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브라운'의 소설 『내일을 위한 약속』에서 남자는 비행기안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여자는 참전한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한,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남편을 몇 년이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그에게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내가 그날 거기에서 여자를 만나게 될 거였다면, 왜 당신이어야 했지, 왜 당신은 그런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지, 라고.
이것이 바로 사랑의 묘한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고 싶은 연인에 대한 이상형을 셀 수 없이 많이 가지고 있다. 가지런한 치아, 반짝이는 눈동자, 긴 속눈썹, 긴 다리, 울룩불룩한 근육, 넘치는 에너지, 지혜, 경제력 등등. 상세하게 늘어놓으라고 하면 노트 한 권을 채울수도 있을거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는 그 이상형과는 맞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나는 스물 세살무렵 말도 안되는 양아치(?)를 좋아한 적도 있고, 못생긴 남자를 사랑한 적도 있으며, 이런 남자와는 결코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고개를 젓던 남자와도 연애했던 적이 있다. 내가 아는 한 덩치 큰 여자사람은 남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난 평생 늘 마른 여자와 사는것을 꿈꿔왔는데 너를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 그건 모르는거다. 정말.
사랑은 타이밍. 역시 노력보다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다. 그 사람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났느냐, 그 사람이 그때 그곳에 어떻게 있었느냐 하는것.
어제의 하이킥3 을 시청하면서 나는 앞으로의 박하선의 삶이 기대됐다. 사실 그동안의 박하선의 캐릭터는 내가 몹시도 짜증스러워하는 캐릭터였다. 지나치게 착하고 어리숙한 모습.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자기 혼자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것이 너무 바보같아서 싫었다. 자기는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인데 자신에게 너무나 잘해주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남자를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박하선이 너무나 잘 이해가됐다. 그래서 나는 뜬금없이, 사실은 나도 착하고 바보같은(응?) 여자인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게 아니라면 대체 왜 박하선이 이해되는거야? 왜?
어제의 박하선에게는 적당한 장소, 적당한 시간에 서지석이 있어줬다. 그녀가 차를 사고 처음 운전하려던 그 때에, 처음으로 욕을 들어먹던 그 때에, 그가 거기에 있어줬다. 그녀가 혼자서 운전을 하며 기뻐하던 그 때에,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울 때에 그가 거기로 온다. 물론 얻어 터질 때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는 달려왔고 우는 그녀를 달래줬고, 옆에 있어줬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우는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줬다. 그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덮어주는 그의 자켓을 어깨에 걸쳤다. 그녀는 고영욱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했었지만, 서지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마 그녀는 서지석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하지 않을까. 고영욱에 대한 의리로. 그래서 앞으로의 그녀의 갈등하게 될 감정이 기대된다.
게다가 고딩남자아이(이름은 모르겠고 크리스탈의 쌍둥이 오빠)의 감정의 행보는 또 얼마나 애틋한지. 일전에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 한 여자후배가 남자선배를-나와는 동기- 짝사랑했었다. 그녀는 어느날 그에게 고백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오빠에게 커피 타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줘야 했는지 알아요?"
어제의 고딩은 그랬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이름은 모르겠는데 공부잘하고 머리 긴 박하선 동생)에게 머리핀을 주기 위해 엄마에게, 여동생에게, 좋아하는 여자의 언니와 동거인에게 사줘야 했다. 정작 자신이 주고 싶었던 상대에게는 전하지 못하고. 이제는 사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 하아-
사랑이 그렇다. 그렇게 올 줄 몰랐다. 그래서 사랑을 하다가 돌이켜보면 피식 웃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만약 이 사람을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거기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도 사랑했을까? 혹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대답이 모두 다 예스가 될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만나게 됐을것이고 사랑하게 됐을런지도 모른다. 그때 그곳에 그런 모습으로 그들이 서로에게 나타난건 사실 아무렇게나 된 일은 아닐테니까.
떨리는 한숨이 가슴을 채우고
두 손이 우연한 만남에 떨리고
두 사람의 맥박과 신경이
감미로운 통증으로 두근거릴 때,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치던 두 눈이
서로 수줍어하며 눈길을 피하다가
황홀하고 의식적인 합일점을 찾을 때,
이 흥분과 깨달음은
하늘의 천사가 부르는 사랑의 전주곡인가?
아니면, 달빛 아래 숨 쉬는 모든 것들이
그토록 쉽사리 배울 수 있는 속된 가락인가?
-아서 H.클러프, 제목 없는 시(1844)
(p.321)
사랑은,
시작할 때, 정말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