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를 한 장씩 읽으면 7년 반 후에는 다 읽게 되거든. 진짜 멋지지? 7년 반 후면 가장 중요한 유대 율법서를 통독하게 된다니까." (p.10)



친구 안드레아와 조깅을 하던 이 책의 저자 '일라나 쿠르샨'은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아 자신 역시 탈무드를 읽는 7년반짜리 프로젝트를 실행보기로 한다. 7년 반.



오후 7시쯤 조깅을 마치고 헤어졌지만 안드레아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장 7년 반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어떤 기분일까? 7년 반 후의 내 사람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전히 이스라엘에 살까? 가슴에 쌓인 고통과 수치심을 여전히 느끼려나? 다들 장담하듯 시간이 약이 되어 거기서 벗어나 있을까? 내가 즐겨 인용하는 시에서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는 "시간은 평온을 가져오지 않네 / 당신들 모두 거짓말을 한 것" 이라고 썼다. 시간은 평안을 가져오지 않고 끝없이 뻗은 듯했고, 7년 반 후에도 여전히 슬픔에 젖은 나를 상상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p.11-12)



7년 반 짜리 계획이라니, 너무 새로웠다. 7년 반이라니. 그러고보면 내가 무언가 하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빨리, 빠른시간, 단기간을 요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이어트 광고를 보면 언제나 한 달 만에 8kg 감량, 세 달만에 20kg 감량 등으로 써있지 않던가. 그러나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건강한 몸, 건강한 체중으로 만들기 위해서 체중을 감량하는 일을 그렇게 단시간에 해낼 수 없을 뿐더러, 단시간에 한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다이어트든 공부든 그게 뭐든, 장기간에 천천히 가는 것이 목표에 가장 근사치로 이룰 수 있는 길이 아니던가. 다이어트도 그리고 내 경우엔 영어 공부도 나는 조급했다. 이번 해에 영어를 마스터 하는거야! 라고 숱하게 결심했지만 언제나 영어 책을 펼쳐 보지도 않았지. 어쩌면 답은 바로 이거였는데! 7년 반 이라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뭔가 내 안에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성취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오래가 답인것인데!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자, 그렇다면 내가 오랜 시간을 들여 꾸준히 천천히 하면서 성취할만한 목표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 역시 장기간 프로젝트 하나를 설정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구체적 목표가 있다면 살아가는데 좀 더 의욕이 생기니까. 물론 내게 구체적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의 시간을 7년 반 이라든가 3년 혹은 6개월이라 정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며 삶의 방향을 그쪽으로 설정해두었다. 그러나 7년 반짜리 장기 프로젝트 하나를 내 인생에 더해도 좋을 것 같다. 일라나 쿠르샨은 탈무드를 팟캐스트로 듣고 또 읽으면서 매일 공부한다. 그렇다면 나는 성경을 읽어볼까?



살면서 성경은 한번쯤 읽어봐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상 해오던터라, 일라나 쿠르샨의 탈무드에 나는 이내 성경을 떠올렸건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건, 모든 종교가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놀랐던 것은 작가가 페미니스트이며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말하는 탈무드를 계속해서 읽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아버지가 랍비라는 것, 그리고 그녀의 생활 터전이 이스라엘이며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것이 아마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매일 아침 하나님을 자신 안에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 책의 성격상 저자는 수시로 책에서 탈무드를 인용하는데, 그 인용문들을 읽으면 '도대체 종교는 여자에게 왜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려.... 종교여, 여자들에게 왜그래요? 왜 모든 종교가 여자들을 이렇게 다루는거죠?





탈무드 역시 인생을 함께할, 특히 한 침대를 쓸 남자가 없는 여자를 안쓰럽게 본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 현자 헤이시 라키시는 유명한 금언을 인용해 이런 말을 다섯 번이나 한다. '탈브 엘메이타브 탄 두 몰메이타브 아르멜로', 문자 그대로 '여자가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둘로서 앉아 있는 게 더 낫다'란 뜻이다. 이 말에 대해 랍비들은 다채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탈무드의 여러 현자들은 여자가 얼마나 견뎌야 남편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아바이에이: 남편이 개미만 하더라도 아내는 자유로운 여자들 사이에 의자를 놓는 걸 자랑스러워 한다.

라브 파파: 남편이 소모기(보풀 세우는 기계)라 해도, 아내는 그를 대들보에 걸어 놓고 부부 생활을 한다.

라브 아쉬: 남편이 쭉정이여도, 아내는 냄비에 렌즈콩이 부족하지 않다.


탈무드는 여자가 싱글이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듯하다. 그렇더라도 아바이에이, 라브 파파, 라브 아쉬는 마지막 말은 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이런 주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여자들은 다 간통을 저지르고 자식을 남편의 아이라고 한다." 즉, 결혼에 목멘 여자들은 사실은 혼외정사로 임신하고 핑계를 찾으려고 결혼을 하려는 것이다. 왜 그들에게 남편이 필요한가? 그것은 바로 불륜으로 가진 아이의 법적인 아버지를 지목할 수 있으니까! (p.135-136)



싱글의 반대 개념은 기혼이겠지만, 탈무드의 결혼관에는 괜찮은 점도 제법 많다. 캐투봇 편은 결혼 생활과 결혼 계약서 '케투바'에 명기된 책임과 관련된 계율을 다룬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논제가 여자들에 대한 평가(그리고 폄하)에 집중된다. 현자들은 결혼의 재정적인 면, 즉 남자가 특정 액수를 주고 아내를 얻는 거래를 검토한다. 특히 규수가 혼인 당시 처녀인지 여부가 액수를 좌우한다.

처녀성은 케투봇 편의 첫 챕터의 핵심 주제다. 신랑이 신부가 처녀가 아닌 걸 알면 허위 거래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여자가 성관계를 하지 않았지만 상처를 입었음이 드러나면, 이 경우 처녀가 아닌 규수들처럼 액수를 깎아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나온다. 아무튼 모든 여자는-처녀든 아니든- 전 재산을 갖고 아버지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직행했다. 그렇게 한 남자에게서 다른 남자에게 넘겨졌다. (p.145-146)


우리는 이미 『페미사이드』를 통해 여자로 인해 이동하는 재산이 여자의 손에는 쥐어진 적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아래 인용은 '인도'의 것.



여성들은 결혼할 때 부모의 집을 떠나 매우 멀리 떨어진 남편의 가정으로 들어간다. 젊은 여성들은 일단 결혼하고 나면 죽은 뒤에라야 남편의 집을 떠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과 굴육을 참아내야 한다는 권고를 받는다. 며느리는 새 자겅에 적응하려면 늘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한다. 며느리는 시가 식구들에게 고분고분 순종해야 하며,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대해서도 사심 없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남편의 가족은 현금은 물론 특별히 지참금 용도로 제작하거나 구입한 보석 및 가정용품을 받는다. 지참금을 딸이 받는 상속 재산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Goody 1976).

