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흠 하나 없는 인간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실수한 적 없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해서 요즘 많이 생각한다. 나의 어떤 과거, 과거의 어떤 발언이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 말하기 너무나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것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렵다. 나는 농담처럼 새롭게 사귀게되는 연인들에게 '정치할 생각이라면 나를 만나지 말아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지만 나는 털면 먼지뿐이야' 하고. '네 정치인생에 나는 치명적 약점이 될거야' 라고 말하며 정치할거면 나랑 헤어져야 해, 를 말하곤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뭐 최근에는 친구중에 국회의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하는데, 친구라는 포지션이면 내가 딱히 그의 약점이 되진 않을 것 같아서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또 알게 되면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과거의 나 자신이다.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일삼던 나... 그때도 물론 나는 늘 당당했고 내가 하는 말에 자신이 있었으며 당시에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닥치는 대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자아이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워서, 내가 나를 알기도 전부터 이미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때 괜찮은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얼마나 빻은 인간이었는지, 여성혐오에 일조하는 인간이었는지를, 토요일에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다시' 보며 깨달았다.
여자친구와 토요일에 대전에 갔다. 대전에서 우리 무얼할까, 하다가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델마와 루이스를 재상영한다는 걸 알게되어 우리는 고민없이 이 영화를 보자! 했다. 둘다 아주 어릴 적에 봐서 기억이 희미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이 영화를 언젠가는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 십대일 때 이 영화를 봤는데, 다시 보기 전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브래드 피트가 지나 데이비스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그가 너무 근사했다는 것과, 드라이브 중에 치근덕대는 남자의 트럭을 터뜨린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절벽을 향해 운전하던 장면이었다. 그때 당시에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여러명과 함께 이 영화를 봤었더랬다. 그리고 방금 언급한 저 장면, 성희롱 했다고 트럭 폭파시킨 장면에서 나는 '어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저렇게까지 해' 라고 했던 거다. 그때 우리반 반장(여고였으므로 당연히 여자였다)이 내게 화를 냈었다. '저게 왜 심하다고 생각해? 저 남자는 잘못했는데?' 라고 해서 내가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트럭까지 터지게 하면 어떻게 해' 라고 했던 거다. 아아, 과거의 나여.... Orz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반장은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 깨닫고 지금 공부하는 많은 것들을, 반장은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주 얌전한 아이를 보고 내가 무심결에 '여자중에 여자' 라고 표현한 거다. 그러자 반장이 내게 그랬다.
'여자다운 게 뭔데?'
나는 갑자기 그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 같은 거 있잖아..얌전하고....... 라며 얼버무리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아, 과거의 나여.... 진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때 반장은 날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곳곳에 나같은 사람이 일조했다고 생각했겠지. 그 당시에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페미니즘에 대해 1도 몰랐고, 철학에 대해서라면 더더욱이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장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철학적이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아, 반장, 너는 지금 어디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니? 나를 보며 얼마나 답답해했니? 하아. 부끄럽다. 반성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나은 인간이 되어있는걸까. 그때의 멍청한 발언과 행동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는가? 라고 물어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그 사실을, 아직도 내가 많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델마와 루이스를 '다시' 보며 깨달았다. 아, 나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델마(지나 데이비스)'는 강압적인 남편과 함께 산다. 친구인 '루이스(수잔 서랜든)'과 짧게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그 말을 차마 남편에게 하질 못한다. 남편이 허락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큰 소리로 말해서도 안되고 남편이 시키는대로만 해야 하는 삶을 사는 델마는, 결국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로, 남편이 먹을 저녁을 전자렌지에 넣어두고 쪽지를 써둔 채, 루이스와 여행을 택한다. 그들은 어느 산장으로 놀러가 이틀밤을 지내고 오기로 했다.
