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만약 글을 쓰게 된다면, 작가가 된다면, 어떤 작가같은 글을 쓰고 싶냐고 묻는다. 그때 그들의 대답을 듣는 것은 정말 즐겁다. 최근에 내가 그 질문을 한 남자사람에게 했을 때, 그는 내게 코맥 매카시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얘기했다. 오, 코맥 매카시. 나는 코맥 매카시의 책은 『로드』만 읽어봤었다. 그 책은 아름다웠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걸 놓으려고 할 때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지 않으려는 희망된 존재가 내내 붙들어주고 지켜주는 책이었다. 게다가 그 책속의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는 짧지만 모든 감정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런 작품이라면 정말 좋지, 라고 나는 생각하다가 어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었다.
몇년전에 영화를 미리 봐둔 터였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그 영화를 보고서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 영화를 만들어낼 책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런데 아, 정말 이 책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건 그러니까 엄청난 살인마가 등장하는 책이지만, 엄청난 살인이 전부인 책은 결코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사형수 감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말이다. 놀랄 일이다. 적어도 일부는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했을것이다. 몇 년간 매일 보던 사람을 어느 날 복도로 데리고 나와 죽음의 공간으로 밀어 넣는 일. 몇몇은 꽥꽥거리며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누군지는 알 바 아니다. 그리고 물론 멍청한 치들도 있다. 피게트 목사는 내게 그가 임종을 봐 준 사람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무슨 디저트를 주문했다. 갈 시간이 됐고 피게트 목사가 디저트를 먹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남겨둘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일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피게트 목사도 몰랐다. (pp.74-75)
당신은 알겠는가?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게다가 이 책에서 이런 대화들을 만난다. 철렁.
그런 걸 들고 비행기는 타지 마. 그녀가 말했다. 감옥에 들어갈 거야.
우리 어머니는 멍청한 자식을 키우지 않았지.
언제 전화할 거야?
며칠 안에 전화할게.
알았어.
조심해.
기분이 안 좋아, 루엘린.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야. 그러니 서로 상쇄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공중 전화로만 전화할 수 있어.
알고 있어. 전화해.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마.
루엘린?
왜.
아무것도 아냐.
뭔데.
아냐 아무것도. 그냥 부르고 싶었어.
조심해.
루엘린?
왜.
아무도 해치지 마. 알았지?
그는 어깨에 가방을 비스듬히 걸쳐 메고 서 있었다. 나는 아무 약속도 못해.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너를 아프게 한 거야. (pp.76-77)
이름을 불렀을 때는 왜, 라고 대답한 남자가 혼자서는 나는 이미 너를 아프게 한 거야, 라고 중얼거린다. 아, 나의 후진 말들을 더 넣어 무엇하겠는가.
이 개자식들은 돼지처럼 피투성이네요. 웬델이 말했다.
벨이 그를 흘끗 보았다.
알았어요, 죽은 자를 모욕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죠? 웬델이 말했다.
나라면 별로 운이 안 좋았다고 말하겠네.
멕시코인 마약 밀매꾼일 따름입니다.
그랬었지. 지금은 아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과거에 그들이 뭄슨 짓을 했건 지금은 다만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 뿐이야. (pp.85-86)
내가 만약 작가가 된다면 이러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간혹 해본다. 내가 전하고 싶은건 이런 감정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다, 라는걸 혼자 생각해 보면서. 그런데 코맥 매카시의 이 책을 읽노라니, 나는 결코 작가는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데, 내가 감히 대체 더 무슨 말을,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독자가 되어 감탄하는 수 밖에는 별달리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나를 웃게 하고 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들의 존재를 내가 강하게 인식하고 있을 때, 정말 드물지만,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일전에 누군가 내게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착하게 살았더니 신이 선물을 주셨다' 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의 말이 엄청 유치하게 들렸었다. 유치해.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후로 몇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녀석이 했던 말이 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녀석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나도 가끔 신이 내게 선물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치는, 그들이 감수할 까닭이 없는 나쁜 일에 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을 겪어도 될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지에 대해. 나는 그녀의 미소를 받을 만큼 무슨 복된 일을 한 기억이 없지만, 주님은 내게 그런 은총을 주셨다. (p.105)
나는 후회를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후회는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에 따라올 만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선택은 늘 언제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선택하지 않은, 다시 말해 '이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버려진 '다른 것' 에 대해서는 잘됐다는 안도를 하든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든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후회를 덜 하고 싶지만, 모든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 조금 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지? (p.125)
때때로 나를 아프게 하는 일들에 마주칠때면 나는 생각한다.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루엘린은 자기를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에요. 앞으로도 절대 그럴 거구요. 제가 그 사람이랑 결혼한 이유죠. (p.143)
그이가 저를 떠났다고 생각하시죠?
모릅니다. 그랬나요?
아뇨, 그럴 리 없어요. 나는 그이를 잘 알아요.
알았던 거겠죠.