이와 관련해서 집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첫째, 지참금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가족에게 전달된다. 시부모는 지참금의 분배에 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는다. 둘째, 내가 아는한, 토지는 절대 지참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여성에겐 재산이 없다. 이른바 그녀의 재산으로부터 아무런 부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젠더에 따라 특정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남자들은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생계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자녀양육과 가사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지참금 마녀 사냥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다. (p.231-232)






소타(부정한 여자)는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성전으로 끌려간다. 대제사장은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망신스런 재판에서 '쓴 물'을 마시게 한다. 여인이 죄가 있다면, 물의 마법이 그녀의 배를 부풀리고 허벅지를 처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의 저주'가 될 것이다. 여인이 결백하다면, 아기가 들어서 배가 부풀 테고. 그러니 유죄든 무죄든 소타의 운명은 몸에 물리적으로 남아서 모두가 보게 되고, 그녀를 간녀에서 구경거리로 만든다. (p.178-179)




어떻게든 여자의 몸에 물리적으로 남는다라. 이것은 드라우닝 풀, 익사의 웅덩이와 같은 게 아닌가.





Drowning Pool '익사의 웅덩이'라는 뜻으로, 봉건 시대 스코틀랜드의 법에 따라 여성 범죄자들을 처형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 웅덩이나 우물을 가리킨다. 16-17세기 마녀 재판이 횡행하던 시절에는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의 유무죄를 시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에 빠뜨려진 여성은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닌 것으로, 물 위로 뜨면 마녀로 간주되었다. 어느 쪽이든 결국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p.7)












어떻게 이런 것을 깨우침과 가르침의 책으로 매일 공부할 수 있는지 내가 갸웃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그녀가 탈무드를 가르치는 여러 젊은이들. 그들이 탈무드에 불만을 가졌고 의심을 품었다.




산헤드린 편 마지막에 토라의 한 구절이라도 신성하지 않게 여기면 내세에 자리가 없다고 나온다. 한 학생이 "그렇군요. 한데 제 성생활을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구절은 어쩌죠?" 라고 받아쳤다. 이 학생처럼 나도 어떤 구절들은 부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또 평등하고 다양성이 확보된 요즘 세상에서 문제가 될 구절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미드라시가 '출구'를 제공하기에 특정 문구들을 삭제할 필요는 업을 것이다. 물론 오랜 훌륭한 미드라시의 전통도 고려해야 할 테고. 토라는 아주 촘촘하기 때문에, 저마다 독창적으로 읽어도 될 것 같다. 미드라시의 독창적인 가능성을 높이 산다고 해서, 토라에서 우리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긴 해도 난 전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후자가 겁난다고 물러나진 않는다. (p.240-241)



물론 저자는 탈무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가장 인상적인 건 쌍둥이를 대하는 자세였다. 일라나 쿠르샨은 첫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을 했다. 재혼해서는 아들을 낳고 뒤이어 쌍둥이로 여자아이 둘을 낳았는데, 어린이집에 맡긴 쌍둥이들에게 수유하러 가면서 늘상 엄마를 반기는 아이들을 보고는 '누구에게 먼저 젖을 먹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두 딸 중 선택해야 할 때마다 '미츠바를 지나치면 안 한다'는 계율이 떠올랐다. 페사힘과 탈무드 전반에 나오는 이 계율은, 눈앞에 명령이 있으면 완수한 후에 다른 명령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제는 제단의 네 귀퉁이에 제물의 피를 뿌릴 때 가장 가까운 귀퉁이부터 뿌려야 한다. '미츠바를 지나치면 안 되니까.' 나는 이 계율을 바꿔서 속으로 읊조렸다.

"쌍둥이를 지나치면 안 된다."

사제가 피를 뿌리러 제단에 가서 한 귀퉁이를 지나쳐 다른 귀퉁이로 가지 않듯, 나도 한 아이를 지나쳐서 다른 아이에게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멀리 있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안아준 아이를 내려놓고 다른 아이에게 갈 즈음에는 둘 다 울고. (p.353)



이거야말로 지혜로운 방법이 아닌가 감탄에 감탄을 했다. 한 명을 지나쳐서 누군가를 먼저 안아주지 않는 것. 지나치는 순간 아이는 '나를 지나쳤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테지만, 지나치지 않고 가까운 곳의 아이를 먼저 안으면 더 멀리 있는 아이는 일단 울음을 터뜨리긴 하겠지만 자기 차례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일라나 쿠르샨이 그러했듯이, 그것이 어떤 책이든 자신의 상황에 맞게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자기 삶 안에 녹여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좋을 것이다. 그러나 비종교인인 내 입장에서 탈무드를 읽거나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을 일라나 쿠르샨처럼 받아들이며 읽어낼 수 있을지, 내 뜻대로 독창적으로 해석이 가능할지는 난 여전히 자신할 수가 없다. '왜이래?', '나한테 왜이러지?' 가 먼저 나오지 않을까. 우리는, 그러니까 일라나 쿠르샨과 나는 태어난 장소와 자란 환경이 다르므로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가장 다른 점은 그녀가 남자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어쩌면 그래서 탈무드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독신이라는 문제도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오므리와 교제 중이었지만, 관계에 파열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이즈음 이별을 확신했다. 어쩌면 훨씬 전에 헤어져야 마땅했지만, 혼자인 것 보다는 안 맞는 사람이라도 곁에 있는 게 나았다. 바로 2년 전에 안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이혼했으면서도. (p.133)



어떻게...어떻게 혼자인 것 보다는 안 맞는 사람이라도 곁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떠올렸는데, 영화속에서 마츠코도 혼자인 것보다는 개같은 남자라도 옆에 두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그런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걸까? 깊은 외로움인걸까? 안 맞는 사람을 옆에 두느니 혼자인 게 훨씬 낫지 않나? 내가 이별을 결심한 데에는 그가 나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둘 기미가 보였기 때문인데? 차선으로 그의 옆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탈무드에서 여자가 싱글이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듯이, 일라나 쿠르샨도 싱글이면서 행복한 자신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건가? 아, 괴롭다.....




그렇게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인지 그녀는 마침내 찾아냈다. 그래서 재혼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녀가 7년 반동안 탈무드를 듣고 읽어온 기록이며 그러는 동안 그녀는 이혼을 하고, 연애를 했고, 이별을 했고, 재혼을 했고, 아이를 셋 낳았다. 역시 7년 반은 긴 시간이다.


게다가 첫 결혼의 실패와 달리 이번에 만난 남자에게는 깊은 안정감을 느끼고 또 그 인연에 감사한다.



대니얼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 신의 지지를 절감했다. 이런 남자가 내 삶 속에 들어와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일요일 철학 클럽』-내가 좋아하는 시리즈-에서 난관 끝에 결혼한 이사벨 달하우지가 나인 것 같았다. 작가 알렉산더 캑콜 스미스는, 욕실에서 나온 사랑하는 하이메를 보면서 이사벨이 진짜 '그녀의 것'인지 의심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밤에 대니얼이 샤워를 마치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어깨에 물을 묻힌 채 나오면 궁금하다. '당신이 진짜 내 남자일까? 당신과 함께하다니 이런 행운이! 단점투서잉인 나를, 공상에 빠져 사는 나를 사랑할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큰 환히를 누리는 게 물가능한 듯했다. 나도 모르게 현재에 향수를 느꼈다. 내 어깨에 내려앉은 이 순간이 이미 날아난 것 같았다. 대니얼이-여기 있는 그의 존재가-현실일 리 없고 어느 날 깨어보면 모든 게 일장춘몽일 것 같았다. 그가 눈부신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p.306-307)



뭐 이렇게까지 감사할 일인가, 남자 하나 만난 것 가지고.. 싶으면서도 나 역시 저런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느껴본 적 있던 터라 '좋을 때다...' 싶다. 어느 날 깨어보면 모든 게 일장춘몽..은 내 몫이었던 것 같다. 부디 행복하오, 일라나 쿠르샨이여...











