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포즈》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스로 모시고 있는 비서이다. 여자는 회사에서 '마녀'라는 별명을 얻은 빡빡한 그리고 엄청 유능한 편집장이고. 그녀는 운동도 열심히하고 좋은 집에서 혼자 잘 살며 일에서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인다. 그러나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미국에서 비자 거절이 떨어지고 그렇게 미국이란 나라에서 쫓겨날 판이 된다. 여기에 이렇게 해놓은 게 많고 계속 하고 싶은데...  캐나다에 가서도 화상회의 등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지만 회사에서 '그건 안된다' 라고 한다. 쫓겨난 사람이 이곳의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자신의 말잘듣는 남자 비서에게 위장결혼을 명한다. 그렇게 되면 니가 원하는 책도 내줄거고, 하면서 너 좋고 나 좋자는 것. 남자도 이에 동의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 결혼이 여자쪽 사정이 급해 하게된 것이니만큼 여자에게 '나에게 청혼하라'고 말한다. 여자는 길바닥에서 어정쩡하게 무릎을 꿇고는 남자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남자는 수락하고.



이민국(맞나)에서는 이들 부부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는지, 위장결혼이 아닌지 심사하고 확인해야 한다. 여자는 이번 주말에 있을 남자의 할머니 생신 파티에 참석해 가족들과 같이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기로 한다. 남자의 고향인 알래스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도착해서도 마찬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고 갑자기 툭, 자신의 이야기를 던지는 중에 남자가 빨리 여자에게 답을 하지 않아 여자가 내 말을 들은건지 묻는다.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곱씹고 있었어요."



내가 너무 좋아했던 장면이다. 여자가 하는 말들을 그냥 흘려넘기는 게 아니라, 한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는 거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남자는 당연히 그 날의 대화를, 그 대화가 오고갈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곱씹었으니까'. 내가 잘하는 것. 곱씹고 나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물론 이 곱씹는 것은 누구와의 대화에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의 대화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다정한 사람에게 발현되는 것. 남자는 스스로 저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소중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여자는 십대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서 잘 지내왔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능력있는 여성으로서 잘 지내왔다. 딱히 외로움이란 것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렇게 아마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집에 도착해 남자 가족들의 환대를 받고 그들과 소란스럽게 섞이면서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이런 게 가족이었지' 하게 되는 것. 남자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할머니도 모두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여자 역시 사랑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익숙하지 않은 관심과 오지랖에 처음엔 불편해하고 어색해 하다가, 시간이 흐르자 이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이 하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인지한다. 이것이 위장결혼임을 알 경우, 결혼 후에 이혼하게 될 경우, 남자의 가족들이 얼마나 상처받을지를 생각하면 이걸 더이상 진행할 수 없었던 것.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 중간즈음에 빻은 장면이 하나 나와서 좀 빡치긴 했지만("그녀 가방은 그녀가 혼자 들거예요, 그녀는 페미니스트거든요"),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다. 모든 가족들이 오지랖 대박이긴 하지만, 새롭게 맞아들이게 될 사람에게 사랑을 몰빵하는 게, 나는 그게 좋았다. 그러니까 여자는 지금처럼 혼자여도 계속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생겨서 더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만 '아 이런 것이었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러니까 가족이란 게 대체적으로 가장 신경쓰이게 하는 구성원들이긴 하지만, 어딘가에서 이렇게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 있기도 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좋았다. 게다가 여자가 '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좋았다. 그것은 자신의 그동안 삶이 외로웠다거나 고독했다거나 하는 걸 나타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혼자서도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니까.



여자의 말을 곱씹는 남자가 나오고, 가족 구성원을 사랑하는 가족이 나오는 이 로맨스 영화가 너무 좋았다. 역시 이런 영화를 남자들이 좀 많이 봐야하는데... 좋은 영화는 안보고 화장실 몰카나 쳐보고 있으니 원....






(위에 가방 너무 예쁘다... ㅜㅜ)



















토요일에는 창원에서 친구들이 올라와 함께 혜화시위에 갔었다. 시위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는 각자의 객실에서 잠을 청하려는데, 나랑 함께 자게된 친구는 검색어에 '가을의 전설'이 올라왔다며 지금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또 맥주를 따라서는 함께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때 본 적이 있었는데, 오래되어서인지, 삼형제가 모두 한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 브래드 피트가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여자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 등만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그 때 이 영화보고 브래드 피트 엄청 좋아했었는데...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와 나는 중간즈음부터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삼형제중 막내가 전쟁에서 죽고, 막내의 애인이었던 여자는 큰 형과 결혼한다. 마음은 둘째 브래드 피트에게 가있었는데 왜 이렇게 결정한거였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공무원(아마도?)의 아내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우울하다. 그런 와중에 브래드 피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아.................. 그 때의 슬픔. 슬픔의 새드니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둘째와 첫째의 사이는 안좋아서 사실 그동안 잘 안보고 살아왔는데, 여자는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브래드 피트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우연히 거리에서 브래드 피트 부부를 만나게 된다.


