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을 읽다가 각주나 주석이 나왔을 때가 무척 싫다. 내가 거기에 대해 보충 설명이나 해설을 읽어야 해서 싫은게 아니다. 내가 읽고 있던 문장과 내용의 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각주나 주석을 충실히 읽는 독자는 아니다. 읽을 때도 있지만 안읽을 때도 무척 많다.
이 책을 읽을때는 심지어 각주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였다.
보면 알겠지만, 한 페이지의 절반이 각주다.
뿐만 아니다.
양쪽면에 다 각주가 달려있다. 이런 젠장. 대체 나더러 책을 읽으라는 거야, 각주를 읽으라는거야!
나는 물론, 각주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어떤 책에 대해서는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산드라 브라운'의 『연인들의 텍사스』에서의 주석은 얼마나 유용했던가!
"어쩌면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녀도 그의 시선을 따라 올려다보았다. 겨우살이(겨우살이과의 상록기생 관목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에 씀)의 잔가지들이 문틀에 매달려 있었다(크리스마스 장식의 겨우살이 아래에 있는 소녀에게는 키스해도 좋다는 풍습이 있음). -p.102
1997년도에 출간된 이 책을 읽고나서부터는(내가 97년에 읽은건 아니지만), 저 괄호안의 설명을 내가 완전 습득했기 때문에(안할수 없잖은가!) 그 뒤로 읽게되는 다른 소설에서의 겨우살이 아래서의 키스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단 말이다.
그러나 『인공호흡』에서의 각주는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굉장히 갈등하게 되는 해설들이다. 거의 다 아르헨티나의 인물들에 관한 것. 내가 이들을 어딘가에서 다시 볼 것인가, 내가 한 번 본다고 이들의 이름이나 업적을 외울것인가, 내가 이들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만 비로소 이 소설을 백프로 이해하게 될 것인가, 아 진짜 머리가 터질것 같은거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읽는것이 몹시 힘겨워지기 시작했는데, 얼라리여~ 문장이 아주 .... 아주.....
자, 일단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의 관계도를 표시해보자. 물론, 내가 이러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지만, 젠장, 이 책을 읽으려면 이게 필요했다.
에스페란시타-루시아노-one-엔리케 오소리오
그러니까 루시아노는 에스페란시타의 아버지이고 one(여기서는 이름이 안나오므로 그냥 one 으로 표시했다. 어쩌면 이름이 나왔어도 내가 놓친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시 찾을 의욕이 전혀, 전혀 없다)의 아들이며, one 은 엔리케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저건 총 4대를 표현한 관계도라고 보면 될 테다. 자, 그리고 이 문장을 읽어보자.
그녀는 그 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얼룩지게 한 불행을 이해할 흔적이나 단서라도 찾아보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글 속으로 빠져들자 사랑하는 임의 모습이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희미한 모습으로 그녀의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어. 그리고 그의 아들 얘긴데, 그러니까 루시아노 씨의 부친이지, 그는 엔리케 오소리오의 법적 상속자였단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상속받은 재산을 투자한 것밖에 없었어. 당시 상황을 잘 이용해서 적기에 투자를 한 거지. 당시 우리나라 에서는 수중에 돈 좀 있고 인맥만 잘 활용하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땅을 헐값에 살 수 있었단다. 그 덕분에 에스페란시타의 할아버지는 1862년에 미트레 장군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당시, 그를 지지한 막강한 대지주들 중 한 명이 되었지. (pp.41-42)
양미간을 모으고 정신을 빡(!) 집중해서 읽으면 굵게 표시한 저들이 모두 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들=루시아노 씨의 부친=엔리케 오소리오의 법적 상속자=에스페란시타의 할아버지.
하아- 대체 왜 이렇게 쓰는거야!
50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는 문장이 꼬일대로 꼬인다. 말하는 자들이 뒤섞여 문장은 끊이지 않고 진행되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정신을 딴 데 판다거나 하면 정말이지 '글자'만 눈으로 읽는것밖에 안된다. 자, 이런 문장들이 자꾸 나오는거다.
