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베즈는 몰락한다. 한 때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었는데, 동네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가게를 잘 꾸려가기도 했었는데, 그녀는 몰락한다. 그녀와 함께 사는 두 남자가 그녀의 몰락을 부채질한다. 그들은 돈을 벌지 않으면서 그녀가 버는 돈으로 허구헌날 술을 마시고 배를 불린다. 그리고 서서히 여기에 그녀가 동참한다. 제르베즈는 부리던 일꾼들을 내보내야했고, 여기저기서 자꾸 돈을 빌려야했고, 단골들은 떨어져나갔다. 그녀의 세탁솜씨 역시 그녀의 삶처럼 몰락했다. 그런 그녀는 그러나 여전히 잘 먹어서 살이 찐다. 식욕은 마지막까지 남는 욕구인걸까. 제르베즈는 자신의 남편 쿠포와, 자신에게 결정적 몰락을 불러오게 한 랑티에와 함께, 셋이 살면서 먹고 마시기에 힘을 쓰며 가정을 내팽개친다. 알콜중독 증상이 생긴 쿠포의 눈을 피해, 이제는 랑티에의 침대로 들어가기로 하고, 어린 나나는,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의 침대로 가는 것을, 고스란히 목격한다. 종국에는 쿠포가 제르베즈에게 폭력을 가하고, 쿠포와 제르베즈가 나나에게 폭력을 가하는 끔찍한 상황까지 발생하고, 이렇게 지속되는 끔찍한 삶 속에서 나나는 가출을 하고 자신을 내던진다. 이 가혹한 제르베즈의 삶을 읽으면서 너무 끔찍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아 나나는 어쩌나, 싶어서 나나를 읽고 싶어지니, 이를 어째야하나. 그나저나 제르베즈가 세상 모든 걸 집어삼킬듯이 먹는 걸 보면서, 아아, 나는, 내 생각이 난다... 나냐?



하지만 제르베즈는 점점 더 악화 일로로 치달았고, 그럴수록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사이 한여름이 되자 키다리 클레망스는 제르베즈의 세탁소를 떠났다. 일감이 없어서 세탁부가 두 명이나 필요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미 수주 치 급여가 밀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쿠포와 랑티에는 볼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식탁에 죽치고 앉아 배를 가득 채우는 게 유일한 일상이 된 두 남자는 제르베즈의 세탁소를 거덜 내면서 그녀의 파멸로 살을 찌웠다. 그들은 더 많이 먹으라고 서로를 부추기면서, 디저트를 먹을 때는 배를 두드리면 음식이 더 빨리 내려간다면서 낄낄거렸다. (p.32-33)



사실 이웃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과일 가게 여주인, 내장 가게 여주인, 식료품점 총각들은 모여서 수군거렸다. "저런! 할머니가 또 전당포에 가시는구먼." 또는 이렇게 외쳤다. "저런! 저 노인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게 술이 아닌가." 그리고 당연히 그들은 제르베즈를 향해 더욱더 거센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저 여자는 모든 걸 먹어치우고 있어. 저러다가 조만간에 세탁소를 거덜 내고 말 게 분명해. 그래, 맞아, 저렇게 몇 번만 더 먹어 치우다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 (p.91)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었는데. 쿠포가 성실하게 일을 하고 제르베즈 역시 최선을 다해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갖고 싶었던 괘종시계를 사고,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밝게 웃어주던 때가 있었는데. 


사랑이 계속 사랑으로 있으려면, 그들이 서로에게 계속 웃어주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하는 게 필요했다. 어느 한쪽만 성실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쿠포는 일하지 않는 것의 맛을 알아버렸고, 그래서 일하지 않는다. 제르베즈는 그럴 수도 있다며 쿠포를 먹여 살리는데, 그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달이 되고 몇 개월이 지속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어버리는 거다. 게다가 쿠포는 제르베즈가 벌어온 돈을 다 까먹으면서, 거기에 제르베즈의 옛 연인을 데려오기까지 한다. 자, 시간이 지났으니, 너네들 우정이지 않아? 하고는 한집에서 쿠포와 랑티에와 제르베즈가 함께 살게 되는거다. 


사랑은 언제까지 사랑일 수 있을까.