아아 이것이 이렇게, 이토록이나 가슴 아픈 영화였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브래드 피트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랑 행복한 걸 보는 건... 아 진짜...... ㅠㅠ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결혼은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해야 되는거야. 안그러면 나중에 이렇게나 후회하고 가슴 아프고 미쳐버린다니까 ㅠㅠㅠ


그런데 나쁜 놈들 때문에 브래드 피트의 아내가 죽게된다. 나는 아내를 잃고 오열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 순간, '아아 이제 여자와 다시 잘 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같은 생각을 했음을 고백한다...나는 브래드 피트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로하다가 다시 내게로 오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브래드 피트에게 다가가는 대신 죽음을 택한다.



죽음을 택할만큼 그녀는 불행했고 우울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죽음을 택하지 않는 쪽이 더 나았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데에야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마는, 나였다면, 살아서 계속 브래드 피트를 마주치는 쪽을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이라도 당신을 마주치는 것, 그리고 당신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내게도 그의 옆에 자리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 것. 그 희망이 절망이 될까봐 늘 전전긍긍 하면서도, 하루 또 하루, 그를 보면서 사는 쪽을 나는 택했을 것 같다. 종국엔 참지 못하고 먼저 연락을 취하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 괜찮아?"

"잘 지내나요?"



그런 식으로 절망하는 그의 옆에서 그가 버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아니고 나는 그녀가 아니야.... 아무튼 이게 이렇게나 슬픈 영화였나, 다른 여자와 행복해 보이는 남자를 보는 여자가 되어, 나는 함께 우울해했고, 그러나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는 여자에게로부터 나는 분리되었다. 하지마, 그러지마, 하고 갑자기 그녀로부터 나는 빠져나온다. 나는 그의 옆에서 살고 싶다. 그가 없는 세상을 택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사랑인가...파워 오브 럽.








친구랑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어. 그러고보면 이 친구랑은 이런 시간을 종종 보내게 된다. 친구가 나의 여행 친구이기 때문에 같이 밤을 보낼 일이 종종 있고, 그러다보면 술 마시면서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에서 노팅힐을 보기도 했지! 이런 순간들은 켜켜이 쌓여서 나중에도 돌이켜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어제는 아홉살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모, 2단부터 9단까지 외운 거 기억하는데 30분이나 걸렸어. 그런데 저녁에 피자랑 스파게티 먹었어. 엄마가 레몬에이드도 사줬어!



맛있는 거 먹고 씐나서 내게 막 전화를 한다. 아 너무 예뻐 너무 좋아. 나는 '나도 얼른 조카에게 맛있는 것 사주고 싶다, 맛있는 것 먹는 것 보고싶다' 하는 마음이 한가득이 되었다. 잠시후 남동생이 도착했는데 조카는 삼촌을 부르더니 "삼촌~ 보고싶어!!" 한다. 아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뻐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난 얘 진짜 너무 좋아 ㅠㅠㅠ



조카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맛있는 걸 사주진 못했지만, 나는 앞으로 조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토요일에 혜화시위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모였다. 시위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스태프가 돌아다니면서 말해주었다.


"현재 경찰 추산 2만명이래요!" 우리는 서서 환호했다.



잠시후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삭발식이 거행되었다. 삭발한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한 참여자는 '동생이 어린데 그 동생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울컥했다. 쓰는 지금도 울컥해. 나 역시 나보다 더 젊은, 어린 여자들을 위해서 그 자리에 갔다. 세상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야 내 어린 조카가 앞으로 살아가기 힘겹지 않을테니까. 아마 그 자리에 있는 여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피해받고 상처받아 우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보다 훨씬 어린 여자들을 위해서.




나 역시 반성할 게 많다. 어릴 때 그리고 최근 몇년 전까지도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수시로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그 때 내가 왜그렇게 빻았던걸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나 자신이 미워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수시로 든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자고 결심을 새로이한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나처럼 과거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되어 함께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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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1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드라불록이 주연했던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 혹시 아시나 모르겠어요. 제가 여러번 봤던(영어 공부를 위해서지만 ㅋㅋㅋㅋㅋ) 영화인데, 그 영화 내용이랑 <프로포즈>랑 무척 비슷하네요. 다른 점이라면 산드라 블록이 대가족의 ‘대가족 분위기‘를 엄청 부러워했다는거, 라고 할까요.
<프로포즈>의 능력있는 여성이, <당신이...>에서는 좀 신데렐라 느낌이 난다 할까요.
조금 뻔한것 같아도 저는 또 이런 따뜻한 영화가 좋더라구요.