차를 몰고 가는 길, 중간에 델마는 쉬었다 가자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 펍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술을 한 잔씩 하다가 찝적대는 남자를 만난다. 루이스는 그가 다른 곳으로 가길 바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친구와 얘기중이다' 라고 그를 거절하지만, 델마는 결국 그와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춤을 춘다. 깔깔대고 웃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탓인지 어지러워져서, 루이스가 화장실 간 사이에 바람을 쐬러 가자는 남자의 말에 함께 주차장 으로 나가는데, 거기에서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러지 말라며 남자를 거부하다 남자의 뺨을 때렸는데 돌아오는 건 남자로부터의 연이은 폭력이었고, 그렇게 얼굴도 얻어터진채로 차 위에서 뒤집어져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그때 루이스가 총을 들고 그 자리에 와서 그만두게 한다.
"똑바로 들어. 여자가 저렇게 우는 건 좋아서가 아니야."
아, 진짜 가슴 아픈 명대사가 아닌가! 남자는 총 앞에서 강간을 멈추긴 했지만 그녀들을 욕하며 내 거시기를 핥으라고 한다. 이에 폭발한 루이스는 결국 그자리에서 그 남자를 죽인다.
그들의 여행은 이제 도망이 되었다. 델마는 루이스에게 경찰에 신고하자 말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알고 있다. 그들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네가 술을 마시고 남자랑 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그런 이상 남자가 너를 강간하려고 한 건 네 책임으로 사람들이 몰아갈 것이다' 라는 걸, 루이스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스티븐 킹의 소설속 한 구절을 떠올렸다.
《뉴욕 포스트》같이 저속한 신문들은 테스의 10년 전 사진을, 즉 뜨개질 클럽 시리즈가 처음 출간될 무렵의 사진을 실을 것이 뻔했다. 그때 테스는 이십대 후반이었기에 짙은 금발 머리를 길게 길렀고, 미끈한 다리를 뽐내려고 짧은 치마를 즐겨 입었다. 게다가 그 시절에는 저녁에 외출할 일이 있으면 뒤꿈치 부분이 끈으로 된 하이힐을 신곤 했는데 어떤 남자들은 그 구두를 '남자 꼬시는 신발'이라고 불렀다(물론 그 거인도 예외일 리 없었다.). 테스가 이제는 나이를 열 살이나 더 먹었고 몸무게도 9킬로그램이나 늘었고, 성폭행을 당할 때 거의 촌스러울 정도로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신문에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런 세부 사항은 삼류 신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기사의 문장 자체는 점잖을지도 모르지만(행간에는 선정적인 분위기를 살짝 흘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함께 실린 테스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 진짜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아마도 인류가 바퀴를 발명하기도 전에 만들어졌을 이야기를. 여자가 야하게 하고 다녔네……당해도 싸지, 뭐. (빅 드라이버, p.271-272)
델마가 술을 마시고 남자와 웃고 떠들며 춤을 춘 건 사실이다. 그건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녀가 섹스를 원한 건 아니었다. '아니'라고 말했고 그렇다면 남자는 '아니'라는 말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지만 그 장면에서, 루이스가 그 남자를 쏴죽이고 델마가 울던 장면에서, 자꾸만 내 안에서 그런 말이 들렸다. '왜 그렇게 남자의 찍접댐을 받아주지?' 라는. 델마는 계속 그랬다. 브래드 피트를 길에서 만났을 때도 좋아서는 저 남자를 차에 태워주자고 한다. 결국 브래드 피트는 델마와 루이스의 전재산을 가지고 튄다. 이 모든 나쁜 일에 자꾸 델마가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원망이 내게 끼어드는 거다. 게다가 그녀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고 나약하게만 보인다. 루이스는 '울지만 말고 생각을 좀 해' 라고 델마에게 말하는데, 나야말로 델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거다. 아, 저 성격 너무 싫다, 정말 싫어, 저런 사람하고 친구하고 싶지 않아, 라고 나는 델마를 평가하고 있었던 거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아.. 갈 길이 얼마나 먼지...
그런데!
