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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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스뵈의 <블러드 온 스노우>를 읽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펄프 소설 도전
작가들은 펄프 소설(갱지에 인쇄한 B급 통속소설)에 대한 향수가 있는 듯 하다. 스티븐 킹도 1973년을 시간배경으로 조이랜드(Joy Land)를 그런 회고적인 과거향수에 젖어 펄프 소설스러운 표지로 출간한 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요 네스뵈다.
네스뵈는 펄프 작가군중에서도 [내 안에 살인마]같은 누아르 소설의 걸작을 쓴 '짐 톰슨'을 특히 좋아했으니, 이번에 독자들에게 보여준 과감한 시도에는 적잖게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본작은 [오슬로 1970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단숨에 읽고난 소감은,-비유적으로- 펄프 소설의 값싼 재질의 펄프(pulp)보다는, 펄프잡지들이 나오던 당시(1900대초부터 1950년대까지)에 상대적으로 훨씬 비쌌던 슬릭(Slick)이나 글로시(Glossy)같은 광택이 많이나는 고급 종이에 인쇄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펄프 픽션을 표방했지만, 궁극적으로 일급 작가다운 아름다운 산문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세련된 작품이 나왔다고 할까.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일까,영어 번역본은 해리홀레 시리즈를 늘 번역해주던 Don Bartlett이 아니라, 스칸디나비아학을 연구한 Neil Smith가 맡았다. )



네스뵈의 창작 스타일 그리고 스노우맨을 떠오르게 만드는 분위기

요 네스뵈는 세부적으로 이야기의 계획을 짜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가야할 방향과 해야할 일을 정확히 알게되며,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글을 쓸 때는, 뭔가를 창조하고 있는게 아니다. 나는 그저 이미 그곳에 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내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해준다.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더라도 언제나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입장에 있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앉아봐. 들려 줄 엄청난 이야기거리가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이번 작품도, 요 네스뵈는 비록 백열하는 상태에서 창조성을 분출하며 짧은 시간동안 작품을 완성했다고는 했지만, 이 이야기는 늘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는 그저 부유하던 이야기를 정돈하여 받아적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짧지만 완성도 높은 이 작품에 요 네스뵈의 팬들은 올라브가 코리나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흔들렸듯이, 속절없이 매료되고 만다. 특히 배경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오슬로의 차디찬 겨울인지라, 어쩔수 없이 작가의 대표작인 [스노우맨]을 여러번 떠올리게 되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단란한 가족의 삶이 정원의 눈사람과 대조되었다. 결국 소년은 눈사람을 만드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거나, 약간의 물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아주 제대로 만든 눈사람이었다. 모자를 썼고,검은 돌로 된 기계적인 미소를 지었으며, 나무 막대로 만든 팔은 이 부패한 세상과 거기서 일어나는 미친 짓을 모두 포용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p.166))
눈내리는 스칸디나비아의 차가운 겨울이라는 배경은, 이쪽 미스터리에 취향을 공고히 한 독자들이 은연중에 기대하게 되는 전형적인 분위기임에 틀림없다. 마치 아이스크림하면, 시원함을 기대하는 것이 자명하듯 말이다. 그 기대를 저버릴수 없다는 듯, 요 네스뵈는 눈내리는 노르웨이의 겨울 이미지를 마음껏 이용한다.

 

클리셰 그리고 올라브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의 일부는 배트맨의 영향을 받았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정의감, 결코 포기하지 않는 면, 특히 충동적이면에서) 요 네스뵈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해리홀레'(Harry Hole)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 당시, 홀레의 일부는 '닐스 아르네 에겐(Nils Arne Eggen)'이라는 노르웨이의 괴짜 축구 코치에서, 일부는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배트맨(Batman)의 조합물이었음을 밝힌다.
(한 인터뷰에서 네스뵈는 가장 좋아하는 가공의 영웅으로 '배트맨'을, 가장 좋아하는 악당으로 '조커'를 꼽았다. 프랭크 밀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거기에 더하여 작품을 쓸 수록 작가 본인의 이미지가 주인공인 홀레에 투영되어 갔다. ('모든 작가는 자신에 대해 쓸수 밖에 없다는 헤닝 만켈의 말처럼, 이것은 피할수 없는 일.부지불식간에 작가는 해리 홀레에게 자전적인 요소를 심어넣게 되었다. 정확히는 해리 홀레 시리즈 세번째인 [레드브레스트]때부터.) 결국 해리 홀레는 Nils Arne Eggen이란 축구코치에 배트맨 그리고 요 네스뵈 자신을 뒤섞어 만든 인물인 셈이다.
작가가 줄기차게 해리 홀레를 주인공으로 10권의 책을 쓴 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올라브(Olav)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전에 일관되게 유지하던 주파수와는 사뭇 이질적이다. 다시말하면 올라브는 해리 홀레와는 매우 다른 인물이다. 장 필립 투생의 말처럼, 쓴다는 것은 우주와의 만남. 작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우주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삶의 모질음, 삶의 전망없음으로 버무려진 고독한 킬러 올라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그를 통해서 응시하고 가닿고자 하는 어떤 장소에 다다를 수 있다.
(특히 그 아름답게 쓰인 종결부는 한동안 올라브의 녹아내리는 눈물처럼, 쉬 마르지 않고, 마음속을 계속해서 흘렀다.)


전형성의 극복과 스칸디나비아 범죄소설

그런데, 요 네스뵈는 이번에 '보스의 여자를 사랑하는 킬러'라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소재를 들고 나왔다. 클리셰로부터 벗어나려는게 보통의 작가들의 태도인데, 요 네스뵈는 정 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이 점은 해리 홀레라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를 만들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외롭고, 알콜중독에, 여자를 좋아하고, 시니컬하면서 로맨틱한 인물인 해리 홀레. 작가는 이 모든 특징이 중년의 남자 형사에게 있어서 지독하게 상투적인 특징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이 때 그는 자신의 역할 모델이었던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말을 떠올린다. "상투성을 껴안고,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라." 그렇게 상투성을 넘어서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우리가 열광하는 해리 홀레다.
본작 [블러드 온 스노우] 역시, 전혀 새롭지 않은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전형성과 진부함을 극복하고, 미적 긴장감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펄프픽션을 표방한 범죄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우리가 흔히 규정하는 장르의 전형성을 모호하게 만들며 그 경계를 지운다. 그저 단순히 오락거리로 읽는 평면적인 책 (이런 책은 깊이가 없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에서, 당대의 상황에 정직하게 반응하며, 개인 실존에 관한 삶의 숨겨진 비밀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입체적인 책으로 육박하며 다가온다.
이에 관련하여 요 네스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스칸디나비아 산(産) 범죄소설 (crime fiction)은 다른 나라의 범죄 소설보다 약간은 독자들에게 도전의식을 북돋아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만들어진 책 표지에 "범죄 소설"이란 딱지를 보게된다면, 그것은 '펄프 픽션' (싸구려 통속소설)과 동의어는 아니다. 물론 펄프 픽션이면서, 가벼운 읽을 거리일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사람(entertainer)으로 보고 있지만, 하지만 오락거리(entertainment)가 꼭 가벼운 오락거리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만든 오락물을 꽤 진지하게 여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것이 스칸디나비아 범죄 소설가를 타국의 범죄소설가 사이에 차별성이 존재하는 지점이다. 그들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이러한 권한을 갖는다. 모든 책들이 작가가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정치적이다."

 

블러드 온 스노우 & 레미제라블

혹자는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난독증을 갖고 있는 청부킬러 올라브가 독자들을 노르웨이 범죄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인도했다라고 말하면서 요 네스뵈가 썼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어둡다고 평하기도 했다. 또 혹자는, 올라브의 가슴 찢어지도록 애절하게 망가진 영혼을 통해, 그 주름진 영혼을 통해 새어나온 슬픔과 도달할 길 없는 속죄에 대한 희구가 이 책 [블러드 온 스노우]가 갖는 매혹의 발원지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거기에 요 네스뵈는 70년대 오슬로의 어두운 분위기와 빙하기를 방불케하는 차가운 노르웨이의 겨울 이미지를 실로 솜씨있고 요령있게 뒤섞으면서, 이 작품을 살인과 사랑에 관해 잊기힘든 서글픈 동화의 층위로까지 끌어올린다.
이 작품에서 반복등장하는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가 살짝 감추고 있는 이 이야기 전체의 맨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집에 책은 딱 한 권 뿐인데요?"
"도서관에서 빌려 봐요. 책은 자리를 차지하니까. 게다가 난 짐을 줄이는 중이라서요."
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레미제라블? 무슨 내용이에요?"
"아주 많은 것에 대한 이야기죠."
그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가장 큰 줄거리는 한 남자가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과거를 보상하며 여생을 보내죠."
"흠, " 그녀는 책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꽤 무겁네요. 이안에 로맨스도 있나요?"
"네."
(p.57)

 

밀도를 높인 군더더기 없는 작품

 

기가 질릴정도로 두꺼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단어들만을 사용하여 군살없는 작품을 만들었다. 마치 무너진 탄광에 갇힌 광부가 남은 공기가 얼마남지 않아, 숨을 아끼듯 작가는 최대한 단어 수를 줄이고 하고 싶은 말을 아꼈다. 작가는 작심한 듯이, 낭비한 문장이 없이, 필요한 말들만 배열하여 밀도와 순도를 높였다.
그러나 독자를 향해 깜짝 놀랄만큼 강력한 감정적 펀치를 날린다. 묵직하고 둔중한 펀치다. 휘청, 그렇다. 휘청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책장을 덮어도, 잠시동안 세계의 공기가 진동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눈송이가 솜털처럼 춤을 췄다. 정처 없이, 위로 올라가야 할지 아래로 떨어져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그저 몸서리치게 차가운 칼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렸다.'(p.5)
'마치 그의 몸에 얇은 얼음 살갗이 돋아나고, 그 아래로 얇고 푸른 정맥이 생겨난 것 같았다. 피를 흠뻑 빨아들인 눈사람처럼.'(p.196)
'그녀는 봉투가 떨어졌던 자리를 보았다. 눈과 피를 보았다. 희디흰 눈. 붉디붉은 피.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왕의 망토처럼. '(p.197)

보다시피 시처럼 아찔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산문이다. 이것은 마치 노래 가사 같다. 요 네스뵈가 작가생활을 하기 이전에 밴드 생활을 하며, 자신의 노래에 작사를 하던 음유 시인이었음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는 대목이다.
어떤 장면에선 감정적으로 무뎌져 굳게 닫혀 있던 문(門)조차 어찌할 바 모를 정도의 짙은 슬픈 방향으로 밀어젖힌다.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들썩거리고 있는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토닥거려 주었으면 하는 느낌을 한동안 받았다. 이것은 스릴러이기 이전에 이것은 우아하고 솜씨좋게 세공된 사랑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여지껏 읽었던 요 네스뵈가 쓴 어떤 글보다도 슬픈 발라드같다는 생각. 비록 겉모습은 몸속의 신경다발을 쥐고 흔드는 흥미진진한 스릴러이지만, -그 장르의 이름을 한꺼풀 벗겨내고 바라보면-어떤 장면에선 작가가 육성으로 들려 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한 듯 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작가에 의해 씌어진 말은 길지 않지만, 책을 읽은 후, 독자에 의해 씌어질 말이 길어지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쓰고, 독자는 책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읽는다. 작품의 중간중간 복원되는 올라브의 과거와 유년의 기억은 상처를 헤집으며 주인공 내면에 펼쳐진 폐허의 풍경을 보여준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기억의 방울들이 밤송이처럼 아프게 쏟아진다.
"불신보다 더한 외로움이 어디 있을까?" ..이 책 어딘가에 나온 조지 엘리엇이 말한 이 문장은 먼 훗날 온 힘을 다해 이 책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그리워질 문장일 듯 싶다. 불우했던 과거를 가진 올라브였던 도피처이자 구원의 희망이었던 코리나는 쓸모없어진 파리행 비행기표처럼, 올라브 삶에서 돌연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올라브. (거리는 형태와 방향이 사라지고 사자갈기 해파리의 촉수가 되어 부드럽게 흔들렸기 때문에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계속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그대로 남아 있으려고 하지 않는 이 고무 도시에서는 내가 어딘지 알기 힘들었다. p.180)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던 버팀목에 대한 배신이 한 남자를 진한 외로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장면에 마음이 안타까웠다.삶이 올라브를 조롱하고 내동댕이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이 특히 중요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올라브가 현실로부터 도망치며 도모하려 했던 구원(여기서는 코리나와의 행복)이 '사이비 구원' 혹은 '유사 행복'이었던 것 뿐이라는 축축하고도 씁쓸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초반과 중반에 코리나 호프만에 대한 묘사를 보자. '팔과 얼굴, 가슴, 다리의 희디흰 살결, 맙소사, 마치 햇빛에 반짝이는 눈(雪) 같았다. 보는 사람의 눈(目)을 몇 시간 동안 멀게 만들 정도로 반짝이는 눈(雪).(p.28)'에 비유하며, 설맹(雪盲)이 되어버린 올라브와 희디흰 코리나를 구원의 대상처럼 작가가 설정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마치 달빛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p.85)'
'내 아래에서 그녀의 가슴이 하얗게, 새하얗게 빛났다."(p.107)
어둠을 밝혀줄 구원의 달빛이라 여겼던 코리나의 본연의 모습은 들춰진 잔인한 현실이었고, 주인공은 돌연 자신의 희망을 의심하며 가장 고독한 세계로 등떠밀리게 된다.
그 압도적인 행/불행의 색깔대비가 흰 눈위에 떨어진 붉은 색의 피만큼이나 분명하다.

