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힘든거야 어제오늘일이 아니지만, 오늘은 특히 더했다. 삶은 왜 내뜻대로 되질 않는건지. 그러니까 내가 출근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고 강남까지 두 번 갈아타는 방법이 있고 마을버스나 일반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가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방법이 있다. 나는 대부분 바로 집 앞에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강변역에 내려 2호선을 타고 출근한다. 이 마을버스는 한 대 보내고나면 십분이상 기다려야 그 다음버스가 오기 때문에 일곱시 가량 오는 버스를 반드시 타야 지각하지 않는다. 만약 이 버스를 놓쳤을 경우에는 일반 버스 정류장으로 냅다 뛰어서 잠실역으로 향해야 한다. 일반버스 정류장은 마을버스 정류장보다 더 멀고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 한다. 나는 당연히 마을버스를 선호한다.
그런데 오늘, 집에서 나오니 아주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산을 가지러 다시 들어간다면 버스를 놓칠게 분명할 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미 출발한거다. 나는 저어어쪽에 있는 마을버스 뒤꽁무니를 보며 발을 구르기를 포기하고 대신 빠른 판단에 의지해 집으로 냅다 뛰었다.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가 우산을 들고, 아직 내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고 내려와 일반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횡단보도를 향해 가고있는데 내가 건너야 하는 방향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멈춰있다. 그러니까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면 나와 버스가 동시에 출발하게 되는데, 버스가 나보다 훨씬 먼저 도착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러면 나는 이 버스도 놓치게 된다. 할 수 없다. 나는 무단횡단을 했다. 신호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횡단보도까지 가지도 않았다. 무단횡단을 하고 뛰면서 자꾸 버스를 돌아보았다. 버스가 출발하면 큰일이다. 1분여를 달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도 도착했고,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며 버스에 올라탄 나는 헉헉대며 숨을 쉬었다.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책을 꺼내읽을 수도 없었다. 멍때리며 창밖을 보다가 토요일에 서점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토요일 점심때쯤, 다른 도시의 영풍문고를 들러 책을 구경했다. 이 책 저 책 뒤적여보다가 한 에세이(? 장르가 뭔지 모르겠네)를 넘겨보았는데, 몇 장 뒤적여보다가 나는 한숨이 났다.
인기있는 블로거의 글이 책으로 나오는 현상 자체를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기있는 블로거의 글이 책으로 나올때는 블로거도 편집자도 출판사도 모두 한 번씩 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모니터 앞에 앉아 화면을 통해 글을 읽는 것과, 내 시간과 돈을 들여 책을 사서 읽을 때, 우리는(적어도 나는) 그 둘에서 다른 가치를 기대한다.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종이에 인쇄되어 서점에 깔리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구입할 때, 나는 그 책에서 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는 글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책값이 얼마든 대체적으로 책값에 나는 신경쓰지 않는편인데, 그건 한 권의 책이 내게 줄 수 있는게 그만큼 깊을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이를 몇 장 쓰지 않은 것 같은 얇은 책이 만 원 이상이어도 돈 아깝다고 생각되지 않는건, 나의 시간과 돈을 들여 그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에서 나는 무언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식이든 혹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떻게든 나를 움직였던 그 무엇.
그런데 내가 토요일에 본 그 책은 블로그의 전형이었다. 그 많은 여백들, 의미가 채 전달되지 못하는 문장들의 축약, 오글거리는 내용들. 후아- 이럴 경우 나는 책을 뒤집어 책값을 본다. 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후아- 이럴 땐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너만큼 누군가를 좋아해본 건 처음이야, 라고 상대에게 말한다고 해서 상대가 반드시 나를 그만큼 좋아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걸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이라고 해서 상대에게도 처음이라는 의미는 아닐뿐더러, 나에게 처음의 가치와 상대의 처음의 가치가 어찌 같겠는가. 그건 순전히 내 기준이고 '내가 이만큼 좋아하니 너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건 철저히 내 위주의 생각일 뿐인데. 밤을 새워 코피터지게 공부해도 전교 1등은 먼 얘기일 수도 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노력해서 썼다고 해도, 심혈을 기울여 문장을 글로 완성시켰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좋은 책이 될 수는 없다. 잔인하지만 정말 그렇다.
나는 에세이나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 장르의 책들을 현저히 적게 읽었지만, 그 몇 권 안되는 내가 읽은 에세이중에서 최고의 책은 이것이었다. 오늘 버스안에서 이러저러한 책들에 대해 생각해보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최고의 에세이는 무엇이지? 했더니 이 책 밖에 생각이 안나더라.
토요일 오후에는 하이네켄 500ML를 마시면서 영화를 봤다. 어두운 극장안에서 마시는 맥주는 정말 좋은데, 그 맥주를 마시며 보는 영화가 괜찮다면 그야말로 더할나위없이 좋지 않겠는가.
몇몇 작위적인 장면들 때문에 완벽하게 좋지는 않아서 별 다섯을 줄 수는 없지만, 충분히 토요일 오후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내가 아주 나이가 많이 들고 내 옆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내 여생의 남은 시간을 돌보고 싶을까? 일전에 영화 『당신이 그녀라면』에서 카메론 디아즈가 실버타운에서 잠깐 머무르는 장면이 나왔을 때(실버타운에 있는 이모를 찾아갔던가;;암튼 실버타운에 갔다.), 나는 그때부터 막연히 내가 늙고 힘이 없어지면 실버타운에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자금의 여유도 필요하겠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가끔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속의 메리골드호텔에 머무르는 노인들처럼, 나도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다른 노인들과 함께 벗이 되어 지냈으면 좋겠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어제 조금 읽다가 잤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아직 1권의 90페이지까지 밖에 읽지 못했는데, 이만큼만 읽고서도 나는 울컥, 눈물이 고였다.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다. 지금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직후, 경찰들과 구급차가 학교로 달려가고 총을 쏜 아이를 잡고, 학부모들이 소식을 듣고 학교로 뛰어가는 장면까지 읽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조지라는 여자아이의 엄마는 판사인데, 재판 도중 쪽지를 받고 학교로 달려가게 된다.