지금도 잘 알아요. 그는 변하지 않아요.
아마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솔직히 말하면 돈이 사람을 바꾸지 않은 경우는 알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남편이 내가 아는 첫 번째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이가 최초가 될 거에요. (p.144)
나는 위의 문장들을 읽다가 쓰다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책이든, 문장이든. 혹은 이 책 속의 여자이든. 그녀의 믿음이 헛되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 쪽이 더 행복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녀는 보안관 벨에게, 그를 처음 만난 그 순간에 대해 들려준다. 아, 정말 좋다.
열여섯 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뒀죠. 월마트에서 일을 했어요. 달리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우리는 돈이 필요했어요. 쥐꼬리만큼 주대요. 어쨌든 거기 가기 전날 밤에 이런 꿈을 꿨어요. 아니 그냥 몽상이었는지도 몰라요. 반은 깨어 있었거든요. 아무튼 그런 비몽사몽간에 제가 거기 가면 그가 날 찾을 거라는 암시를 받았어요. 월마트 말예요.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이름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어요. 그를 보는 순간 제가 그를 알아볼 거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어요. 매일 달력에 표시했어요. 감옥 같은 데서 그렇게 하잖아요. 감옥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다들 그렇게 할 거예요. 90일째 되는 날 그가 왔어요. 제게 스포츠 용품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그를 단번에 알아봤어요. 저는 그에게 장소를 일러주었고 그는 저를 쳐다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러다가 곧장 돌아와서는 제 이름표를 보고 제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몇 시에 끝나요? 그게 전부예요. 제 마음에는 아무런 의문도 생기지 않았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pp.148-149)
그녀가 그렇게 확신했다면, 그녀가 맞다. 여자들은 이런 일에 좀처럼 틀리는 법이 없다.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보안관 벨은 그녀에게 말한다.
내 아내는 열여덟 살 때 나와 결혼했지요. 막 열여덟이 되었을 때. 아내와 결혼한 일은 내가 그 전에 했던 온갖 바보 같은 일을 벌충해 주었지요.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p.150)
그러나 사실 내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보안관 벨의 독백, 이 부분이다.
전쟁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결국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분대원을 모두 잃었다. 그때 일로 훈장을 받았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훈장을 받았다. 이런 일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알 필요도 없다.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p.216)
전쟁은 역사를 새로 쓰지만, 이 세상을 뒤흔들지만, 전쟁이 가장 바꿔놓는 건 사람들 개개인의 삶이다. 그건 그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고,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도 없는 일. 영화를 보고서는 대체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인지 제목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제 뭘 뜻하는지 알겠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전쟁에 참여해서 모든 삶이 뒤바뀌어버린, 그래서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그들에게는 나라가 없다. 그들을 지켜주는 나라는 없다. 너무 길지만 어쩔 수 없다. 옮기고 싶은 말들이 아직 남아있다. 나는 책 한권을 통째로 옮겨오고 있는 중인가 보다.
얼마전에는 여기 신문에서 몇몇 교사들이 30년대에 전국의 여러 학교에 보낸 설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설문지 문항은 학교 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발견한 설문지는 답안이 채워져서 전국 각지에서 돌아온 것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것은 수업 중 떠들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기 같은 문제였다. 껌을 씹거나 숙제를 베끼는 일도. 뭐 그런 따위였다. 교사들은 답이 비어 있는 설문지를 찾아서 그것을 무수하게 복사해 똑같은 학교에 다시 보냈다. 40년 후에 말이다. 그리고 이제 답지들이 도착했다. 강간, 방화, 살인. 마약. 자살. 나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징후다. 하지만 강간하고 살인하는 일을 껌 씹는 일과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p.217)
이제 마지막.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래.
살아오시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지요.
노인은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그가 입을 열었다. 후회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아.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많이 생각나.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지. 자네도 그런 목록을 만들 수 있겠지.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하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야.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결국 예전에 행복했던 만큼 행복한 거야. 아니면 그만큼 불행하든가. 이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 (pp.288-289)
나는 영화를 봐서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내가 아는 결말과는 다르게 진행되기를 바랐다. 나는 그의 작품 『로드』를 읽으면서는 사람들에게 종종 묻곤 했다. 그 책에서 당신이 느낀건 절망인가, 희망인가 하는 것을. 나는 그 책에서 희망을 느꼈으니까. 그러나 이 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서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죽어나가기 때문에 절망이라 말해야 할까? 마약을 파는 사람과 마약을 사는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절망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러나 그것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여전히 누군가를 믿는 사람들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희망적이라 말해야 할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정말 잘한일이라는 거다.
코맥 매카시의 다른 책들을 찾아 보았다. 기특하게도 나는 이미 『모두 다 예쁜 말들』을 사두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다른 책들도 다 읽어봐야겠다. 그가 써내는 짧은 문장들을 읽는 것은 퍽 행복한 일이다. 비록 그 문장들이 아프고 안타까울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