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어느 주말이었을 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친구들을 만나 밤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께 성내역까지 간다고 목적지를 말씀드리고 미터기를 계속 쳐다보았다. 내가 탄 곳에서 성내역까지 내가 가진 돈으로 아슬아슬 할 것 같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제발 도착할 수 있어라, 마음속으로 바랐지만 아직 성내역이 조금 남았는데, 내가 가진 돈은 이제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않고 현금만 들고 다니던 때였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 기사님,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했다. 기사님은 성내역가서 지하철 탄다면서 왜 여기서 세워달라 하는거냐 물으셨다. 가진 돈이 이것뿐이라(하며 돈의 액수를 말했다) 거기서부턴 걸어갈게요, 했는데 내 말에 기사님은 '이 시간에 혼자서 거기까지 어떻게 걸어가냐' 고 하시며 지하철역까지 그냥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이 그런 배려를 해주실 줄 몰랐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밤이었고 길에 사람이 없었는데 거기서 내려주면 나는 걸을 수 있겠지만 아마 조금 쫄렸을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엔 1천원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성내역에 도착해서 기사님이 세워주셨고 나는 내가 가진 현금을 기사님께 다 드리다가 문득 내가 가진 참치캔 선물세트가 떠올랐다. 추석 연휴인지 설 연휴인지 아무튼 명절 연휴가 시작될 즈음이라 편의점에서 선물로 참치셋트를 받은거였다. 나는 부랴부랴 박스를 열고 거기에서 참치캔을 두 개였나 세 개를 꺼내서 기사님께 드렸다.
"기사님, 제가 이걸 드릴게요. 아이들 도시락 반찬 해주세요."
기사님은 웃으시며 고맙다고 받으셨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집에 도착해 참치 박스 열어본 엄마는 왜 이렇게 비었냐고 물으셨고 ㅋㅋㅋㅋㅋㅋㅋ그냥 좀 줬어~ 하고 나는 말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에 친구들 만나서 이 얘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진짜 넌 또라이야 그러면서 엄청 웃었다.
갑자기 오늘 아침 이 일이 생각난 건, 새로 올라온 <정희진의 매거진>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내가 들은 부분에서 정희진 쌤이 택시 탔다가 택시 기사님 아들이 직장암 걸렸다는 걸 듣게 되셨고, 기사님께 '우롱차 보내드릴게요' 하셨다는 걸 듣게 된거다. 이 사연이 너무 좋아서 갑자기 생각나버린 나의 참치캔 사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집에 가는 퇴근길에 정희진 매거진 업뎃 되지 않았을까 하고 들어가보니 역시 올라와있더라. 평소엔 어떤게 올라왔나 보지도 않고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들었는데 어제는 자, 어떤 것들이 올라왔나 하고 보다가 <한 장면의 인생> 에서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를 소개하시는 걸 알게 되어서 그것부터 들었다. 와, 이 영화 진짜 내가 엄청 엄청 좋아하는 영화다.
찾아보니 내가 이 영화를 2010년에 보았다고 나오더라. 아마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본 것 같다. 나 씨네큐브 진짜 자주 가서 브이아이피라고 연말에 초대해서 파티도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 파티라고 뭐 대단한 건 아니었고 약간의 다과 와 기념품을 나눠주었고(에코백하고 또 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보여주었다. 당시 나는 씨네큐브와 미로스페이스 단골이었지.. 무튼,
정희진 쌤은 이 영화를 소개하시며 이 주연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영화 <영국인 환자>로 유명한 배우라 하셨는데, 사실 나는 잉글리시 페이션트 대학때 봤지만 거기에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나온건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에서 엄청 각인된 배우이고, 이 영화를 본 뒤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팬이 되었다.
그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주연한 영화중에 프랑스 영화 <차가운 장미>도 기억에 남는다. 그 영화를 볼 때 되게 인상깊었던 게,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자신의 며느리에게 '내 아들 때문에 네가 불행하다면 이혼하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내 아들의 편을 드는게 아니라, 내 아들이 자신의 아내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게 진짜 너무 강렬했달까. 2014년의 영화였고 개봉당시 보았는데 와 진짜 그 말이 되게 인상깊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영화가 많으니 찬찬히 다 봐야겠다. 아 너무 좋은 배우다 진짜.
영화속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미술관에 가 그림을 보는 장면이 있다. 한 그림 앞에 한참을 서있는 장면. 그 때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너무 강렬했고 그래서 집에 와 그 그림이 뭔지 검색해보았더랬다. 그 그림은 '에밀 프리앙'의 <고통> 이었다.