둘이 함께 노력하고 함께 웃어야 가능한 일인데, 어느 한쪽은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고 어느 한쪽은 가만히 앉아서 상대의 고생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들이 처음엔 비록 뜨겁게 사랑했다한들, 그것이 계속 사랑일 수 있을까. 돈은 제르베즈 혼자 버는데, 쿠포가 그 돈을 쓰고, 랑티에가 그 돈을 쓴다. 고생이 쌓이고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늘어날수록 사랑 역시 시들어간다. 애초에 그게 사랑이긴 했던걸까..



그렇다, 그들이 나날이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다면 그건 오직 그들 부부의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서로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법이다. 특히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더욱더 그렇다. 그들은 불운을 탓했고, 신이 그들에게 무슨 유감이 있는 거라고 주장했다. 그럴 때면 그들 집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곤 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서로 옥신각신했다. 하지만 아직 서로에게 손찌검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심하게 다투다 자신도 모르게 따귀를 몇 차례 날리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애정이며 여타의 감정이 카나리아처럼 새장 밖으로 날아가버렸다는 사실이었다. (p.154-155)



아! 이제 제르베즈는 예전에 쿠포가 보도에서 12 내지 15 미터 떨어진 높은 지붕 가장자리에서 일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물론 그녀가 그를 직접 아래로 떠밀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가 알아서 떨어져준다면, 오, 맙소사! 그건 이 지구상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 하나를 치워버리는 일이 될 터였다. 어쩌다 주먹다짐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가 들것에 실려 오는 꼴을 보고 싶다고 소리쳤다! 제르베즈는 그런 날이 오리라는 기대 속에서 살았다. 들것에 실려오는 건 다름 아닌 그녀의 행복일 테니까. 저 술주정뱅이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p.155)



쿠포는 함석공이었다. 그는 지붕 위에서 지붕을 만들고 수리하는 일들을 했었다. 제르베즈는 늘상 그가 그렇게 높은 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저러다 저 위에서 떨어지면 어쩌지? 그녀는 매일 조마조마했던 거다. 그러나 애정이 다 날아가버린 지금, 다같이 몰락해버린 지금은, 그가 스스로 지붕에서 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가 들것에 실려들어오기를 원하고 있다. 아, 사랑이란 건, 돈도 없고 먹을 게 없어져버리면, 함께 소멸하는 것이로구나. 



나는 읽으면서 제르베즈에게 도망치라는 말을 수십번 한 것 같다. 그렇게 예전에 사랑'했'던 남자와 계속 함께 있는 걸 선택하지말고, 그렇게 함께 몰락하는 삶으로 빠져들지 말고, 그냥 거기서 도망치라고. 사실 그녀에게 도망치자는 제안을 했던 진실한 남자가 없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남자로부터 도망치라는 거다. 나를 함께 잡아 끌어들여서 진창에 빠지게 하는 남자, 그 남자는 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사랑했던 기억만으로 진창에서 뒹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나였다면 어땠을까, 라고 계속 생각해보니, 나는 도망칠 사람인거다. 너랑 같이 진창에서 뒹굴고 싶진 않아, 내 삶을 몰락으로 향하게 놔둘 순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를 피해 도망갔을 것이다. 어디든 가서 다시 시작해서 내 삶을 다시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겠지. 개같은 놈들, 내 인생이나 망치려고 작정한 놈들, 나는 너희들 선택하는 대신, 내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하고는, 내가 먹고 살 것을 내가 벌어서 해결할 것이다. 물론 제르베즈에겐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 사이만 멀어진 게 아니라 자식과 부모의 삶도 멀어졌다. 그냥 도망쳐라, 제르베즈! 거기에 멈춰 서서 몰락하지마!



그러나 잔인한 졸라는 제르베즈에게 머물도록했고, 제르베즈는 그렇게 망가질대로 망가지고야 만다. 하아- 




나는 상대를 힘들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힘들게 하지만 너를 사랑해, 는 길게 지속될 수가 없다. 제르베즈와 쿠포의 사이가 그걸 드러내준다. 아니, 랑티에도 그랬다. 랑티에와 제르베즈가 처음에 함께 살 때,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길 때는 좋았지만, 돈이 다 없어져버리자 랑티에는 아이들과 아내를 두고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쿠포와 결혼했지만, 그 다정했던 쿠포와도 돈이 떨어지고 빚만 남자 애정이 사라져버린다. 힘들다면 사랑하지 않게 된다. 먹고 사는 게 급한데 사랑은 사치가 아닌가. 그런 사랑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먹고 사는 게 먼저다. 제르베즈는 그 남자로부터, 그 삶으로부터 멀리멀리 도망쳐야 했던거야. 아,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랑을 하지 않을것이다. 안하고 말지, 나는 힘들고 싶지 않다. 혹여라도 힘들어질라 치면 거침없이 도망치겠어....