어제부터 혜화역 집회 뉴스 찾아 읽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서로의 용기가 되어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가요.
우리...

다락방 2018-06-11 11:23   좋아요 1 | URL
저 그영화도 봤어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요. 이거 동생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형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영화죠? 그 뭣이냐, 기차표..판매원으로 나오고요? 아주 오래전에 봐서 기억은 희미하지만 저 그 영화 봤습니다 후훗.
제가 이 [프로포즈]를 넷플릭스로 봤는데요, 이거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로맨스 영화 봐야지 싶었는데, ‘비슷한 영화‘로 추천되는 걸 제가 거의 다 봤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제가 지금 다음에 볼 영화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산드라 블록은 [투 윅스 노티스]에서 ‘하버드 법대 졸업한‘ 여자로 나와요. 휴 그랜트였나, 너 어디 학교 나왔냐 물었더니 ‘하버드 법대‘ 라고 답하거든요. 짱멋짐. 저 그거 보고 너무 좋아서 아아 나도 하버드 법대를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누가 물을 때

˝나 하버드 법대 나왔는데?˝

하고 쿨하게 대답할 수 있을텐데....했었답니다. 왜 저는 하버드 법대를 못갔을까요, 단발머리님? 슬퍼요 ㅠㅠ


혜화시위는 실제로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 많은 여자들이 함께 앉아 소리친다는 게 진짜 의욕 뿜뿜 되더라고요. 다음에는 더 넓은 공간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에도 꼭 참석할 예정입니다!!
 
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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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부터 긴장감이 시작되어 내내 유지되는데, 그래서 다음장을 빨리 넘길 수밖에 없다. 한 번 손에 들면 내리 읽어낼 수밖에 없을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2. 동물원에서 총을 쏘고 다니는 이들 때문에 무서웠는데, 그들이 혹여라도 맹수 우리를 파손해 맹수들을 풀어낼까봐 그것도 두려웠다. 아, 진짜 밤에 읽기는 너무 안좋아. 나는 밤새 악몽을 꾸고 뒤척였어 ㅠㅠ 밤에 읽지 마세요 ㅠㅠㅠ


3. 긴장되고 흥미로운 채로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에 언급하지 않는 한 존재 때문에 좀 마음이 안좋았다. '나라면 달랐을까, 나라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존재 생각 때문에 책장을 덮고서도 계속 찜찜함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 존재는요?


제발 살아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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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다. 이름. 이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고 했던 시집의 제목이 연달아 떠올라, 그래,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으니 그 시를 읽자, 하고는 그 새벽에 불을 켜고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두었다. 지금 읽으면 잠이 깨고, 잠을 깨버리면 회사에 가서 몹시 힘들테니, 일단 꺼내두고 출근길에 읽자, 하고는 그냥 꺼내두기만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사실 다시 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도 안되었다. 그러니 눕자마자 울리는 알람소리가 얼마나 야속했는지.. 그래도 일어나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데워둔 뼈해장국을 퍼서는 밥을 말아 후르륵 먹었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있어서 좋았다. 아빠, 이번에 사온 뼈해장국에 우거지 많아서 너무 좋아, 말했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지하철에 타서 시집을 펼쳤다.



















어떤 페이지들의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과거에 읽으면서 내가 좋다고 접어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걸까. 내가 접어두었던 부분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이젠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접어두지 않았던 시들이 새로 들어왔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도, 내가 이 시집을 사서 처음 읽었을 때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저 그런 시였다. 내가 이 십을 꺼내 다시 읽기로 한 건, 어차피 그리운 이름 탓이었으니, 그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는 시를 읽어보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라는 문장은 좋지만, 그러나 나는 단 며칠 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미경은 자신의 소설 《아프리카의 별》에서 아침에 눈뜨면 생각나는 사람, 잠들기 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옳다. 그 말은 참이다. 그 말은 진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는 법. 며칠이 다 뭐람, 나는 오래오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먹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러할 것이다. 어떤 이름은 그 이름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새긴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고, 몇 달은 먹었고, 몇 해를 그리고 아마도 남은 내 삶을 통틀어 먹을 것이야. 새벽에 눈을 떠도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눈을 떠도 그럴 것이고. 며칠전 이마트에서는 감자를 봐도 당신의 이름을 떠올렸어. 요즘 여기는 감자가 너무 비싸대.


