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중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곧 떨어질 것만 같아서 지하철의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여기는 사람들 가득한 지하철 안이니 나는 그 눈물을 떨구어 내고 싶지 않아. 절망과 좌절을 가득 안고 집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로 기절한채 자리라고 마음먹었다가,
일전에 아주 힘들었던 날에,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를 읽고 좀 진정되는 마음을 느꼈던 경험이 떠올라서 나는 『필경사 바틀비』를 꺼내들었다.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라면 내 기분은 조금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꺼내들고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폈다.제목은 『겨울 꿈』
피츠제럴드는 어제 내가 못생긴 여자의 슬픔에 대해 얘기하는 페이퍼를 쓴걸 비웃었다. 너 그런거 썼지? 이제 예쁜 여자 얘기를 들어봐,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열한살짜리 작은 소녀였다. 몇년 뒤에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워져 숱한 남자들한테 끝없는 비참함을 안겨줄 숙명을 타고난 작은 여자애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굉장히 밉상이었다. 그러나 생기가 불꽃처럼 번득였다. 미소를 지을 때 두 입술을 입 가장자리 아래쪽으로 비트는 방식이라든지 그리고-맙소사!- 열정적이라고 할 만한 두 눈에 전반적으로 불경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여자들에게 삶의 활력이란 일찍 나타나는 법이다. 그 활력이 지금 너무 역력하여, 그녀의 가냘픈 체구를 통해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P,275)
|
|
|
|
|
특정한 사람의 마음을 언제나 뒤흔드는 미소도,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눈동자도, 바늘로 톡 찔러서 굵은 피를 툭 떨어뜨리게 만들고 싶은 입술도, 키스할때는 너무나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게 생각되어지는 아주아주 높은 콧대도, 나는 갖고 싶지만 어느것 하나 갖추고 있지 못한데, 이 책속의 열한살짜리 작은 소녀는 이미 그걸 가지고 있고, 자기의 미소가 가져오는 효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순간 그 소녀를 본 소년의 '꿈'이 된다.
이 책에서 이미 말했던바와 같이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고, 숱한 남자들을 좌절과 절망에 빠뜨린다.
|
|
|
|
열한살 때 그녀의 열정적인 눈과 아래쪽으로 말리는 입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했던 과장기와 수척한 느낌이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두 뺨의 홍조는 그림속의 홍조처럼 뺨 가운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좋은 혈색'에서가 아니라 수시로 변하는 열기에서 생겨난 것으로 아주 옅어서 금방이라도 엷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런 홍조와 입놀림은 줄곧 거침없는 흐름, 강렬한 생기, 열정적인 활력의 인상을 주었는데, 부분적으로나마 균형을 맞추는 것은 슬픈 듯 고혹적인 두 눈뿐이었다.(pp.281-282)
|
|
|
|
|
그녀는 그의 꿈이고, 그녀는 또다른 모든 남자들의 꿈이다.
나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결말을 궁금해하곤 한다. 그것도 단편을 읽으면서. 그는 아름다운 사랑을 외치지도 않고 행복한 삶에 대해서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대체 이렇게 예쁜여자와, 그여자를 꿈꾸는 남자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스포일러성, 그리고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의 결말중 내 마음에 쏙 드는 한줄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꿈이 사라진 것이었다.(p.305)
지난밤에 나도 꿈을 꾸었고 그 꿈이 너무 슬퍼서 꿈에서 계속 울었다. 꿈에서 울었기 때문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좀 살만해졌다. 출근하는 길에는 걸으면서 MIKA 의 'We are golden'을 듣느라 뒤따라 오는 동료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고,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어제 친구가 보내준 커피를 마셔보고자 봉지를 뜯었다. 아, 그런데 향이 무척 좋았다. 다른 직원에게 이거 향 좀 맡아봐요, 하고 코에 대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이 와, 대박이에요! 한다. 향이 좋은 커피가 사람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니, 놀랍다. 그러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란 인간은 사소한 걸로 눈물을 흘리면서 또 사소한 걸로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는구나.
아니,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신경쓰는건 모두 사소한거겠지. 나만 그런건 아닐거야.
못생긴 여자는 슬프고 힘들고, 예쁜 여자는 언젠가 그 빛을 잃는다면, 결국 외모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고 한 11초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