제르베즈가 어디로 도망갔다한들 부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부자로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부자가 된단 말인가. 가난은 가난으로 대물림되고 조금 덜 가난하냐 더 가난하냐의 차이일 뿐 계속 가난했을 것이다. 앞집과 옆집이 다 가난한 공동주택에 살면서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오기는 힘들것이다. 졸라는 그런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 삶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그러니 내가 여기서 팔자 좋게 '그 남자로부터 도망쳐!'라고 한들, 그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는 거다 ㅠㅠ




토요일에 일자산에 다녀오면서 내 폰에 있는 노래들을 랜덤으로 들었는데, '사라 코너'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te?>이 나오는 순간, 제르베즈 생각이 났다. 노래속에서 사라도 말한다. 내가 너한테 내 돈을 다 주고 내 시간을 다 줬는데 너는 도대체 어디서 자고 온거냐, 내가 너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당장 내 집에서 꺼져라...라고 말하는 거다. 제르베즈도 그랬어야 했는데.... 내쳤어야 했는데......





그 다음 나온 노래는 Lily Allen 의 <Fuck You>였는데, 와, 너무 좋다. 내가 내 폰에 이 노래를 넣어놨다니. 역시 나는 짱이야!!! 이 노래 들으면서 뻑큐~ 뻑큐 베리베리 머어어어어취~ ♪ 하고 따라부르면 너무나 신난다. 게다가 릴리 알렌의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하하, 손짓도 해! 짱이닷!!




위의 영상을 보고는 헤어스타일 넘나 좋아서 캡쳐해뒀다. 미장원가서 이렇게 해주세요, 하려고. 사실 요며칠 머리를 계속 길게 둘까 자를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길면 묶어서 올려버릴 수 있으니 너무 편하고, 짧으면 가벼우니 편하고...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한채, 아아, 어쩌지, 하다가 이 영상을 똭- 보게 된 것. 예뻐..

아래 영상에서도 헤어스타일 넘나 좋다. 옷 스타일도 넘나 좋고!!

























영화 [루시아]에서, 여자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달빛 아래에서 섹스를 나눈다. 그 섹스는 강렬한 것이었고, 남자와 여자 둘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그러나 서로의 이름도 알지 못해, 그 밤이 지난 후에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남자는 다른 여자(루시아)와 연애하고 동거하면서도 자꾸 달밤아래에서의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여자와 남자는 길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때, 계속 예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예뻐야, 우연히 만나도 좋을테니까.



그런데 제르베즈는 그러지 못했다.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너무나 소중한 '구제'에게, 자신의 망가지고 흉측한 모습을 보였다.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너무나 끔직했다. 그래서 루시아 생각을 했다. 제르베즈야, 계속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서, 그래서 구제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구제에게까지 이런 꼴을 보이다니! 대체 자기가 선한 신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마지막까지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대장장이의 발아래로 몸을 던지면서, 여느 창녀들처럼 남자에게 매달리는 구차스러운 모습을 보이다니! 게다가 하필 가스등 바로 아래서 그를 만날 게 뭐란 말인가. 제르베즈는 마치 눈 위에 장난을 쳐놓은 듯 흉하게 일그러진 캐리커처 같은 자신의 그림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건 영락없는 술주정뱅의 꼬락서니가 아닌가. 맙소사! 빵 한조각, 포도주 한 방울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는데 주정뱅이로 오해를 받다니! 이 모든 건 전적으로 그녀의 탓이었다. 어쩌자고 애초에 술을 마셨더란 말인가? 물론 구제는 그녀가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한 것으로 생각할 터였다. (p.302)




