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사람은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보다 뒤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등장인물들을 파악하고, 배경을 파악하는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겠지. 나는 이 책, 『어둠의 왼손』의 책장이 더디 넘어가는 걸 느끼면서, 만약 SF 장르를 숱하게 읽어온 사람이라면, 분명 나보다 훨씬 빨리 이 책의 책장을 넘길거라고 확신했다.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더 적응이 빨라질 테니까. 그러나 나의 경우, SF 를 읽어본 적의 거의 없었고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낯설고 어려웠다. 새로운 단어들 새로운 인종들 새로운 문화에 대해 내 상상력은 이 책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역시 내 상상력은 빈약하기 짝이없어.
『위대한 개츠비』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때문에 읽게 됐다면, 이 책, 『어둠의 왼손』은 영화 『제인오스틴 북클럽』때문에 읽게 됐다. 그 영화속의 남자주인공 '그릭'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르 귄이어서. 그가 자신이 관심을 가진 여자에게 르 귄의 책을 선물하며 꼭 읽어보라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하는 일, 그래서 상대가 그 책을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일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누구나 다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작가를 칭찬해도 내게는 좋지 않을수도 있다. 『제인오스틴 북클럽』에서 그릭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좋아하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모든 책을 읽는다.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으므로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보고싶었으니까. 그래서 당연히 그녀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어줄거라 기대했고 믿었다. 심지어 자신은 그녀에게 르 귄의 책을 두 권이나 선물하지 않았는가. 읽을만한 조건은 그녀가 더 좋았단 말이다! 그러나 그가 읽었냐고, 어땠냐고 물을때마다 그녀는 '아니', '아직' 이라고 답한다. 그는 속이 탄다. 르 귄 좋은데, 정말 좋은데. 그녀가 르 귄의 책을 읽지 않는건 그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는 것이기에 그는 속이 상한다.
물론, 그녀는 시간이 흘러 그가 선물한 르 귄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책에 빠져들어 바로 두 번째 책도 읽는다. 밤이 새도록 침대에 홀로 앉아 그 책들을 읽고 새벽에는 르 귄의 다른 책을 사러 나간다. 물론 그 새벽에 르 귄의 책을 구할 수가 없다. 그녀는 차를 몰고 그릭의 집 앞으로 간다. 르 귄의 책을 밤을 새며 읽었다고, 더 사러 갔지만 살 수 없었다고. 그 때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면서 우리집에는 당신이 좋아할만한 책이 많다고 말한다.
책에 대해서라면-물론 다른것에 대해서도-, 나는 고집이 센 편이라 다른 사람이 좋다고해도 거기에 혹해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것 같다. 그릭이 선물한 두 권의 책을 내내 읽지 않았던 그녀도, 그릭을 싫어해서는 아니었을텐데, 그러나 르 귄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깨닫지 않았을까.
이런 책을 읽는 남자라니, 내가 좋아할만한 가치가 있어.
나 역시 어렵게, 그리고 다른 책들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려 『어둠의 왼손』을 읽어내고서는, 이런 책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정말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책이란게 그렇다. 반드시 내가 재미있게 보거나 내가 흥미를 가진 책이 아니어도, '이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같은게 있다. 몇 년전에 『돈키호테』를 읽고서는 난 반드시 이 책을 읽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고 회사를 관뒀다는 남자를 앞에 두고서는 '이 남자가 내 남자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책 하나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건 말도 안되지만, 그러나 이미지의 가감은 생길 수 있다. 뭐,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나직하게 그러나 웅장하게 삶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 같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지구가 아닌 행성에 살고 있어도, 몸 안에 남성과 여성을 함께 가지고 있어도, 어떤이들은 권력을 욕망하고 어떤 이들은 배신을 한다.
"그렇습니다, 대답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겐리.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바로 영원히 우리를 괴롭히는 '불확실성' 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 바로 그 한 가지인 것입니다." (p.104)
모두가 서로를 위해 주었다. 나와 한 노인, 그리고 심하게 기침을 하는 젊은이가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고 보았는지 밤마다 25명이 만드는 덩어리의 가운데 그러니까 가장 따뜻한 중심에 넣어주었다. 일부러 따뜻한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 세 사람은 밤이면 어느새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혹한의 어둠 속에서 발가벗은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그것이 전부였다. 재산도 권력도 이 순간의 조그만 인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우리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p.224)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은, 아니 그보다 사려깊다고 느낀 부분은 바로 이런 문장에서였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어떻게 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날짐승이 없는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p.330)
그러니까 날짐승이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창조하는 세계라면 뭐든 가능할테니까. 그런데 거기에 살을 붙이고 또 디테일하게 구조를 짜는게 작가의 역할이고 능력이 아닌가. 날짐승이 없기 때문에 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나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놓치기 쉬운게 아닌가. 이런 디테일함이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상상과 환상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문장으로도 허술하지 않아,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름답고 조용하고 웅장한. 나는 르 귄의 다른 책을 앞으로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역대 007 시리즈중에 가장 '안야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내 뒷자석에 아이들이 앉아 있어서 어? 이거 애들 볼 수 있는 영화였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웬걸, 우리의 제임스 본드가 여자들의 옷을 벗기거나 안기만 하면, 그 장면은 바로 끝나버렸다. 이게....뭥...........믜? 지금 장난............합니까? 영화 상영이 끝나고 확인해보니 이 영화는 [15세이상관람가]였다. 그 장면 몇 개 잘라버리고 연령대를 낮춘걸까? 하아-답답하구나.
그러나, 영화는 괜찮았다. 나는 확실히 뭐라고해야하나, 첨단장비에는 통 감탄이 되질 않는 사람이라서인지, 원시적으로 싸우는 이 007이 좋았다. 사냥용총을 들고 적을 맞을 준비를 하는 장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대화가 되는 자동차가 나오질 않아서, 슝슝 뭔가 이상한데서 폭탄이 나오거나 총알이 나오거나 하는게 아니라서, 아,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여튼 그간의 007에 비하면 구식이라서 좋았다. 물론 그간의 007중에서 가장 매력없는 여자주인공이 나오지만(에바 그린은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뭐, 매력은 주관적인거니까. 그리고 이 영화속의 컴퓨터천재 Q 가 너무 좋다. 므흐흐흐흣. 육군대위출신이라고 나오는 랄프 파인즈도 갑자기 총들고 맞서 싸울때 멋지고.
이 남자가 Q 다. 컴퓨터 천재인데 멋져. 희희 ♥ 지금 찾아보니 영화 『향수』에서 '그루누이'역을 했었다고 한다. 오, 그렇구나. 아..이 남자 왜이렇게 멋지지? 가을이라 그런가? ( ")
좀전에 외근을 나갔다왔다. 걸으면서 친구로부터 온 손편지를 뜯어 읽었다. 걸으면서 한 친구와 스맛폰 메신저로 이야기를 했다. 물론 도중에 한 번, 높은힐을 신고 삐끗- 해서 발목과 함께 온 몸이 휘청거렸지만, 이내 무사히 섰고, 잠시 아파서 절로 끙- 소리가 나왔지만 지금은 괜찮다. 나는 대체 왜 힐을 신는걸까. 이럴거면서. 운동화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