왜 지어다 며칠이고 몇날이고 먹을 수밖에 없는 이름인데 부를 순 없는걸까.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

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제

가 좋아한 여선배의 입속에도 머물다가 마른 저수지와 강

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

이며 편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

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

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

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디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

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곳으로 자꾸만 무언가를 보내고 싶어졌었지. 당신이 거기에 있으니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먹고, 그리고 당신의 입에도 무언가를 계속 계속 넣어주고 싶었지. 좋은것 맛있는 것을 보면 제일 먼저 내가 그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 아주 많은 것들을 보낼 수 있지만 또 아주 많은 것들을 보낼 수 없기도 했지. 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최근에 내가 찾아낸 내 인생 생태탕을 당신에게 보내고 싶어. 곤이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생태탕은 아주 맛이 좋아. 어쩌면 거기에서 당신이 들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스타벅스의 허니자몽블랙티도 아주 맛있어. 더운 여름이면 아이스로 주문해서 빨대를 꽂아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삼겹살 먹고싶네????????? 왜 내 의식의 흐름은 그리움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겹살 먹고싶지?????? 흐음..삼겹살 언제 먹지? 오늘은 안되고, 내일도 안되고, 일요일....어쩌면 일요일날 먹을 수 있나???


당신, 일요일에 와요, 삼겹살 사줄게요. 둘이서 사인분 먹자. 냉면과 된장찌개도 시키고. 그리고 배를 두드리며 잠들자.




아? 최근에는 양재동 어느 까페에서 오레오까페모카라는 걸 먹었거든? 여기는 벤티 사이즈 하나밖에 없는 곳인데, 까페모카위에 생크림 잔뜩 올리고 오레오 비스킷을 올려줘. 칼로리 폭탄이지! 이건 아마도 부담스럽다고 못먹겠다고 하겠지? 그러면 내가 먹을게 당신은 두 모금만 빨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 내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따 사먹으러 가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 의식의 흐름 자꾸 그리움에서 내가 먹는 걸로 가고 있다. 나여,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해....오레오까페모카 먹으러 가야징. 눈누난나.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며, 어느 날에는 당신도 우체통 앞에서 나에게 기별을 넣어주면 좋을텐데, 생각하고 어느 날에는 삼겹살을, 매운 족발을 생각해. (응?) 사실은 아나스타샤를 많이 생각해. 당신은 그레이가 아니지만 나는 왜 아나스타샤인가...내가 너무 아나스타샤를 닮아서이지.....  거기 아니야. 또 어디 간거야 대체.


돌아와, 얼른 돌아와.

컴백!




별의 평야



군장(軍裝)을 메고 금학산을 넘다보면 평야를 걷고 싶고

평야를 걷다보면 잠시 앉아 쉬고 싶고 앉아 쉬다보면 드러

눕고 싶었다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렸다





박준 시인의 어머니가 잘하는 짠지는 별모양인가봉가... 우리 엄마 오이지는 오이모양인데... 농담이고요.. 그러니까, 오래전에도 한 귀퉁이를 접어두었던 저 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저기,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리는 장면.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질 적에, 내 그리움도 쏟아졌다. 며칠전에는 날이 좋아, 볕이 좋고 빛이 좋아 일자산에 올랐는데, 그 때 갑자기, 별도 아닌 것이, 그러니까 그리움이라 이름 붙여질만한 것이 콱- 쏟아져내린 것이야. 나는 그갑자기 쏟아져내리는 그리움에 어떻게 대응할 줄을 몰라, 어, 여기서,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하고는, 그냥 울어버렸어. 산은, 혼자 울기에 좋아.


지난주에 강릉에서 밤길을 걸을 때는, 호텔까지 가려면 논을 지나야 했어. 밤의 논에서는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어댔지. 저기에도 개구리 저기에도 또 저기에도 개구리.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한다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 아마도 그 날, 그 밤에 아들손자며느리 개구리들이 다 모여서 노래를 했던 것 같아. 하늘엔 별이, 땅에는 개구리가, 내 가슴에는 그리움이 또 콱- 쏟아져내렸지. 그리움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언제든 나를 침범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

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

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

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

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

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

어 노랗게 말랐다




섹스에 있어서라면 나는 많은 로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두 개의 로망이 있었는데, 하나는 섹스를 끝내고 같이 누워 담배를 피는 거였다. 이건 내가 담배를 끊은지 한참 되어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게될 것 같고, 그리고 이 로망은 자연스레 소멸해버렸어. 더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담배..오랜만에 피면 어지러워.. 띵해.. 유후-  더이상은 이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리고 남은 하나의 로망은 평일 근무중에 점심시간 섹스다. 이걸 살면서 아직도 못해봤네. 그러니까 근무하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다다다닥 달려가서 후다닥 번개섹스를 하고 다다다닥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오후 일을 하는 것. 그러니까 오전의 나는 보통의 나였지만 오후의 나는 섹스하고 온 나다..이런 거 너무 하고 싶었는데, 한시간동안 그걸 할 엄두가 안난다. 그리고 굶을 수가 없으니까, 반드시 뭘 먹어야 하는데.... 한시간동안 언제 이동하고 먹고 섹스하고 다 하지? 먹는 걸 포기해야 할까.. 아무튼지간에 이 로망은 식지 않았고 사그러들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내가 앞으로 길게 직장생활 해봤자 몇 년이나 하려나... 해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길게 봐도 2-3 년일 것 같아. 나는 많은 로망들을 실현하며 살았지만 또 어떤 로망들은 실현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되는구나..



