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때였다. 시험이 끝나고 학교에서 무슨 행사를 했는데 그 때 한 선배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여자중학교였으니 당연히 여자선배였는데, 와,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잘 할수도 있구나, 하면서 뻑 갔었다. 그 때 그 선배가 부른 노래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는데, 그 선배가 그 노래를 부르고나서 내 친구들은 음반가게로 가 그 테입을 샀고 나는 그 테입을 산 친구로부터 녹음한 테입을 받았다. 뭐,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 선배가 부른 노래가 바로 이것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 노래가 자꾸만 생각나서 결국 youtube 에서 찾아 들었다. 찾아 듣는데, 이 노래가 웃긴 노래가 전혀 아닌데, 그런데도불고하고 베시시 웃음이 났다. 그러다보니 중학교 1학년때의 다른 기억도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국어선생님은 삼십대 초반~중반의 남자였고, 굉장히 마른 체형이어서 별명이 '멸치'였다. 목소리가 꽤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당시에 우리반에도 그 선생님을 사모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때까지는 나는 그 선생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을 좋아하던 몇몇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찌어찌 선도실로 불려가게 되었는데, 그 때 선도 선생님이었던 그 멸치선생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좋아하지 말라며, 나는 너희들의 선생일 뿐이다, 라는 얘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우스운데 그 때는 세상에, 그 선생님이 그렇게 멋진거다. 그래서 나도 결국 그 선생님을 좋아하는 무리중에 한 명이 되어버렸고-나처럼 별 특징없는 다른 반 아이의 이름을 글쎄, 외우고 계신게 아닌가!!-, 선생님은 이 일을 계기로 우리를 5총사 라고 부르셨다. 우리 5총사의 특징이라면 그저, 그 선생님을 다들 좋아한다는 거였다. 물론 누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여튼, 그 뒤로 우리는 친해져서 매일 붙어다녔는데, 하루는 우리를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게 만들어준 선생님께 감사를 표현하자는 의미로 각자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중학교 1학년이 돈이 어디있겠는가,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그 때 당시 500원 남짓하는 선물들이었다. 한 명은 초를 준비했고 다른 애들이 뭘 준비했더라...여튼 나는 볼펜 세 자루를 준비했다. 빅볼펜이고 한 자루당 150원 이었기에 세 자루면 450원 이었다. 나는 이걸 집에 있던 비닐 포장지로 포장해서 준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물을 각자 편지를 써서 함께 선생님께 전달했다. 그런데, 이게 아주 큰 사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날이었는지 다음날이었는지, 다른 반 아이들이 쉬는시간에 우리반 앞으로 우르르 몰려와서는 a 를 찾는거다. 그러면서 a 에게 니가 멸치선생님에게 볼펜 선물했냐고 묻는거다. a 는 아니라고 했다. 당시 a 는 우리 5총사 멤버였고 진작부터 멸치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부르짖던터라 다른 반에도 다 소문이 났던것. 그러나 내가 선생님을 좋아했던건 다른 아이들은 몰랐다. 나는 유명한 아이도 결코 아니었고. 그래서 그걸 왜묻냐, 라고 우리반 아이들도 우르르 몰려서 물었더니, 그 선생님이 그 반 수업에 들어가서는 맨 앞자리 학생에게 연습장을 펴보라고 했단다. 그리고서는 볼펜 세 자루를 꺼내들고는, 내가 이걸 오늘 5반 학생에게 선물 받았는데 너무 좋다, 완전 잘 써진다, 얼마나 부드러운지 기분이 좋다, 며 그 연습장에 색색깔로 선과 동그라미를 그었다는거다. 그러면서 준 아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했다고. 그 앞자리에 앉았던 학생 역시 그 선생님을 좋아한터라, 그 선생님이 낙서한 연습장을 찢어서 코팅하고 다니겠다며 난리가 났고.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이 5총사 멤버중 나를 제외한 네 명이 당시 토라졌었다. 왜 볼펜이야? 왜 볼펜만 얘기해? 왜 다른 선물은 얘기 안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오늘 아침에 유재하 노래 듣다가 이 생각나서 웃어버리고 말았네. 여튼, 그건그거고.
엊그제 꿈을 꿨는데 꿈에 개가 나왔다. 나는 집에서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이건 우리식구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동네에서 만난 작은 개가 나를 너무 따라다니는거다. 너무 나한테 딱 붙어서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뭔가 애틋한 마음이 생겨 키우고 싶어지는거다. 그래서 식구들한테 말해보니 식구들이 다들 안된다고 한 것. 할 수없이 나는 이 개를 길의 어느 전봇대에 줄로 묶어놓고 키우기로 했다. 사료를 사서 주고 자주 가서 쓰다듬어줬다. 이러면 안되는 것 같은데, 하면서 개를 풀어줄까 하다가도 개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풀어줄 수가 없는거다. 아, 서투른 연민은 상대를 파괴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지내면서 꿈에서 깼는데, 그 꿈을 꾼 어제 오후,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났다.