중간에 델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한다. 18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4년을 교제하고 결혼한 사실, 자기 인생에 남자라고는 남편 하나뿐이었던 사실을. 그런데 그 남편이, 하나밖에 모르는 그 남자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사회생활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가사노동만 하며 남편의 출근을 뒷바라지 하고 퇴근만 기다리는 델마가, 결국 어떤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놀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가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지 못한 상황속에 어릴 때부터 놓여진 델마는, 어떤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델마가 나약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싫었다.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고 생각할 줄 모르는 채로 자신에게 다가온 위험도 알아채지 못하는 델마가 너무 싫다고 생각했다. 민폐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가 일을 망쳤잖아! 라고. 그러나 델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델마를 보면서 이 모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가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었던 것은, 한 번도 그녀에게 문제를 해결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생각과 행동은 제한되어져 있었고 제약받고 있었다. 강압적으로 누군가 대신해주는 삶을 살아온 델마에게 그런 나약한 성격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본성은 아니었던 거다.
나는 여자(그리고 남자도)의 성격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게 됐다. 델마는 여행을 하면서, 도망을 치면서,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문제 해결에 직접 뛰어들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어땠는지, 그리고 자신의 과거의 삶이 어땠는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그러므로 델마의 성장영화이기도 했다. 루이스와 함께 하며 여러 사건을 겪은 델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루이스와 국경을 넘기로 결심하고는,
나는 어느 지점을 이제 지나온 것 같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라고 말한다. 아아. 그녀는 이제 그녀로서 자리한다. 갇힌 그녀가 아니고 억압받는 그녀가 아니고, 온전히 그녀가 되었다. 그전까지의 삶의 모든 패턴과 방향을 누가 대신 결정해주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녀가 직접 결정한다. 이것이 맞고, 이것이 옳다. 그녀는 남편과의 통화에서,
당신은 내 남편이지 내 아빠가 아니야.
라고 말하며 남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으로 들어가며, 델마는 이 모든 일들, 지금의 위기들이 자신때문에 일어났음을 루이스에게 사과한다. 그때 루이스가 그런다.
내가 말했잖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때, 바로 그때, 루이스가 그렇게 말한 그때, 그제서야 갑자기 내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아, 맞아, 이게 왜 델마 잘못이야? 이게 왜 델마 잘못이냐고. 그런데 나도 무의식적으로 델마를 원망하고 있었잖아 맙소사! 델마를 강간하려는 남자가 없었다면, 그들의 돈을 모두 훔쳐가는 남자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그들의 인생이 이렇게 절벽으로 향하진 않았을텐데! 애초에 그녀를 어릴 때부터 강압적으로 가둬두고 살았던 남편이 없었다면? 게다가 문제의 그 트럭 폭발 장면! 대형 트럭의 운전사는 길에서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는 계속해서 희롱한다. 섹스의 몸짓을 표현하고 입으로 표현한다. 처음에는 그를 무시하던 델마와 루이스였지만, 결국 그를 응징하기로 한다. 가지고 있던 총으로 트럭의 바퀴를 쏴버리다가, 결국 델마가 먼저 그 대형 트럭의 짐칸을 쏜다. 거기엔 기름이 들어있었던건가 보다. 펑-펑- 연이어 커다란 불길과 함께 터져버린다. 남자는 자신의 트럭이 폭발하는 장면을 보면서 여자들을 향해 계속 욕을해대지만, 앞으로는 여자들을 보고 성희롱 하려고 할 때 주춤하게 될거다. 트럭을 쏴버리는 여자일 수도 있어!! 이 장면에서 나는 반장을 떠올리며 반장에게 내 멍청함을 사과하고 싶어졌다. 반장, 내가 그때 너무 멍청했지. 저 트럭을 폭발한 건 하나도 심하지 않아. 저랬어야 해. 만약 저기서 곱게 돌려보냈다면, 저 남자는 그 뒤로도 다른 여자들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을 거야. 반장, 내가 개념녀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것 같아. 아아, 너는 그때 나를 보며 얼마나 답답했니.
