 술을 마시러 가는데, 거기에서 애쉬톤 커쳐는 자신이 지금은 백수지만 앞으로 5년 길어도 6년 뒤에는 사업을 하고 있을 거고, 집도 있을 거고, 아내도 있을거다, 라고 장담을 한다. 6년후에 울부모님께 전화해서 나 찾아라, 내가 어떤지 봐라, 하고는 자기 부모님 연락처를 아만다 피트에게 건네는데, 그 뒤로 그들은 헤어지고 3년후에 아만다 피트는 수첩에서 그의 부모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보게 된다. 애인하고 헤어지고 얼마 안 돼 너무 외로웠고, 그래서 아는 남자들한테 다 연락해봤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는데, 아아, 이 놈은 당장 만나겠다고 한다. 3년 만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둘이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가는데, 식당에서 이들은 장난을 친다. 서로 물을 내뿜고 식탁 밑으로 들어가고 그런 장난을 치는데, 그거 보면서 새삼, '잘 맞는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저것도 둘이 맞으니까 장난치는거지, 아니, 식당에서 입에 있던 물을 나한테 '장난으로' 뿜는데, 거기다 대고 어떻게 웃으면서 나도 뿜을 수가 있담? 자기들은 낄낄대며 좋아하는데, 이런거, 장난이나 농담은 서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게 아닌가 말이다. 영화속의 아만다 피트니까, 애쉬톤 커쳐니까 저게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쩌면, 저 장난에 대해 누가 '듣는 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애매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만약 둘 중에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장난을 쳤어' 라고 했을 때, 듣는 사람이라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식당에서 그래?' 라고 말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은가 싶은 거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헐, 이게 뭐지' 하고 얼굴을 붉힐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 리액션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장난은, 내 경우에, 상대가 누구라도 싫을 것 같긴 하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우리가 애정을 가진 상대에게 허용 범위를 더 넓히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실제로 해보고 또 들어보지 않나.



"나 원래 그런거 싫어하는데, 니가 하니까 괜찮네?'



하는 거 말이다. 애정을 가진 상대에 대해서라면 내가 '안된다'라고 선을 그었던, 나름대로의 룰을 정했던 것들이 많이 지워진다. 응, 너니까 이거 괜찮아, 응, 당신이니까 괜찮아, 하면서. 



그러나 영화속에서 애쉬톤 커쳐와 아만다 피트는 사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애정을 고백한 것도 아니다. 그저 만났고 장난을 쳤을 뿐이었다. 아직 40분 밖에 못봤고, 물론 나야 결론을 알지만, 그래도 그 뒷부분을 봐야 알겠지만, 만약 '이정도가 내게 아무렇지도 않다' 혹은 '이정도도 즐겁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어? 왜지?' 하고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나는 그 상대를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빨리 뒷부분 보고 싶은데 내가 회사라서 너무 짜증난다.

이놈의 회사는 언제나, 뭘 해도 걸리적거려. -_-

책도 읽을 수가 없고 영화도 볼 수가 없고.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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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술을 끊겠다!
    from 마지막 키스 2017-06-27 08:37 
    남자랑 여자가 알고 지낸지도 6년쯤 되었다. 6년간 매일 만난 것도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난 후에는 3년후에 만나고, 그리고 나서는 2년 후에, 그리고 나서는 1년 후에... 식으로 몇차례 만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웃게 하고 서로의 우울함을 달래준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남자는 뉴욕의 공항에서 갈등한다. 엘에이에 사는 여자에게 가고 싶은 마음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가야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이
 
 
비연 2017-06-26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회사는 언제나, 뭘 해도 걸리적거려. -_- ...

이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담아 커피를 뿜....ㅎㅎㅎ;;;;

다락방 2017-06-26 10:01   좋아요 1 | URL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게 해요, 회사가. 에잇.
집에 가고 싶어요 비연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나 그랬듯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06-2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저도 요즘 딥 빠져든 홍차의 세계에 일상이 거치적거리네요

ㅋ언제나처럼 넘 사랑스러븐 우리 락방님!!!
만쉐입니다♡

명문가..나를 돌아볼일이다ㅠ머를 드시고 늘 그렇게 똑똑하신거에요?

(저는 매니아..스톡허 아님ㅋ)

다락방 2017-06-27 15:06   좋아요 1 | URL
아이참 클래비스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뭐가 똑똑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껏 좋아하며 춤을 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생각할 때 무례함과 독재는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는 레닌이 자신의 정치적 유서를 구술시키고 후계자가 될 만한 사람을 고를 때, 스탈린의 큰 결점을 ‘무례함‘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독재자‘로 감탄스럽게 묘사되는 지휘자들이 보기 싫었다. 최선을 다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독재자들, 지휘봉을 잡은 황제들은 그런 표현을 즐겼다-마치 오케시트라를 채찍질하고 멸시하고 굴욕을 주어야만 그들이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듯이. (p.120-121)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그는 항상 자신의 예술이 반귀족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부르주아 코즈모폴리턴 엘리트 층을 위해 작곡을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그에게 바라듯, 교대 근무에 지쳐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거리가 필요한 도네츠 광부들을 위해 작곡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잘 즐겨주는 이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p.135-136)

모스크바 밖에 있는 별장에 가면 제일 먼저 우편이 믿을 만한지 확인해보려고 자기 앞으로 엽서부터 보냈다. 때로는 이런 행동이 살짝 도를 넘을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넓은 세상이 통제 불가능하게 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만이라도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 그 영역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p.199-200)

1936:1948:1960. 그들은 12년마다 그를 찾아왔다. 물론 매번 윤년이었다.

‘그는 자존심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표현에 불과했으나 정확한 표현이었다. 권력층의 압력을 받다보면 자아는 금이 가고 쪼개진다.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는 영웅으로 살아간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아니면, 더 흔한 경우는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속으로도 겁쟁이로 산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도끼날에 반으로 쪼개진다. 차라리 산산시 쪼개져서 조각들이-그가-한때는 딱 들어맞았음을 헛되이 기억하려 애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p.223)

그의 친구 슬라바 로스트로포비치는 예술적 재능이 위대할수록 박해를 더 잘 견뎌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맞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슬라바에게는 확실히 맞았다. 그는 어떤 경우건 낙관적인 성향을 잃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더 젊고, 예전 시대가 어땠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또는 영혼이, 신경이 박살 났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일단 신경이 망가지면 바이올린 줄을 갈듯 바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영혼 속 깊숙이 뭔가가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뭘까?-어떤 전략적인 교활함, 세상물정 모르는 예술가인 척할 수 있는 능력,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자신의 음악과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결심뿐이었다. 그는 드디어 이렇게 생각했다-생기와 결의가 다 빠져나가버려서 기분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기분으로-어쩌면 이게 오늘 치러야 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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