자, 이 책을 다 읽었고 나는 이제 7년 반짜리 장기 프로젝트... 를 찾아야겠다. 뭘 하면 좋을까. 꾸준히 쭈욱- 해나가면서 결국은 끝마칠 수 있는 것은 뭐가 좋을까. 이 생각하자마자 영어공부! 가 떠오르지만, 이내 '하기 싫다....' 이렇게 되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나는 독서를 내내 하고 있고 또 이렇게 글 쓰기도 내내 하고 있으니, 더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그렇게 너무 열심히 살면 지쳐버리니까....



그나저나 어제도 리뷰를 두 개(큰 가슴의 발레리나, 그만해 거짓말)나 썼는데, 오늘은 이 페이퍼를 포함해 페이퍼 두 개 쓸 기세... 왜죠....





***102 쪽에 오타가 있는데, 하하하하. '메길라(에스더서 두루마리)'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 메길라 라고 계속 잘 쓰다가 다섯번째 줄에서 '메갈리아' 튀어나옴.....****************














오므리는 황제의 포도주가 금 그릇에 담기자 상한 것을 지적하면서, 그릇의 본질은 담긴 물질의 특성과 관계있다고 말햇다. 더구나 이 구절에서 토라는 포도주가 다른 액체들처럼 그릇의 모양을 띤다는 점을 제시하는 듯했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배운 지식 전부가 담기는 그릇으로 본 것이다. 내 본모습은 내가 가진 지식과 관계가 있다. 그릇이 거기 담긴 포도주의 모양을 결정하듯이. 내 지식의 모양을 결정하는 것은 나니까. 더구나 금 그릇이 포도주를 상하게 하듯, 나와 내가 배운 토라 사이에 화학 작용 같은 게 일어난다. 내가 공부하는 토라는 날 변화시키고, 내 통찰력은 공부 중인 토라를 변하게 한다. - P84

하지만 이런 생각을 폴은 용납하지 않았다. 어느 저녁 그가 저녁 기도를 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기에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돈키호테』의 이 챕터를 마저 읽고 싶은데. 마리브(유대교의 저녁 예배)를 건너뛸 테야"라고 대답했다. 그는 눈에 보이게 동요했다. 난 "왜 그러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돈키호테』를 읽는 게 더 중요한 사람과 함께할 수 없어." - P96

어떻게 이미 지워버린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난 탈무드가 아니라,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에서 답을 찾았다.


내게는 가보기 두려운 곳이 100군데나 있지
그의 기억이 넘쳐나는 장소들!
그래서 그의 발이 닿거나 얼굴이 빛난 적 없는 조용한 곳에
안도하며 들어서면 나는 말하네.
"이곳에는 그의 기억이 없네!"
그리고 경악해서 서 있지, 그가 너무도 기억나서! - P98

아이러니하게도 팔에 성구함을 두르는 날이 늘어갈수록 우리 결혼은 점점 망가졌다. 매일 아침 폴과 나는 정원이 보이는 1층 아파트 부엌에 나란히 서서 기도했다. 하지만 우린 상대보다 신과 더 오래 대화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평행 놀이처럼, 혼자 하는 놀이를 하듯, 우리도 평행 놀이를 했다. 좀 희망적인 날이면 난 프랭크 바이다트의 시구절을 떠올렸다. ‘내가 아는 사랑은 두 사람이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랑이다.‘ 하지만 둘의 기도가 같은 방향을 향하는 지 알 수 없었다. - P108

남자들과 여자들을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이라고 상상해봤다. 여자들은 신선 식품이어서 임박한 유효 기간이 찍혀 있었다. 남자들은 통조림이라서, 마음을 끌진 않아도 결국 누군가 고를 때까지 계속 선반에 진열될 수 있었다. - P135

아침 일찍 공부를 못 하면,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끝낼 때까지 부담을 느끼도록 종일 탈무드를 갖고 다닌다. 그날의 분량을 마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또 하루에 할 일을 완수하는 편이다. 운동부터 일기 쓰기까지. 어떤 일에 도전하면 좀처럼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 P171

그 주에 일이 많아 걷지 못하면, 내 처지와 무관한 책들에 몰입해 현실을 잊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시집을 읽고 병원 대기실에서 단편 소설을 읽었다. 우체국이나 슈퍼마켓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장편 소설을 읽은 덕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책에서 많은 걸 얻었다. 가방에 책 세 권을 넣고 다닌 적도 많았다. 꼼짝 못하고 붙들렸을 때 읽을 거리가 없으면 단테가 그린 지옥에 던져진 것과 같을 테니까. - P213

대니얼이 삶에 자리를 내준 것은 내게 특권이었고, 그를 내 삶에 들일 만큼 신뢰했다. 또 함께하는 새 인생이란 벼랑에 나란히 서려니 전율이 느껴졌지만, 난 소망을 품었다. 우리가 짓는 ‘혼인의 집‘이 늘 함께하는 성소일 거라는 소망을.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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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4-2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오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4-24 09:56   좋아요 0 | URL
역자가 메갈인가...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해 거짓말
필립 베송 지음, 김유빈 옮김 / 니케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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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마 앙드리외(1966-2016)를 기억하며




이 책은 위의 헌사로 시작한다. 책을 읽노라면 이내 토마 앙드리외는 십대 시절 필립 베송이 사랑했던 소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의 헌사는 곧바로 스포일러인 셈이다. 그렇게 토마 앙드리외가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헌사가 곧 스포일러네, 하면서도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뱃속에 바위라도 든 것마냥 무겁게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건 아마도 토마가 거짓말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내에 번역된 '필립 베송'의 모든 책을 읽어본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책 [포기의 순간]을 가장 많이 떠올렸는데, 포기의 순간에서 주인공도 계속 자신을 속인 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포기의 순간에서는 오랜 시간 속이며 살다가 솔직해지기로 결심하지만. 그건 그대로 문장과 여백 모두가 스며들었다면, 이 책은 또 이 책대로 끝까지 유지된 거짓말 때문에 스며든다. 그러지말지 그랬냐고 내내 원망하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일찍이 깨달았던 필립은 같은 학교의 과묵한 소년 토마에게 호감을 품게 된다. 그를 향해 연정을 품었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텐데, 그들에게는 접점이 없었고 자신은 친구도 별로 없는 외톨이였던 터라 그가 자신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역시 필립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떻게든 필립과 단둘이 있게 되는 순간을 바라왔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밝혀서는 안된다. 그들은 학교에서 만나도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지만, 둘만 있게 되는 순간에는 서로에 대한 욕망에 시달린다.


사실 이 관계에서 나는 좀 의문스럽긴 했다. 어떻게 서로를 연모하는 마음이 일단 육체적 욕망으로 해소가 되는지,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뜨겁게 서로를 품에 안는 걸로 끝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사랑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이 사랑은 내게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들은 서로 대화를 하긴 하지만, 지난번 김봉곤의 국내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왜 그렇게 육체적 욕망이 강한 것이 사랑이 큰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거지? 내가 사랑에 대해 그들과 다른 관점을 갖기 때문인가? 