제목의 상징성, 그리고 코리나

제목의 상징성을 색채적으로 풀어보면, 피의 적색과 눈의 흰색의 대비.
적색은 피, 상처, 죽음의 고통, 희생, 사랑, 승화와 관련되고, 흰색은 용서와 순수,천국, 영원의 세계를 의미한다.
킬러인 올라브는 피와 죽음, 고통의 상징적 존재에서 사랑과 희생을 통해, 용서와 구원을 받고자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환상을 대하는 냉혹한 현실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올라브의 구원에 대한 헛된 희망을 작가는 무너져 내리는 눈(용서와 구원)에 비유한다.

'내린 지 얼마 안 된 눈에 양 손바닥이 따가웠다. 양손을 움직여 보슬보슬한 눈을 긁어모았다. 하지만 보슬보슬한 눈으로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순백색이고 아름답지만 그걸로 뭔가 오래가는 걸 만들기는 힘들다.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뭘 만들든 결국에는 무너진다. 손가락 사이로 무너져버린다.(p.183)'

코리나는 곧 무너져내릴 아슬아슬한 현실 세계의 찰라로 존재하는 유사(거짓)행복일 뿐이다. 그것으로 영혼을 감싸안을 수는 없다.

요 네스뵈가 독자들에게 전언하는 비극적 세계인식은 후반부에 독자들의 마음을 몽땅비처럼 닳게 만든다. 작가가 주인공을 난독증 겪고 있는 인물로 상정한 것은, 열매맺음에 실패한 불모의 사랑을 통해 세상 읽기에 실패한 한 고독한 사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일 듯 싶다. (내겐 더이상 저들이, 일반인들이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저 음파, 산호초에 부딪혀 사라져버리는 저 음파를 해석할 도구가 없었다. 나는 뜻이 통하지 않는 세상, 일관성 없는 세상을 내다보았다. p.179)

"하지만 글자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읽을 수가 있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가끔씩 잘못 보죠. 그래서 다시 봐야 해요." 나는 눈을 떴다. 그녀의 손은 아직 내 팔에 있었다.
"하지만...잘못...잘못 봤다는 걸 어떻게 알죠?"
"대개는 말이 안 되는 단어들을 보고 알아요. 하지만 가끔씩 한 참 후에야 단어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죠. 그래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알 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책 한 권 값으로 두 개의 이야기를 읽는 셈이죠."
그녀가 웃었다. 큰 소리로 꺄르르. 옅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누군가에게 내가 난독증이라고 말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그에 관해 계속 물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p.81)
어떻게 생각하면, 코리나라는 존재가 잘못 인식한 단어같은 존재. 한참뒤에야 올라브는 그녀를 완전히 잘못 읽었다는 걸 깨닫는다.결국 코리나는 그가 화해의 리듬을 이루고 싶은 '세상'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헛된 욕망.
세상에 대한 오독(誤讀). 세상과의 불협화음을 겪고 있는 올라브는 자신이 원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싶어한다. 이것이 영민한 작가가 주인공을 난독증을 갖고 있게 설정한 또다른 이유일 터이다. 자신이 내키는대로 세상을 읽는 것. 그것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어내고픈 바램에 다름아니다.
"더는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어요. 이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지어낼 순 없을 거에요." (p.192)
"이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지어낼 순 없다."...
이 아름다운 책에서 단 한 문장의 문장만 허락된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과거의 적나라한 무서운 기억들로 점철된 나쁜 스토리 안에서 살고 있던 남자가 그 기억들과의 만남을 유보하고, 다시 쓰고자했던 이야기.
"죽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엄마, 난 그냥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어요.(p,142)"
잔인하게도 작가는 올라브가 갖고 싶었던 최소한의 온기를 느낄수 있는 아랫목같은 세상을 독자가 살짝 엿보게 해준다. 그 이룰 수 없는 따스한 이야기를 읽고 난 독자는, '나'와 '등장인물' 간의 거리두기를 지우고, 기적적으로 책이라는 공간 속에서 주인공과 내가 어떤 느낌 안에서 함께 만나는 짧지만 소중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마리아 미리엘

올라브가 더 낫게 고쳐 쓰고자했던 바로 이 대목.
줄기차게 작품 내에서 울림을 갖는 레미제라블의 이야기.
"장 발장은 프랑스 전체에 수배령이 내려진 악명 높은 살인자다. 그리고 가여운 매춘부 팡틴을 사랑했다.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기꺼이 했다. 그가 한 일은 모두 다 그녀를 위해, 그녀를 향한 사랑, 광기,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기의 부도덕한 영혼을 구원하거나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움에 굴복했을 뿐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치아도 머리카락도 없이 망가지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 매춘부의 아름다움에 굴복하고 순종한 것이다. 아무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 못한 여인에게서 그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랬기에 그 아름다움은 오로지 그만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아름다움의 것이었다." (p.142)

그런데 이 이미지와 후반부에 매춘부 출신의 마리아 미리엘에 대한 묘사가 절묘하게 포개진다.

"슈퍼마켓 계산대에 앉아있고, 그가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싶지 않은 여자, 왜냐하면 그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처럼 불완전하고, 결함과 하자가 있고, 늘 스스로를 희생하고,사랑의 한심한 노예가 되고, 그저 다른 사람의 입술을 읽을 뿐 결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모르고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굴복시키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 여자.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가 원치 않았던 모든 것이었다. 그녀는 그 자신의 굴욕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최고의 인간이자 가장 아름다움운 피조물이었다. (p. 191)

결국 올라브에게 있어서 마리아 미리엘은 자신을 되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악몽의 산실인 과거의 기억에 매몰된 출구없는 존재. 폭력과 절망적인 삶의 구덩이에서 허덕이는 존재.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추레한 모습. 올라브는 마리아인 동시에 올라브가 어릴 때 오슬로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동물의 왕국]이란 책에 나오는 비쩍마른 상처입은 하이에나같은 존재라고도 할수 있다. 이형 동질체같은 것. 부정하고픈 진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올라브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싶지 않은 존재"라고 말하기도 하고, 팡틴에게 빗대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고도 말한다.
마리엘은 올라브의 보듬어야할 상처이자 응시해야할 자아였던 것이다. 결국 작품 내에서 팜므파탈임으로 확인된 코리나는 구원의 영토가 아닌 거짓 희망이었다. 따라서 관속에 들어가는(후반부에 올라브가 장례식장의 관속에 숨어있는 장면을 상기할것) 유사 죽음으로는 악몽속에서 구원의 출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상처를 비껴가려는 행위이므로 진정성이 획득되지 않는다. 코리나가 나타나기 전에 마리에 미리엘은 이미 있었다. 올라브의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그녀. 그것은 그녀가 올라브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자신과의 불화와 화해하고, 집요하게 상처를 응시하는 것, 그리고 그안에서 의미를 찾는것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자기구원에 이르는 일임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구원과 속죄는 올라브가 피를 흠뻑 빨아들인 눈사람처럼, 가게 앞에서 마리아가 앉게 될 자리를 응시하다 생의 맨홀을 닫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대부분의 구원이 그러하듯, 희생에 의해서. 그의 상처입은 영혼을 가두던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벽에 부딪칠 때 울리는 소리를 듣고 벽 뒤에 또 다른 방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희망이 반짝 생겨난다.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지만 그렇다고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우리를 지치게 하는 끔찍한 희망.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죽음에 의미가 있고 이야기가 있으리라는 희망.(p.30)

벽 뒤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믿으며, 반짝 빛나는 희망을 꼭 쥐고 있던 이 고독한 남자의 소원은 이루어졌는가.

[블러드 온 스노우] 읽기는, 결국 이 남자가 도망치려했던 현실과, 지름길 찾기에 대한 실패를 묵묵히 들여다 보는 일에 다름아니다.

종결부의 숨막히는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의 감수성은 참을수 없을만큼 예민해진다.

책을 덮은 후에도 한 동안 우리 주변에 이 외로운 남자의 긴 그림자가 서성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모험 그리고 기대

몇 몇 독자들은 이 작품이 너무 짧다고 불평하지만, 개인적으로 [블러드 온 스노우]는 이 정도의 길이(중편 소설)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본다. 기존에 쓰던 장편소설보다 이야기의 주제와 더 부합되는(더 몸에 잘 맞는) 장르를 작가는 개척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읽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짧은 시간동안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독자 사이에 교감과 몰입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는 읽어본 사람만이 안다. 견고한 장르의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떤 부분을 일그러뜨리며 지루한 되풀이를 피했다. 참신성은 그 맥락에서 태어 났다.
작가의 새로운 모험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에 기존 틀을 지우고, 다른 방향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스릴러가 아닌 다른 장르도 도전하고 싶은 작가적 욕심을 드러냈다.
요 네스뵈에 따르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총에 관한 이야기인 [The Gun]이란 소설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톨스토이풍의 대하 역사소설. 독자들은 총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총. 이걸 통해 작가는 폭력의 역사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것은 요네스뵈가 최초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머리 속에 맴돌던 이야기였다고 한다. 독자에게 꼭 쓰고 싶다고 약속했으니 언젠가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된다.

 


조만간 번역되어 나올 [미드나잇 선] 오슬로 1970 시리즈 두번째 작품이다.

 

[블러드 스노우]와 요 네스뵈 작가의 해리홀레 시리즈 & 또다른 스탠드얼론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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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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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는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소파가 푹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라고 책의 맨 앞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출판사 측은 푹신푹신한 느낌을 주려고 쿠션감이 느껴지는 하드커버 재질로 책 표지를 제작했습니다. (이점은 일본어 원서와도 차별성을 둔듯 합니다. 대단!)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릴적 길렀다는 집 고양이 '단쓰'와의 추억을 시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써 나간 '후와 후와'.

이 작품을 위해 지인의 고양이가 저의 집을 친히 방문하여 촬영에 임해주었습니다.


고양이의 이름은 '아치'...

고양이 종은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걸 감안하면, 묘한 우연입니다.

'아치'의 주인은 아치가 너무 푹신푹신해서 자주 안아준다고 하는데, [후와후와]라는 제목이 연상되는 대목이네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수많은 삽화를 그렸던 '안자이 미즈마루' (1942-2014).

하루키가 '이 세상에서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친했다고 하네요.

안자이 미즈마루씨의 본명이 '와타나베 노보루'라는데,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너무도 친숙한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루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와타나베 노보루' ;와타나베'란 이름은 바로 안자이 미즈마루씨의 본명이었던거죠. 그정도로 하루키가 애정을 품었던 친구였네요.)

이제 안자이 미즈마루씨가 고인이 되어, [후와후와]는 이 세상에 유일작으로 남은 '무라카미 하루키 &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가 만든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미즈마루씨는 이 그림책을 제작할 당시, 일러스트레이트를 의뢰받고, 매일 매일 '푹신푹신'에 대해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푹신푹신한 질감의 느낌을 더 잘 살리기 위해서 미즈마루씨는 고양이의 몸 전체를 그리기 보다는 부분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림책을 넘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양이의 꼬리나, 등, 얼굴 일부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푹신푹신한 느낌을 더 살리기 위해 철저하게 그림에서  (고양이는 물론이고, 다른 사물조차도) 그림자는 배제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고양이 몸의 일부만 사진에 등장시켜 푹신한 느낌을 강조했답니다.

 

'매력적인 그림이란 그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역시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요. 그런 걸 그려가고 싶습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씨가 한 말입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 이 말이 전적으로 이해됩니다. 처음엔, 이렇게 대충 그렸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볼수록 매력이 있는 미즈마루씨만의 그림입니다.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는 걸 성격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미즈마루씨의 철학이 그대로 베어있는 그림들입니다.)

 

 

  

'가르릉거리는 고양이 소리 듣는 걸 좋아한다. 가르릉가르릉 소리는 마치 멀리서 다가오는 악대처럼 점점 커진다. 조금씩 조금씩. 고양이 몸에 귀를 바싹 갖다대면, 소리는 이제 여름 끝자락의 해명처럼 쿠루룽쿠루룽하고 커다래진다. 고양이의 보드라운 배가 호흡에 맞춰 볼록해졌다가 꺼진다. 또 볼록해졌다가 꺼진다. 마치 갓 태어난 지구처럼.'..이라고 [후와후와]에서 하루키는 쓰고 있습니다.

촬영 내내 저도 고양이의 가르릉 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양이와 방에서 촬영하면서 (이 책에 나와있는 하루키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하루키가 여섯살인가 일곱 살 무렵에 '단쓰'라는 고양이를 기억하고 이 책을 썼듯이, 저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이 책을 위해 흔쾌히(?) 모델이 되어주었던 '아치'를 기억하겠지요. 가르릉거리는 소리와  따스한 온기를 품은 푹신푹신 솜털같은 고양이 털이 제일 먼저 떠오를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스런 책 [후와 후와]도!

 

후와 후와는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의 유일무이한 그림책으로 따스한 하루키의 시적인 에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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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The Bat)][네메시스(Nemesis)] 국내 번역 출간 및 2월 27일 요 네스뵈 작가 방한 기념으로 준비해 본 포스팅입니다.

 노래 부르는 Di Derre의 리더 요 네스뵈 형님 영상입니다. 최고 히트 곡 Jenter를 중심으로 꾸며 보았네요~^^

 

포스팅의 목적

 

1. 음악이 이야기를 몰고 가지 못한다고 느끼면, 자신의 작품에서 빼버린다고 할 정도로, 음악은 네스뵈의 소설에서 중요하다. 음악은 그 사람이 누군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말해 준다고 믿고 있는 네스뵈이기에 작품에 들어갈 책 선정에 특별히 신경 쓴다고 한다.

