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전에 잠깐 까페에 들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커피 한잔의 여유, 같은 걸 가지고서 신문을 들추어 본다거나 책을 몇장 읽는다거나, 도넛을 먹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이십분이나 삼십분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 후에 출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불가능한게 과연 내가 여덟시까지 출근하기 때문일까? 여덟시까지 출근은 빡세기 때문에 내가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는걸까? 아니다. 만약 내가 열한시까지 출근이었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게 없었을 것이다. 잠을 더 많이 자겠지. 별 수 없어, 나는 아침형 인간도 아니고, 그저 부지런히 술값을 벌어야 되는 신세. 그리고 이런 구절을 책속에서 만난다.
내가 사는 파리의 한 동네 좁은 거리에는 앞 창문에 스텐실로 '데포르주 피아노: 공구, 부품'이라고 간단하게 이름을 박아 넣은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빨간 펠트를 깔아놓은 진열장의 작은 선반에는 피아노 수리에 쓰이는 연장과 도구를 진열해 놓았다. (중략) 창틀과 좁은 문을 짙은 녹색으로 칠해놓은 가게의 앞면 전체에서는 왠지 졸린 듯한 19세기의 매력이 느껴진다.
몇 년 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려면 이 가게를 지나가야 했다. 내가 아이들 등하교를 돌봐줘야 하는 날에는 걸어서 몇 번 이 가게를 지나기도 했다. 유치원으로 가는 길에는 가게 앞에 발을 멈출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달랐다. 다른 학부모들과 몇 마디 나눈 뒤에 이른 아침이면 파리를 둘러싸는 고요와 어떤 기대감을 맛보기 위해 10분 정도 더 들여 천천히 걸어오곤 했다. 대부분의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깔린지 오래건만 이 조용한 거리는 외지고 좁아서 아직 돌이 깔려 있었다. (중략) 모퉁이를 돌면 동네 빵가게인 '모퉁이 빵집'에서 나는 냄새가 늘 나를 맞아주었다.막 구운 빵의 향기를 맡으면 욕망과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점심으로 먹을 바게트를 하나 사고,일하기 전에 10분 정도 여유가 더 있으면 피아노 가게 건너편 까페에서 두 번째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pp.8-9)
아, 모퉁이를 돌면 빵집의 빵냄새가 나는 곳, 아직 아스팔트조차 깔리지 않은 곳, 피아노 가게 건너편에서의 커피. 작가가 쓴대로 이것은 말그대로 호사가 아닌가! 나는 파리에 대한 로망 따위는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이순간, 내가 정작 있어야 할 곳은 파리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파리에 간다고 나의 형편이 달라지거나 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대로의 나이겠지만,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아침잠이 많은 인간이겠지만 -결코 아침형 인간은 될 수 없는- 그냥 일단 파리에만 도착하면 나는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골목을 걷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피아노 공방을 들여다 보기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현실의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도블럭에 구두굽이 끼어서(;;) 또 허리를 굽히고 신발을 잡아당겨야 했지만 (끙;;), 로망이라는데, 뭐 어때, 파리의 나를 상상하는 순간 싱긋 웃음이 난다. 뭐, 파리에 갈 계획은 없지만서도.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공방에 대한 묘사도 따뜻한 이 책은 또다른 면에서 나를 감동시켰다. 작가의 어린 딸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고, 딸아이의 선생님을 찾아주려고 하는 작가의 음악교육에 대한 자세랄까.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레슨을 해주는 파리의 시립 음악학교에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런 학교는 매우 경쟁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딸아이가 음악에서 재미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는 교사를 찾고 싶었다.
그것은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음악교육을 매우 심각한 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는 존중할 만한 일이었지만, 지나치게 공식적이고 학술적인 접근방법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이론에 큰 무게를 두며, 솔페지오-독보와 가창을 동시에 연습하는 것-가 거의 언제나 요구된다. 이렇게 하면 매우 균형 잡힌 음악교육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혜택은 이미 동기부여가 되어 있고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만 돌아간다. 동기를 부여하고 재능을 계발하는 데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한동안 음악레슨을 받기는 하지만, 재미도 없는 이론과 연습을 끈질기게 반복하다가 기회만 있으면 다른데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딸아이가 음악의 튼튼한 기초를 닦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모험과 발견의 느낌도 경험해보기를 원했다. 선생이나 부모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사랑해서 연습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올바른 출발이 중요했다. (p.221)
올바른 출발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모, 음악을 사랑해서 연습하기를 원하는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딸아이는 아직 모르겠지만 자식으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특권이 아닐까. 당연한일이지만 당연하게 해내고 있지 못한게 현실이니까. 음악에서 재미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는 교사를 찾으려는 부모라니, 물론 이런것들은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겠지만, 딸아이가 음악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전해져서 참 좋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 딸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까? 음악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분야를 사랑하게 될까?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마시고 이제 일을 해야겠다. 술값을 벌어야 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