나는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경험했다. 그의 피부, 성기, 한때 나의 것이었는데 내게서 앗아간 것, 그래서 다시 주어지지 않으면 나를 광기로 몰아넣을 그런 것들의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경험했다. (p.59)




나 역시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경험했지만, 그리고 경험하고 있지만, 그 결핍이 그의 피부나 성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 결핍은 다른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의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느끼고, 일상의 매순간에서 어떤 것들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결핍이 내게 크다. 그러니까 '그의 성기가 내가 없어서 고통스럽다' 같은 것과는 다르단 말이야. 그의 피부, 라는 것은 은유일까. 내 옆에 누워 있는 그의 존재를 필립은 '그의 피부' 라고 은유한걸까? 내가 느끼는 결핍은 그의 '존재'인데 필립이 느끼는 결핍은 뭐랄까, 피부와 성기인 것 같아, 이 점에 있어서는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말장난 같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육체적 욕망을 느끼는 게 아니라, 육체적 욕망을 느끼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거다. 상대의 내면보다 육체에 더 중점을 두는 느낌.




어쨌든 필립과 토마는 이 사랑이 동성애인 만큼 그들의 비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토마는 항상 언젠가 필립이 떠날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도 달랐고 살아가는 삶도 다르며 앞으로 살아갈 방향 역시 다를 것이라는 걸, 토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토마가 알고 있던 그대로 그들의 삶은 진행된다. 그들은 헤어지고, 서로 다른 삶을 산다.



필립은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동성의 애인과 함께 산다. 그러나 토마는 이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그들은 십대에 사랑하고 헤어져서 서로의 존재를 깊이 서로에게 각인시켰지만, 잊지 못하고 내내 그리워하지만, 그 시절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찾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서로 상대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도 그들은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토마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p.171)



그리고.



토마도 평생 연락하지 않았다. (p.173)




나는 필립이 토마의 아들을 통해 토마의 전화번호를 받아든 순간, 그리고 토마의 아들이 필립의 전화번호를 가져간 순간, 그들에게 무지개가 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랐다. 평생을 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결국은 닿아야 하는 게 아닌가. 어째서 나도 당신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당신도 내게 연락하지 않는가.


나는 평생 토마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토마도 평생 연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단 말인가. 안돼, 무지개가 떠야해, 올리브 키터리지가 그랬던 것처럼, 무지개가 떠야 한다고!




고약한 날들이었다. 잭 케니슨은 전화하지 않았고, 올리브도 전화하지 않았다.

.

.

.

.

그리고 그 때, 마치 무지개처럼 잭 케니슨이 전화를 했다. "내일이면 날이 갠대요. 강변 산책로에서 만날까요?"

"안 될 거 없죠." 올리브가 말했다. "난 여섯지면 집을 나서는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p.469-471)



그러나 '평생 연락하지 않았다'고 하면, 무지개가 뜨지 않았음을 의미하잖아.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러냐고!!! 



연락하지 않음음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았음을 의미할까? 아니, 토마는 필립을 그리워했다. 필립의 존재는 찾을 수 있었던 만큼, 공개되어 있던 만큼, 토마는 할 수 있는 최대한 필립을 찾았고, 보았다.




"여러 번 봤어요. 선생님이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예고 방송이 나오면 그 프로그램을 보곤 했어요."

방송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고, 어머니는 부엌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일을 하러 갔다. 그녀는 소설가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자기를 만나기 전에 남편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아이만 아버지 곁에 남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가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도 그는 남았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보다 화면을 주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 (p.166-167)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상대의 행방을 좇으면서,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을 감추고 속이며 아내와 아들과 살았다. 그러다 결국 그 역시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이 지점에서 화가 난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내내 그는 괴로웠을 것이다. 자신을 속이고 살아오는 동안 그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고 싶은 삶은 따로 있는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불행함,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음이 그에게 있었을테니. 그러나 그가 그렇게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삶으로 자신의 삶을 불행으로 모는 동안, 불행속에 살아야 했던 사람은 또 있었다. 그의 아내. 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동성애자인줄 모르고, 사랑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줄 모르고 남편의 껍데기를 끌어 안고 살아야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을 때 그녀의 허탈함은, 그녀의 절망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보상 받아야 하는가. 젊은 시절을 내도록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살았는데, 그걸 대체 어쩌면 좋은가.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스스로를 불행으로 끌고가지만, 다른 사람을 같이 엮어서 끌고 가버린다. 그의 아내는 무엇이 잘못인가. 그의 아내는 무엇을 잘못했길래 평생을 거짓된 존재와 살아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따로 둔 사람과 살아야 하는 일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 대체 그녀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나. 그건 자신을 속인 한 남자가 한 일이다.



토마가 세상을 향해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 토마 개인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받게될 눈총이 두려웠던 걸 잘못이라고 볼 순 없으니까. 그러나 그가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계속 감춰왔기 때문에 불행해져버린 사람이 그 외에 또 있다면, 그것은 그가 잘못한 게 아닌가. 나는 그의 아내가 살아온 그 부부의 삶이 과연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남게될 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다시 필립과 토마의 사랑으로 돌아와서,

토마는 내내 자신을 속이며 그러나 필립과 살았다. 필립이 나온다는 방송을 다 챙겨보고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는 과연 누구랑 살고 있었단 말인가. 책을 전혀 안읽는 사람이지만 필립의 책은 전부 읽으면서, 그렇다면 토마는 과연 누구랑 살았던 건가. 그러나 평생 전화하지 않으면서 이 사랑은 아픔이 되고 비극이 되고 그리고 '기억'이 된다. 기억. 상대를 기억하고, 그 시절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기억하고. 그러나 사랑한다면 그것이 기억에서 끝나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시간은 또 흘렀고 그리고 토마의 아들은 비극을 전하기 위해 필립을 찾는다. 



"사실 언젠가 선생님이 한 해의 반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낸다고 한 인터뷰를 봤어요. 그래서 가끔 선생님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LA는 끝이 없어 보일 만큼 엄청나게 큰 도시죠. 선생님이 저보다 더 잘아시겠지만요. 그래도 가끔 우연이라는 게.... 결국 그런 일은 없었지만.....게다가 선생님의 연락처를 몰라서 연락할 수도 없었어요." (p.179-180)



위의 문장은 꽤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때로는 이렇게 무모하게 우연을 기대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몇 해전에 그런 우연을 아주 많이 기대하고 살았더랬다. 그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그 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가면 언젠가는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거다. 언젠가 기필코 가리라, 그를 마주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를테야, 나도 그랬던 거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식의 무모한 우연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걸까, 그것이 어딘가에 가고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걸까. 




처음, 그만해 거짓말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하는 필립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다. 그만해 거짓말.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고, 사랑을 결국 비극으로 만드는 일이며, 그 비극을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엉뚱하게 전염시키는 일이다. 

이 사람과 있을 때 즐겁다, 행복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의지로 그것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속이면서 죽는 순간까지 후회만 하다 살고가서는 안된다. 그러면 정말 안되는 거다.