이런 네스뵈이기에 작가와 음악과의 상관관계를 파헤쳐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 네스뵈가 이끈 밴드 Di Derre의 최고 히트곡인 Jenter(옌터=Girls)을 들어보고, 기왕이면 가사의 의미도 음미해보고 싶었다.(가사는... 노 르웨이 소년의 도움 그리고 노르웨이어-영어 번역기와 사전을 다섯 개 정도 사용해서 우리 말로 번역했는데, 95%이상의 정확도를 보일 듯 싶다. 혹시 노르웨이어 아주 잘 하시는 분이 태클을 걸어주셔서 정확한 가사로 매끈하게 다듬어 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네스뵈의 작사 실력을 엿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3. 비교적 젊은 시절의 요 네스뵈가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던 것은 바로 이 무렵이다.. 네스뵈는 그 자신을 음악가라기 보다는 스토리텔러로 보았다. 그는 음악을 이야기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고나 할까.

 

 

 

Di Derre (Jo Nesbo)- Jenter

 

Jeg traff henne på St. Hanshaugen sommeren 89

Hun gråt når hun var full og sang når hun var blid

Jeg elsket henne høyt, hun elsket meg villt

Høsten kom, døra smalt og etterpå ble det stilt 

 

나는 그녀를 89년 여름 세인트 Hanshaugen에서 만났다

그녀는 취하면 울었고, 행복할 때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녀를 야단스럽게 사랑했고, 그녀는 나를 거칠게 사랑했다

가을이 왔고, 문이 쾅하고 닫혔고, 그 후로 침묵만이 있었다

 

Så jeg traff ei lita jente en regnfull vår

Med bløte konsonanter og regnvått hår

Hun lovet meg troskap, jeg lovet henne alt

Vinteren kom, troskap gikk og etterpå ble det kaldt

 

그후 나는 비오는 봄에 젊은 아가씨를 만났다

부드러운 자음과 비에 젖은 머리를 가진 여자..

그녀는 나에게 정절(貞節)을 약속했고,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다.

겨울이 왔고, 정절은 가버렸고, 그후로 추웠졌다.

 

Jenter som kommer og jenter som går
Jenter som glipper, jenter du aldri får
Jenter som smiler en tidlig vår
Jenter og en litt sliten matador

Hey, hey!
Hey, hey!
Hey, hey, hey 

 

오는 아가씨들 그리고 가는 아가씨들.

미끄러지듯 빠져 나가는 아가씨들, 결코 당신이 얻을 수 없는 아가씨들

이른 봄 날에 미소 짓는 아가씨들

아가씨들 그리고 약간 지친 투우사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요.. 

 

Ved frognerparken møtes to trikker kvart på ni

Og hun smilte bak ruten til vinter’n var forbi

Jeg skrev i rutens morgendugg ”Jeg tror jeg elsker deg”

Men våren kom og isen gikk og hun seilte sin vei 

 

Frogner 공원에서 8시 45분에 두 트램(전차)은 만난다.

그녀는 겨울이 지나갈때까지 거리에서 미소지어 주었다

나는 morgendugg(아침이슬) 거리에서 "내 생각에 난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라고 쓴다

하지만 봄이왔고, 얼음이 (녹아) 깨졌고, 그녀는 자신만의 항해를 떠나 버렸다

 

 

Jenter som kommer og jenter som går
Jenter som glipper, jenter du aldri får
Jenter som smiler en tidlig vår
Jenter og en litt sliten matador

Hey, hey!
Hey, hey!
Hey, hey, hey
 

오는 아가씨들 그리고 가는 아가씨들.

미끄러지듯 빠져 나가는 아가씨들, 결코 당신이 얻을 수 없는 아가씨들

이른 봄 날에 미소 짓는 아가씨들

아가씨들 그리고 약간 지친 투우사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요.. 

 

Månen er gul og titter ned på skrå

Gud er en fyr det kan være vanskelig å forstå

Jeg kikker meg i speilet, årene går

Hei, jeg heter Berger, jeg er matador 

 

달은 노랗고,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 

나는 거울을 본다, 몇 해가 지나간다.

어이, 내 이름은 베르게르입니다, 전 투우사죠.

 

Jenter som kommer og jenter som går
Jenter som glipper, jenter du aldri får
Jenter som smiler en tidlig vår
Jenter og en litt sliten matador

Hey, hey!
Hey, hey!
Hey, hey, hey
 

오는 아가씨들 그리고 가는 아가씨들.

미끄러지듯 빠져 나가는 아가씨들, 결코 당신이 얻을 수 없는 아가씨들

이른 봄 날에 미소 짓는 아가씨들

아가씨들 그리고 약간 지친 투우사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 이봐요.. 

 

 

(Youtube 제목은 'Jenter som Kommer (Girls who Come)'으로 나와있지만, 원래 제목은 Jenter(Girls)다. Di Derre의 최고 히트곡의 뮤직비디오. 요 네스뵈의 작가로 데뷔하기 전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뮤비의 장면들은 가사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제목처럼 노르웨이 아가씨들이 많이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소박한 포크송을 듣는 느낌이다. 가사를 음미하며, 한 스무번쯤 들었는데 묘한 중독성이 있다. 특히 중독성있는 마성의 후렴구 Jenter som kommer og jenter som går (오는 여자들 그리고 가는 여자들)은 이 노래가 어째서 노르웨이 라디오에서 아직까지도 종종 플레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2012년 공연이니, 최근 모습의 네스뵈를 만나 볼 수 있고, 그리고 청중과 느낌과 호흡을 함께하는 가장 라이브다운 흥분을 전달해주는 멋진 공연이다. 청중들이 한 마음이 되어 따라부르는 모습을 보니,작가 이전의 뮤지션 요 네스뵈가 보인다. 아, 카리스마 넘친다. 네스뵈의 왼쪽 옆에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작년에 타계한 동생 Knut Nesbo..뭔가 찡하다. 그리고 그 다음 곡인 마지막 노래 "Børs Cafe"도 너무 좋다. )

 

 

 

(가장 인기가 좋았던 Di Derre의 2집 앨범. 노르웨이 여름노래로 유명한 Jenter가 수록되어 있다.

요 네스뵈는 한 노르웨이 여행관련 신문기사에서 '노르웨이 방문했을 때 꼭 기념품으로 챙겨야 할 것으로 품질이 좋다며 두툼한 양모 스웨터를 추천했는데, 혹시 노르웨이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 스웨터와 이 시디가 탐난다.)

 

 

최고 히트작 [Jenter og Sånn] 앨범과 밴드의 가사쓰기

 

이 곡[Jenter (Girls)]가 들어 있는 Di Derre(노르웨이식 발음으로 '디 다이레'. '그 녀석들(those guys)'라는 의미)의 두번 째 앨범 Jenter og Sånn (Girls and Stuff)은  1994년에서 95년사이에 41주간 노르웨이 차트에 머물렀다. 그 중 5주간은 1위에 랭크 되었을 정도로 메가 히트의 인기를 누렸던 앨범. 무려 200,000장이 팔려나가 노르웨이 음악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앨범중 하나였다.

이 노래는 이웃 나라인 덴마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덴마크의 존경받는 싱어송 라이터인 Poul Krebs와 Nesbo가 함께 듀엣 버전으로 발매하기도 했다.(Poul Krebs, Jenter 카워드로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한편 Jo Nesbo는 Poul Krebs의 히트곡인 Sådan nogen som os를 노르웨이 음악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듀엣으로 발표했다. 이 음악 역시, Poul Krebs, Jo Nesbo의 키워드로 확인할 수 있다.) 처음 발매될 당시의 앨범 타이틀은 'Kvinner og Klær'(Women and Clothes)'였지만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여성 패션 주간 잡지(KK)에서 바꿀 것을 요구해서 비슷한 의미인 Jenter og Sånn (Girls and Stuff)로 바꾸게 된 것이다.

결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음악에 투영시킨 적은 없었다는 네스뵈는 당시 자신이 쓴 노래의 대부분은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 청년을 다뤘다고 술회한다.

밴드 Di Derre의 음악을 위해 가사를 썼던 네스뵈. 처음에 소설을 쓸 때 그 어떤 것보다도 가사 쓰는데에 유용했다고 한다. 가사를 쓸 때 세개의 전주 부분과 하나의 후렴으로 제한되는데, 그 부분이 소설 쓰기에 매우 쓸모있다고 작가는 밝힌다. 독자를 얼마만큼 안내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얼마만큼 남겨야 할지 이해하게 된다.그래서일까, 1997년에 [박쥐(The Bat)]가 노르웨이에서 공개되었을 때, 비평가나 독자들은 (20대부터 노래 가사를 써오던) 요 네스뵈를 처음으로 글을 쓰는 초보 작가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데뷔 소설 [박쥐]

 

잘 알려진 것처럼, [박쥐]는 요 네스뵈가 보컬이자 리더로 있는 Di Derre ('그 녀석들'이름의 밴드명)가 정점에 있을 때 나온 작가의 처녀작이다. (1997년 180회 이상의 공연에 심신이 지친 네스뵈가 휴식을 위해 찾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탄생된 작품) [박쥐]라는 작품 내에서 그를 이끌어 간 것은 소설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하루 평균 16시간 쓰면서 5주만에 완성했는데, 그의 작가 생활을 통틀어 1차 완성본을 그렇게 빨리 썼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호주에서 그를 맞이했던 친구는 호텔 방구석에서 작품 쓰는 것에만 몰두하던 네스뵈를 보고 당황하며,억지로라도 그를 끌어내서 호주의 멋진 곳을 여행 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경한 킹스 크로스의 홍등가, 본다이 비치, 시드니 수족관, 님빈의 리틀타운, 호주 박물관..[박쥐]에 등장하는 이 곳들이 바로 작가가 그 무렵 여행한 곳이다. 어찌보면, 해리홀레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간 셈이다.

호주에서 돌아온 네스뵈는 원고를 알고 지내던 출판사의 여직원에게 주었다.(사실 그 여직원 네스뵈에게 부탁했던 것은 노르웨이를 순회공연하는 밴드 Di Derre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원했지만, 순회 공연 이야기 쓰기를 원치 않았던 네스뵈가 건내준  원고는 예상 밖으로 해리 홀레의 탄생을 알리는 스릴러였던 것이다.) 

 

네스뵈가 [박쥐] 출간을 필명인 Kim Erik Lokker로 출간하려고 했던 이유

 
 

작가 생활의 시작으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7세에 처음으로 [박쥐]를 출판사에 타진 했을 때, 네스뵈는 자신이 노르웨이의 유명 그룹인 Di Derre의 리더이자 보컬인 점에 걱정을 했다고한다.

 마돈나가 어린이를 위한 책을 출간 했을 때, 사람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냈던 일을 떠올리며, 다른 쪽으로 알려진 유명인사가 출판하려고 할 때를 경계했다. 아무리 그 작품의 질이 안좋더라도, 출판사들은 인기에 편승하여 어떻게든 출판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국내에도 알려진 유명한 에피소드중 하나. 원고를 보내고 3주 후에, 출판사로부터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출판사측은 본명이 아닌 킴 에릭 로커(Kim Erik Lokker)라는 필명으로 책을 내고 싶은 이유를 묻는다. 네스뵈는 자신의 본명을 이야기하면서 유명 밴드의 리더임을 밝혔을 때,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했더라는 일화가 있다.

네스뵈는 그 이유를 그 당시 앨범은 굉장히 많이 팔려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래는 알고 있었지만, 잡지나 앨범 커버에 얼굴을 노출시키는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 (어떻게 보자면 얼굴없는 밴드였기에) 이라고 밝힌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일화 하나.

밴드의 인기가 정점에 올라선 시기에 한 카페에 네스뵈가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명의 남자가 마침 네스뵈의 밴드인 "Di Derre"의 이야기를 하면서 네스뵈를 흘끔 흘끔 쳐다 보았다고 한다. 네스뵈는 이 남자들이 '혹시 네스뵈씨가 아닙니까'라고 물으며 싸인을 요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침내 한 남자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고. "저..재털이 좀 빌려도 될까요?"

 

 

음악적 영향

 

네스뵈는 미국 컨츄리 음악 애호가였던 아버지와 비틀즈의 열혈팬이었던 형이 있는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네스뵈가 조금 더 나이 먹었을 때, 그는 에머슨,레이크 앤 파머(ELP), 제스로 툴(Jethro Tull), 데이빗 보위(David Bowie) 프랭크 자파(Frank Zappa)같은 글램록, 프로그레시브와 아트록 밴드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알이엠(REM),그린 온 레드 (Green On Red), 드림 신디케이트(Dream Syndicate)같은 뉴웨이브 아메리컨 록에 휩쓸렸다.

네스뵈에게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스웨덴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공연을 보러가던 길에 80년대 노르웨이 록 뮤지션인 요케(Jokke)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으면서였다.(본명이 Joachim Nielsen인 Jokke는 노르웨이 음악사에서 가장 뛰어난 싱어송 라이터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는 뮤지션이자 시인.) 네스뵈는 아이디어로 충만된 채로 밴드가 있는 베르겐으로 돌아왔다. "내게 음악적으로 영향을 준 4개의 이름이있다. 스프링스틴(Springsteen), 요케(Jokke), 임페리엣(Imperiet), 알프 프로이센(Alf Prøysen)이 바로 그들이다",라고 네스뵈는 설명한다. 비록 이전에 알프 프로이센(Alf Prøysen)이 있긴 했지만, 요케(Jokke)는 노르웨이어로 (가사를) 쓰기 시작하도록 눈을 뜨게 끔 해준 인물이었다. (특히 요케가 1987년에 발표한 [To Fulle Menn (두 술취한 사람)]은 요 네스뵈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인 듯. 노르웨이의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노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네메시스]에는 요케가 이끌었던 '요케 오그 발렌티네르네'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해리 홀레가 나온다.(p76) )

 

"비록 제가 책을 팔고 있지만, 만약 음악을 그만둔다면 슬플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비록 제가 Di Derre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더라도,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제가 그 음악들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음악들을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그 음악의 작곡가가 아니라, 바로 대중들입니다. 사람들이 음악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밴드도 점점 더 나아졌구요." 네스뵈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음악들이 밴드와는 별개로 살아있다고 믿는다.