그건 합리화일 뿐이라고 그가 비웃더군요. 혼자서는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마기 교수님이 내게 한 말이죠, 타르뎁스키가 말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문제는, 그가 말하더군요, 그러한 개인적 실패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무슨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겁니다. (p.292)
타르뎁스키는 마기 교수의 조카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일화를 들려주는데, 그 문장안에 타르뎁스키가 말했다가 마기 교수님이 말했다가 또 마기 교수가 아는 누군가가 말했다가 막 이런다. 후아- 그러니까 정말이지 정신을 빡 차리지 않으면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거다. 그래서 출퇴근길에 이 책을 읽으려던 나는 80페이지까지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집어 던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책 뒤 표지에는 이 책이 얼마나 지적인지, 지성이 가득한 책인지에 대한 찬사가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 책 읽기를 포기한다면 난 너무나 너무나 멍청한 사람인증이 저절로 되는 것 같은거다. 그래서 집중해서 다시 도전하리라, 라고 오늘 완전히 마음 먹고 펜과 노트를 준비해서 식탁의자에 앉았다. 침대에 앉아서 읽었다가는 책장을 펼치자마자 잠이 들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고, 드디어 읽기에 성공했다. 심지어 다 읽었다. 인간승리다! ㅜㅠ
가슴 아픈 현실은, 그러나, 나는 지성적이고 지적인 여자사람은 결코 될 수 없다는거다. 아르헨티나의 문화와 아르헨티나의 정치인들을 아무리 각주를 읽어봤자 내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이 책을 정신 빡 집중해서 읽어도 도저히 백프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보르헤스와 아를트가 어떤 작가인지에 대한 견해를 밝힐 때는 그 장황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니, 한 작가에 대해서 이렇게 분석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게다가 아를트는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 그가 궁금해졌지만 찾아서 읽어볼 엄두는 전혀 나질 않았다.
그런데, 오,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일요일 하루를 몽땅 바친 보람이 있었다. 마지막, 타르뎁스키가 카프카와 히틀러의 관계에 대해 말할때는 정말 소름이 돋아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설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내가 알 수 없지만, 나는 일단 카프카와 히틀러가 동시대를 살기는 했는지 조차 모르는 비지성인이기 때문에 검색해봤다.
히틀러는 1889년에 태어나서 1945년에 사망했다. 카프카는 1883년에 태어나서 1924년에 사망했다. 아....겹친다....어쩌면 타르뎁스키가 이 책에서 말한것처럼 히틀러가 화가지망생이었을 당시 정말로 카프카는 그를 만났을지도 모르고, 아, 너무 흥미로워, 어쩌면 정말로 히틀러와 이야기를 해보고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구나' 라는걸 카프카는 정말로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히틀러와 이야기를 해 본 후로 그의 소설 『변신』을 쓰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 이 책이 갑자기 엄청나게 재미있어지는거다. 뭔가 공부에의 의욕이 생기면서(정말 할 건 아니지만) 카프카와 히틀러가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는 증거를 타르뎁스키처럼 찾아 다니고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은거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흥미있는 부분이었고, 그 부분의 흥미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날려주기에 충분해서, 나는 이 책을 모두에게 읽으라고 정말이지 감히 추천할 수가 없지만, 그렇지만, 이 책을 안 읽으면 카프카와 히틀러가 만났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를거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워지는거다.
나는 이 책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감동은 없었지만 감탄은 있었다.
이 책을 읽다가 잠시 접어두고 엄마와 시장엘 갔다. 엄마는 과일파는 곳에 멈추어 서서 오렌지를 샀다. 나는 딸기를 먹고 싶었는데 딸기가 보이질 않았다. 오렌지가 든 봉투를 받아들며 아저씨께 물었다. 아저씨, 딸기는 없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기는 끝났어요.
아뿔싸! 딸기가 끝났다니.. 벌써? 아저씨는 덧붙이셨다. 이젠 딸기가 있어도 맛없어서 먹을 수 없는 때라고. 아, 맙소사. 나 이번 해에 딸기를 별로 먹은 기억이 없는데... 벌써, 벌써 끝나버렸다고? 서러웠다. 눈 앞에 참외와 토마토가 수박과 오렌지가 가득했지만 나는 그것들중 어떤것도 원하지 않았다. 딸기여야 했는데.
나는 딸기를 충분히 먹지 못했다. 나에게는 딸기가 끝이면 안되는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