필립 베송은 여전히 좋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좋지는 않다. 그만큼 좋아할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자신이 지닌 힘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 P33

그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다고, 절대로, 자기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엄두를 냈는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어떻게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거기까지 오면서 그가 품었던 모든 의문, 망설임, 부정, 극복해야 했던 장애물, 이견, 그가 벌여야 했던 지극히 내적이고 은밀하며 조용한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 일이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되어버렸으며, 거기에 맞서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P40

그는 더 이상 이 감정을 홀로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나 상처가 된다고 했다. - P41

나는 최근 ‘방을 새로 꾸미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옛날 물건을 버리기‘로 작정한 엄마의 뜻에 따라 내 방 책상에 남아 있던 물건을 정리하던 중, 두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하나는 중학교 일학년 때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칼로레아를 치르던 해 여름에 찍은 것이었다. 차이가 엄청났다. 결코 같은 소년이 아니었다. 첫 번재 사진에서는 위축되어 있었고 축 처진 어깨에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웃고 있었으며 피부는 햇빛을 머금고 잇었다. 물론 각기 다른 상황이 미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신의 이유가 비밀스러운 사랑에 있다고 믿는다. - P96

그동안 함께 있는 모습을 남들 앞에서 드러낼 수 없어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남들 앞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인 척 해야 하는 이 상황으로 인해 나는 더욱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의 행복을 드러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칠 듯함. 참 가엾게 들리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은 그럴 권리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절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 더 행복해졌고,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금지 때문에 더욱 위축되고 억눌렸다. - P114

내 경우, 마침내 이별을 실감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괴로움, 고통 그 자체였다. 나는 늘 내가 더 고통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괴로워할 것이라고.
우리는 가끔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다. - P130

"우리, 그러니까 네 아버지와 나는 그때 연락이 끊겼지."
나는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마지막 단어들을 강조했다.
마치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단순히 그런 것이라고 말하듯이. 삶이란 함께 어울려 지내다가 멀어지고 그렇게 계속 사는 것이라고.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겨운 이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괴로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결별도 없다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자신을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후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 P148

나는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표현할 단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 말들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말(馬)이 장애물을 거부하듯, 우리는 상처 주는 말(言)을 거부할 수 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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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4-2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콜미바이유어네임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 읽는 중인데 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ㅋㅋㅋ 뭔가 제 머릿속(?)으로만 야하지 이입(?)이 안되더라고요ㅋㅋㅋ (앍 이게 뭔말이얔ㅋㅋㅋ) 뭐 등장인물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거지만ㅋㅋㅋ 요즘은 이입이 되는(?) 아름다운 야한 소설 읽고 싶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9-04-22 16: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책 읽으려고 샀는데 사고나서 영화를 봤거든요. 그랬더니 책을 안읽게 돼요. 전 그 영화가 썩 마음에 들질 않아서.. 하하.
이입이 되는 아름다운 야한 소설... 이라. 저는 ‘아름다운‘ 이란 수식어를 뺀다면 [낯선 살냄새] 나 [잘생긴 개자식]을 추천합니다. 자꾸 여자주인공 팬티 찢는 남자주인공이 나와요. 쿨럭.

clavis 2019-04-2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너무나 기쁘고 고맙습니다. 저의 부탁을 들어주셔서요..저도 불편해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삽니다. 진솔한 인간이 되는 것을 고민하게 되네요. 책은 정말 좋지 않나요?락방님♥리뷰도 책도 사랑도 만세입니다

다락방 2019-04-22 16:26   좋아요 1 | URL
불편해지기 싫어 하는 거짓말이 결국은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습니다.

책 정말 좋지요, 클래비스님. 책도 좋고 글 쓰는 것도 좋고 이렇게 책으로 엮이는 인연도 좋습니다! 만세!

얼룩말 2019-04-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19-04-22 16:27   좋아요 0 | URL
네, 이 책 괜찮아요. 저는 필립 베송이라 믿고 봤습니다. 이제는 예전만큼 좋진 않지만 말이지요...

clavis 2019-04-2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에게 솔직해지자고, 오늘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언제나 품위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렇게 하는 데에 락방님의 글은 참 많은 도움을 줍니다. 려성동지로서도요♡♡

clavis 2019-04-2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농심 멸치 칼국수 먹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 마지막 방학이라 학교가 쉬어서 하루 종일 문 닫아 걸고 연습 중이어서 출출했다는 말을 길게 변명은 아니고, 국물은 너무나 시원하고, 강추를 해 드리면서...락방님 음식 얘기도 너무나 맛깔지고 좋아하는데 제가 블로그 주소를 잃어버려서ㅠㅠ혹시 다시 한 번 알 수는 없을까요? 팬심을 잃은 건 아닙니다. 아니구요..ㅠㅠ)

2019-04-22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9-04-22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웅꺄웅 완전 사뢍합니다 락방님♡♡
 
큰 가슴의 발레리나
베로니크 셀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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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젖가슴을 가지기로 선택한 적이 없다. 그것은 유전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p.275)



요가를 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요가를 못하는 사람이다. 동작들이 안될 때면 나는 그 동작이 왜 안되는지 알고 싶어 생각하고 분석하려하고 또 질문한다. 선생님, 저 이 동작 왜 안될까요, 근육이 짧은 걸까요, 살이 많아서일까요? 어깨가 굽어서일까요? 계속 시도하면 나아질까요? 나는 끊임없이 묻고 들여다보며 문제점을 찾아내고 싶다. 개선하고 싶다면 원인을 분석하는 게 먼저이니까. 어쩌면 이런 나의 성격 때문인지 한 요가선생님은 내게 좀 더 깊은 수련인 지도자교육을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이렇게나 요가를 못하는데 그런 제안이라니, 선생님 왜 그러세요.. 나는 당연히 거절을 하고 돌아섰다.


이만큼 살아오며 굳어버린 몸, 굳어버린 근육이 내가 요가를 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나는 틈틈이 내 두꺼운 허벅지가, 배가, 그리고 큰 가슴이 요가를 잘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가슴은 내 몸을 굳게 만들고 휘어지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고, 그리고 요가를 못하게 만든다. 인스타그램에서 요가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다보면 힘있게 가벼운 몸짓에 늘 감탄하곤 하는데, 그들은 아무도 큰 가슴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큰 가슴을 가지고서는 요가를 잘 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어차피 나는 여기까지구나, 절망하다가 어떤 날에는 큰 가슴으로 요가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보이겠다!고 의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의 나는 이렇게 가슴이 크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요가를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엊그제 요가를 하면서 선생님이 말하는 동작이 되지 않아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돌아보니 다른 회원들은 다 하고 있는데 또 나만 안돼. 분명 이들중에는 나보다 요가를 늦게 시작하고 요가를 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텐데, 왜 그보다 더 오랜시간 요가하는 나는 이 동작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가...절망하다가, 수업이 끝난 후 주저앉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가진 큰 덩치가, 무엇보다 큰 가슴이 요가를 잘하고자 하는 나를 막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가슴이 큰 건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데, 그걸 요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건 가지고 태어난거잖아요. 큰 가슴으로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그래서 몸도 굳었을텐데, 오히려 그런 몸을 더 잘 보살펴줘야죠. 이만큼 고생했을 내 몸에 감사하며 더 보살펴주세요. 그리고 내가 가진 몸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게 중요해요. 요가를 잘한다는 건 아사나(자세)를 잘 취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최선을 다한다는 걸 의미해요."



그러고보니 최근에 그동안 사용해온 몸에 감사하라는 말을 여동생에게도 들었었는데, 이렇게 요가 선생님으로부터 듣는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렇게 태어난 내 몸에 대해서 나는 감사하기는 커녕 '요가하는데 방해가 되네' 라고 생각했네. 아, 나 너무 나쁘다. 선생님의 조언은 적절했고 또 감사했다. 그래, 내가 뭘 더 얼마나 하겠다고 이런 내 가슴을 원망했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지.




이 책의 주인공 바르브린은 발레에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일류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이미 유명해진 천재적인 발레리노와 섹스도 한다. 재능도 전염이 될테니까.