 

 

 

(최근 (2013년) 공개된 새로운 Di Derre의 컴필레이션 앨범. 음반 타이틀처럼, '밴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최근의 음악 활동

 

이런 마음가짐 때문일까, 자신의 최고 히트곡 Jenter(Girls)가 나온지 20년만에 잠시 펜을 내려놓고, 밴드의 리드보컬이자,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로서의 역할에 다시 초점을 맞추려하고 있다는 소식. 그의 그룹 Di Derre의 컴필 앨범 [Historien om et band (The history of a band)]과 새로운 싱글 Syk(sick)가  2013년 12월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밴드도 그와 함게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네스뵈의 동생인 크눗 네스뵈(Knut Nesbo)의 죽음 이후(2013년 2월)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라이브 연주를 재개했다.

네스뵈는 "내가 글을 쓸때는 하루종일 완전한 고요속에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내향적인 일이다. 그때는 기타를 집어들고,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가서 친구들과함께 박수갈채를 받으며 좀 연주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컴필레이션 앨범인 [Historien om et band]은 생전의 크눗 네스뵈와 함께 부엌 테이블 주위에서 밴드 멤버들이 연주하며 노래부르는  영상이 담겨 있는 DVD도 포함되어 있어, 보는 이를 뭉클하게 만든다.(Di Derre는 요 네스뵈의 최신작 Police의 론칭 파티때 크눗 네스뵈를 대신할 기타리스트를 뽑기 위한 비밀 오디션을 열었고, Unni Wilhelmesen이 밴드의 새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되었다.

 

 

 

만약 [레오파드]라는 CD가 있다면..그런 마음으로 찍은 사진. 네스뵈가 얼마나 음악을 중시하는지 표현하고 싶었다.

아무튼 만약 이런 음반이 있다면, 그 수록곡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스노우맨]에서처럼, 요 네스뵈는 [레오파드]에도 많은 음악들을 담았다. 대부분이 영미 음악들인 점이 주목할 만 하다. 괄호안의 숫자는 [레오파드] 국내 번역판의 페이지. 

 

Sex Pistols -No future (p.44)

Miles Davis - < Kind of Blue>, <Flamenco Sketches> (p.85) 

Nazareth -<Love Hurts> (p.119)

Deep Purple -<Speed King> (p.129) 

Bruce Springsteen -<No Surrender> (p. 165) 

Martha Wainwright -<Far Away> (p.171) 

The Moody Blues-<Nights in White Satin>(p.291)

Duke Ellington- < Don't Get Around Much Any More>(p.302)

Joy Division-<Transmisssion> (p.455)

Tracy  Chapman-<Fast Car> (p.540) 

Bruce Springsteen -<No Surrender> (p. 776) 

 

 

개인적으로 음악들을 찾아들으며 [레오파드]를 다시 읽었는데, 네스뵈가 책을 쓸 당시의 분위기를 교감하는 듯 해서 좋았다. 앞에서도 언급되지만, 네스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꽤 좋아해서, 그의 노래가 자주 등장한다. [레오파드]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No Surrender'라는 곡을 두 군데나 사용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쓰는 음악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는데, 그 점은 의외였다. Joy Division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작가 자신은 이지 리스닝 계열의 가벼운 팝 음악을 좋아하는데, 해리 홀레 역시 그런 곡들을 좋아하게 만들기 조금 주저하게 되는 면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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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4-04-1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후.. 많이 젊을 때지만 장난꾸러기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네요 ㅎㅎㅎ 귀엽 ㅜ
다른 글도 그렇지만 요 네스뵈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이신 듯해요. 전 이제 막 그의 책들을 한 번씩 후르륵 읽은 것에 불과해서 이토록 큰 애정과 정성과 지식이 가득한 페이퍼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정말 꼼꼼하고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

에세르 2014-04-10 15:45   좋아요 0 | URL
네, 장난꾸러기 얼굴이 변함없습니다. 해리홀레만큼이나 작가도 매력적이지요~^^

최고 전문가..라는 말씀은 부끄럽구요..좋은 작품을 읽다보니 팬심이 절로 생겨나는것 같습니다. 사실 어제 올라와 있는 해리홀레 관련 알라딘 페이퍼들을 읽다가 건조기후님의 홀레 시리즈에 관한 정성스런 페이퍼를 읽고 감탄했었는데..
이렇게 찾아오셔서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ㅎ
 

 

 

 

  

 

 

 

 

 (닉케이브 앤 배드 시즈의 [Murder Ballads]앨범과 [박쥐])

 

해리는 닉 케이브의 음반이 있는지 물었다. "그럼요. 오스트레일라 사람이잖아요."

"예, 예 무슨 노래인지 알아요. '들장미가 자라는 곳 (Where the Wild Roses Grow)라는 곡으로 [살인 발라드(Murder Ballads)]앨범에 실려 있어요. 역겨운 노래에요. 역겨운 앨범이고. 그 사람 앨범 중에 다른 좋은 걸로 사시죠."

남자는 다시 안경을 쓰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해리는 다시 깜짝 놀라며 우울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 노래가 왜 그렇게 특별해?" 밖으로 나오면서 비르기타가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해리가 웃었다. 레코드점 남자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케이브하고 이 여자는 살인을 노래해. 선율이 아름다워서 마치 사랑을 맹세하는 것처럼 들려. 사실은 역겨운 곡이 맞지." 그는 다시 웃었다. "이 도시가 좋아지려고 해." ([박쥐] p.157)

 

 

한가지 주목할 점은  오스트레일리아 밴드 '닉케이브 앤 더 배드시즈 (Nick Cave and the Bad Seeds)'가 '들장미가 자라는 곳 (Where the Wild Roses Grow)'을 발표한 것은 1995년이었고 ([박쥐]는 1997년에 발표된 작품), 이 음악이 가장 높은 순위까지 올라간 곳은 바로 네스뵈의 모국인 노르웨이(3위)였다는 점이다. (Norweigian wood라는 나흘간 열리는 록 페스티벌이 매년 오슬로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10분정도 떨어진 곳인 Frogner 공원에서 열리는데 2009년과 2013년에 닉 케이브앤 배드 시즈가 이 공연에 참가 할 정도로 노르웨이와는 인연이 깊다)

그리고 '살인 발라드'라는 장르는 발라드의 하위 장르로서 18세기에 살인을 무자비하게 묘사한 포크송인데, 사실 그 기원이 주로 스칸디나비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해리 홀레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 아닌가) 닉케이브가 살인을 소재로한 Down in the Willow Garden이라는 전통 살인 발라드를 듣고 난 후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팝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가사를 내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가사가 뿜어내는 명도는 굉장히 어둡지만, 밴드가 '최고의 명반을 발표했다는' 평단의 후한 평가와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마리의 잡게된 기폭제가 된 대표작이다. 닉 케이브는 이 앨범을 통해서 자신의 곡쓰기에 대해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이 곡은 오스트레일라를 대표하는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와 듀엣으로 불러서 화제가되었다. 닉 케이브는 이 음악을 카일리 미노그를 염두해 두고 작곡했다고 한다. 여러해 동안 미노그를 위한 노래를 자곡했었지만 딱 이 곡이란 느낌이 드는 곡이 없었던 케이브는 살인자와 그 희생자의 대화를 쓰면서 이것은 미노그에게 적합한 노래라는 확실한 생각이 들었다고.

 

이 노래에서 The Wild Rose(야생 장미)는 엘리자 데이 (Elisa Day)의 별명이고, 노랫말에 나오는 다른 화자인 남자는 이름이 없다. 그는 장미에 집착하는 정신이상자다. 전체적인 내용은 엘리자 데이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강둑에서 돌에 맞아 살해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 전체를 이 곳에 옮겨보았다. 살인을 암시하는 가사가 섬찟한 느낌을 선사한다.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곤혹스런 충격이 살을 맞대고 있는 노래. 한 마디로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는 치명적 매력의 야생 장미같은 곡.  요 네스뵈가 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두 남녀 두엣이 부른 '들장미가 자라는 곳 (Where the Wild Roses Grow)'을 [박쥐]에 사용하고 싶었던 이유는, [박쥐]의 배경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점도 있지만, 이 음악이 내장하고 있는 음습하고 섬뜩하게 아름다운 기운을 작품 속에 이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으면 상실감과 슬픔이 다 사라질까'라는 가사...금발의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박쥐]와 이 노래에 깃들어 있는 기이한 분위기가 뒤섞이고, 교차되며 위력을 얻는것은 그러므로 필연적이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고혹적인 카일리 미노그와 긴 금발에 약간 빨간머리의 비르기타([박쥐]의 여주인공)와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

 

 

 

 

 

 

 

 

 

 

 

 

They call me The Wild Rose

그들은 나를 "야생장미"라 부르죠.
 But my name is Elisa Day

하지만 내 이름은 엘리자 데이
Why they call me it I do not know

왜 그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어.
For my name is Elisa Day
왜냐하면 아무튼 내이름은 엘리자 데이니까.

 

From the first day I saw her I knew she was the one

내가 처음 그녀를 본날 부터 나는 '바로 이 여자다'라는 걸 알았어.
She stared in my eyes and smiled

그녀를 내 눈을 응시하고 미소 지었지.
For her lips were the colour of the roses

그녀의 입술은 강을 따라 자란 장미의 색깔이었지,.

That grew down the river, all bloody and wild

온통 피빛깔을 한 야생 장미 말야.

 

When he knocked on my door and entered the room

그가 내방문을 노크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 

My trembling subsided in his sure embrace

나의 떨림은 그의 포옹 속에서 가라앉았죠.

He would be my first man, and with a careful hand

그는 아마도 제 첫 남자였을거에요. 세심한 손길로
 He wiped at the tears that ran down my face

그는 내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지요.

[Chorus]

On the second day I brought her a flower

둘째날 나는 그녀에게 꽃 한송이를 가져다 주었다.
She was more beautiful than any woman I'd seen

그녀는 내가 여지껏 본 어떤 여인보다도 아름다웠지.
 I said, "Do you know where the wild roses grow

난 말했지. " 참 아름답고 주홍 빛깔의 자유분방한
 So sweet and scarlet and free?"

들장미들이 자라는 곳을 알고 있어?"

On the second day he came with a single red rose

둘째날 그는 빨간색 장미 한송이를 들고 왔지
 He said: "Will you give me your loss and your sorrow?"

그는 말했지. "당신의 상실감과 슬픔을 내게 주겠소?"
 I nodded my head, as I lay on the bed

나는 침대에 누우며, 고개를 끄덕였어.
 "If I show you the roses will you follow

"내가 장미들을 보여준다면, 나를 따라오겠소?"

 

On the third day he took me to the river

사흘 째 되는 날, 그는 그녀를 강으로 데려갔어.
 He showed me the roses and we kissed

그는 나에게 장미들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키스를 나누었지.
 And the last thing I heard was a muttered word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속삭이는 단어였어.
 As he knelt  smiling above me with a rock in his fist

그는 바위 하나를 손에 든 채, 내 위로 미소 지으며 무릎을 굽혔지.

 On the last day I took her where the wild roses grow

마지막 날에 나는 그녀를 들장미가 자라는 곳으로 데려갔지.
 And she lay on the bank, the wind light as a thief

그리고 그녀를 강둑에 눕혔어. 바람은 도둑처럼 가벼웠지.
 As I kissed her goodbye, I said, "All beauty must die"

내가 그녀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면서 말했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죽어야해."
 And lent down and planted a rose between her teeth 

그리고 나는 아래로 기울여 그녀의 치아 사이에 장미 한 송이를 심었지. 

 

"3분정도 분량의 팝송을 쓰는 것은 300페이지 분량을 소설을 쓰는 방법을 배울 최고의 학교다. 나는 이야기를 좀 더 길게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노래 속에 집어 넣었으면 하는 것을 좀 더 많이 말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요 네스뵈는  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는데, 자신의 밴드에서 가사를 썼던 이력 때문일까, 그가 작품 속의 중요한 대목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이 이처럼 절묘하다.

 

"박쥐를 쓰면서 새벽에 일어나 하루에 열두시간씩 쓰면서 나는 서핑(파도타기)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전적으로 균형에 관한 문제였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이야기를 결론으로 가져 가야 했다. 해리는 그런 방식속에서 태어났다. 시리즈물로 기획되었던 캐릭터가 아니었다. 나는 세번째 소설 [레드브레스트]를 쓰면서 해리 홀레의 인생, 성격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에게 무슨일이 일어날지,그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했다." 네스뵈는 [박쥐]와 해리홀레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직은 작가도 해리홀레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 개인적으로 해리 홀레의 이런 덜 다듬어진 면이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이 작품은 한바탕 쏟아져내리는 소나기처럼 일필휘지로 쓰여졌던 작품. 그래서 출판사에서 작품 완성에 얼마나 걸렸냐는 질문에 작가는 민망해서 '1년 반'이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을 정도였다. 

 

 

 

 

 

 

 

(프린스의 [Diamonds and Pearls] CD, [Purple Rain] LP 그리고 [네메시스]..)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시디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었다. 가성이 흘러나왔다. 프린스의 'Thunder'였다. 옆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한 쪽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볼레르는 모른 척하고 음량을 높였다. 노래. 후렴. 노래. 다음 곡은 'Pop Daddy'. 볼레르는 다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중략)..프린스가 한창 'Diamonds and Pearls'를 부르고 있을 때 보고가 들어왔다. (p.477)

 

이번에 출간된 [네메시스]에도 프린스의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톰 볼레르 때문에 프린스의 음악이 많이 등장한다. Prince의 열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1991)인 [Diamonds and Pearls] (사진상의 시디)의 Track 1(Thunder)부터 Track 3(Diamonds and Pearls)까지가 순서대로 네스뵈의 글에 묘사되어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가성이 스피커에서 슬그머니 새어나왔다.