구제는 제르베즈 바로 앞에 버티고 선 채 그녀를 응시했다. 이제야 비로소 등불의 환한 불빛 아래서 그녀를 찬찬히 뜯어볼 수 있었다. 그사이 제르베즈는 몹시 늙고 퇴색해버려 예전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옷과 머리에서는 눈이 녹아내려 물이 뚝뚝 흘렀다. 머리는 불안정하게 건들거렸고, 온통 잿빛으로 변한 머리칼은 바람에 마구 뒤엉켜 있었다. 목이 어깨에 파묻힌 것처럼 쪼그라든 제르베즈는 보는 사람이 울고 싶어질 정도로 추하고 뚱뚱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들이 사랑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아직 싱그러운 젊음을 간직하고 있던 발그레한 피부의 제르베즈가 포동포동한 목에 목걸이처럼 사랑스러운 아기 주름이 잡힌 채 힘차게 다림질하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갔다. 당시 그는 제르베즈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하며, 몇 시간이고 세탁소에 머무르면서 그녀를 곁눈질했다. 언젠가 그녀가 대장간으로 그를 보러 왔고, 그때 그들은 지극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가 쇠를 두드리는 동안 그녀는 그의 망치가 춤추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시절 그는 밤마다 베개를 물어뜯으면서 지금처럼 그녀와 자신의 방에서 함게 있을 수 있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오! 그때 그녀를 가질 수 있었다면 그녀를 으스러뜨렸을지도 몰랐다. 그녀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건만! (p.305-306)




그나저나 구제여, 베개를 물어뜯었단 말입니까. 그러면 제르베즈에게 말을 했어야죠. 내가 너를 이토록이나 원한다고... 뭐, 말한다고 그 당시에 뭐가 바뀌었을 것 같진 않지만, 맙소사, 베개를 물어뜯으면서 갈망하다니. 베개를 물어뜯다니...






금요일 밤에는 남자사람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같이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좀 불평불만이 많은 분이셨는데, 택시기사를 하면서 손님들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셨다. 나와 같이 택시 뒷자석에 앉아있던 남자는 기사님의 말을 받아주면서 아 그러시겠다 라고 대꾸해주다가, 그런데 그 사람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 힘들게 산다, 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기사님이 그러셨다.


'주말에 데이트도 하고 택시도 타고 가면서 힘들다고 얘기하면 안될것 같은데요' 



아...나는 너무 웃겨서 빵터졌는데, 이 말이 집에 가는 내내 생각났다. 주말에 데이트하지 않는 사람보다 데이트하는 사람이 덜힘든 걸로 보일 수도 있고, 택시를 탈 돈이 없는 사람에 비해서라면 택시를 탈 수 있는 사람의 형편이 더 나은 것도 사실일거다. 그렇지만, 주말에 데이트를 하고 택시를 탔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삶을 산다고 단정할 수 있는걸까. 기사님의 의도가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하거나 여유로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정말 그 한 면만 본 게 아닌가. 물론, 늘 힘들기만 한 건 아니지 않냐, 좋은 순간이 이렇게 있지 않냐, 라는 뉘앙스의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얼마전에 누군가의 SNS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댄 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이사람은 이렇게 웃으면서 잘사네, 라고. 그러자 옆에 있던 내 친구가 내게 그랬다. '야, 인스타 보면 세상에서 니가 제일 행복해. 온갓 데 다 다니고 겁나 잘 먹고 다니잖아. 누가 봐도 너 너무 행복해보일걸?'  그때 진짜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아, 그렇구나. 내 SNS 만 봐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겠구나. 잘 먹고 잘 놀러다니는 사람이구나. SNS 만 본다면,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가슴 찢어짐을 겪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겠구나. 내가 베개를 물어뜯는지는 SNS로는 알 수가 없겠지....




자, 이제는 [나나]를 사러 가야겠는데, 지금 연달아 읽으면 나 지쳐 미치겠지. 나중에 사야겠다. 제르미날도, 인간짐승도 다 사야겠네. 에헤라디여~


















나도 오늘밤엔 베개를 물어뜯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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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10-1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얼마전에 <나나> 처분했는데... 이 페이퍼 조금만 더 일찍 작성해 주셨으면 제가 보내드렸을 텐데.. 아쉬워요. 에밀 졸라 정주행중이시군요!