우리는 얼이 빠져서 비틀거리며 파티장을 나왔다. 여주인은 우리가 취했다는 사실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온전히 그녀에게 속해 있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런던 시티 발레단의 무용수인 카티아의 오빠와 그것을 했다. 그녀는 재능이란 전염성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p.103)



바르브린 역시 자신의 큰 가슴이 발레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남자들은 바르브린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르브린의 가슴을 사랑한다. 바르브린의 큰 가슴은 발레를 하는데도 방해가 되지만, 온전히 인간으로 보이게 하는데도 방해가 된다.




이별은 깔끔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차례 화해했다. 그러나 짧은 이별이 이어지면서, 나는 올리비에의 나에 대한 사랑이 허약하고, 부실하고, 불안하고 불행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나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뿐, 재능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가 나의 가슴을 바라볼 때마다, 그것들을 수첩에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나는 분홍색 살로 이루어진 두 개의 포장 팩으로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그의 뺨을 갈기고 싶다. 나는 어느 날 그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테이블에서 내 가슴에 대해 말하게 될까 봐 두렵다. (p.125)



이 방해가 되는 큰 가슴을 그녀는 없애버리기로 한다. 그녀는 그렇게 가슴 절제수술을 받지만, 결국 그녀가 더이상 발레를 할 수 없게된 건, 임신과 출산이었다. 그녀가 임신하는 동안 그녀의 파트너는 춤으로 계속 캐스팅되고 있었고, 그녀가 출산하고나자 출산 동안 그녀의 옆에 '없었던' 아이의 아빠는 '사실은 남자를 좋아해' 라고 고백한다.


네? 



그러면 바르브린을 왜... 임신시켰어 이 개놈아.




잘라낸 가슴은 '다시' 자란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남자를 좋아한다. 자, 그러면 그녀가 이제 무너지는 길만 남았을까? 아니.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안고 그리고 그간 자신이 읽어왔던 발레리나의 생애들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녀는 그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그녀야말로 다시 자라나는 가슴을 방해물로 생각하는걸 그만두고, 순전히 자신이 가진 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여성의 가슴은 마치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성적 대상화된 여자들은 항상 큰 가슴을 가진 이미지로 그려지고 다뤄진다. 큰 가슴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에게 그저 가슴 하나만으로 희롱의 대상이 된 적도 여러번이었다. 내가 내 가슴을 요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건, 사실 그보다 앞서 내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게 컸기 때문이겠구나, 이 책을 다시 훑어보다 생각했다. 어떻게든 가슴이 작아보였으면 좋겠다고 움츠렸던 삶은, 큰 가슴이 드러나서 희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햇던 거였다. '나'보다 '가슴'이 먼저 보이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여자들 조차도 가슴이 커서 남자들이 좋아하겠다는 말들을 하곤 했다. 내 가슴은 그렇게 남자들이 좋아하라고 만들어진 걸까, 그래서 행운인걸까?


나는 힘들었다. 나는 내 큰 가슴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깨를 움츠리며 살아온 삶도 힘들었고, 이 무거운 걸 이고 살아가는 삶도 힘겨웠다. 길을 걷다가 감추는 기색도 없이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소름끼치게 싫었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내 앞에서 내 가슴만 보지? 그렇게 내 큰 가슴은 차곡차곡 내 인생의 방해물이란 존재로 내게 쌓여갔다. 그러다가 요가를 만나 이 마음이 폭발한 것 같다. 이건 좋은게 하나도 없어, 이렇게도 저렇게도 방해가 되더니, 요가할 때도 이모양이야!



그러나 이건 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게다가 남자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바르브린에게 두 가슴이 지워지듯이, 나도 내 가슴을 지워내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거기에 있으되, 그것이 내게 방해요인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 내가 지금의 나로서 살아가는 데, 큰 영향력으로 나를 휘두르지 않을 수 있을 것. 그러고보면 너무 많이 가슴에 휘둘려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바르브린에게 다시 가슴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이제 그 전의 의미와 달라졌으니, 나 역시 휘둘리지 않고 요가 선생님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내 젖가슴이 나의 비극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돈 때문에 쪼들리는 형편이었으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나는 바디페인팅 화가인 알리시아를 위해 포즈를 취해 주기로 한다. 당시의 나에게는 엄청나 보이는 금액을 받기로 한다. 알리시아는 예술과 돈과 여성 육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예술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빌리지 미술가들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누드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미술가들은 알리시아처럼 플라워 파워 시대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주장되는 육체는 여성들을 종속시키고 그녀들의 신체 구조에 투기하는 우회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현대미술가들 중에서 여성 미술가의 비율은 4%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시되어 있는 누드 작품의 85%가 여성이다. 여성들은 벌거벗고 포즈를 취하기에는 충분히 훌륭하지만, 큐레이터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히 화가가 아니기라도 하단 말인가? - P190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꼼짝도 못하고 서 있다. 한 남자가 아기를 DHL 상자처럼 들고 서 있다. 그녀는 그가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통계에 따라, 아버지 둘 중 하나는 신통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여성들이 무능력한 아버지의 불확실한 도움에 기대느니 차라리 혼자서 해나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간호사의 눈에서 읽을 수 있다. 그녀는 공유된 무책임함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 P248

여성의 육체적 조건을 상징하는 젖가슴은 여성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 한 쌍의 젖가슴은 그들의 주인인 바르브린이 자기들 때문에 겪게 되는 비극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들은 자기 발현만 사납게 추구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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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거짓말
필립 베송 지음, 김유빈 옮김 / 니케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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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필립_베송, 당신은 정말!
이사람이다, 이 사람과 있을 때 나는 행복하다, 라고 생각한다면, 숨지도 말고 감추지도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후회로 보내다 죽을 수는 없잖아.
이 책의 헌사는 스포일러. 그렇다고 감정이 덜해지지 않는다.
이 책의 리뷰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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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9-04-2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 주세요ㅠㅠ흙흙

다락방 2019-04-21 15:06   좋아요 1 | URL
썼습니다! ㅋㅋㅋㅋㅋ

clavis 2019-04-2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ㄲ ㅑ♡락방님 쵝오!!!
 
[100자평] 가만한 나날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이십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잘 따져보면 몇 살이었는지 나오겠지만 어쨌든 대략 이십대 후반쯤. 그 때 혼자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다. 나보다 몇 살 많았는데(기억이 안나네 젠장 ㅋㅋㅋㅋㅋ 세살이었나 네살이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꽤 친했고 매일 연락했고 자주 만났다. 추운 겨울에는 내 손을 자기 주머니에 가져가 넣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 남자가 너무 좋아서 가슴속에 막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고 혼란스럽고 매일이 고민이고 그랬더랬다.


그러던 어느 하루, 그는 어김없이 밤에 전화를 걸어왔고 그렇게 우리는 통화를 했는데, 그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준비를 하겠다는 거다. 그는 자기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

"응. 말씀드렸지."

"앞으로 힘들겠네."

