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책이 이겼다. 원작이 있는데 책으로 만들어지면 어쩔 수 없다. 무조건 책이다. 책이 담고 있는 걸 두시간짜리 필름에 제대로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나의 상상력이 결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속의 남자 주인공은 가장 환상적이고, 책 속의 섹스는 화면보다 더 에로틱하다. 내가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그 모든것들은 영화속에서 결코 따라올 수가 없다. 그것이 너무 좋은 책이 영화화 됐을 때 영화를 보려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걸 깨버릴까봐. 가장 좋아하는 남자와는 사귈 수 없고,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책은, 며칠 후 다시 언급할 것 같지만, 정말 좋았다. 영화는 내 기대를 채우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건 어쩔 수 없는거니까. 그래, 결말의 먹먹함 같은건 영화가 표현해주진 않았다. 책으로 읽는 결말은 얼마나 아팠다고.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아주 많이. 미치게 좋았다.
영화속에서 남자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맞닥뜨린다. 아프고 슬프다. 그리고 힘들다. 술에 취해 엉망이 되고 나때문일까 하는 자책에 빠진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의 슬픔을 미처 돌볼 겨를이 없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엉망이 된 얼굴, 엉망이 된 머리, 엉망이 된 머릿속, 엉망이 된 그의 마음. 그러나 그가 법정에 들어설 때에는 다시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곱게 빗고 표정을 감춘 후다.
매튜 맥커너히가 이걸 너무 잘해줬다. 이 장면을. 그토록 힘든데 그것들을 몸소 겪어내는 감정을 그가 너무 잘 연기해줬다. 나는 영화에서는 모든 사건과 모든 감정의 표현들이 책만큼을 해주지 못할거라고 믿는쪽이었는데, 매튜 맥커너히가 미키 할러가 되어서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그 장면이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미키 할러를 보면서 아 얼마나 힘들까 하고 안타까워져서, 나는 그 장면이 정말 좋았다.
자신의 슬픔에 풍덩 빠져있어서 자신을 돌보기조차 힘든데 보통날과 다름없이 일을 해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어김없이 끔찍하다. 그럴때 일을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테면 실연을 당했을 때 실연휴가를 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연한 후에도 출근을 하고 업무를 보고 퇴근을 한다는 것은 끔찍하다. 나는 어느 날 오전 업무상의 전화를 받고 내 마음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서, 그게 너무 힘이 들어서, 오후에 통화합시다 내가 전화할게요,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 업무상의 전화를 그렇게 받았던 것은 그때가 유일하다. 상사가 자리를 비우고 동료 직원도 자리를 비우고 잠깐동안 내가 혼자가 된 그 틈을 타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자리에 앉아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멍하니 허공을 보고 멍하니 의미없는 낙서들을 하는게 다였다. 끊임없이 업무상의 통화를 해야 하고, 상사가 언제 뭘 물을지 몰라 아는 정보를 머릿속에 꾸역꾸역 넣어야 하고 이런 모든것들을 실연한 후에도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지독하지 않은가. 그러니 너 지금 실연으로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 그렇다면 쉬어, 라고 하는 실연휴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는 생리휴가도 눈치 보여 쓰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실연휴가는 아마도 다른 이유로 쓰지 못할 것 같다. 실연휴가 낼게요, 라고 휴가계를 내는 순간 내가 실연했음을 모두에게 알리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밝혀야 하니까. 그건 더 끔찍하지 않은가. 실연휴가가 있어도 아마 사용하지 못하지 않을까. 나에게 마치 그런일은 없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실연을 하고, 친구를 잃고, 부모님이 아프고, 그 외의 모든 마음이 심하게 다치는 일들에 대해서는 회복할 수 있을때까지,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업무에서 물러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서 또 좋았던 건,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가, 친구를 잃고 아파하는 남자를 보며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보는 일. 힘들어하고 자책을 하며 괴로워하는 남자를 보는 여자도 충분히 아파하고 있다는 걸 이 영화속에서 그 짧은 시간동안에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봤다. 그 장면이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고통을 보며 아파하는 그녀를.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야했을 때 내가 울었던 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를 잃은 친구가 힘들어 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내고 있는 친구를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본다는 건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런건, 내가 견딜 수 없는 몇가지 일들중에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은 너무 모든걸 매끄럽게 처리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 잘 이해됐을까 싶기도 해서 전체적으로 이 영화를 썩 훌륭한 영화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나는 몇몇 장면들 때문에 이 영화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새벽 두시 오십분인데 커피를 내렸다. 나 원 참. 나는 이러고 있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아주 많이 퍼붓다가 조금내리다가 했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아마 내일도 오겠지.
비, 오든지 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