택시기사분 이야기...짠하기도 하면서 또 재치 만점이시네요. ㅋㅋ

다락방 2016-10-17 10:51   좋아요 0 | URL
아아 블랑카님. 시간을 되돌리고 싶네요. 블랑카님의 나나라니요! 크-
언제나 인생은 타이밍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삶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내처 읽으면 나가떨어지겠다 싶더라고요. 다른 책들을 좀 읽다가 다시 에밀 졸라에게 가야겠어요. 이 사람, 이 혹독한 삶을 왜 그린걸까요 ㅠㅠ 원망스럽기도 해요. 제르베즈 너무 안타깝고 ㅠㅠ

단발머리 2016-10-1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졸라`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제목에 혹해 <인간 짐승>을 대출했다가 한 줄도 못 읽고 반납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네요. ㅎㅎㅎ

다락방님 페이퍼 읽었더니 제르베즈의 처참한 삶이 눈앞에 막 그려지는 것 같아요. 술주정뱅이 두 남자에다가, 아이구야...
가출한 나나까지. 첩첩산중. 졸라의 책을 연거퍼 읽는건 정말 힘들것 같아요. ㅠㅠ

다락방 2016-10-17 14:57   좋아요 0 | URL
제르베즈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대했는데, 밑빠진 독같은 남자들 만나서 몰락하고 말았어요. 제르베즈가 가진 꿈은 되게 소박했는데, 그중에 하나도 이루지 못했어요. 배불리 빵을 먹고, 자기 침대에서 죽고, 남편한테 맞고 살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네요. 나중엔 맞고 살게 되어서... 하나도, 하나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어요. 무슨 삶이 이런지..

게다가 이런 비참한 삶은 왜 자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걸까요. 엄마가 속옷차림으로 옆방 아저씨 방으로 들어가는 걸 나나는 어릴때부터 목격하게 되는데, 어휴, 나나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ㅠㅠ 안쓰러워 미치겠어요. ㅠㅠㅠ

비연 2016-10-1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언넝 읽어야겠어요 ~ 락방님 페이퍼 보니 막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ㅜ

다락방 2016-10-17 14:58   좋아요 0 | URL
비연님, 삶은 확실히 가난한 자들에게 훨씬 가혹한 것 같아요. 그들에게 출구는 없는 것 같아요. ㅠㅠ

비연 2016-10-17 16:21   좋아요 0 | URL
읽고 넘 우울하지 않을까요...ㅜ 안 그래도 우울한 일 투성이인 요즘인데. 겁나네요 ㅜㅜ

다락방 2016-10-17 17:55   좋아요 0 | URL
우울함의 극단까지 다녀옵시다, 비연님!!
저도 내친김에 나나를 사버릴까... 고민중이에요 ㅠㅠ

moonnight 2016-10-1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도 나나도 갖고 있지만 읽지 않았네요ㅜㅜ; 다락방님 리뷰를 읽으니 마치 책을 읽은 듯한 착각이ㅎㅎ^^;

다락방 2016-10-17 14:58   좋아요 0 | URL
전 [나나], [제르미날], [인간짐승] 다 사야해요!
차곡차곡 하나씩 사서 읽어야겠어요.
지금은 나나가 너무 궁금해요 ㅠㅠ

에이바 2016-10-1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어제 제르미날 생각했는데...ㅜㅜ 같이 읽어요 다락방님... ㅠㅠ 에밀 졸라 인기가 많지 않아서 루공 마카르 총서가 다 나오기 힘들대요. 문동에서 힘내서 내달라고 열심히 읽고 리뷰 써야겠어요. 다락방님 페이퍼를 보면서 저도 읽은지 시간이 좀 되어서 다시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구제가 베개를 물어 뜯었다니 왜 기억에 없죠... 구제 진짜 최곤데... 다락방님 혹시 공항 가는 길 드라마 보세요? 완전 좋답니다. 매번 챙겨보진 못하는데 아 섬세해요. 제르베즈와 구제 생각도 나고 일본드라마 메꽃이라고 그 작품도 생각나고요. 다 재밌어요.