"그치.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 대화를 하는 순간 나는 갑자기 내 안에서 그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뭔가 너무 길고 멀었다. 공부를 한다니, 언제까지? 안정적 직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불안정한 상황으로 가다니. 나는 급격하게 사랑이 식는 걸 느끼면서, 내가 한 사랑은 가슴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 느낌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 머리로 한 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랑이 고통으로 가는 길이라면, 힘든 길이라면, 오 노, 거절합니다, 가 어쩌면 이렇게 단칼에 되는지! 어쩌면 그와 나는 공식적인 연인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연인이 아니라 친구였으니까. 그는 내가 부르면 와주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으니까. 마음을 접는 건 나 혼자만의 몫이었고,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며칠 전에 혼술을 하면서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다가 <연애의 참견>이란 프로를 봤다. 신청자의 사연을 듣고 패널들이 각자 참견해 말을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보았을 때의 신청자는 공무원준비를 4년간 한 남자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기다렸는데, 막상 합격하고 나서 그는 바람을 피웠던 것. 직장 동기 그리고 전여친. 또다른 사연은(이건 아마 그전에 보았던 것 같다), 돈 없는 남자친구에게 용돈을 줘가며 뒷바라지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돈 없어 기죽을까봐 조금씩 용돈을 자주 주고 가끔은 큰 금액을 주기도 했는데, 어느날 부턴가는 남자친구가 돈을 요구하기도 하더라. 그런데 그 돈을 다른 여자와 데이트 하는데 쓰고 있었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오래전에 알던 지인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여자는 직장에 다니는데 남자는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해서 밥도 사주고 가끔 용돈도 주고, 시간 많이 뺏으면 공부하는데 지장있을까봐 밥만 사먹이고 용돈만 주고 돌아왔는데, 그 날 밤에 친구들과 그 돈으로 클럽에 갔다는 걸 알고는 완전 빡쳤던 경우.




김세희의 단편집 《가만한 나날》의 첫 단편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에서 '연승'은 직장을 그만두겠다 했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진아'는 연승이 자리를 잡고 또 안정된 생활을 하게되어 안도했는데, 연승은 더 늦기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겠다는 거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둔다고. 진아는 이 일을 친구에게 얘기했다.



진아는 이 얘기를 친구 화영에게만 털어놓았다. 연승이 영화를 찍겠다며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그러자 화영이 말했다.

"야,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인생 종 치는 소리." (p.12)



아, 정말이지... 급격하게 애정이 식는다.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하면, 그러면 생활비는 어떡하지. 집에다 손 벌릴 것인가, 진아가 뒷바라지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아, 갑자기 너무 싫어지는 거다. 진아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대학시절부터 지속해온 연애건만, 이 연애가 계속될까?


물론 연승에게 반드시 불안한 미래만 보장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탄탄하게 커리어 쌓는 멋진 감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아, 싫다. 싫어... 아직 사회생활한지 얼마 안된 이 젊은 커플에게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내가 진아였다면 사랑이 짜게 식는 걸 느끼며 세이 굿바이 했을 것 같다. 나는 너의 뒷바라지나 해주며 젊음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여자친구가 뒷바라지 해주는 모든 남자들이 여자 돈 뜯어먹고 취직한 다음에 바람피우는 건 아닐 거다. 착실하게 공부해서 취업하고 그 힘든 시간동안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더 잘하는 남자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내가 너무 배신하는 남자들의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아 각박한 세상이여...



나는 상대가 어떤 직업을 갖든 별로 상관은 없고,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딱히 상관이 없다. 어쩌면 그건 내가 지금 이런 상황, 직장에 오래 다니고 안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거다. 다만, 나는 나의 상대가 자기 몫을 충실히 하려는 사람이길 원한다. 그것만 갖춰져 있다면 지금 당장은 한 달에 백만원을 번다한들 어떤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내가 먹을 건 내가 챙긴다'라면, 나는 내가 가진 걸 나눠 써가면서 살아갈 의향이 있다. 이건 정말로 중요하다. 사람은 어려울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계속 도움만 받으며 살 순 없다. 그래서 자기 능력을 자기가 가져야해. 그 능력이란 게 대단한 게 아니라, '내 몫은 내가 하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의미한다. 아무리 돈많은 그레이랑 결혼해서 그레이가 직장에 대표로 꽂아주고, 전망 좋은 곳에 집 사주고, 옷가게 털어온 것마냥 옷을 좌르륵 온 집안에 걸어놔주면 뭐하나. 그레이랑 헤어지면 얄짤없는데. 그 때가서 '나 어떡하지' 할 순 없는 것이다. 그 때가 되어도 똭- 일자리를 찾아서 똭- 돈을 벌어가지고 삼시 세끼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거야. 무조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연승도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 해서 어떻게든 자기 밥벌이를 하면서 꿈을 좇는 사람일지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르고.




책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들 답답할까 싶을 정도였어. 그러나 한 십년 전의 내 이야기라고 보면 그럴 법도 했다. 직장에 있어서도 그리고 연애에 있어서도 이들은 당황스러워하고 갈등한다. 이게 맞는건가, 이대로 괜찮은가 끊임없이 불안하고, 그렇게 성장한다.



소설들보다 끝에 실린 작가의 말이 더 좋았다.




첫 번째 독자인 남편에게 감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닮아 가는 내 모습이 좋고, 나를 닮아 갈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 삶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 아무렇게나 막 쓰라고 말하는, 소설가의 남편으로서도 귀한 덕목을 갖고 있다. 다만 그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이 잘 팔릴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가 너무 실망할까 봐 걱정이다. (p.294-295)




그야말로 소설가의 남편이 되기에 귀한 덕목을 갖추었구나. 글을 쓰는 게 중요한 사람들은, 아마도 다들 그렇겠지만, 글 쓰는 일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큰 축복이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좋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좋아하는 것만큼 큰 기쁨이 또 있을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삶의 중요한 동력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를 한껏 자랑스러워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이 내게도 중요한 동력이다. 나는 항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길 원했다.

학창시절 여동생이 전교1등하고 장학금 받고 그러는 게 나는 너무 자랑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은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냐고 했는데, 전혀. 나는 막 자랑하고 다녔다. 내가 일등한 것도 아닌데. 그런 한편, 나 역시 여동생에게 자랑스러운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다. 이런 자랑스러운 마음, 동생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해, 라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여동생은 내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언니가 내 언니인게 너무 좋다고, 자랑스럽다고. 계속계속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고, 누나가 되고, 이모가 되고, 딸이 되어야지.




그런데!!


작가의 말이 참 좋으네, 소설보다 더 좋다, 하면서 책장을 넘겨 '신샛별'의 <작품 해설>을 읽는 순간 '?????????????????????????????????????????????????' 이렇게 되어버렸다. 이 부분에서였다.



'나'는 루미가 자신과 법적 부부 관계를 맺은 이유가 단지 '낮은 금리'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한다. 일생을 돈 버는 기계로 살아온 아버지의 최후에 자신의 부족한 경제력을 잇대어 보면서 이 소설의 남성 화자는 결혼에 대한 약속, 즉 루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부양의 책임에 균형이 생겼다고는 해도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부양의 의무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부여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소설이 포착한 남성 화자의 불안에 공감할 여지는 충분하다. (작품해설, p.320-321)



네??? 아니, 이 소설이 왜 갑자기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남성의 불안.... 으로 해석되는거지?



그러니까 '나'는 '루미'와 동거중이다. 루미는 논문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하진 않는다. 남자의 아버지는 지금 요양원에 있는데 술을 마시면 안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며 고집이 세다.




엄마와 누나는 병원에서 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마치 집에 두고 싶지 않은 가구라도 되는 것처럼 치워 버리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요양 병원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가장 좋다는 건지는 언급하지 안았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계속 거기 있길 바랐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p.166)



남자도 마찬가지. 아버지처럼 고집이 세고, 아버지처럼 간 수치가 너무 나빠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도 계속 술을 마신다. 이러니 루미가 빡이 쳐 안쳐.