<에밀 프리앙, 고통>
영화속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자신의 아들을 납치,살인한 죄로 15년을 감옥에서 살고 나온다. 그런 사람이 미술관에서 이런 그림을 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희진 쌤은 이게 이야기의 영화가 아니라 장면들의 영화라는 얘길 하셨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영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기억된다기 보다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거다. 보통 영화든 책이든 보고난 후 오래되면 기억나지 않는데, 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여전히 기억나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을 보던 장면이 그랬고, 조카들을 맡아보게 되는 장면도 그랬다. 아들을 죽인 살인죄로 복역한만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터. 그런 언니가 앞으로 자리잡는 것을 돕고자 동생은 자신의 집에서 당분간 머무르게 한다. 동생의 남편, 즉 '제부'는 처형이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 역시 편견을 가지고 있다가 함께하는 시간이 좀 흐르면서 어떤 신뢰가 생기는 장면이랄까. 동생 부부가 외출하게 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게 되고, 동생은 '우리 언니한테 맡기자'고 한다. 정작 언니인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내가 맡을게!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아무말도 않고 있고 이 때 긴장이 (나에게는) 대단했는데, 그 때 약간 시간을 두고 제부가 '그래 처형에게 맡기자'고 하는 장면. 그 때 내가 안도의 숨을 쉬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마음도 풀어졌던 것 같다. 그런 장면 장면들이 기억나는 진짜 너무 좋은 영화인데 이 영화를 정희진 쌤이 얘기해주는 거다.
사실 정희진 쌤이 언급한 그동안의 영화들도 내가 본 게 있긴 했지만(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마더-그 딸의 남자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영화-), 내가 막 좋아하는 영화들은 아니었는데, 이 영화는 진짜 진짜다!!
내가 이 영화 너무 좋아해서 당시에 검색했더니, 소설을 두 권 냈던 소설가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그 감독이자 소설가의 책도 당시에 사서 읽었더랬다. 필립 클로델!! ㅋ ㅑ - 소설도 다 좋아서, 필립 클로델 다 사서 읽었던 것 같다. 몇 권 되지는 않는다.
아니, 죄다 품절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라리여~~~~~~ 그런데 나는 갖고 있지롱~ 읽었지롱~
어제 퇴근길에 이거 듣다가 으앗 필립 클로델 책 집에 다 있나?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 던지고 막 뒤졌는데 세 권 나오네... 나 왜 세권 밖에 없지? 으흐흐흐
아 진짜 아련아련 추억 돋는다.
필립 클로델의 책 좋아해서 사서 읽으면서 아마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필립 베송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을 읽기 시작하면서 너무 좋아서 필립 베송의 작품도 다 읽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베송은 다섯 권 중 두 권이 절판이고 세 권은 판매중이네. 베송은 읽고 다 팔고 포기의 순간만 남겨두고 있다. 필립 클로델도 좋고 필립 베송도 좋고 쌍필립이 다 모두 만족스러웠고 쌍필립 모두 프랑스 작가인 것이다. 크 -
나 프랑스 작가 별로 안좋아하는 거 아닌가보네? 껄껄.
어제는 퇴근길에 혼자 똠양꿍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렀다.
똠양꿍만 시키려고 했는데 마침 테이블 위에 맥주 광고에 눈이 멀어 맥주도 한 잔 시켰다.
똠양꿍, 나의 힐링 푸드~
아마도 똠양꿍에 들어간 생강 탓인지 나는 똠양꿍 먹으면 온 몸에 열이 오르다가 땀이 나는데, 그래서 먹기에 결코 편하거나 쉽진 않은데, 나는 똠양꿍 먹으면 그렇게나 힐링힐링이 되어버린다. ㅋ ㅑ-
베트남 가서 쌀국수 먹어도 힐링 되고 한국에서 똠양꿍 먹어도 힐링되고. ㅋ ㅑ-
문득 사람이 좋아하는게 많다는 것은 얼마나 살아가기에 유리한가 하는 생각도 했다. 쌀국수도 똠양꿍도 힐링 푸드라면 내가 힘들 때 힐링할 방법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내가 동남아시아 음식에만 힐링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순대국도 나의 힐링푸드이지만, 그래서 퇴근길에 혼자 순대국에 소주 마시기도 하지만, 내게는 스테이크도 힐링 푸드여~ 혼자 레스토랑 들어가서 스테이크 먹을 때도 있다. 껄껄. 좋아하는게 많다는 것, 내가 위로와 혹은 위안이 필요할 때 생각해낼 해결 방법이 많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다행한 일이다.
아, 그렇다고 어제 딱히 뭔가 힐링이 필요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ㅋㅋㅋ 그냥 힐링 푸드가 먹고싶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똠양꿍 먹고싶었다는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늘 점심은 게살 볶음밥 먹을 거다. 후후훗. 아침엔 고등어구이 먹어서 좋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이란 참 기이하다. 삶은 예측 불허다. 분별할 만한 틈도 주지 않고 한데 뒤엉키고, 은총의 순간인가 싶으면 피비린내 나는 순간이 닥친다. 늘 그런 식이다. 인간은 길가에 놓인 작은 조약돌 같다. 기나긴 세월 동안 한자리에 박혀 있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떠돌이의 우연한 발길질에 냅다 날아가는 조약돌. 그런 돌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