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비빔밥과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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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맛있다! - 셰프 김문정이 요리하는 스페인 식도락 여행
김문정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뭐부터 먹지? 다양하게 맛보고 싶어서 일단 핀초 모듬세트를 시켰다. 핀초 열 개가 가지런히 접시에 놓여 나왔다. 흰 아스파라거스를 훈제연어로 돌돌 말고 치즈소스로 마무리한 것, 야들야들한 빨간파프리카 속에 참치샐러드를 꽉꽉 채운 것, 새우나 양송이, 아스파라거스, 오징어 등에 마늘소스를 발라 구운 꼬치 ‥‥‥. 그때였던 것 같다. 핀초에 스페인산 레드와인을 마시던 순간, 바르셀로나가 특별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난 타파스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유럽여행의 끝자락에서 타파스는 자꾸만 나를 잡아끌었다. 다음 날에도 그 바르에 찾아가 새로운 타파스와 핀초와 몬타디토들을 먹고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다. (pp.101-103)
아.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왔다. 내가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며 흥분했던 바로 그것을, 해보고 싶었던 바로 그것을, 그건 틀림없이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할거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이 책의 저자는 몸소 해본 것이다. 그녀는 여행중에 우연히 핀초를 와인과 곁들여 먹게 되고, 거기에 홀딱 반해 다음날에도 또 타파스 바에 간다. 아우....세상에 어떤 여행기가, 어떤 여행기의 저자가 이토록 내 취향과 일치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은 '여행기'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이 책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음. 맛집 순례기도 아니고..스페인 생활기도 아니고...이 책의 제목처럼 '스페인의 음식 여행' 그래, 그게 가장 정확한 설명일거다. 이 책에서 다른 감상적인 글과 사진들을 기대한다면 찾아볼 수 없을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여행기들이 가진 감상에 쩔은 글과 사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음식 사진들이 가득가득 하다. 아, 일단 내가 반했던 핀초, 타파스(이 두개가 아마도 같은 종류인것 같다)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것도 물론, 이 책에 나와있다.
타파스는 거나한 식사 대신 간단하게 술을 마시며 음식을 다양하게 먹는 행위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고기나 해산물 혹은 야채등을 작은 접시에 올려 나오는 요리를 말하기도 한다. (p.110)
아, 스페인은 얼마나 훌륭한 나라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지금 당장에라도 스페인에 날아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들은 출근길에 카페테리아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과 담배 한대 혹은 크루아상이나 크래커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뒤 각자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리고 오전 11시가 되면 '정식 아침식사' 시간이 되어 다시 카페테리아로 모두들 나와 카페 콘 레체와 크루아상 등 혹은 그보다 더 양이 많게 점심 한끼 수준으로 먹는다. 그리고 오후 두시, 두시간 동안 그들에게 점심 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나이쓰! 2시부터 4시까지는 상점들도 문을 닫고 여유로운 점심 식사를 즐긴단다. 그리고 저녁 6시에는 간식을 먹고, 밤 10시, 비로소 저녁 식사를 시작한단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니!!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건가.
자, 다시. 이 책은 아주 친절하게 스페인에서의 맛집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나는 또 좋다고 분홍색 형광펜으로 줄을 박박 그었다. 내가 스페인에 간다면 기필코 찾아가리라, 불끈, 하면서. 또한 이 책에서는 스페인의 음식들 사진을 아주 많이 보여주고, 옆에 만드는 방법까지 설명해준다.
저 위의 '감자 토르티야'는 재료도 계란과 감자, 양파만 있으면 되고 요리방법도 간단하길래 어제 몸소 만들어 보았다. 만들면서는 의욕에 가득차서, 완성된 음식을 사진 찍어 올리고 요리 블로거로 거듭나자! 하는 결심을 해두었는데, 완성된 토르티야를 보는 순간, 그냥 나는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살고 요리는 사먹자 -_- 하는 마인드로 바뀌어 버렸다. 어쨌거나 모양은 괴상해도 맛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후라이판 하나 가득 한 걸 다 먹고 잤더니 오늘 아침까지도 배가 부르다. 그건 그거고, 뭐, 어쨌든 아침은 먹었지만.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느낀게, 스페인의 음식들이 대부분 내 취향이란 거다. 자, 감상해보자.
일단 이건 해물샐러드라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는 하다. 그런데 색을 보는 순간 마치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 드는거다. 보는걸로도 기분이 좋아진달까. 만약 내가 스페인에 짧게 간다면 먹을 생각이 없고, 길게 간다면 한끼쯤은 이 메뉴를 시켜보기는 할 것 같기는 한데, 뭐, 확신이 들진 않는다.
