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힘들고 피곤한 사흘을 보냈다. 긴장으로 똘똘 뭉친채, 과중한 업무에도 시달렸다. 사흘째가 되는 어제 오후, 그 모든일이 이쯤이면 됐다, 고 생각되었을 때 쯤, 온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내 몸은 흐느적 거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무실에 있는데 졸음이 몰려왔고, 한 숨 자다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마셨는데도 도무지 회복되질 않았다. 온 몸이 쑤셨고, 대체 나는 왜 이토록 긴장을 하는걸까 싶기도 했다. 왜 나는 일을 할때 완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걸까 라는 물음들을 스스로 해대면서, 내일부터는 괜찮아지니까, 오늘 집에 가서 푹 자고 기운 내자, 라고 생각했다.
집에는 여동생과 조카가 와 있었다. 남편이 근무하는 동안 낮에 집에서 혼자 애를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당분간 우리집에 와있기로 한 것. 어제 지친 몸뚱아리를 이끌고 집에 들어갔더니 여동생이 반갑게 맞아준다. 언니 엄청 안좋아보여, 얼른 샤워하고 쉬어, 그거 다 언니 땀이야? 라고 한다. 맞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십분동안 나는 땀을 비오듯 흘렸다. 운동을 해도 땀이 잘 나지 않는 여자사람인데, 몸이 안 좋을 땐 별 수 없더라. 잇몸에는 커다랗게 구멍까지 뚫렸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여동생과 수다를 떨고 신문을 조금 훑고 조카를 안고서는, 열시쯤부터 들어가서 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초인종 벨소리가 들린다.
어? 제부다. 연락도 없이 왔다. 멜론이며 복숭아를 박스째로 사들고 왔다. 일요일에 아내랑 아가를 두고 갔는데 보고싶다고 다 저녁에 왔다. 하루 자고간다고 한다. 다 괜찮은데, 정말 다 괜찮은데, 아, 이 제부라는 인간이,
맥주도 잔뜩 사들고 온 것이다. 아흑, 젠장.
맥주는 왜 사왔냐고 엄마가 물으시니 마시려구요, 한다. 아흑.
나 진짜 피곤한데. 쓰러질 것 같은데. 기껏 술 먹자고 사온 사람한테 나몰라라 할 수도 없고, 나는 좌절감에 휩싸인다. 엄마랑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나는 엄마한테 궁시렁 거렸다. 하필 오늘 오고 난리야, 아니 하필 왜 오늘 와도 또 술을 사와? 또 먹자고 사왔는데 예의상 먹어줘야 할 거 아니야, 라면서. 엄마는 그러게 좀 마셔줘야지, 하신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에 실린 단편, [패밀리 어페어]가 생각났다. 남자는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여동생의 약혼자가 집으로 찾아온다. 써티원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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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냉동실은 좁은 데다 냉동식품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을 넣으라 애를 먹었다. 도대체가 정이 안 가는 인간이다. 하필이면 골라온 게 아이스크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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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 남자의 이 중얼거림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었달까.
나는 진정 어제 술마실 기운이 남아있질 않았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는 남동생을 집으로 급하게 불러들여서는 니가 술상대를 해주라고 했다. 제부는 자신의 집에서도 혼자 가끔 마신다며 자신은 혼자 마셔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둘 수 없어서 남동생을 희생시켰다. 맥주 두잔쯤 함께 마셔주고 열한시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하필이면 어제같은 때 술을 사들고 오다니! 멜론과 복숭아만 가지고 왔으면 예뻐했었을 것을! 거기에 술이라니! 흥이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 안에는 1Q84 를 들고 있는 사람이 두명이나 됐다. 내가 탄 칸 , 내 시야안에서만. 난 좀 나중에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