그것이 나의 인생....



이라기보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직장생활 아직 2-3년 더할거라면, 아직 시간은 있어! 최선을 다해! 빠샤!! 화이팅! 응원합니다. 누구를? 나를! 누가? 내가!!!




그런데 나는 오늘 왜 이런 글을 쓰고있는것인가....



떠나려는 그대를

나의 온 맘으로 잡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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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6-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의 평야>는 이 시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예요. 화자와 거의 똑같은 경험이 있거든요. 군장 메고 금학산 넘었던.

철원은 별이 정말정말 많아요. 많았어요.

다락방 2018-06-08 09:01   좋아요 0 | URL
처음에 저 시 읽었을 때 정말 누워있는 내 위로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장면이 그려져서 너무 좋았어요. 별 많이 있는 하늘 보고싶어요!

syo 2018-06-08 09:06   좋아요 0 | URL
농담 아니라 어떤 날은 정말 밤 하늘이 이렇게 밝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별 반 밤 반이었어요.

서울에서 기껏 몇 발짝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른가 싶었어요. 서울 하늘 개나 줘버려.....

개한테 다 주고 싶다. 개한테라면 뭐든지 주고 싶어♡

의식의 흐름 댓글.....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6-08 09:15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나는 개가 되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8-06-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겹살 먹고싶네????????? 왜 내 의식의 흐름은 그리움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겹살 먹고싶지?????? 흐음...

이 대목에서.. 빵.. 터지고. 문득 저도 삼겹살 먹고 싶다...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다락방 2018-06-08 13:4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래서 일요일에 먹어야겠다...생각했는데...어제 보쌈 먹었는데 일요일에 삼겹살 먹어도 되는걸까요? 내적갈등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늘 시간 너무 안가네요. 하루가 너무 길어요. 빨리 시간아 가라, 회사에서 나가고 싶다 엉엉 ㅠㅠ
남은 오후 잘 보냅시다, 비연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18-06-08 23:1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결국 오늘...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유자막걸리와 함께~

다락방 2018-06-11 08:1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주말동안 너무 잘 먹어서 월요일 아침 몸무게가 폭발했어요. 오늘부터 스파르타식 다이어트에 돌입해야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습니다. 엉엉 ㅠㅠ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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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작정하고 여자를 팔아먹는 역사의 기록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성별은 남자'로구나 생각했다. 모든 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만이 인간으로 대우받는 곳. 이 적나라한 기록을 읽는 일을 그래서 열뻗치는 일인데, 그렇다해도 이 기록을 읽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책 주문할 때 강준만의 또다른 기록, 《룸살롱 공화국》도 주문했다.


또한, 이 책이 지금 '다시' 쓰여진다면 더 의미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합법화 되면 안되는지, 성매매 반대를 외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 현재를 사는 여자들이 어째서 '성구매자만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한 목소리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강준만이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강준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서 여자가 인간일 수 있게 되는 날은 언제 올까.

나는 그 날을 되도록 앞당기고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여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투표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여자들을 응원할 것이고.







원래 이름이 순이건, 순자건, 순희건, 에레나는 집을 떠나 도시를 방황하다 기지촌으로 흘러든 수많은 젊은 여성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에레나는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 사회의 가난과 또 보내놓고 손가락질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p.65)

일국의 정신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볼 수 있는 문교부 장관이 감히 매매춘을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건 당시 대한민국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영 국가‘ 체제였다는 걸 웅변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매매춘 여성들에게 안보 교육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국가 경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교양 교육을 시행하여 외국인에게 최대한 서비스를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 교육 내용은 "일제강점기 정신대를 독려하였던 독려사와 너무 흡사하여 ‘신판 정신대 결단식‘ 같았다." (민경자, 한국매춘여성운동사)
물론 박 정권의 그러한 매매춘 장려 정책은 ‘수출 정책‘의 일환이었다. 방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p.86)

"정부는 외채의 압박을 줄이고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의 개발이었으며, 이를 핑계로 외화 획득의 원천은 이제 기생 관광의 루트를 통해 부분 해소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관광산업의 정책적 육성은 짧은 시일에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통용될 수 있었고, 많은 관광산업 유형 가운데에서도 기생 관광은 자금의 회전과 비축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파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 아닌 기생 문화의 복원. ……1970년대 한국 관광산업의 본질은 바로 이렇게 사라진 전통문화 가운데 성을 수단으로 하는 ‘원색의 소재‘를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신종 매춘으로 관광 기생업이란 명칭이 보편화된 것이다. (p.87-88)