사랑은 굶주린 개 앞에 던져진 상한 고깃덩어리와 같다. 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문다. 허기가 가시고 포만감이 드는가 싶지만 식은땀과 뒤틀림과 발작이 곧바로 찾아온다. 끙끙 오랫동안 앓아야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또 한번의 고깃덩어리가 던져진다. 저것을 삼키면 식은땀과 뒤틀림, 발작이 틀림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또 덥석 문다.
우리는 왜 매번 그럴 수밖에 없는가. (작가의 말, p.265)
캬, 정말이지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역시 한창훈이니까 이렇구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개 꿈을 꾼 게 이 문장을 보기위함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했다. 예지몽이었어, 예지몽...ㅎㅎ
그러나 한창훈의 이번 단편집은 그 전의 다른 한창훈의 소설들에 비해서 좋진 않다. 이제는 이 책에 실린 사랑이야기들이 '다들 그렇지 뭐' 하는 정도로만 읽힌달까. 비슷비슷한 사랑의 변주곡들 같다. 색다를 거 없는. 그들 각자의 사정이야 어찌됐든간에, 사랑에 대해서라면 다들 누구나 할 말이 많은 법이니까. 이 단편집을 통틀어 가장 좋은 게 바로 저 <작가의 말>이었다.
그렇지만..도저히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듯한........이런 문장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복부 내장지방이 아주 심각한데요.
의사가 이렇게 말한 것은 지난달이다. 금선이 엄마 초상을 항구에 있는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치렀는데 거기 간 김에 진료를 받은 것이다. 당과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검사 결과도 나왔다. 의사는 설명했다. 우리 몸에 소장이 약 육칠 미터 되고 대장은 약 일 점 오 미터 정도에요. 그는 옆에 서 있는, 껍질 홀랑 까고 내장을 드러내고 있는 플라스틱 인형의 배를 볼펜으로 찍어가며 계속했다. 그러니 총길이 약 팔미터 정도 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 속에는 맹장도 있고 결장도 있고 항문 근처에 직장도 있어요. 그 모든 것이 제 역할을 해야만 배변도 잘 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아주머니는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에 기름이 너무 많이 끼어 있어요. 뱃살부터 빼세요.
듣고 있던 여자는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창자가 많으니 어떻게 배가 안 나와요?
정말이지 어쩌자고 사람 몸에 그렇게 복잡한 창자가 있을까. 겉에서 보면 그냥 밥 먹고 똥 싸는 간단한 구조인데, 더군다나 입하고 똥구멍은 이렇게 작은데 그 가운데는 뭐한다고 이렇게 굵고 길단 말인가. (그 여자의 연애사, p.205)
아.......나는................남들보다 창자가 더 많은걸까. 창자들이 야속한 아침이다.
복부 내장지방이 심한 여자는 남편과 잠자리를 한 지 오래되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만난 친절한 한 배의 선장과 내연의 관계가 된다. 남편도 다른 관광객들과 삐리리한 관계를 보내고 온 듯한 새벽, 둘은 대문앞에서 맞닥뜨린다. 이 얼마나 난감한 상황인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고 새벽이라니. 여하튼 이 둘은 잠자리를 한 지도 오래, 남자가 돈을 못 벌어온지도 오래, 돼먹지 못한 심보라고 싸우기도 한 지 오래. 그런데 그들이 헤어지지는 못한다.
"하긴, 아무리 굶은 뱃놈이라도 저런 몸뚱이로 어떻게 되겠어?"
좋다고만 하더라, 소리도 하마터면 할 뻔했다. 그녀가 보기에 도대체 남자의 돼먹지 못한 심보가 이런 것이다. 남편이 몸을 안 붙여온지는 오래되었다. 취해 들어온 그녀가 모처럼 몸이 동해서 다가가자 남편이 발로 밀어내버렸던 게 몇 년 전이다. 그뒤로는 자존심이 상해서 가까이 가지 않았고 찾아오지도 않았다. 대신 큰 싸움만 몇 번 있었다. 둘이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법원이나 대서소 이런 것이 모두 육지에 있어서이다. 단지 멀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연애사, p.208)
하아- 법원이나 대서소가 육지에 있어서, 단지 멀기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니.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알겠지만, 귀찮음으로 인해서, 관성으로 인해서 한 집에 살고있다한들, 그것 역시 그들이 '아직은' 함께 살아가야 할 시기이기 때문인 게 아닐까. 만약 정말 죽을정도로 싫었다면 그 먼 육지라도 한 번 나갔다 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여튼 삶은 비극이어라.
그건그렇고, 꺄울, 오늘 검색해보니 드디어!! 이 책이 나왔다!!
움화화핫. 아는 사람들은 아는 책.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주문할 예정인데, 워낙 적게 인쇄했다고 하니 구하지 못할까봐 초조하다. 그냥 지금 확- 주문해버릴까..... '임호부'의 [이모부의 서재] 다. 움화화화화화화화핫
아, 근데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 대해서 할 말이 아주 많은데, 그건 다음에 해야겠다. 너무 길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