...I only wanted to be some kind of a friend, I only wanted to see you bathing in purple rain.. (난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자주색 빗물에 젖은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프린스. 암호명 프린스. ([레드브레스트] p.363)

 

 

"시디네요." 그녀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냥 시디가 아니지. 'Purple Rain' 이야. 들어보면 내말이 무슨 뜻인지 알거야. ([네메시스] p.504)

...'When Doves Cry'의 첫 소절이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베아테는 음량을 줄였다. ([네메시스] p.507)

 

 

삐하는 신호음. 외이스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삐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벌써 죽은 것일까?  삐소리는 선율을 만들었다.

퍼플레인(Purple Rain). 프린스. 그것은 휴대전화의 디지털 신호음 벨소리였다. ([데블즈 스타])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sorrow
I never meant to cause u any pain

당신에게 슬픔을 안겨 주려고 한게 아니었어요
당신에게 어떤 고통을 주려고 한게 아니었어요


I only wanted to one time see you laughing
나는그저 당신이 웃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어요

 


I only wanted to see you laughing
in the purple rain Purple rain, purple rain

나는 당신이 보라빛 비 속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보라빛 비 속에서

 


I only wanted to see you bathing in the purple rain
나는 그저 보라 빛 비속에서 빗물에 젖는 당신의 모습이 보고 싶었죠

 


I never wanted to be your weekend lover
I only wanted to be some kind of friend
주말에만 사랑을 나누는 그런 사이는 되고 싶지 않아요
난 그저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Baby I could never steal you from another
It"s such a shame our friendship had to end
다른 사람의 연인인 당신을  훔칠 수는 없었죠.
우리의 우정이 끝나야만 한다는게 너무도 안타까워요.

 


Purple rain, purple rain
I only wanted to see you underneath the purple rain
보라빛 비, 보라빛 비

보라 빛 비 아래서 비를 맞는 당신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Honey I know,
I know I know times are changing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알아요.
때는 바뀌기 마련이란 걸 알아요

 


It"s time we all reach out for something new
That means you too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는 걸 알아요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You say you want a leader
But you can"t seem to make up your mind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당신은 마음의 결정을 못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I think you better close it
And let me guide you to the purple rain
그건 단념하고
제가 당신을 보라빛 비속으로 인도하게 허락 해 주세요

 


Purple rain, purple rain
If you know what I"m singing about up here,
보라빛 비, 보라빛 비..
내가 여기서 부르는 노래를 안다면

 


c"mon raise your hand
Purple rain Purple rain
어서 손을 들어 보세요.
보라빛 비, 보라빛 비..

 


I only want to see you
Only want to see you in the purple rain
그저 당신이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보라빛 비를 맞는 당신의 모습을요

 

 

뭐니 뭐니해도 '프린스'라는 별명을 가진 톰 볼레르의 메인테마는 퍼플 레인이다. (사진상 뒤에 보이는 LP) 퍼플 레인은 부기해 놓은 것 처럼, 요 네스뵈의 오슬로 3부작인 [레드브레스트]-[네메시스]-[데블즈 스타]에 전부 등장한다.이 곡을 작곡한 프린스 자신이 보라빛 비는 '세상의 종말'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파란하늘에 붉은 색 피가 있을 때, 보라빛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말의 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보라빛 비를 통해서 당신의 믿음이나 신으로 하여금 당신을 이끌어가게 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세상의 종말'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곡과 잔인하고 교활한 톰 볼레르는 썩 어울린다.

게다가 이 곡[퍼플 레인]이 원래는 어린시절 자신을 때리던 아버지에 관한 곡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당시에 양성애적 성향을 보인 어린 프린스를 매질하며 정상적으로 돌려보려 노력했던 아버지와의 경험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 [퍼플 레인]이란 것이다. "보라빛 비"의 "보라빛"은 아버지에게 맞아서 보라빛으로 멍든 눈이며, "비"는 그 눈에서 흐르던 눈물을 상징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가사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sorrow (당신에게 슬픔을 주려 한게 아니었어요)/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pain.(당신에게 고통을 주려한게 아니었어요.)..를 통해 아버지가 그에게 가한 폭력이 원래는 그를 돕기 위한 마음에서 행한 것이란 것을 보여준다.

 의도가 어찌되었건, 이 노래는 고통스런 유년의 신체적 학대에 대한 기록이다. 어린날 프린스의 정신과 몸에 새겨진 상흔을 누설하는 이 곡을 요 네스뵈가 톰볼레르의 테마로 삼은 것은 꽤 설득력이 있다. 물론 '퍼플 레인'이 프린스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겠지만.

Rain(비)는 상징적으로는 슬픔(눈물과 연관), 인생의 어려움(raniny days)과 공포, 그리고 일종의 정화를 나타내는데 이 또한 살인자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슬픔과 공포와 정화..무엇인가 비정상적인 인물의 존재양식에 동반할 듯 한 이미지들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rain이 발음이 똑같은 reign(통치,군림)의 말장난(pun)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프린스'라는 이름 자체가 왕족의 이미지를 풍기는데다가, 가수 프린스가 즐겨 입는 왕족풍의 보라색 옷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reign(통치,군림)이라는 단어와 동반하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힘'이라서 오슬로 3부작에서 '톰 볼레르'가 주던 이미지가 겹쳐졌다. 자동차와 무기광이며 (볼레르가 자동차 다음으로 좋아하는 화제가 총이었기 때문이다.([레드브레스트]p.354), 여색을 밝히던(볼레르에게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은 그가 이미 찼거나, 차는 중이거나, 차기 직전의 여자들이었다([레드브레스트]p.353) 볼레르에게 있어서  "I only wanted to see you bathing in purple rain (reign)-당신이 보라빛 비(통제) 속에서 적셔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라는 가사는 그저 난 너를 내 힘의 지배 아래에 두고 싶다는 뜻으로 전달될 뿐이다. 

 요 네스뵈는 [레드브레스트]를 쓰면서 마침내 자신의 우주를 '오슬로(Oslo)'로 옮기게 된다. 요 네스뵈에게 있어서 오슬로는 마이클 코넬리의 로스엔젤레스이며, 프랭크 밀러의 신시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오슬로 사건의 한 축을 담당하는 '톰 볼레르' 그리고 그의 취향이 반영된 '퍼플 레인'에 대해 알아본다면, 작가가 우리를 이끌어 가려는 공간으로 좀더 충실하게 가 닿을 수 있을 듯 싶다.

 

 

[박쥐]와 해리 홀레에 대한 이모 저모

 

 

(철저하게 개인적인 조사를 토대로 쓴 글입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박쥐(The Bat)]의 영어 번역본 출간이 늦어졌던 이유

 

해리 홀레 시리즈가 영어 번역될 때 시리즈의 첫 번째부터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배트 맨(The Batman)]과 두 번째 [바퀴벌레(The Cockroaches)]가 각각 오스트레일리아와 태국에서의 해리 홀레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노르웨이가 아닌 타국에서 활약하는 노르웨이 형사를 그리고 있어 작가 스스로도 영어권 최초의 번역 소개작으로는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했던 거다.  스칸디나비아 독자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 이야기는 흥미를 줄 수 있었지만, 비(非) 스칸디나비아 독자들은 오슬로와 베르겐의 어둡고 서늘한 거리에서 활약하는 노르웨이 형사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아마도 해리 홀레에게(혹은 영국쪽의 편집들에게) 노르웨이 인의 시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1번 타자가 되는 것이 영 께름칙했을 듯 하다. 게다가 시리즈의 세 번째 [레드브레스트(The Redbreast)], 네 번째[네메시스(Nemesis)], 다섯 번째 작품 [악마의 별(The Devil's star)]에 앞 이야기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작가 스스로가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분들이 분명 계시겠지만) 다섯 번째 작품 [악마의 별]부터 출간하는 조건으로 판권을 팔게된다.(영국 출간 (2005)) [악마의 별 (The Devil's Star)]이 네스뵈의 영국 공습을 위한 첫 번째로 선택된 이유는 작품 자체의 질이 높기도 했지만, 세 번째 작품인 [레드브레스트(The Redbreast) 영국 출간(2006)]의 내용이 다소 무겁고 어두워서, 처음으로 해리 홀레를 시작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출간된지 15년만에 [The Bat]는 영미권 독자들을 찾아가게 된다.

작가가 되기 이전의 요 네스뵈

 

네스뵈는 몇가지 다른 진지한 직업에 관심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홀레 시리즈를 썼다.

그는 축구를 시작했지만,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양쪽 무릎의 인대가 망가져서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부상당하기 전까지, 열 일곱살이었던 네스뵈는 EPL의 토트넘 핫스퍼에서 뛸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플랜 B(차선책)로 그는 경제학을 공부했고, 90년대 초에 주식 중계인으로 일했다. 그러나  창조적인 정신을 억누르기는 힘들었기에 밤에는 동생과 함께 결성한 록밴드에서 연주와 노래를 했다.  "우리는 지역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짜 맥주를 마시기 위해 돈을 받지 않고 공연했지요. 우리는 매주 밴드 이름을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밴드가 연주하는 걸 알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형편없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누가 연주해?'라고 물으면, '그 녀석들이야'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밴드명은 'Di Derre'가 되었습니다. 노르웨이 말로 Di Derre는 '그 녀석들(those guys)'이거든요."

Di Derre는 1년 후에 음악 투어를 하기 시작했고, 네스뵈는 밴드에서 노래와 가사를 썼다. 밴드 결성 2년 후에 발표한 앨범은 노르웨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갑작스레 팝스타가 된 네스뵈는 한 해에 180회의 공연을 할 정도로 음악에 시간을 쏟아 부었다. (한창 때의 Di Derre는 노르웨이에서 '아하(A-ha)'다음으로 존재감있는 밴드였다고 술회한다. 지금은 더이상 레코드를  발표하지 않지만 여름에는 취미로 공연한다고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네스뵈는 휴식이 필요했고, 그래서 날아간 곳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였다. 이 곳에서 그는 최초의 소설을 쓰게 되고, 이것이 해리 홀레 사가(saga)의 시작이었다.

최초로 [박쥐[The Bat)]를 썼을 때, 친구들이 놀랄거라고 예상했던 네스뵈는 오히려 '작가가 되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렸냐'는 말을 듣는다. 축구선수나 밴드 생활을 했을 때는 놀라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작가로서의 성공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정도로 네스뵈의 작가적 재능을 숨길 수 없었던 셈이다.

 

해리 홀레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오스트렐리아의 시드니로 가는 30시간 동안의 비행 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밴드 생활을 접고 오스트렐리아로 떠나는 네스뵈에게 알고 지내던 출판사 여직원이 '밴드'에 대한 책을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완성된 작품은 180도 분위기가 다른 '해리 홀레' 이야기였다고.)

홀레는 -요 네스뵈에 따르면-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순수한 사람에서 (해를 거듭하고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어두운 쪽으로 변해 간 캐릭터라고 한다. 자신이 쫓는 범죄자에 가까워지게 된 것. 따라서 시리즈의 이야기도 점점 더 어두워 질 수 밖에 없었다. 작가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는 (완벽하지 않은) 그의 스타일이 맘에 든다고 밝힌다. 요 네스뵈는 [레드브레스트]를 쓸 때까지 그가 누군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제대로 된 그의 실제적인 모습은 3편인 [레드브레스트]부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해리 홀레의 삶에 대해서 잘 알게 되어 이제는 그가 좋은 친구같다고 이야기 한다.

 

 

[박쥐(The Bat)]

 

네스뵈에게는 캔버라의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들은 몇 주간 오스트레일라 여행을 함께 했다. 함께 하던 친구는 떠났지만, 당시 37세였던 네스뵈는 몇 주를 킹스 크로스에 있는 작은 호텔방에 머무르며, 그의 첫 번째 소설을 써내려 갔다. 14시간에서 18시간에 이르는 강행군.

 

"전 그저 쓰고 또 썼습니다. 그리고 배고픔과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같은 방해물에 짜증이 났죠. 제 인생에서 최고의 몇 주였습니다."

-요 네스뵈, 첫 소설 [박쥐(The Bat)]에 관해서.

 

몇 년전 자신의 처녀작인 [박쥐(The Bat)]를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서 다시 읽었던 요 네스뵈는 15-16세때 썼던 일기를  몇 년 후에 다시 읽을 때의 민망함이 있을것이라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오히려 그 신선함에 기쁘고 즐거웠다고.  

 

 

요 네스뵈가 책을 쓰는 방식

 

각각의 책들은 거의 똑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요 네스뵈는 우선 5 페이지 정도의 시놉시스를 쓴다. 그런 다음에 20 페이지, 그 후에 등장인물들의 말하기 패턴을 확실히 획득하기 위해, 대화의 핵심 단편(斷片)들이 포함된  80-100 페이지정도로 확장된 스케치를 만든다. 그 다음 최초의 완전한 초고를 쓴다. 그런 후 두 번째 초고를 완성한다. 그런 후에야 요 네스뵈는 믿을 만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읽게 하고 손볼 곳은 없는지 묻는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책은 완성되고, 출판되기 까지 다시는 읽지 않는다.

유일하게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 예외적으로 다시 한번 읽은 책이 바로 [The Bat]였다.

"왜냐하면, [박쥐(The Bat)]는 제 최초의 책이었기 때문이죠." 요 네스뵈는 잘라 말한다.

 

 

 

영문판 출간시 '박쥐인간(The Batman)'에서 '박쥐(The Bat)'로 바뀐 이유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시작을 알리는 “Flaggermusmannen”는 박쥐인간 (The Batman)을 뜻한다. 하지만 영미 권에는 제목을 "The Bat"으로 바꿔서 공개 되었다.  요 네스뵈는 "박쥐인간(a batman)"에 관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전설에서 이 책의 제목을 정했지만, "배트맨(Batman)"이란 슈퍼 히어로물의 판권을 갖고 있는 워너브라더스(Warner Brothers)사는 원제를 그대로 영역한 Batman이란 제목을 허락하지 않았다.