"유신 직후, 한국 정부는 관광 진흥 정책에 따라 관광진흥법에 근거를 두었던 국제관광협회(현재의 한국관광협회)에 ‘요정과‘를 설치하고 관광 기생들과 관광 요정 문제에 관한 본격적 실무에 착수한다. ‘윤락행위등방지법‘(1961.11.9)제정 1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일본 제국 군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공창제도를 미 군정이 폐지하고 한국의 군사정부가 이를 새로운 법으로 대체한 지 10여 년 만에 정부는 그들 스스로 떠나보낸 자들을 다시 불러들여 유린의 대가를 긁어모으려는 ‘악의 논리‘와 공모·타협하기 시작했다. 요정과의 업무 방향은 사실상의 ‘매춘 허가증‘과 다름없는 접객원 증명서를 발부하고 교양 교육을 시행하면서 전국 관광 기생들의 행정적 존재 근거를 합법화하는 데 맞춰졌다." (p.88)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으면 이왕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를 시도한 김에 그들이 큰 돈이라도 벌 수 있게끔 보호 장치까지 만들어줬어야 했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남성을 상대로 갖은 수모와 모욕을 당해가며 번 수입임에도 관광 기생에게 돌아오는 ‘화대‘는 여행사 커미션, 호텔 통과세, 밴드 악사비, 요정 종업원 팁, 버스 운전사 급료, 요정 지배인 몫, 접대 화대, 마담에 대한 사례, 호텔 객실 담당 팁, 교통비 등의 무수한 중간 착취자에 의해 거의 착취당하고 손에 쥐는 것은 생계비도 될까 말까 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총수입의 80퍼센트를 중간 착취당했으며, 정부는 화대 착취 구조를 묵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박종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p.89-90)

"70년대 국가가 이렇게까지 해서 정책의 전환을 의도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외국인들이 많은 돈을 쓰고 가게 하자는 기묘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진정으로 기존의 매춘 여성들이나 빈곤 여성들을 끌어안아 범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조성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기생 관광 문화를 즐긴 주 고객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해방 공간 속에서마저 단절되지 않고 존속된 과거 일제 공창 문화의 잔재와 이를 ㅅ스스로 척결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사회 의식적,실천적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전도된 성 문화를 강화시키고 기생의 사회적 수요를 팽창시킨 한국의 관광정책은 결국 기생 관광을 일본에 역수출하는 새로운 현상까지 야기시킨다." (p.90)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 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대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국민의 도덕적 타락, 비인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못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까지 해서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까.…… 이 통에 10여 년을 지켜 내려오던 ‘4·19의 4월‘이었던 달이 금년에는 갑자기 ‘관광의 4월‘로 탈바꿈했다. 어제도 오늘도 신문에는 일본의 무슨 재벌, 무슨 사장이 서울과 지방의 어디 어디에 몇 층의 호텔 건설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p.94)

박 정권의 적극적임 매매춘 국책 사업화에 대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난 건 오직 여성계뿐이었다. 1973년 7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한일교회협의회에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이우정은 기생 관광 문제를 거론하면서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 30일에는 ‘관광객과 윤락 여성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 대응 방안을 토론하였고, 12월 3일에는 교통부 장관과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섹스 관광의 시정과 건전한 관광 사업책의 강구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발송하였다. 또 《매춘 관광의 실태와 여론》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운동은 대학생에게도 영향을 끼쳐 이화여대, 한신대, 서울대 학생의 섹스 관광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섹스 애니멀 고 홈‘ 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호응하여 일본에서도 스물 두 개 여성 단체가 연합하여 일본인의 한국 내 섹스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p.95-96)

1972년부터 본격화된 보수 진영의 반대 운동은 마치 부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전개되었다. 1972년 8월 25일 전국유림대표자회의는 ‘500만 유림의 총의‘로 가족법 개정을 반대하는 결의를 표명하였고, 1972년 10월 5일엔 유도회 주관으로 가족법 개정을 반대하는 34만 명의 서명날인을 받은 원본을 국회 사무처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가족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에 대해선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로 간주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데 앞장서왔다면 또 모르겠다. 오직 남성 우월주의적 기득권만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런 이중 잣대는 조선조를 지배한 이른바 ‘열녀烈女 이데올로기‘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p.108)