"20대에 이 정도 간 수치는 만 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예요. 젊다고 방심하면 큰일 나요."

이건 지난 건강 검진 뒤에 의사가 전화를 걸어와 한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루미에게 들려줬고, 그녀는 그 뒤로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질겁했지만 요즘은 포기한 상태다. 하루는 일어나 보니 냉장고 문에 내 간 수치와 혈압, 몸무게가 적힌 노랑 정사각형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나는 루미가 보는 앞에서 그걸 거칠게 떼어 낸 다음 구겨서 던져 버렸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p.176)



아, 벌써부터 뽝- 스트레스가 오지 않나. 그렇다면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기까지 엄마와 누나는 어땠을까. 그 긴 세월을 어떤 사람과 어떻게 보낸걸까. 엄마와 누나가 인정 없는 사람이라 아버지를 요양원에 가둔걸까?



식당을 나와 다시 아버지는 앞서 걷는다. 운동장이 휑한 초등학교 앞을 지나, 교차로를 지나, 좁은 길로 접어든다. 목욕탕이 있는 길이다.

"오늘은 루미 있잖아요. 그냥 집으로 가요."

그러나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길 한가운데 고집그럽게 서 있다. 루미가 다가와서 내 팔을 만진다.

"내가 이거 갖고 어디 가 있을게. 목욕하고 와."

나는 아버지와 루미를 번갈아 보고, 전기장판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 내 종아리에 기대 세운다. (p.174)




아들하고 목욕하고 싶었을 수 있다. 아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목욕탕에 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이 여자친구와 함께 왔는데, 어떤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목욕탕으로 향한다니. 대체 저 배려없고 예의없는 고집스러움은 뭐란 말인가. 저 성격으로 평생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나는 배려하지 않지만 너는 나를 배려해야 해, 가 깔려있는 이기적임.



아버지는 아들에게 루미도 네 엄마랑 똑같다, 이기적이다, 라고 욕을 한다. 그러나 남자는 '루미는 엄마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루미는 엄마와 다르다. 엄마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목소리를 높이면 똑같이 소리쳤고, 아버지가 식탁에 있던 엄마를 향해 담뱃갑을 던졌을 때는 벌떡 일어나 앉아 있던 의자를 집어던져 버렸다. 내가 흥분하고 소리 지를 때 루미는 입을 다문다.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러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루미는 엄마와도 다르고, 우리 가족 누구와도 다루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야심에 차 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p.178-179)




뭐라고? 술에 취해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담뱃갑을 던져?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오니 이제 엄마와 누나가 아버지 연락도 받기 싫어하는 거 아냐. 그런데 이 남자를 보라지. 제 아버지랑 다를 게 하나도 없네. 소리지르는 남자라니, 정말 최악이다. 같이 사는 여자에게 한 공간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정말 최악이야. 진짜 끔찍하다. 그 상황에서 루미는 얼마나 답답하고 공포스러웠을까.




남자는 아버지의 말년이 이렇게 된 것이 속상하다. 엄마를 원망한다.




부산에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데 왜 말년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지, 속이 답답해진다. 엄마와 누나는 아버지를 자기들 눈앞에서 치우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원망스럽다. (p.178)




그러나 루미는 다르게 본다.



루미는 다른 입장이었다.

"난 너희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젠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평생 얼마나 시달렸겠어?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은 거지. 왜 그걸 참아야 돼?'

이런 말도 했다.

"그러는 넌 도망쳤잖아. 그렇게 말할 권한이 없지. 아버지 꼴 보기 싫어서 서울로 대학 왔다며?" (p.178)




아니 이사람아...자네는 젊을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도망쳐놓고, 이제와 엄마와 누나가 아버지를 모른척한다고 원망하는거야? 돌았어?



"내가 아버지처럼 되면 너도 날 떠날 거야?'

루미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 있긴 한지, 아버지 때문에 피하는 게 아닌지, 나를 남편으로 여기긴 하는지 묻고 싶지만, 쉴 새 없이 찰싹이는 맑은 물을 바라보면서 가까스로 숨을 삼킨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p.186-187)




남자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엄마와 누나가 아버지를 저버린 게 늙고 병들어서라고. 아니, 그는 폭력적이고 고집스러워서이다. 평생 시달리다가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거다. 아버지처럼 되면 자기를 떠날 거냐고? 남자는 지금도 충분히 자기 아버지처럼 살고 있기에 나는 루미에게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그가 늙고 병들어 돌보아주기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그런 고집스러움과 지긋지긋하게 말을 듣지 않는 걸 견디기 싫어서이다. 어디서 떠난 사람을 죄인 만들어, 그간 자기가 한 짓은 생각 안하고.




오늘따라 루미의 얼굴이 어려 보인다. 막 세수한 것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귓불 언저리에 솜털이 빛난다. 평소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아서 학교에서도 대학생으로 오해받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 p.169)



루미의 지금이 그런것처럼, 남자의 어머니도 어려 보이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졌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귓불 언저리에 솜털도 빛났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러나 지독하게 고집스런 남자를 만나 살아가는 동안 가슴속에 화만 쌓였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던지는 담뱃갑을 맞고 가만있는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는 의자를 집어던지는 여자였다. 아버지의 행패를 말린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망쳐놓고 이제와 여자에게 '나중에 나를 떠날거야?' 묻는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다. 만약 여자가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잘하면 된다.




책은 읽는 사람의 몫이고 거기에서 무얼 느끼고 받아들이는가도 읽는 사람의 몫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여기에서 '부양의 의무를 지고있는 남성화자의 불안' 에 공감....한다는 해설이 나오는걸까? 나는 여기서 폭력적이고 고집스런 남편과 평생을 살아야 했던 여자들의 홧병이 느껴지는데?


보통 소설 뒤에 실린 해설이라면 반드시 읽는 건 아니지만, '읽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훑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부양의 의무 남자 고통... 이런 거 보는 순간 뭔가..... 읭? 하게 되어버렸어. 하아-




아무튼, 김세희 작가님, 소설 열심히 쓰시라. 응원해주는, '자신에 대해 아무렇게나 막 쓰라'고 말하는 남편이 있으니, 그 힘을 받아 쓰고 또 쓰고 또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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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4-1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생기지 않던데, 중간에 다락방 님이 말씀하신 글쓰는 사람에 대한 응원의 마음 그 부분 글은 참 좋네요. 공감가기도 하고요. 다락방 님도 계속 열심히 쓰시고, 또 책 내세요. 다음 책은 한때 연애 흑역사를 겪은 D모 여인의 페미니즘적 연애성공기를 그린 소설? 이런 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4-18 10:55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소설보다 작가의 말이 더 좋더라고요. 후훗.

음....D모 여인의 페미니즘적 연애성공기..음..... 음... 소설이니까...음.............음...... 그것은 제가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왕 쓸거면 19금으로 쓰는 쪽으로.... 래핑되어 있는 책으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4-1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말, 좋아하는 1인으로서 이 책 ‘작가의 말’ 진짜 뭉클하네요. 김세희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어요.

책은 자고로 래핑되어 있어야하죠. 아, 기다려집니다. 래핑된 책비닐을 북북 찢게 될 그 어떤 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4-18 15:14   좋아요 0 | URL
작가의 말 참 좋더라고요. 해설은 그에 못미쳤지만 말입니다.

살면서 한번쯤은 래핑될만한 책을 써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 그 때는 필명으로 써도 좋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9금 소설을 한 번쯤 쓰고 싶은데 쓸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