요 네스뵈는  박쥐인간에 관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전설이 워너 브라더스 사의 배트맨보다 4만년이나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는 후문. 그리고 편집자들은 필경 더 유명한 다른 '배트맨'과의 혼동을 피하기 싶었을 것이다.

과연 국내 번역본은 이 작품에 어떤 제목을 붙여서 출간할지 궁금하다. 요 네스뵈의 의도를 살린다면, [박쥐인간]이 가장 적절할 듯 싶은데...[박쥐]? [더 뱃]? [배트맨]?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과 해리 홀레의 상관관계

 

배트맨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의 일부는 배트맨의 영향을 받았다고 작가는 고백한다.(정의감, 결코 포기하지 않는 면, 특히 충동적이면에서)  요 네스뵈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해리홀레'(Harry Hole)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 당시, 홀레의 일부는 '닐스 아르네 에겐(Nils Arne Eggen)'이라는 노르웨이의 괴짜 축구 코치에서, 일부는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배트맨(Batman)의 조합물이었음을 밝힌다.

(한 인터뷰에서 네스뵈는 가장 좋아하는 가공의 영웅으로 '배트맨'을, 가장 좋아하는 악당으로 '조커'를 꼽았다. 프랭크 밀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거기에 더하여 작품을 쓸 수록 작가 본인의 이미지가 주인공인 홀레에 투영되어갔다.(이것은 피할수 없는 일.부지불식간에 작가는 해리 홀레에게 자전적인 요소를 심어넣게 되었다.정확히는 [레드브레스트]때부터.) 결국 해리 홀레는 Nils Arne Eggen이란 축구코치에 배트맨 그리고 요 네스뵈 자신을 뒤섞어 만든 인물인 셈이다.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의 탄생

 

작가는 첫 번째 책인 [박쥐(The Bat)]를 쓰면서, 깨끗이 닦아낸 서판을 갖고 시작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요 네스뵈는 해리 홀레를 기존 영웅들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쓸 것인가 (가령, 게이,성직자, 장애인등...),아니면  하드보일드하고, 거친 독불장군 스타일의 전형적이고 판에 박힌 타입으로 쓸 것인가를 고민했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요 네스뵈는 자신의 주인공을 외롭고, 알콜중독에, 여자를 좋아하고, 시니컬하면서 로맨틱한 인물로 창조했다. 작가는 이 모든 특징이  중년의 남자 형사에게 있어서 지독하게 상투적인 특징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이 때 작가는 자신의 역할 모델이었던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말을 떠올린다. "그 상투성을 껴안고,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라."

그렇게 상투성을 넘어서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우리가 열광하는 해리 홀레다.

 

해리 홀레라는 성과 이름의 유래

 

해리(Harry)라는 이름은 'Harry Hestad'라는 노르웨이 몰데(Molde) 출신의 축구 스타에서 따왔다.

요 네스뵈 역시 몰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Harry Hestad는 유년 시절의 영웅으로 삼았던 아주 좋아하던 지역 축구 선수였다.

(토튼햄 핫스퍼즈에서 축구 선수로 뛰길 꿈꿨던 네스뵈답다.)

한편 '홀레'라는 성(姓)은 할머니가 살던 곳의 지역 경찰관의 성에서 가져온 것.

'홀레'에 관한 요 네스뵈의 다음 말을 참조 하라.

 "홀레(Hole)'는 할머니가 살던 곳의 지역 경찰관의 성이었다. 저는 그 경찰관 (Mr.Hole)을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제가 꼬마였을 때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항상 말씀하시곤 하셨다. 만약 너희가 8시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홀레 아저씨가 나타나 잡아갈거야,라고. (그당시) 난 그 홀레 아저씨를 진짜 크고 무서운 사람으로 상상하곤 했다."

네스뵈는 어린 시절 홀레 경관을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고, 수년 후에 한 장례식장에서 홀레 경관을 만났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신부님이 그가 홀레라고 말했을 때, 먼저 네스뵈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휴, 아직 8시가 안돼서 다행이다'였다고.

노르웨이 발음은 '훌-레(HOOL-ler)'에 가까운 듯 한데, 대부분의 영미권에선 'Hole'이 '구멍'을 뜻하는 단어라서 '호울'로 발음한다.(그래서 영미인들에게는 재미난 성이다) 혹자는 노르웨이인들에게 Hole는 흔한 성이기때문에, Hole(구멍)이 갖고 있는 '공허함이나 텅비어있음 (emptiness)'같은 함축적 의미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 홀레는 혼자 있기를 즐기는 사람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골초에 알콜중독자... 그리고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며, 인간관계를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점을 들어 작가의 작명 센스를 상찬한다.

 

[The Bat]에서도 호주인들이 자신의 성 Hole를 aperture(구멍,틈)나  orifice(입구, 구멍)과 헷갈릴가봐 아예 자신을 Mr. Holy로 소개하는 장면이 있고, 한동안 내내 Mr. Holy라고 불리운다.

"Hole"은 노르웨이에서 흔한 성(surname). 노르웨이에는 바이킹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갈 정도로 유서깊은 Hole이라는 오래된 마을이 있는데,그 의미는 '둥글고 고립된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만약  당신이 Jo Nesbo를 좋아한다면, Thomas Johansen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최근 Thomas Johansen이란 필명으로 작품을 낸다고 발표한 요 네스뵈.

마치 Stephen King이 Richard Bachman이란 인물과 동일시 되듯이(스티븐 킹은 리처드 바크만이란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출간했다면, 요 네스뵈는 대 놓고 필명을 미리 공개한 점이 큰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우리는 '요 네스뵈'란 이름 외에도 '토마스 요한센'을 기억해야 할 듯 싶다.

([The Bat]를 쓸 당시에도 요 네스뵈는 이미 자신이 노르웨이에 유명 밴드의 보컬로 알려졌다고 판단, 출판사에 Kim Erik Lokker라는 필명으로 원고를 보냈던 적이 있다. 이 당시엔 결국 본명을 쓰기로 결정해서 필명으로 책이 출간되진 않았다. Kim Erik Lokker는 [레오파드]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과학 수사과 요원)으로 재활용 된다.) 

 

2014년 가을에 나오게 될 [Blood on Snow]와 그 후속편인 [Blood on Snow2](More Blood-2015 봄 출간 예정)는 Jo Nesbo가 아닌, Thomas Johansen으로 출간 된다고 한다.  요 네스뵈 최초의 2부작 작품인 셈인데, 보스의 아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암살자가 그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어찌보면 상당히 진부한 소재인데, 요 네스뵈가 쓰면 뭔가 다른 질감이 나올 듯 싶다.이미 판권은 워너 브라더스에 팔리고 영화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이 작품에 디 카프리오가 공동 제작자 겸 주연을 맡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쯤에서 떠오르는 것은..그럼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하려고 했던 [스노우맨]은? 소식통에 따르면 [스노우맨]은 여전히 계획중인데, 바뀐점이 있다면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에서 '제작자'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되었다는 소식.)

게다가 2015년 가을 쯤 선보일 요 네스뵈의 또 다른 소설 [The Kidnapping]에는 요 네스뵈 자신의 필명인 Thomas Johansen이라는 등장인물이 소설 속에서 납치 희생자가 된다고 하니 (이 작품이 해리 홀레 시리즈가 될지 안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요 네스뵈가 계획하고 있는 거대한 밑그림들이 벌써 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영화화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헤드헌터(Headhunters)), 그에 대하여 요 네스뵈는 "영화 시사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면 기분이 묘해 진다"면서 "그 작품이 좋은지 어떤지에 대해 물으면, 마치 마지막 환자가 좀 섹시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부인과 의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며 난감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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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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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작품

 

2012년 이래로 [스노우맨], [레오파드], [레드브레스트]같은  요 네스뵈(Jo Nesbo)의 걸작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한국 독자들의 책장 한켠을 차지 한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이제 요 네스뵈가 현존하는 스칸디나비아 크라임 소설의 대표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칸디나비아 느와르의 대표'...그동안 공개된 일급 작품들을 고려할 때 그에 걸맞는 합당한 자리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책을 펼쳐든 독자들은 일독 한 후, 자신들도 모르게 깨닫고 만다.

자신들이 읽고 싶던 책은 원래 이런 책이었다고...

(이런 상황은 미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Knopf 출판사는 (2011년기준) [스노우맨]의 경우 하드커버 1쇄를 6만부, [레오파드]는 6만 5천부, 그 다음 작품인 [팬텀]은 7만 5천부로 꾸준히 늘리면서, 요 네스뵈에 대한 판돈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번역된 외국어 소설에 대한 거부감으로 잘 알려진 미국에서 조차 그의 작품은 굉장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이제 요 네스뵈는 '스티그 라르손'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획득했다. 요 네스뵈의 책은 그가 오스트레일라 여행 후 [박쥐]를 쓴 이래로, (2012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4천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

 

그리고 평균 600페이지 이상을 넘어가는 그의 두툼한 책들이 끔찍하리만치 짧다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에 머리를 쳐박고 몇 시간을 몇 분처럼 흘려보내는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던 시간.

'주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 말은 요 네스뵈를 읽는 독자라면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는 주의사항일 것이다.

 

안달이 난 독자들은 한 마음으로  요 네스뵈의 다른 책이 국내에 나오기만을 학수고대 했다.

그 기대와 염원에 대한 화답으로 마침내, 2014년 작가의 방한에 맞춰 기념비적인 데뷔작[박쥐]와 스릴러적 재능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걸작 [네메시스]가 공개되었다.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고, 기다렸던 작품이 두 권이나 출간되다니..어쩐지 인생이 한 뼘쯤은 행복해진 기분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기뻐해야할 지, 그의 새로운 책과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할지, 독자들은 그야 말로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이미 단단했던 독자층이 좀 더 결집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구 계층의 확대와 발굴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게 되었다.

 

 

 

요 네스뵈의 에이전트인 Niclas Salomonsson은 자신의 중간이름(middle name)을 작품의 주인공인 해리 홀레(Harry Hole)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에릭(Erik)에서 해리(Harry)로 바꿨다는데,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이름에도 미들네임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사람을 나는 여럿 알고 있다. 간명하게 말하면 해리 홀레라는 주인공이 주는 매력에 저항하기란 어렵다는 이야기.

 

 

 

압도적인 도입부와 오슬로 그리고 소르겐프리

 

이 작품은 세 가지 큰 사건의 강줄기가 지나가면서 퇴적시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삼각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세가지는 오슬로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은행 강도 사건, 해리 홀레의 전 여자친구 '안나 베트센'와 연관된 사건, 전 편[레드브레스트]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해리 홀레의 동료 '엘렌'과 관련된 사건이다. (이렇게 이 정도로 두루뭉수리하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아직 이 작품과 전작 [레드브레스트]를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스포일러를 극도로 자제하기 위함이다. 스포일러. 이제는 예의없음을 벗어난 하나의 범죄행위. 그런데 이런 스릴러의 속성상, 약간의 스포일러 없이 줄거리를 쓸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가위 바위 보를 하지 않고는 묵찌빠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딜레마.  민감한 독자들은 'OO의 죽음'이라는 줄거리조차 읽고 싶은 기분을 망칠 수 있다.시시콜콜한 세부사항을 알려주는 리뷰어들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나는 그런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공항의 마약 탐지견처럼 상상속의 스포일러 탐지견이  스포일러를 작렬한 그 글 앞에서 미친듯이 흥분하여 컹컹 짓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 

다만 작품의 초반부에 노르데아 은행 안에서 복면 은행강도와 은행원 '스티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은 -극도로 스포일러에 예민한 독자들에겐 미세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꽤나 압도적인 오프닝 장면이었다는 ​점은 밝히고 싶다. 요 네스뵈에 따르면, 이 장면이 [네메시스]라는 작품의 나머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열쇠가 되는 부분이며, 이 초반 10 페이지를 위해서 (작가생활을 통틀어 처음으로) 꽤 오랜시간을 정성들여 계획을 짜고 품을 들였다고 한다.

 

오랜 공을 들여 쓴 덕분일까, 이 부분의 문장들은 마치 숫돌로 막 갈아서 잘드는 칼날 같다. 신선한 쇠냄새가 날 정도. 독자는 노르데아 은행에서 복면강도의 총구 앞에 선 '스티네'가 느꼈을 감정과 맞닥뜨리게 된다. 25초안에 돈을 꺼내 담는 것을 끝내지 않은면, 스티네의 생명이 위험하다. 짹깍, 짹깍..스티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좋은 칼 하나라든가 예쁜 그릇 같은 것이 살림에 관심많은 여자를 기쁘게 하듯, 이런 잘 만들어진 장면 하나만 있어도 우리 같은 스릴러 독자들은 기쁘다. 작가는 은행강도 씬을 위해 작품을 쓰기 전 은행강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 사실성을 높였다.

 

오슬로. 작품의 주된 배경이다. 작가는 자신에게 익숙한 지리적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야기를 구축해나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친밀한 지역이지만,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건물과 거리 사진을 찍으며, 몇번이고 작품의 배경이 된 주변을 돌며 정확성을 더했다고 한다. '쇠르세달스바이엔 가에 있는 경찰서가 제일 가까워. 통행료 징수소 지나면 바로 나오는데 은행에서 고작 800미터 거리지. 그런데도 경보기가 작동한 순간부터 은행에 도착할 때까지 3분 넘게 걸렸어.(p.41)" 라고 요 네스뵈가 묘사했다면, 실제로도 그런 것이다. 나는 책의 앞에 프린트 되어 있는 오슬로 중심부 지도를 살펴보며, 자전거를 타고 소르겐프리 가와 인두스트리 가를 돌며 꼼꼼하게 메모를 하는 작가를 상상했다.