델마는 루이스에게 그때 자신의 강간범을 죽여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만약 그때 네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놈을 살려뒀다면, 그 후의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가 너무 끔찍하다는 거다. 내가 쏘지 못한 게 후회될 지경이야, 라고 델마는 말한다. 루이스와 델마는 더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서 서로에게 고마워한다. 이 길에 네가 동행해서 다행이라고. 결국 이 두 명의 여자앞에 커다란 총을 든 경찰 수십명이 찾아든다. 마치 그녀들이 테러를 일삼았던 것처럼, 그들이 일제히 총을 쏠 준비를 하고는 그녀들 앞에 나타났다. 이에 남자 경찰 한 명이, 이게 무슨 짓이냐 말리지만, 수십명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여자란, 자기들에게 순종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처단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델마는 루이스에게 말한다. '잡히고 싶지 않다'고. 잡히고 싶지 않아,는 이 체제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 다시 저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나는 이미 어느 지점을 건너왔고 다시 돌아갈 순 없어, 를 모두 담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최후의 결정을 한다.
내 옆에 친구는 이미 흐느끼고 있었고, 그들이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동안, 나 역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이 좋은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별 감흥을 받지 못했다니 어린 시절의 내가 원망스러웠고 후회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페미니스트들의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였는데, 내가 몰랐다, 그때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이, 사소하게 그리고 엄청나게 여자들을 압박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였는데, 과거의 나는 그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봤다. 그때는 이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고 친구와 나는 극장을 나왔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였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왜이렇게 남자들이 우리를 못살게 굴지?"
시종일관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이 그랬다. 그랬는데, 그게 지금 우리의 삶이었다. 강압적인 남편과 강간하려는 남자, 믿어주지 않는 경찰, 돈을 뜯어가는 남자,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을 일삼고 성적대상으로 보는 남자. 루이스의 남자친구는 그중 '나은' 남자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자, 테이블 위의 모든 것들을 거칠게 손으로 쓸어버리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여자를 '때리진 않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거칠게 변하는 것은, 지금 세상의 소위 '그나마 착한 남자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랴.
친구와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술을 마시면서도 함께 호텔방에 들어가서도 영화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여성혐오가 남아있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그렇게나 공부를 하고 주의를 기울이는데도 아직도 갈 길이 멀다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나라는 인간. 친구와 나는 이번 여행에서 델마와 루이스를 함께 본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얘기했다. 나는 내 안의 빻음을 들여다보고 다시 성찰하기 위해 이 여행을 갔는가보다.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지금의 나 역시 완벽하지 못한 인간임에 절망했지만,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수확이었다. 그래, 내가 그간 공부를 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거야. 만약 내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나 분명하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음에도 나는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더 읽고, 더 보고, 더 듣고, 더 이야기하고, 더 써야 겠다고 새삼 결심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또 쓰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빻음을 수시로 증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주변엔 좋은 사람이 많고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으니, 나의 빻음을 지적해줄거라 믿는다.
나는 페미니즘을 부인했다. 이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말로 들렸다.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사람이야."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는 페미니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과거에 사람들 앞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절대 아니라고 했을 때를 떠올리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떠올라 부끄러울 뿐이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생각하면 또다시 부끄럽다. 결국 내가 외면받을 것이란 두려움이었고, 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문제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란 두려움이었으며, 이런 나를 이 사회나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었다. (p.15)
대전 아트시네마는 몇 년만의 재방문인데, 오오, 티켓이 원래 이렇게 예뻤던가?
게다가 고양이가 있는 극장은 처음이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부끄러웠지만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명백하게 전달하는 메세지를 받아들이는 건 분명 큰 기쁨이다. 정말 좋았다. 내내 생각날만큼. 더 공부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더해야 해, 더. 나는 계속 배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