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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나는 재미있어서 책을 읽는다. 재미있어서 책을 읽는데, 책이 내게 주는건 재미뿐만은 아니다. 책은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해주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펼쳐 보여준다. 다른사람들의 삶을 엿볼수 있는것과 또 지식을 주는 것, 그것이 책이 주는 대표적인 것이라면, 나는 아주 당당하게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왔으나 미처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인데, 그래, 이 책이 그것을 했다. 때때로 아, 그래, 내가 말하려고 했던게 이거였어, 했던 것을 나는 책에서 만나곤 하는것이다. 아, 책은 정말이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나는 대부분의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주는 이미지는 정의롭거나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의롭거나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입밖으로 내야할지 모르겠어서 단순히 그건 아닌것 같은데, 로 입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삼성 불매운동에 대한것이 대표적인데, 주변에 삼성 불매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던 거다. 왜? 그게 정말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걸까? 삼성을 불매한다면, 삼성에서 일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뭐가 되지? 삼성을 불매하면서 원하는게 뭐지? 삼성이 망하는건가? 불매가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걸까? 최선의 방법이라고? 그런데 왜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질 않는거지? 그러나 나는 삼성 불매를 하는 사람들에게 '불매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확신을 가진것처럼 보여서, 내가 불매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정해지는 것 같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에. 불매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부자의 편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또한 누가 나에게 불매를 강요하는 것을 내가 못견디듯이, 내가 그들에게 불매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못견디는 것일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김어준이, 내가 확실히 말하지 못했던것을 아주 단호하게 말해준다. 아, 정말 나는 소름 돋았다니까. 감동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디어가 자기로부터 나오고 그 구현을 직원들과 함께 하잖아. 이건희 일가가 잘하는 건 그게 아니지. 그 일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하는 건 자기 재산을 지키는거지. (웃음)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이건희가 곧 삼성이라는 상징화가 워낙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이건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 불안을 유발하는 거야. 그러니까 삼성을 제대로 문제 삼으려면 삼성이란 기업의 상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할 게 아니라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이건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삼성의 상징화 작업에 자신도 모르게 포섭되어 이건희를 비판해야 할 걸 삼성 제품을 비토하는 걸로 가는 경우가 있다고. 삼성 물건 좋은 거 많아. 왜 기업의 정상적인 제품을 미워해. 물론 삼성 제품을 비판하는 게 상징적으로 이건희를 비판하는 거라 여길 수도 있어. 삼성 문제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들의 프레임에 넘어가는 거야. (p.165)
삼성과 다른 재벌들과의 차이는, 다른 재벌들은 법을 피해 가려고 한다면 삼성은 자신들을 위해 법을 만든다는 거야. 삼성은 이미 국가보다 강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p.166)
문제는 이건희 일가가 상속과 지배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국가 시스템을 자신들 사익을 위해 조작할 정도의 힘을 가져버렸다는 거야. 국가는 이익을 좇는 사조직이 아니잖아. 국가는 공동체를 위한 운영체제잖아. 이게 일개 가족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더구나 그 과정에서 그 가족은 단순히 자신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까지 뺏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자기들 아니면 니들 굶어 죽는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하지만 삼성이란 기업 집단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해야 한다고. 그건 오로지 법으로만 할 수 있어. (p.169)
개인적으로는 내가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던 것을 큰 목소리로 말해준 김어준이 고맙고, 더 크게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맙다. 사실 나는 [나는 꼼수다]를 듣지는 않는다. 두 번 쯤 들어봤는데, 이상하게 불편한거다. 그게 정확히 어떤 불편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게 전혀 재미있질 않은거다. 이걸 사람들은 왜 재미있다고 하는걸까.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거다. 정말 이게 재미있나? 나는 불편한데? 그 불편함에 대한 정확한 대상을 찾을수가 없어서, 나는 이 책도 사두고는 한동안 읽지 않았다. 그 방송을 듣는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나를 불편하게 할까봐. 세상 모두가 좋다고 말해도 나는 불편할 수 있는거니까. 그런데 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말 그대로 재.미.있.다.
54페이지의 '뇌에 구김살이 없어' 라는 표현을 읽을 때는 지하철에서 혼자 소리내서 푸핫,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76페이지의 '해맑아, 해맑고 투명해' 에서는 어떤가. 아..나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80페이지의 '어찌나 수줍은 검찰인지' 에서는 진짜 빵터졌다. 아..검찰들 수줍구나..수줍은 검찰들이구나. 하하하하. 이런식이라면 나꼼수도 재미있겠구나. 그런데 왜 방송을 들었을때는 나는 이런식의 재미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와 닿았을까?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읽고 이 책을 쓰게 됐다는 김어준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읽지 않았어도 무었을 말하는지 대부분 사람들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중간중간 김어준의 표현들이 빵터지게 웃게 만들어서 그 재미때문에 읽기 시작하긴 했지만, 52페이지의 김어준의 복지에 대한 생각이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들었다.
복지란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공동으로 보장해주려는 사회적 염치라는 걸 이해할 수가 없는거야. 나는 우리나라 우파는 원시인을 설명하는 수준에서 백 퍼센트 해석된다고 봐. (p.52)
재미있어서 책장 넘기기를 멈출수가 없는데, 그가 하는 말이 그릇된 말이 없다. 게다가 한번쯤 들어볼 만한 말들이며 때로는 내 생각을 대변한다. 또한 문재인의 책을 읽어보고 문재인을 좀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하게도 만들었다. 이만하면 이 책은 책이 갖추어야 할 것들을 모두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리뷰를 쓰면서 별점을 클릭하는건 때때로 고민스러운데, 이 책은 기꺼이 넷 이었다가, 삼성 불매에 대한 그의 말에 깊은 공감과 또한 모두들 이 책을 읽고 복지에 대한 생각을 확고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의 생각들이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는 응원까지 별 하나에 담아 별 다섯개를 찍는다. 나는 이 책을 선물할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재미와 생각을 동시에 줄 수 있다면 나 역시 기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