 

 "소르겐프리는 크리스토프 왕의 소유였던 궁전 이름이라네. 아이티의 왕이었는데 프랑스 군의 포로로 잡혔을 때 자살했지. 소르겐프리 성은 상 수시 성이라고도 블렸는데, 둘 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 소르겐프리 가는 만사 태평한 거리라는 뜻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크리스토프 왕은 신에게 복수한답시고 하늘에 대포를 쐈잖나. 작가인 올라 바우에르가 이 거리에 대해 했던 말도 들어봤지? '소르겐프리가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p.129)"

 

[네메시스]의 원제가 [소르겐프리]임을 상기할 때, 이 구절을 읽은 나는 요 네스뵈가 어쩌면 이 대목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문장 속에 이 소설의 요체라 할 수 있는 핵심 어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만사 태평'이라는 말은 상당히 반어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요 네스뵈는 자신의 전담 영문 번역가인 돈 바틀렛의 번역이 훌륭하지만, 언어란 복잡한 것이기에 노르웨이어에서 영어로 번역되면서 사라지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작품에서 심어놓은 '유머'라며 아쉬워한 적이 있는데, 혹시 이런 제목도 익살적으로 들리도록 의도 된 것은 아닐지.

이것과 관련하여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소르겐프리]로 짓는 바람에 발생한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지만, 영국에서 번역되는 책들은 문화를 고려하여 영미권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대체로 새로운 제목을 갖게 된다. 빈티지(Vintage) UK 출판사의 편집장인 Briony Everroad는 Jo Nesbo의 "네메시스" (원작의 제목은 [Sorgenfri (근심없이, 슬픔없이라는 뜻)])를  가장 힘들었던 제목짓기 작품으로 꼽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르겐프리 거리(Sorgenfri).."근심 없이(Without a Care)"가 도무지 영어권 책 제목다운 느낌이 살지 않아서 "Easy Street (편안한 거리)"라고 좀 더 부르더운 제목으로 바꿔 보았지만, 스릴러 제목으로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네메시스] 출간 당시는 영국의 독자들에게 요 네스뵈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시절이라, 독자들에게 '범죄의 냄새가 풍기는 메세지'를 줘야만 했기에 이 책은 몇 개월 동안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우스 오브 페인'은 이 작품 속에서 강도수사과에 배정된 방으로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연구, 편집, 복사하는 곳이다 )

최종적인 제목으로 채택된 [네메시스]는 작품과 꽤 잘어울렸다고. 요 네스뵈의 전담 번역가인 돈 바틀릿(Don Bartlet)과 편집장이 오랫동안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민한 보람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전혀 무섭지 않고, Walking in the Air란 곡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과 동명 타이틀인 [스노우맨] 역시 선택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

 

 

 

 

 

노르웨이의 오슬로... 말하자면, 서구 독자들이 좋아하는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랜드를 일컫는 말)' 본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 지역이 밤이 며칠간 지속될 수 있고,시체를 숨길 수 있는 고독한 장소가 많다는 이유로 살인하기에 완벽한 장소라는 편견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회색빛 우울함이  도시 전체에 착색되어 있고 뼈의 심지까지 파고 드는 추위...이런 요소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스릴러에서 장소 자체가 또 다른 등장 인물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요 네스뵈는 초기 오슬로 3부작 ([레드브레스트]-[네메시스]-[데블즈스타])와 [스노우맨]등이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초기작품 [박쥐]와 [바퀴벌레]의 경우 시드니와 방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작가는 오슬로를 작품에 전혀 이용하지 않았었다. 일부러 자신의 도시 오슬로와 거리 두기를 한 느낌까지 있다. 오슬로가 작품의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네메시스]였고, 그 정점은 그 다음 작품인 [데블즈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오슬로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슬로는 유럽의 외곽같은 느낌의 도시지만,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많이 일어나며, 그것이 범죄 소설에는 꽤 잘 들어맞는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오슬로라는 도시의 생생한 디테일이 작품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데블즈스타]는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네메시스]에는 노르웨이 뿐 아니라, 브라질도 배경으로 짧게 등장하는데, 이 곳도 작가의 경험에 기인한다. 17살이 되고 나서야, 해외 여행을 하게 된 네스뵈가 떠올린 가장 좋았던 해외 여행은 바로 젊은 시절 갔었던 브라질 여행이었다고. (지금은 흔한) 여행가이드책도 없이, 오로지 지도에 의지하여 다녀왔다고 한다.

 

 

(요 네스뵈는 내부의 적에 대한 영감을 '내안의 살인마'로 부터 얻었다)

 

본격 스릴러에 다가선 작품- 탄탄한 플롯과 뜻밖의 진실

 

잘 알려지다시피, 오슬로 3부작은 경찰 내부의 적(敵)과 '엘렌'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것이 큰 줄기를 이루는데, 최종적인 해결은 다음 권인 [데블즈 스타]에서 이루어질 듯 싶다. 경찰 내부에 괴물이나 정신병적인 악당이 등장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네스뵈는 '내부의 적은 외부의 분명한 적보다 더 무섭다. 나는 짐 톰슨과 그의 작품 [내 안의 살인마(Killer inside me)]의 팬이다. '내 안의 살인마'는 다소 싸구려 느낌이 나는 제목이지만, 뭔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내게 자신 뒤에 숨은 내 안의 살인마'라는 개념이 두려웠다. 나는 사회 안에 다른 사회를 갖고 있는 밀폐된 환경에 대해 쓰는 것도 좋아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공교롭게도 [네메시스]에는 '짐톰슨'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짐 톰슨의 책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23페이지에서 38페이지까지 찢겨나가고 없었다." ([네메시스]p.159) 작가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까진 짐 톰슨(Jim Thompson)과 로렌스 블록(Lawrence Block) 두 명을 제외하곤 범죄 소설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 3편 격인 [레드브레스트]는 봉인해 버리고 싶었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노르웨이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춘 작품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을 오가며 작품이 전개되는 큰 얼개의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읽어도 흥미롭고, 스릴러적인 측면으로 읽어도 좋은 작품.

그러나 그 후속작 격인 [네메시스]는,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오롯이 '진짜 범죄 스릴러'에 초점을 맞춰서 쓴 작품이라는 점이라 전작과는 확실한 변별성이 있다.  ​좀더 좁은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지만, 사건은 복잡하고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작가가 1년간이나 공을 들여 플롯을 짰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후반부 장악 능력이 대단하고, 몇 번의 반전이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부자연스럽게 뒤틀리지 않는다. 이 두툼한 책이 서스펜스, 속도, 텐션, 흥미를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 하면서 페이지마다 흥분을 선사하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확실히 스릴러라는 단어가 지닌 엄밀한 의미에 가닿은 작품이 아닐까.

 

특히 [네메시스]의 플롯 사이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레드 헤링들이 독자로 하여금 소설 말미에 충격적 진실의 문이 열어젖혀질 때, 오소소 소름을 돋게 만든다. 레드 헤링 (Red Herring).... 붉은 색을 띠는 훈제 청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독특하고 강한 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사냥개의 후각을 혼돈시키기 위해 탈출한 죄수들이 자기 몸에 레드헤링을 비볐다고 한다. 지금은 " 진짜 사실로 부터 사람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혼란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추리/스릴러 소설을 다룬 영미권 리뷰를 읽다보면 이 "레드 헤링"이란 단어가 남국 휴양지의 하와이언 셔츠처럼 흔히 등장한다. 이러한 장르 소설에는 작가가 독자를 뒤통수를 치기위해, 거짓 강조나 묘사적인 속임수를 통해 진짜 범인인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물이 반드시 등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레드 헤링으로 사용해서) 범인이라고 추정했던 인물이, 작품 중간에 갑자기 살해당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를 비롯해서,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독자들이 레드 헤링(훈제 청어)를 굽는 냄새에 이끌려 미치듯이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냥개 떼중 한마리가 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여우 사냥에 속절없이 실패한 것은 물론이다. 모든 냄새를 뒤덮어 버리는 연막탄 같은 훈제청어를 기막히게 사용한 요 네스뵈의 필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바로 이 작품이다. 필요에 의해서 이 책을 재독했을 때, 작가가 곳곳에 배치해 놓은 실마리들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네메시스-복수의 여신 :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복수심 그리고 보복 전쟁

 

BC 600년, 로마인들은 직접 갚아주는 복수 체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이었던 복수를 공적인 업무로 바꿔 버렸어. 바로 이 여인이 근대 입헌국의 상징이 된 거야. 맹목적 정의. 차가운 복수. 우리의 문명은 그녀의 손에 달려 있지. 아름다운 여인 아닌가?(p.591)

 

 

네메시스-복수의 여신..이란 제목처럼, [네메시스] 곳곳에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편재되어 있다.(일부 옮겼지만,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으니 안심하시라)

복수 이야기는 고대 비극을 포함해서, 많은 문학 작품에서 차고 넘칠 정도로 단골 메뉴였는데,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공감했고 열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독자들이 '복수' 라는 테마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복수'가 모든 문화권의 보통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이나 절도 정도는 용서할 수 있지만, 딸을 강간하거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당신은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누구든 응징하고 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복수 능력'을 부단히 정교하게 다듬어 왔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 인간은 앙심을 품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복수와 응징. 그거야말로 학창 시절에 얻어맞고 다니던 땅꼬마가 훗날 억만장자가 되는 원동력이지.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은행강도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를 봐. 우리 경찰이야말로 차갑고 이성적인 응징으로 위장한 이 사회의 불타오르는 복수 아니겠어? " (p.257)

 

복수. 원시적이라고? 천만에. 복수는 사고하는 인간의 반사작용이야. 행동과 일관성의 복잡한 혼합물로, 지금까지 인간 외의 다른 종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수의 실행은 그 자체로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가장 복수심이 넘치는 사람만이 살아남았지. 복수 아니면 죽음. 서부 영화 제목 같지? 하지만 입헌국을 만드는 것은 보복의 논리라는 걸 명심하라고. 눈에는 눈,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서 불타거나 최소한 교수대에 매달린다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지. 복수는 기본적으로 문명의 기초야, 해리.

 (p.456)

 

 

요 네스뵈는 "인간만이 복수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아나?( Did you know that humans are the only living creatures to practise revenge? )"(p.131)라는 말을 하며, 복수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전형적인 특성임을 상기 시켜준다.

인류의 조상이 복수를 적응의 일환으로 선택한 이유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첫째, 인류의 조상에게 공격을 가했던  개체들로 부터 두번째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복수가 잠재적 가해자로 부터 애초에 그 의지를 꺽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복수가 인류 조상의 사회 집단에 '협력하지 않는' 구성원들을 벌하고 협력을 강요하는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처벌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복수는 우리를 정화시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인간의 영혼은 비극이 주는 연민과 공포로 정화된다고 했어."(p.258)

 

"자네는 이미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텐데. 그냥 정의가 최대한 수월하게 실현되도록 내버려 두지그러나." "복수는 안됩니다. 그게 우리 약속이었죠." (p.336)

 

이렇게 인류가 헤쳐나가야 했던 난관을 '복수심'으로 인해 해결했지만, 복수심은 인간 파괴성의 핵심이자 악행의 근원이기도 하다. 당장 신문만 펼쳐보아도 수 없이 많은 범죄의 동기가 '복수'라는 점을 쉽게 파악 하게 된다. 여기에서 역설과 모순이 존재한다. 어쩌면 요 네스뵈가 [네메시스]라는 작품을 쓰게 된 이유도 복수의 이런 속살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작가는 '전쟁의 동기로서 복수심의 역할' 쪽으로 관점의 확장을 도모한다.

 

 

"수십만 명의 피난민 아이들이 아프간의 모진 겨울을 견뎌 낼 수 없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국 병사가 하나가 살해당했다. 유가족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들은 복수를 원했다.(p".196)"

 

바로 이 대목.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그 테러를 자행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에 보복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이어서 2003년 3월 20일에 알 카에다 테러조직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이들을 돕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하여 사담 후세인을 정권에서 축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 군인을 투입하기 전에 융단 폭격을 통해 적지를 초토화하는 공격 방식을 보였다. 이런 무차별 공격에 의해서 죽은 민간인의 숫자가 -아이러니 하게도- 테러에 의해 죽음을 당한 희생자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응징을 위한 미국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도덕적으로 과연 합당한가하는 의문을 작가는 넌지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이런 당대성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기에, 불가피하게 이런 암울한 시대적 밑그림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 그러니까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어떤 가치를 상징하는 나라는 자국 내에서 당한 공격에 대해 복수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대표하는 가치를 공격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까요. 보복을 원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와 같은 연약한 시스템을 보호하는 길입니다. " 한쪽이 주장했다. "만약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가치 그 자체가 희생된다면요?"(p.158)

 

정의는 물과 같아서 언제나 제 갈 길을 찾아 흘러간다고. 그들은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가끔 위안이 되는 거짓말이었다. (p.443)

 

작가는 인간 개개인의 본성에 내재하는 복수라는 개념을 보복 전쟁으로 확대 시킨다. 그리고 '복수'가 국가간 발생하는 전쟁의 '원인'은 아니지만, 전쟁의 당위성(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보복' 개념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을 책 밖의 독자에게 던진다.

정의로운 전쟁이란 가능할까. 전쟁 당사국중 어느 편에 서냐에 따라 윤리적인 판단이 뒤바뀔수 있는데, 정당한 전쟁 명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는 '정의'와 '복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독자의 마음 속에 심어준다.  정의로서의 복수, 복수의 일종으로서의 정의..복수는 본능적인것이고, 정의는 이성적인것. 복수는 개인적인 것. 정의는 비개인적인 것. 복수는 순환이지만, 정의는 매듭짓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둘은 얼마간 서로 착종되어 있어 쉬 분리하기 어렵다.

