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노가리와 쥐포를 앞에 두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친구는 그런 얘기를 했다. 자신이 몸이 불편하다는 걸 잘 몰랐던 사람, 혹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얘기했을 때, 그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래도 당신은 마음의 장애가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보다는 낫죠." 라고. 친구는 그 말이 너무 싫다고 했다. 그 말은 '몸이 불편하니까 마음은 순수하고 여릴거라'는 편견을 가진 말이라고 했다. 몸에 장애가 있어도 마음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몸이 불편한 사람도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 못된 마음을 먹고 있을 수도 있고, 싸가지 없을수도 있는거라고. 그런데 그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은 '마음이 순수하고 여린, 그러니까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아닐'거라는 편견을 이미 가지고 시작하는 거라고. 마음을 어떻게 써먹건, 그건 몸이 불편하고 불편하지 않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일상을 살아가며 생각하고 느끼는 거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를바가 없는데, 사람들은 위로랍시고 그 편견에 가득찬 말을 한다고. 그 친구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나는 몸이 불편해서 마음이 건강한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받고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친구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본적이 없고, 또 아직 그런말을 누구에게도 해본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내가 했을지도 모를 말이었으니까. 나 역시 그것이 편견이 덧씌워진 말이란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당신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도 언젠가 그런 말을 하게됐을지도 몰라요, 라고 하자 친구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친구는 다락방의 글은 여러사람이 읽으니까 이 얘기를 꼭 좀 써줘요,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이라고도 했다.
내가 하는 위로가 상대방에게는 위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위로랍시고 던지는 말이 상대에게는 더 모욕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친구에게 그러마 라고 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썼지만, 내가 사실 친구가 말하고자 하는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때 받은 느낌과 생각을 적느라 적은건데, 혹, 뭔가, 어딘가에서 잘못 전달되어 지진 않을까, 조금 두렵다. 이것이 내 글쓰기의 한계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어딘가 잘못됐다면 친구가 나에게 어디가 잘못되었으니 고치라고 말해줄거라 믿는다.
- 어제 만난 그 친구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다 내가 처음 보는,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책들이었다. 그 친구는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모르는 책들을 잘도 추천해준다. 친구는 이 책을 주면서 다락방은 [나의 미카엘]을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아모스 오즈의 책을또 준비했어요, 라고도 했고, [알리와 니노]는 내가 엄청 좋아할 거라고 했다. 이것은 사랑이야기인데 참으로 독특한 사랑이야기라고. 이 친구는 나를 알게 된 후로 내 모든 글을 다 읽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걸 좋아할 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추천해준 책들은 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었다. [나의 미카엘]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도. 아, 그렇지만 이 친구가 들어보라며 준 이적의 최근 노래는 별로이긴 했다. 난 이적의 노래를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이 노래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제목이 뭐더라...기억안나니까 패스.
가끔 그런 친구들이 있다. 이 책은 니가 좋아할 것 같아, 이 영화는 니가 좋아할 것 같아, 라고 말하는 친구들. 한번은 한 친구가 지금 당장 메신저에 접속하라는 문자메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왜? 니가 좋아할 것 같은 영화가 있어, 그거 파일로 줄게, 라고 친구는 말했고 나는 알았다고 웃으면서 메신저에 접속해서 그 영화의 파일을 받았다. 오, 정말 그 영화는 좋았다. 그때 내가 친구로 부터 받은 영화는 [소설보다 이상한] 이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다. 이건 니가 좋아할 것 같아, 이건 니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텐데, 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그 순간들. 물론 그것들을 읽거나 보거나 선택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나는 그렇다고 해서 읽는다거나, 그렇다고 해서 보지 않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줏대있는 여자사람.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친구들이 내 생각을 해준거니까, 나에게 관심이 있는거니까, 아주 좋다.
- 어제 오랜만에 카카오톡으로 연락해온 녀석들에게 '나는 아이팟이라 실시간 챗이 안된다, 지금은 까페베네 앞에 빌붙어서 챗중이고, 이제 와이파이 안되는 지역으로 이동할거다' 라고 했더니, 한명이(판사가 되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던 놈, 그러나 결국은 사시를 보지 않은 놈)이 내게 '그지같네' 라고 했다. 나는 너무 웃겨서 [내가 그지면 예쁜 그지] 라고 하자, 그 친구는 내게 '꽃그지 해라' 라고 했다. 그러자 그걸 보고 있던 또다른 녀석이 내게 '외모는 꽃등심' 이라고 했다. 아 놔. 완전 뿜었네. 어제 처음으로 큰 소리로 웃었다. 자정이 되기 직전, 길거리에서. 꽃등심이라니! 나는 그녀석에게 너 미친거 아니냐며, 만나면 턱을 부셔버리겠다고 했다.
- 아주아주 힘들고 고단한 토요일을 보냈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새벽까지 잠도 못자는 일요일을 맞이했는데, 그러니까 조금쯤 더 자두어도 될텐데 아홉시에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아 제길. 난 더 잘테야, 라고 생각하고 누워있었지만 배가 고파서 더 잘 수가 없었다. 좀 더 자야 어제의 피로가 다 풀릴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 오늘은 한껏 널부러져 있겠다. 방 한구석에 나를 내동댕이 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