1985년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미국의 잡지 《더 스포팅뉴스The Sporting News》에 별책 부록으로 서울올림픽을 홍보하는 광고를 무려 46면에 걸쳐 내보냈다. 그런데 그중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기생 관광의 메카라 할 요정에서 외국 남성들에게 안주를 먹여주는 컬러 사진이 44면과 45면, 두 면에 걸쳐 천연덕스럽게 실렸다.
단순한 음식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한 손님 옆에 한 사람씩 앉아 젓가락으로 외국인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가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른바 ‘기생 파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 특집을 위해 《더 스포팅뉴스》에 거액을 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1984년 11월 취재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든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p.116)

이에 분노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 단체들은 본격적인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개 질의서를 통하여 여성을 이용해 관광 수입을 올리려는 정부를 비난하는 한편 정부 당국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해명, 사과와 함께 올림픽 정책의 시정을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85년 3월에 인신매매 조직이 대거 검거되자 이 문제를 사회문제로 여론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인신매매를 고발한다‘는 공개 토론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바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성폭력‘으로 개념화한 한국여성의전화는 인신매매 과정에서 여성이 성적인 도구로 전락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신매매를 성폭력의 한 형태로 보았다. 토론회는 인신매매의 유형 사례 발표에 이어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섯ㅇ매매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우정이 성매매의 비인간성에 대해 발제했다. 그리고 지은희가 ‘매춘의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해 그리고 박인덕이 ‘매춘 여성 문제를 여성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의 발제를 하였다. (p.116-117)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그런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1986년 1월 기생 관광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11개 대형 요정 업체에 총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 형식으로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에서 발행하는 외래 관광객용 지도에도 기생 관광 장소인 요정의 위치를 각국어로 친절하게, 또 상세하게 밝혀놓기도 했다. (p.117)

기생 관광 이벤트는 주도면밀했다. 올림픽 개최일이 다가오면서 외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접대부 아가씨들에게 이른바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실시했는데, 물론 이 소양 교육의 핵심 메시지는 국가를 위해 외국 관광객들에게 최대한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소양 교육을 담당한 강사들은 "아가씨들이 벌어들이는 외화가 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거나 "전후 일본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여자들이 자신들의 성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의 덕"이라는 미담도 잊지 않았다. (p.117-118)

한 외국인의 증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발을 땅에 딛자마자 뚜쟁이가 달려들어요. 세계의 여러 공항깨나 출입해봤습니다만, 뚜쟁이가 공항에서부터 일하는 곳은 내가 알기는 김포밖에 없습니다. 설마 이런 일들이 정부의 인정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하지 않겠죠?"(강견실, 매춘 관광과 한국 여자 재인용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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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07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가는 강준만 선생님의 서술을 따라 읽는다해도 ‘한국 매매춘의 역사‘를 읽는건 정말 힘들거예요.
뭐, 이런 놈의 나라가 있나...
너무나 당연시했던 기생관광을 결국 근절시키는데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이 있었다는 걸, 인용해주신 글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네요.
그냥 쉽게 되는 게 하나 없죠..... ㅠㅠ

다락방 2018-06-07 15:51   좋아요 1 | URL
이 나라는 계속해서 여자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그게 어느 한 남자가 그런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그런 거였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여성들은 반발했고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네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지... 읽다가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미치겠더라고요.

단발머리님, 이 나라가 여자들한테 왜이러는걸까요?

6/9 시위에 가서 소리치고 와야겠어요.

블랙겟타 2018-06-1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 룸살룸 공화국 책을 나왔을 때 바로 사서 읽었었거든요.
그당시 강준만씨 책을 꽤 샀던 시절이라..
저는 정치교양 서적으로 생각하면서 읽었었는데 다시 꺼내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다락방님이 표현하신 ‘대한민국의 성별은 남자‘에 저에게도 생각이 많이 들게 하네요..

다락방 2018-06-15 08:51   좋아요 1 | URL
일단 룸살롱 공화국 샀는데 아직 읽기는 전이고요..이걸 읽다보면 또 내가 얼마나 빡이칠까...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걸 읽기 전에 소설 몇 권을 좀 더 읽어둬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시간차가 있으니 블랙겟타님이 지금 ‘다시‘ 룸살롱 공화국 책을 읽는다면 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또 그때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조만간 제가 읽고 페이퍼 쓰면 우리 그 때 또 이야기 나눠요!
 

언제부터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혀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지간에 분량이 얇은 걸 읽고 싶어서 '어라, 이런 책이 내 책장에 있군' 하고는 빼내었는데, 책장에 꽂힌 그 순간부터 존재가 잊혀졌던 이 책은 대체 얼마만에 내가 펼쳐본 것인지, 색이 바래있었다.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읽지 않아도 바랬다면... 내가 책 보관을 잘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얼른 읽고 내보내자, 바래서 제값으로 중고 판매가 안된다면 그저 방출하여 읽고 싶은 누군가에게 주자, 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아, 이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진다. '볼라뇨' 라니, 그 이름도 유명하여 내가 기필코 그의 책을 읽어보려 했건만, 나는 도무지 이 얇은 책 한 권을 들고 며칠을 낑낑. 결국 힘겹게 절반쯤 읽어내고는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다 읽으면 끝에 결국은 '아아 이것은 문학이구나, 문학인 것이야, 이런 게 문학이다!'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계속 잡고 있었던건데, 다른 책에서 느껴보는 걸로...