 

작가는 '복수'라는 개념을 '자살'이라는 개념으로 횡단시키기도 한다.  '복수'와 '자살'의 유비관계를 드러내는 구절.

 

 

네메시스의 여신이야. 전쟁이 끝난 후에 베르톨 그리머가 가장 좋아했던 모티브였지. 복수의 여신. 그러고 보니 복수도 자살의 흔한 동기라네. 자신의 삶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누군가의 탓이고, 그러니 자살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거지. 베르톨 그리머도 자살했다네. 아내를 죽인 후에 말이야. 아내가 바람을 피웠거든. 복수,복수, 복수 인간만이 복수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아나? (p.131)

 

작품의 핵심이 관통하는 이 대목을 읽고, 처음 떠올렸던 것은 알베르 카뮈의 말이었다.

 

자살자는 형이상학적 면에서 괴로움을 당했기 때문에 자살한다.어떤 의미에서 그는 복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쉽사리 지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요 네스뵈가 쓴 위 대목과 카뮈의 이 말은 손을 맞잡고 있을 정도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와 밀착되어 있는 언명이라고 본다. 이 구절은 이 작품과 관련해서 곰곰이 생각해 봄 직하다. 마침 [네메시스]에도 알베르 카뮈가 인용된다. "알베르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철학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문제라고 했네."(p.126)

 

요 네스뵈에게 있어서 '복수'는 오랜시간 동안 곱씹었던 테마인듯 싶다. 이 주제는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데, 가장 최신작인 [아들 (The Son)(2014)]에서는 그 어떤 책보다 명백하게 다루고 있어 '복수'를 테마로 한 네스뵈 소설의 정점으로 읽힌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네메시스와는 차별화하기 위해, 사도신경(the Creed)의 개념을 포함시켰다고. 복수의 아들이 재림하는 것. (사도신경의  '그리로부터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올 것이다'..라는 부분이 핵심 키워드인 듯.)

"기독교의 윤리는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은 그들 모두를 대변해서 복수해주는 위대한 존재야.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 불에 타게 되리라. 그거야말로 일반 범죄와는 비교도 안되는 완전한 복수 행위지.(p.593)라는 말이 [네메시스]의 후반 부에 등장한다. 하므로 이미 사도신경의 개념은 [네메시스]에 그 씨를 잉태하고 있다. "그는 무언가 자신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자신을 숨겨주는 것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리라. 주님의 복수, 네메시스가 된 주님.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처벌과 정의. 혹은 처벌도 정의도 없거나. (p.172)"

[아들(The Son)]과 [네메시스(Nemesis)]는 배경과 장치는 달리하지만, -복수의 변주라는-같은 맥락으로 읽힐 듯 싶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작품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복수'라는 무거운 내용에 짓눌리지 않고, 이토록 멋지게 가공하여 풀어낸 작가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의미 없이 소비되는 장르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격을 선사한다. 깊이가 재미 옆에 나란히 자리한다고 할까.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변방에 머물렀던 스칸디나비아 느와르가 어느새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된 것은 순전히 이런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관심 덕택일 것이다.  

 

 

 

 

 

총평

독자들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다.

가장 재밌게 읽은 '요 네스뵈의 소설'에 대한 순위 매기기가 [네메시스]가 등장함으로써 재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을 1위에 올려야 할까. 실로 즐겁고도 어려운 고민이다. 개인적으로는, [네메시스]를 종독한 후, 이 작가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높아졌다. 어떤 작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감을 탕진하는데, 요 네스뵈는 읽는 작품마다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새로움을 선사한다.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의 4권에 해당하는 본작은 본격적인 해리 홀레 시리즈 여정의 시작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전 작품들과 차이점은 무엇보다 해리홀레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요 네스뵈는 레드브레스트(The Redbreast)]를 쓰면서 해리홀레가 누구인지를 작가 자신도 비로소 알았다고 말 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 작품인 [네메시스]에선 더욱 발전한 캐릭터로 살아있는 존재같은 인물의 생동감을 담아냈다고 느껴졌다. 작가의 분신으로서의 투영물이란 느낌도 좀 더 진해졌다. 

작가는 복수라는 자체가 함의하는 파괴적인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어, 복수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평이한 소설 언어로 풀어냈다. 일전에 네스뵈는 '악의 본질'에 대하여 이전에는 쓰여지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실적이고도 독특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야심을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에서도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네스뵈의 작품은 그저 납작하고 평평한 구조를 가진, 뻔한 장르 문학의 전형이 아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구역질날 정도의 평균성을 갖고 있는 대동소이한 스릴러들이 있는가. 재미나 지루함을 느끼기에 어정쩡한 작품들..그 책들이 망각으로부터 구제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철면피한 구태의연함 때문일 것이다.

읽어본 독자들은 느끼겠지만, 네스뵈의 작품은​ 기존의 스릴러들과는 다른 질감이 무엇이 있다. 이 작품은 '장르 소설'에 대해 삐딱한 편견을 갖고, 문전박대하는 독자들에 대한 도전이자 자극이다. 이쯤되면 네스뵈의 작품은 순수문학/ 장르문학이라는 편협한 이분법 구도를 교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독 후 새삼 느낀 것은 십 여년전에 쓴 작품이나 비교적 최근에 쓴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안정적이어서 균질성을 보장한다.​우연히 인터넷에서 2008년 노르웨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 20선이란 짧막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이 20선중 요 네스뵈의 책이 다섯 권이나 포함되어 있어서 놀랐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꾸준히 읽힌다는 것이 방증인 셈이다.

(참고 삼아  이곳에 그 책이름을 부기하면, 2위 [스노우맨], 10위 [헤드헌터], 12위 [리디머], 14위 [레드브레스트], 18위 [네메시스]이다)

​예술의 세계는 '질투라는 에너지로 이루어진 성운'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방광을 누르고, 동공은 크게 벌어진 채로, 상체를 책쪽으로 기울인 채로 몇시간이고 읽게 만드는 작품을 몇 년간 꾸준히 발표하는 요 네스뵈의 재능을 같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작가들은 필경 시기하고 샘 낼 것이다.

 

 

'재밌다'라는 어휘는 견고하게 축조되어 있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엔 너무 초라하고, 턱없이 힘이 없다. 이 작품의 재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더 강력한 다른 형용사가 필요할 것이다.

독자들은 이제 [네메시스]의 다음 권 [데블즈 스타]를 읽을 희망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그와 더불어 출판사 편집부는 안달이 난 독자들이 다음 권 출간을 서둘러 달라는 조바심 가득한 재촉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즐거운 불가항력이다.

 

 

 

 

 

독자들은 이제 [네메시스]의 다음 권 [데블즈 스타]를 읽을 희망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이번에 [네메시스]와 함께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1편인 [박쥐].

 

네스뵈가 창조해낸 형사 '해리 홀레'의 탄생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기에, 열성적인 네스뵈 팬이라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해리홀레 시리즈를 즐기기 위해선 무조건 구매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신선하다. 독자에게 알랑대는 느낌이 없어서 좋다. 그리고 이미 이 때부터 네스뵈는 음악에 민감한 자신의 귀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첫 작품을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면, 역시 밴드의 리더보다, 주식중개인보다 작가가 되어야 마땅하다.

 

 

 

 

 

 

사족 1.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1)

짐 빔의 등장

 

예의 이 책에도 해리 홀레 형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짐 빔 위스키가 등장해서 반가웠다.

알콜은 해리 홀레에게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의 약점) 같은 존재.

 데뷔작 [박쥐]에서 해리 홀레는 "자기만의 독을 발견하면 그것만 찾지 않나?(p.285)"라고 말한 후, 짐 빔을 선호하는데, [네메시스]의 여러 장면에서 짐 빔이 금빛 액체를 찰랑거린다.

이 작품에선 짐 빔을 도피처가 아닌, 벌 주기 위한 최종 수단이라고 의미부여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앞에 있던 콜라에 짐 빔을 보었고, 여자의 이름이 뭔지 신경쓰지 않았다. (p.37)

 

짐 빔을 마실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복통이 없는 대신 안개가 그를 감싸며 모든 감각을 둔화 시켰다.(p.103)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벌을 줘야만 죄책감이 해소되지. 자네가 절망에 빠졌을 때처럼 말일세, 해리. 자네의 경우, 술은 도피처가 아니라 스스로를 벌주기 위한 궁극적인 수단이야." (p.86)

 
 "진 드릴까요, 형사님?" "짐 빔 있습니까?" (p.466)

 

 

 

 

 

 

 

 

 

사족 2.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2)

열쇠라는 소재

열쇠...신비나 수수께끼의 세계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그런 세계를 해명하는 수단을 상징한다.

 

"오는 길에 비브스 가의 도어록 가게에 들러서 내가 주문한 열쇠 좀 찾아다 줄래? (p.49)"

 

그러니까 열쇠는 총 세개인 셈이지. 하나는 어제 이 아파트에서 나왔고, 하나는 전기공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세 번째 열쇠는 어디 있지?  (p.130)

 

열쇠란 열고 닫는 힘을 지닌 상징적인 물체다. 고대로부터 열쇠는 지식과 미스터리,시작과 호기심을 표상하는 물건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번 작품의 해결이 열쇠와 긴밀한 관계가 있어서 좋았다.   특히 국내 번역판의 표지에 열쇠가 등장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폴란드 판본의 [네메시스]는 피묻은 열쇠 그림을 표지로 [세번째 열쇠(Trzeci Klucz-The Third key)]라는 제목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사족 3.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3)

밴드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는 해리 홀레

 

사람들은 록 밴드 도어즈(Doors)가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으면서, 세상을 향해 나는 "도어즈(Doors)를 듣는 타입의 인간"이다라고 밝힌다. 이 때 음악이란 그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요 네스뵈는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네메시스]에서 해리 홀레 형사가 '요케 앤드 발렌티네르네'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 그러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해리의 티셔츠를 바라보았다. 가슴팍에 그려진 '요케 앤드 발렌티네르네' 로고에서 시작된 땀자국이 이제는 셔츠 전체로 퍼져 있었다.p.76  ),'바이올런트 팜므'의 셔츠를 입고 있는 장면 (해리가 스웨터를 벗으며 말했다. 스웨터 안에 입은 진회색 티셔츠는 원래 검정색이었는데, 빛바랜 글씨로 'Violent Femmes'라고 적혀있었다. p.25)에서 나는 요 네스뵈의 말이 떠올라 빙긋이 미소 짓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비채 측에서 두 권의 요 네스뵈 신작을 발간하면서 사은품으로 '요 네스뵈'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마련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나는 요네스뵈의 작품을 읽는 타입의 인간'임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공항에 작가를 마중 나갔던 일부 독자들은 이 티셔츠를 입고 기다렸다고 하는데, 이 광경을 지켜본 요 네스뵈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족 4. [네메시스]에서 좋았던 점 (4)

[손자병법]의 해석

 

개인적으론 요 네스뵈가 '라스콜 바제트'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하는 [손자병법]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네메시스]가 마음에 들었던 수십가지 이유중 하나. 아래에 일부만 옮겼지만, 책을 읽으면서 전문을 살펴보면, 작가의 독특한 시각에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깊이있는 혜안이 한 순간에 완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손자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장수이자 지략가죠. 손자병법(The Art of War)을 썼고요." "..... 표면적으로는 손자병법이 전쟁터에서 전략을 세우는 법을 다루는 것 같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갈등에서 이기는 법을 말하고 있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소한의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는 기술을 알려주지.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 꼭 승자는 아니라네. 많은 자들이 왕관을 썼지만 정작 자기 병사를 너무 많이 잃어서 오히려 표면상으로는 폐배한 적군의 명령에 따라 통치해야만 했지...(p.304)

 

"우 왕이 궁녀들에게 병법을 가르치기 위해 손자들 초대한 이야기를 해줬던가, 스피우니?...손자는 똑똑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우선 궁녀들에게 행진하는 법을 설명했지. 정확하면서도 교육적으로. 하지만 북소리가 울리자, 궁녀들은 행진하지 않았어. 그저 킥킥 거리며 웃었지. '병사들이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장군의 책임이다.'손자는 그렇게 말하고 한 번 더 설명했어. 하지만 두 번째로 행진하라고 명령했는데도 같은 일이 벌어졌어. 그러자 손자는 '명령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사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더니, 자기 부하 두명에게 궁녀들 중에서 우두머리 둘을 끌어내라고 했지. 그러고는 겁에 질린 다른 궁녀들 앞에 두 여자를 일렬로 세우고 목을 베었어. 왕은 자신이 아끼던 궁녀 둘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간 병상에 눕게 되었지. 마침내 건강이 회복되자 왕은 손자에게 자신의 군대를 맡겼다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 거 같나, 스피우니?" (p.402)

 

 

 

 

 

 

사족 5. [네메시스]를 읽고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바로 써두었던 메모

 

국내에 [스노우맨],[레오파드],[레드브레스트]로 쌓은 명성과 평판은 이 작품을 통해서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책을 덮고나서 잠시 눈을 감고 요 네스뵈의 끝 간데 없이 펼쳐지는 상상력에 감탄하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현기증 나는 작품.

도무지 다음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명품 스릴러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가 떨릴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같은 만족감을 준다.

단순하고 판에 박힌 스릴러가 아닌 품격이 다른 질감의 스릴러를 추구하고 지향한다면, 기분좋게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을 쫓으면

될 듯 싶다.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 있다면, 이 작품이 합당한 해답이 될 것이다.

작가가 구축한 소우주는 이미 이 작품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

문학은 침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명제를 환기시킨다.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물음표가 되어 머리에 박힌다.

독자의 세계관과 사유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는 데 도움을 주는 소설이다.

인간 본성인 복수와 맹목적인 정의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진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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