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군인들이 순식간에 개를 에워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입마개로 입이 가려지고, 포승줄에 네 다리가 꽁꽁 묶인 워리는 공포에 질려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있었다.(p.9)
알라딘 서재활동을 시작하고나서부터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책들에 관해 알게 되었고, 관심 없었던 책들도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서재를 방문하면서 몰랐던 책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그리고 지금처럼 누군가로부터 관심없던 책을 선물받게 되면서 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생겼다.
나는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읽었고, 그 책이 별로였기에 이 책, 『실내인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으응, 이런게 나왔구나, 패쓰. 그런데 지난주에, 생일선물이라며, 고운 카드와 함께, 한 청년이 내게 이 책을 보내왔다. 이 책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은것 같은데, 그래서 혹시 좋아하지 않을까 하며 선물한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가 그전에 읽었던 이석원의 에세이, 보통의 존재보다는 더 잘 읽혔고 더 나았다. 이 사람, 제법 이야기를 잘 끌고 나가고 그렇기 때문에 책장이 빠르게 잘 넘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는 찜찜한 같은게 남았는데, 그건 이 책을 읽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가 생각났기 때문이고,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생각났기 때문이고, 그러니까 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나, 잘 넘어가는 책인지만 이것저것 믹스된 것 같은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저 위의 첫문장이 영 마음에 들질 않았다. 밑도끝도없이 '그때였다' 라니, 그 첫문장을 읽는 내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얼굴이 찌그러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첫문장에 대해 어떤 기대라든가 하는 걸 품어왔던 독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첫문장은 지나치게 겉멋이 들었으며 허세로 느껴졌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나서는 그 마음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같은 시작이 다시 한번 나온다-, 그래도 '그때였다' 로 시작하다니, 이건 좀 찜찜해. 전체적으로 '비소설가'가 써낸 장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나쁘지 않았지만, 찜찜함은 어쩔 수 없다. 엊그제 만난 친구가 내게 '까다로운 독자' 라고 했는데, 어쩌면 나는 정말 까다로운 독자인지도 모르겠다. 그건그렇고, 어떤 문장들은 일부러 강조해서 사람들에게 파고들어가려는 듯한 의도가 보이긴 하는데, 그런 문장들 속에서 유일하게 이 대화는 마음에 들었다. 마침 한창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있는 친구 생각이 나면서, 이 문장을 사진 찍어 보내줘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고마운 문장.
"용우야."
"네."
"인생을 비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더욱 엿 같은 일이 너를 기다려."
"‥‥‥"
"그러니까 절대로 비관하지 마. 알았어?"
"네‥‥‥." (p.278)
그건그렇고, 생일이 매달 하루씩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진짜 완전 울트라캡숑 멋진일이니까. 멋지고 고마운 친구들. 히힛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이 현악 4중주단은 25년간 함께 공연을 해왔다. 그런데 첼로 담당인 가장 나이 많은 남자가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 쿼텟은 해체될 위험에 놓였고, 첼리스트는 이제 할 공연이 고별 공연이 될거라고 말하고, 멤버들은 모두 고민에 휩싸인다. 이 일에 맞닥뜨려 각자의 이야기들이 보여지는데, 그 이야기들이 저마다 흥미롭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연주를 하기 전 샴페인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모습이 좋았다. 25년간 만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음악을 같이 연주할 수 있다는 것, 그 관계가 서로에게 좋게 느껴진다는 것, 그들이 오랜 시간 후에도 함께 모여 건배를 할 수 있다니. 갑자기 '친구'에 대해 욕심이 생기는거다.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이들었을 때,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었을 때,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하며 한결같은 다정한 마음으로 웃고 건배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던 것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첼리스트가 공연중 연주를 멈추고 일어나서 이것이 내 고별공연이고, 이 뒤부터는 다른 연주자가 대신해줄거라며 무대를 떠날 때, 그러자 관객들 모두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줄 때, 나는 벅차올라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장면의 감동보다 그 장면까지 이른 인생에 대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함께 살고, 마음 맞는 동료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그렇게 나이들다가 몸이 이제는 더이상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되고, 이제는 여기에서 이만 물러나야 할 때라는 걸 알아채고 하는 등의 삶의 흘러감, 그것이 확 와닿았다. 지금은 첼리스트가 고별의 무대를 가질 시간이지만, 얼마 안가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 쿼텟이 가진 색깔은 그렇게 점점 조금씩 변하다가 아예 달라지게 되겠지. 혹은 '존재했던' 쿼텟으로 이름만 남게 될지도 모르고. 이 모든 것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아주 가까이 느껴졌다. 나도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니까.
마지막의 연주가 무척 좋아서 가방 속에서 손을 꼼지락 거리며 어플을 돌렸다. 그런데 이 시디가 검색됐다. 오, 이미 나와있구나, OST !!
아...나 어쩐지 점점 클래식에 대해 조예가 깊어질 것 같아. 어떡하지. ㅎㅎㅎㅎㅎ 여튼 이 시디도 사야겠다. 므흐흐흐흐흐흐흐흣.

어휴, 브루스 윌리스 때문에 이 영화 보러 갔었는데, 어휴, 진짜 한숨 나오는 엉망진창 영화. 액션 보러 갔더니 코믹이었다. 게다가 브루스 윌리스의 연인으로 나오는 여자는 아..진짜..캐릭터 병맛. 민폐 대박 캐릭터. 난 진짜 이런 사람 딱 싫어. 그래서 별로 할 말 없는 영화.
그런데 엉망진창인건 이 영화 뿐만이 아니었다. 내 손톱, 내 손톱도 엉망진창. ㅠㅠ
그러니까 지난주에 만났던 M 님으로부터 봉숭아물을 건네받았다. 조카에게 해주라는 거였는데, 엊그제 나는 술을 미친듯이 마시고 집에 돌아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겠다며 소파에 죽치고 앉아서, 조카 손톱이 아닌 내 손톱에 봉숭아물을 가득가득 올린 것이다. 그리고 채널을 돌려가며 이게 KBS 아니었나, 왜 안하지, 이시간 아니었나, 맞는 것 같은데, SBS 던가, MBC 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벽 한시반쯤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아...오늘은 금요일이 아니지!! 이런 씨양-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광복절이라 출근 안하는건데, 다음날 출근 안하니 오늘은 금요일, 이라고 자동인식 되어서 소파에서 헛짓을....그러다가 티븨를 끄고 화장실에 가서 손톱위에 올려진 봉숭아물을 씻어냈더니 오마이갓, 저렇게 뭔가 피칠갑 된 것 같은 손톱이 .....................멘탈이 붕괴되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날 저 손톱을 본 엄마는 너 그래가지고 어떻게 회사 가려고 그러냐며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고 나보다 더 한심해하셨다. 봉숭아물은 아세톤으로...안지워지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튼 주말을 지내면 좀 나아지겠지,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