안녕..너에게 세이 굿바이...






피츠제럴드의 이 책이 문학동네에서 새로나왔다는 소식을 북플을 통해 접하고는 흥분하고 말았다. 아 어쩌지. 그러니까 나는 이걸 다른 출판사의 것으로 아주아주 오만년전에 읽었더랬다. 나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몇 년 후에 이 책의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 거다. 이미 내가 읽은 책은 팔아버린 상황. 그래서 나는 다른 출판사의 이 책으로 또 사두었다.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두었는데, 그 책 역시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 뒤로는 한 번도 펼쳐보질 않았어..그런 참에 문동에서 새로 나온 소식을 듣게 된것이야...나는 집에 문동책 많고...이 세계문학전집 꽂혀있는 곳에 이 책을 새로 장만해 꽂아두면 넘나 아름답겠지..그리고 가독성도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아아 몰라몰라 이 책을 사자...하게된 것이다. 인간, 뭐죠? 아니, 인간이라고 퉁칠 순 없다. 나의 문제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문제, 나의 취향..

나.. 뭐죠?

어쩌면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 다른 출판사의 밤은 부드러워는.... 저혼자 색이 바랜 채로 내가 펼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 아, 어떤 사랑은 어떤 기다림은 하염없으며 부질없어라.







강준만의 이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역시 사둔 지 오래라 색이 바랬어. 책들이 색이 바래는 건 제 탓입니까?

아무튼지간에 열받아가며 읽고 있다. 대한민국, 이 나라의 성별은 남성이다. 한국남성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그리고 전두환 정권 때도, 나라는 여자를 외화벌이로 팔아넘겼다. 그리고 그 때도 그것에 여성단체와 이화여대를 비롯한 여성들은 반대했었다. 도무지 이 말이 안되는 상황에 대해서..


이건 지금 절반쯤 읽었는데, 다 읽고나면 분노의 밑줄긋기가 나올 것이다. 우리, 분노는 함께해야 하는 것...


그런데 책의 처음, 강준만이 한국 사회에 대해 쓴 책의 목록을 보노라니, 이 매매춘에 대한 것도 있지만 룸살롱에 대한 것도 있다더라. 이 책을 얼른 읽고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오늘 한겨레에 실린 강준만의 칼럼을 읽다보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과 백래쉬에 대한 모든 것들을 다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의 일에 대해 언젠가 강준만의 이름으로 책이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http://v.media.daum.net/v/20180603193605087


누군가는 부지런히 기록하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운동하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읽는다. 그런 식으로 세상은 다음세대로 또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기록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매매춘 관련에 관한 책을 읽고 있노라니 자연스레 이런 책도 눈에 띈다. 성매매를 하지 않는 남성들의 이야기라는데, 어떤 이야기들일지 궁금하다. 룸살롱 공화국도 그리고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에 대한 책도 다 읽어보자.


아, 그렇지만 잠깐씩 그 사이사이 텀을 줘야지. 안그러면 내가 홧병으로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수요'의 차원에서 성매매를 이야기하는 남성 모임 〈수요자 포럼〉의 첫 번째 책. '내부자'인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에 관한 열일곱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남성 필자들에게는 성매매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성매매를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의 순간마다 성매매와 분리되지 않는 남성문화의 면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학자도 활동가도 아닌 그들의 글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성매매 안 하는 남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그 시선은 성매매 호객을 하는 여성과 퇴락한 성매매 집결지를 향하고, 욕망을 죄악시하는 교회와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만화책을 오간다. 오랜 시간 둔감했던 성폭력 문제 그리고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향하기도 한다. 필자들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쉬쉬해 온 성매매 문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온 남성문화에 관해 말하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남성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성매매는 과연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결론보다는 더 많은 질문과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알라딘 책소개 中에서




나는 잊지 않을 것이고 나는 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한 모든 일들을 유지할 것이고,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하려고 할 것이다. 친구들과 6/9 시위에 나가기로 했다. 지난 번 시위에는 나랑 친구랑 둘이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둘이 더해졌다. 트윗을 보니 이번 시위엔 윤김쌤도 나온다고 하셨어. 어쩌면 그 곳에서 나는 쌤을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나는 윤김쌤 너무 좋아.



계속 읽고 계속 쓰고 계속 나대야겠다. 시건방지게.



이 모든 분노와는 별개로,

나는 여름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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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5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5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6-05 16:15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언제 사서 또 언제 읽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