다락방 2016-10-17 17:58   좋아요 0 | URL
베개를 물어 뜯었다는 건 제가 인용한 부분에서만 나오는 거에요. 나중에 제르베즈 만나서 과거를 회상하면서요. 저는 제르미날보다 먼저 나나 읽고 싶어요. 나나가 어릴 때부터 너무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지고 ㅠㅠ 그래도 파멸로 이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요 ㅠㅠ 제발 너는 희망찬 인생을 살아줘...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요 ㅠㅠ

[공항 가는 길]은 안그래도 여기저기서 좋다고 하길래 한 번 본 적 있는데 영 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대사에 너무 멋을 냈다고 해야하나, 화법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해야하나, 영 몰입도 집중도 안되더라고요 ㅠㅠ 그래서 못보겠어요 ㅠㅠㅠㅠㅠ 공항 가는 길이란 제목은 딱 제 스타일인데 말예요. 저 공항 엄청 좋아하거든요.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고 오백번쯤 생각했는데, 영어를 못해서 늘 생각만 하다가 포기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공항 가면 초흥분하는 스타일이에요. 공항, 비행기 다 좋아해요! >.< (또 딴길로 샌다 ㅠㅠ)

AgalmA 2016-10-1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선곡 속 그녀들도 다락방님 포스ㅋㅋ 당당해서 좋구만요!
역시 에밀 졸라. 사랑이 들 것에 실려 오길 만드는 대장장이 같은 소설가 같으니라구~

드라마 <스킨스>에서 니콜라스 홀트 침대커버가 나체 프린트된 걸로 기억하는데...캐릭터 확실히 보여 주잖아요? 다락방님도 베개 커버 물어 뜯은 자국 프린트로 자체 제작하셔서 인증을ㅎㅎ; 생각해보니 여러 버전 만들어서 이거 사업으로도 괜찮겠어요~

다락방 2016-10-17 17:59   좋아요 0 | URL
전 포스 있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좋더라고요. 안젤리나 졸리도 그렇고, 사라 코너, 릴리 알렌 다 좋아요. 핑크도 겁나 멋져요! 핑크 포스도 짱이에요. 대표적으로는 마돈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ㅎㅎ

인증은 못하겠지만, 오늘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베개를 좀 물어뜯어야겠어요. ㅠㅠ 너무 물어뜯어서 베개를 다 적실 것 같아요. 엉엉. ㅠㅠ

프레이야 2016-10-1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너무 너무 오랜만이에요 페이퍼 재미나게 읽었어요. 루시아 찾아봐야겠군요. 한 2년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승객과 별 일이 다 있더라구요. 우린 정말 한 면만 보면서 사는 것 같아요. 아님 한 면만 보여주며 사는 건지도. 가을이에요 ^^

다락방 2016-10-17 18: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그래요. 우린 한 면만 보면서 살기도 하지만 또 한 면만 보여주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SNS 에 사진을 올릴 때는, 나 행복하다, 하는 것을 전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내가 행복하게만 보인다고 생각하고 씁쓸해할까, 모순되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반가워요, 프레이야님.
:)

이름 2016-10-18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아무래도 그저께 팡테옹 가서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의 묘가 나란히 있는 걸 보고 그래 돌아가면 <목로주점>을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로주점>이 펭귄클래식과 문학동네가 있는데 아무래도 문학동네가 괜찮은 건가요? 돌아가자마자 결제를 해야겠습니다 홓홓

다락방 2016-10-18 08:58   좋아요 0 | URL
펭귄과 문동을 비교해보진 않아서 문학동네가 더 낫다고는 제가 말씀을 못드리겠어요. 저는 집에 문학동네로 준비되어 있어서 문학동네로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프랑스에 계시군요. 위고와 졸라의 묘에 가셨다니. 우어어어어. 저는 이곳에서 졸라의 책을 읽었으니, 우리 서로의 손가락을 내밀어 교감합시다... ㅎㅎ

감은빛 2016-10-1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노래 처음 들었을 때,
저렇게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저렇게 발랄하게 욕을 하다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이 노래 폰에 넣고 다니면서 가끔 들어요.
얼굴은 모르고 있었는데, 다락방님 덕분에 얼굴을 알게 되었네요.

에밀 졸라의 작품은 다 연결되는 군요.
겁나서 쉽게 손대지 못할 것 같은데요.

다락방 2016-10-20 08:03   좋아요 0 | URL
네, 저렇게 맑고 유쾌하게 뻑큐~ 하는 게 너무 좋아요. 다 꺼져라, 엿먹어라, 라라라라~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ㅎㅎㅎㅎㅎ
사실 릴리 알렌은 다른 노래로 먼저 알게 되었거든요. The Littlest Things 라고 엄청 슬픈 노래에요. ㅠㅠ 훌쩍 ㅠㅠ

에밀 졸라의 작품은 어휴, 찐득찐득해요 감은빛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