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부터 헤어스타일은 언제나 짧은 컷트였다. 처음 컷트를 잘라주었던 미장원 원장님은 내 머리가 짧아지는 걸 아주 좋아하셨다. 짧은 머리가 훨씬 잘어울리네요, 라고 하시면서. 이 원장님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바로 내 마음에 들게 확- 해주셔서 내가 믿고 가는 미장원이었는데 어느날 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시는 바람에 나는 그 뒤로 맞는 디자이너를 찾아 방황하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에서도 여기 저기 가보고 여동생이 사는 동네, 친구가 사는 동네, 그리고 집 근처에서도 끊임없는 방황에 방황을 거듭했다. 그 어디도 흡족한 곳이 없어서 한 번은 먼데로 이동한 그 원장님을 찾아간 적도 있다. 그렇지만 오고 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어서 다시는 못오겠다 싶어진거다. 그래서 방황, 또 방황.. 하다가, 어느날 집 근처 시장을 가는 길에 있는 미용실을 보게 되었다. 컷트도 그간 내가 갔던 그 어디보다 저렴한거다. 어라, 네이버 예약도 되네? 나는 네이버로 원장님께 컷트를 예약했다. 그 때쯤 내 머리는 갈곳을 잃고 엉망진창이었지만, 뭐, 나는 언젠가부터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그래서 처음 잘랐을 때는 그냥 여기에 정착하자, 하면서 '가격이 저렴하니까' 라는 이유를 댔다. 단발 비슷한 머리 길이었는데, 그런데 이게 아무리 해도 너무 귀찮앗다. 그간 짧은 머리를 하다 약간 길어지니 영 불편한거다. 나는 이번에 가서 예전 내 머리스타일을 보여주며 이렇게 짧게 컷트를 쳐달라고 했다. 원장님은 단발인 내 머리를 컷트로 잘라주셨고, 그 과정에서 이미 나는 만족하고 있었다. 짧은 머리가 되어갈수록 내 인물이 살아나는 거다!!!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나도 느끼고 원장님도 느껴서 둘다 웃었다. 확실히 짧은 머리가 낫네요, 네 저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이 미용실이 고정이 되었는데, 딱히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그 미용실을 찾고 원장님과 대화하게 되면서, 아마도 처음 시작은 그러니까, 내가 퇴근후에 예약도 하지 않고 전화로 '혹시 지금 가면 컷트 되나요?' 물었고 안된다는 답을 들어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는데, 5분도 안되어서 '혹시 오실 수 있냐, 예약자가 취소했다'고 해가지고 '갈게요!' 해서 갔더니 미용실에 원장님과 내가 둘만 있었고,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족발 덮밥 얘기를.... (네?)
아무튼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퍼 보고 너무 궁금해서 족발 덮밥 만들어 먹어 봤다고 원장님은 얘기하셨고, 나는 '그거 보고 족발 덮밥 먹으러 태국 갔다왔어요' 해가지고 둘이 너무 웃었다. 나는 미용실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태국식당 을 알려드렸고, 아니 이 근처에 그런게 있었어요? 원장님은 놀라셨다. 그렇게 헤어졌다가 다음 컷트하러 갔을 때, 원장님은 내가 추천한 태국식당에 가서 똠양꿍이랑.. 또 뭐더라, 아무튼 뭔가를 드셨다고 했고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는 주변 맛집으로 이어졌는데, 아니 알고보니 우리가 나이대가 비슷했고(서로 나이는 모름) 식성도 비슷했고, 게다가 둘다 싱글인 거였던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원장님은 순댓국집을 추천해주셨더랬다. 거기 너무 맛있고, 대기해야 할 수도 있고, 본인은 정말 거기 자주 가고, 장사가 너무 잘되어 지점도 냈고... 등의 이야기를 하시는거다. 그래서 내심 '다음에 컷트 오기 전에 그 순댓국집에서 순댓국 먹고 와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가게 되질 않았... 저녁에 혼자 가서 순댓국 시켜 소주 한 잔 먹어야지 했지만, 그게 우리 집근처 였기 때문에 회사 근처 순댓국 집에서 먹고 오거나 집근처에 오면 자꾸 집으로 들어가버려.. 친구라도 만나면 거길 갈까 했는데, 당분간 나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모드.. 이기 때문에.. 여태 못가고 미루고 미루고, 거길 못가니 미용실도 못가겠는 거다. 그렇게 머리는 길고 길고 또 길고... 이젠 너무 길어져버린 부분. 가기 전에 반드시 순댓국 체험하고 가야한다, 그게 원장님에 대한 예의다!! 하다가,
어제 5월 1일 쉬는 날. 오후에 미용실 컷트를 예약해두고 점심에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둘이 그 순댓국집을 찾았다. 걸어서 15분 거리면 가능한 곳이지만, 아버지가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걸으셔야 하고 또 가다가 쉬기도 하셔야 해서 가는데 50분이 걸렸다. 그렇게 도착한 순댓국집에서 앞에 세 테이블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우리 순서가 되었고, 나는 아빠의 몸보신을 위해 삼이 들어간 순댓국을 주문해 드렸다.
나를 위해서는 일반 사골 순댓국
일단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철판 계란후라이를 주시는데,
어머 이게 뭐야 터뜨려서 먹고 있었더니, 직원분이 오셔서는 '섞어서 스크램블 해 드세요' 하시는게 아닌가. 그래서 아빠, 섞어 섞어 해서 섞어서 먹었는데, 아니 계란.. 늘 먹는 계란이 뭐 이렇게 맛있을 일이야? 희한하게 맛있더라. 아무튼 그렇게 아빠랑 순댓국을 맛있게 먹고 다시 한시간 걸려 집에 갔다가 집에서 좀 쉬고 머리를 하러 갔다. 원장님께 당당하게 '순댓국집 다녀왔어요!'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순댓국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서 생각했다. 잠자냥 님은 이런 나를 보며 정말 이해 안된다고 하시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돌아와 영어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너무 졸렸다. 사진을 찍어 동생들에게 보냈다. 지금 공부중이야. 졸 멋지지?
그리고 책을 샀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언어의 무게》는 친애하는 알라디너 ㅊㅁㅈ 님의 글을 보고 사게 되었다.
《The Bromance BOOK CLUB》는 번역본을 재미있게 읽고 사게 되었는데, 박스를 뜯고 꺼내자마자 후회했다. 안읽을 것 같아... 하아-
《기척》은 제인 에어를 다시 쓴거라길래 궁금해서 사봤다.
《해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 책장에 꽂아 두려고 샀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고수가 무럭무럭 자라는데, 따먹어도 될 때가 언제일지를 잘 모르겠다.. 지금인가요?
우리 엄마의 최애는 방울토마토.
나는 요즘 고수 옆에 치커리 자라는 게 또 그렇게나 예쁘다.
어휴, 하루 쉬고 왔는데 일 겁나 많아서 이제부터 일 겁나 열심히 해야 한다.
빨빨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