미치겠다. 이건 보는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찬다.
스페인에서는 대부분의 요리에 토마토를 넣더라. 이 빵도 토마토를 발라서 구운 빵이라는데,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다.
토마토 얘기가 나왔으니 토마토가 주렁주렁한 스페인의 풍경도 한 컷.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져서 막 뛰어다니고 싶다. 속에서 막 열정이 샘솟아..
여기 또 토마토. 이 토마토는 아주 난리가 났다. 저 뚜껑을 열면 무려 고기가 들어있는 것. 고기로 속을 채운 토마토란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이거는 내가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스페인 가서 먹을때까지 언제 기다려. (응?)
정말이지 미쳐버리겠다.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 『하몽하몽』이라는 게 있다. 포스터에서 주는 이미지와 또 하몽하몽이라는 단어가 그 영화의 에로틱함을 전면적으로 내세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몽은 뭐랄까, 너무나 좋아서 절로 나오는 신음소리의 일종인거라고 나 혼자 마음대로 추측했더랬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하몬은 '돼지 뒷허벅다리 염장햄' 이었던거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속에서 하몬의 모습이 아주 종종 보였던 것 같다. 하몬이 걸려져있는 장소에서 여자와 남자가 만났던 장면 같은 것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고자 굿다운로더로 다운 받았다. 이 하몬은 먹언본 사람들은 이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보면 이렇다.
저걸 썰어서 먹는건데, 이 사진만 보고도 어떤 이들에게는 굉장히 거부감을 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저자도 이미 써놓았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장면이기도 할거라고.
스페인에는 이런 음식만 풍부한게 아니다. 하루에 대여섯끼를 먹는 이들의 디저트는 또 어찌나 훌륭한지, 스페인 이 나라는 무려 초콜렛의 나라이기도 한거다.
저 찐덕찐덕한 액체쵸콜렛에 츄러스를 찍어먹는데, 저게 저들의 해장이 되기도 한단다. 나로서는 라면이 해장의 으뜸이라 초콜렛..은 생각만해도 기겁할 노릇이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동료 직원1이 술을 아주 많이 마신 다음날이면 상사가 꼭 다음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고 또 유독 그날은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는거다. 그래서 미치도록 괴로웠는데, 어느날 자신이 술 마신 다음날이 되면 짜장면을 먹고 싶어하게 되어버렸단다. 짜장면을 해장음식으로 길들여버렸던 것. 그래서 술마신 다음날 상사가 점심 같이 먹자며 뭐 먹을래, 물어보면 짜장면이요! 라고 대답했다는 거다. 술 마신 다음날 늘상 쵸콜렛으로 속을 다스렸다면, 오, 해장이 되는건 당연한 게 아닌가.
샹그리아와 와인. 스페인에 가서 이 모든 음식들을 먹게 된다면 그 옆에 반드시 와인을 두고 싶다. 스페인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나라라는데, 그 나라의 와인을 그 나라에서 먹으니 가격도 비싸지 않을 터. 마음놓고 마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먹는다면 그 맛은 더 뛰어나지 않을까. 샹그리아는 한 번도 안먹어 봤는데 마침 이 책에 만드는 방법도 있는 바, 저것도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음...역시 요리 블로거......가 되어볼까.......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나는 여행기 대부분을 읽고 중고샵에 보내버리는데, 이 책은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될지도 모를 그 날을 위해 책장에 고이 모셔두어야겠다. 가보고 싶은것과 만들어보고 싶은것이 수두룩해서 포스트잇이 덕지덕지하다.
하하하하하. 그런데 사실, 이 책의 처음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다.
스페인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기초 스페인어 실력은 필수다. 유럽인들은 대개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때문에 다들 웬만큼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런 사정을 모르고 영어만 고집할 경우 돌아오는 건 스페인어의 메아리뿐이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간단한 몇 가지 단어만 외워가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pp.28-29)
난 스페인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걸 어쩌지, 싶은거다. 엊그제 퇴근하던 길, 동료에게 잔뜩 흥분해서 스페인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다가 이내 풀이 죽어서는, 그런데 스페인어를 조금 알고 가야 그것들을 먹을 수가 있다네...하고 말했더니 동료는 내게 이렇게 얘기해줬다.
가요, 과장님. 과장님 스페인어 사전 있잖아요.
아, 맞다. 나 스페인어 사전 있다. 사전 들고 가는건...글쎄,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사전이 있으니 일단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준비가 된 게 아닌가. 무려 사전이 있는데! 그래, 가자, 떠나자, 스페인으로! 가자! 그런데,
언제?
뭐, 그건 좀 천천히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