서기가 뭔가를 써서 건넨 종이를 경위가 판사석으로 가지고 왔다.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알렉스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조지.
"휴정하겠습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하고서 법정을 뛰쳐 나갔다. (p.84, 이 인용문의 볼드체는 작가의 것.)
이 부분을 읽는데 미치겠는거다. 저 쪽지를 받아든 조지의 엄마, 알렉스의 마음이 저때 어땠을까. 어휴. 상상하기도 싫다. 아직 내 아이가 다쳤는지 무사한지도 모르는 상황. 그녀는 구두를 벗고 맨발로 뛸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의 생존여부를 혹은 얼마나 다쳤는지를,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확인해야 하니까. 그리고 또다른 엄마.
"실례지만, 내 아들을 ‥‥‥. 아들을 찾고 있는데 말이야. 네가 방금 그 애 이름을, 피터 호턴이라고 하던데?"
여학생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엄마 곁에 더 바싹 붙었다. "그 애가 총을 쐈어요." (p.90)
아, 내 아이가 총을 맞고 피를 흘리는게 더 가슴이 아플까,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총을 쏜 게 더 가슴이 아플까.
레이시를 둘러싼 모든 것이 느린 화면으로 변했다. 앰뷸런스의 흔들거리는 불빛, 뛰어다니는 학생들의 발걸음, 앞에 선 여자애의 입술에서 떨어진 낭랑한 목소리까지. 어쩌면 잘못 들었는지 몰랐다.
다시 그 여학생을 힐끗 쳐다본 그녀는 이내 후회했다. 그 애는 흐느끼고 있었다. 소녀의 어깨 너머로 그 아이의 엄마가 공포에 찬 눈빛으로 레이시를 응시하고는 마치 레이시가 바실리스크(입김을 쐬거나 눈길에 닿으면 사람이 즉사했다고 하는 전설상의 도마뱀 비슷한 괴물-옮긴이)라도 되는 듯이, 그녀가 보기만 하면 돌로 변하기라도 할 듯이 자신의 딸이 그녀를 보지 못하게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무슨 착오가 있는 거야, 제발 착오이기를. (pp.90-91)
지하철에서 여기까지 읽었는데 눈물이 ㅠㅠ 레이시와 알렉스는 친구이다. 레이시는 알렉스가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준 조산원이다. 그런데 레이시의 아들이 알렉스의 딸에게 총을 쐈다. 한 아이의 엄마는 총에 맞은 딸 때문에, 한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총을 쏜 아들 때문에 두 다리가 흔들린다. 피터는 왜 총을 쐈는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피터의 엄마와 조지의 엄마는 이제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이 이야기는 결국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하다. 벌써부터 힘이 든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필요한 고민들이 많다. 이 고민들과 걱정들은 아무때고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히는데, 혹시라도 이 책을 읽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50쪽까지 읽고는 책을 덮었다.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은 '걱정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책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걱정하고 싶지 않은데 가끔 불안한 미래에 대해 초조해하는 사람이라서 이 책을 읽어야할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체크하는 부분에서 내게 해당되는게 없더라.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서 꾹 참고 읽어가려다가, 에잇, 그만두겠어, 하고 책장을 덮어버렸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혹시 당신도 지금 머릿속에 박혀 떠날 줄 모르는 어떤 걱정거리를 확실하거나 거의 확실한 해결책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가? 삶의 대부분을 이런 고민으로 꽉 채워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걱정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느껴지는가? 만약 지금 이 순간 삶이 지나칠 정도로 평탄하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안 좋은 일이 생겨날 거라고 미리 걱정하는 성격인가? 배우자나 가족, 혹은 친구도 반드시 당신과 함께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의무적인 걱정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다. (서문, p.14)
내가 하는 걱정은 이것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지금 삶이 평탄하다고 해서 미래를 걱정하는게 아니고, 내가 하는 걱정을 내 주변 사람들도 해야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읽을만한 책이 아니구나.
토요일에 서점에 가기전에, 늦은 아침으로 하이네켄 500ML을 또 먹었다. 사발면에 물을 부어 같이 먹었고, 과일도 있었으며, 하하하하, 족발도 있었다. 아침에 과연 족발을 먹을 수 있을까? 있다! 게다가 맛있기까지 해! 으윽,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족발과 뜨거운 사발면과 과일과 맥주를 더불어 먹는 여유로운 아침.
오늘 아침에 내가 마을버스를 놓친건 아침 밥상의 반찬이 지독하게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호박과 두부를 썰어넣은 칼칼한 된장국과 양념장이 잔뜩 뿌려진 두부조림, 멸치와 함께 볶은 매콤한 고추. 아, 밥을 한 숟가락도 남길 수가 없어서 밥풀 하나 안남기고 삭삭 긁어먹고 뛰쳐 나갔더니 버스는 이미 출발.........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내일아침부터는 밥을 한 숟가락씩 남기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