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4월부터 항공사 마일리지 적용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전보다 더 많은 마일리지를 차감해야 여행이 가능해지게 된것이다. 처음 호치민에 가겠다고 불끈 마음을 먹고 비행기표를 예약하는데, 비행기표가 너무 비쌌다. 저렴한 항공사를 알아볼까 생각했지만 아빠가 입원해계신 중에 취소가 용이한 게 나을 것 같아 대한항공으로 그냥 가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싼 비행기표 나를 당황하게 했고, 그런데 여행을 포기하긴 싫고, 그래서 마일리지로 왕복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내가 가진 마일리지로 왕복 프레시티지석 예매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어, 좋았어! 아꼈다 똥되느니 지금 호사를 누리자!! 그렇게 나는 호치민에 프레시티지석을 타고 왔다가는 것이야. 인생의 이 시점에서 프레스티지 석으로 베트남을 왕복하다니, 크- 뭔가 뽀대나지 않나. 직장생활 20년이면 이게 가능해진다. 으하하하하하. 사실 내게는 기본적으로 이런 마인드가 있어서, 그러니까 '아꼈다 똥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이다!' 이 마인드가 있어서 적립금이나 예치금을 모았다 쓰는 대신 들어오는 족족 바로바로 써버리고 마일리지도 있으면 바로바로 국내갈 때 다 써버렸다가 ㅋㅋㅋ 이만큼 다시 모이게 된 것이었다. 아마 한참 더 모은다면 유럽 왕복도 가능해지겠지만 성수기에 주로 여행을 가는 나로서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누리자, 나는 누리는거야! 그렇게 프레스티지 석을 타고 호치민으로 향했다. 너무 짱 멋지지 않나요? 내가 나한테 쑝간다 진짜..
프레스티지석은 좌석도 넓고 또 뒤로 확 제껴지기도 한게 편하지만, 기내식을 일회용 그릇에 제공하질 않는다. 빵 종류도 세 가지로 바구니에 들고 다니면서 원하는 빵을 선택하라고 하고 메뉴판을 주고 메뉴를 고르라고 한다. 나는 스테이크를 골랐는데 세상에 굽기도 선택할 수 있단다. 여기서.. 구워주는 거예욤?? 맙소사 내적 환호 지르며 미디엄을 선택했는데, 와.. 사기그릇에 으깬감자와 함께 나온 스테이크.. 너무 맛있는거다. 아니 이렇게 맛있을 일이야?
나는 보통 여행을 가면 하룻밤은 사치스럽게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는다. 베트남에 갈 때도 종종 그랬는데 베트남에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던 경험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하루는 스테이크 먹어야지, 생각했다가 일정이 짧으니까 그냥 쌀국수만 먹을까? 고민하던 터에 기내에서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게된거다. 그러니 내가 굳이 호치민에 도착해 스테이크를 먹지 않아도 이미 만족인데 세상에 맛있어 ㅋㅋㅋ 너무 맛있어서 돌아올 때도 스테이크 먹어야지! 했고 그렇게 돌아올 때 도 나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돌아올 때는 스테이크도, 스프도, 샐러드도, 빵도 다 달랐는데 여하튼 맛있게 먹었다. 아 돈이 좋구나,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만세만세만만세다!! 그러나 프레스티지석에 타는 거, 내 인생에 이제 언제 또 찾아올까?
그러나 나는 프레스티지석을 내가 온전히 누릴 순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이게 잘 때 의자도 완전히 제쳐지고 또 발판만 따로 올라오기도 해서 너무 편한데,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내가 완전히 제친것도 아니고(그건 차마 못하겠더라) 반 정도만 제치고 잠들었다가, 내 코고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깬것이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너무나 놀라고 당황했다. 와 편해지니까 코골았어 나 지금? 그 뒤로는 그렇게까지 제치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보니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제치고 누워서 다른 사람들이 코를 아주 신나게 골더라. 아하... 그런거구나..
이번 호치민 여행에서 내가 목표하는 바가 몇가지 있었다.
1. 공항에서 대중교통인 버스 타고 호텔로 이동하기(택시 말고)
2. 카야토스트 먹기
3. 사이공 대학교 가보기
4. 킴 투이 책 사기
자, 공항에 내렸다. 이 뜨거움, 이 열기!! 너무 좋아. 입국심사 받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너무 좋았다. 흑흑 오길 잘했어. 너무나 그리웠다. 이게 뭐라고 나는 이렇게 좋을까. 자, 이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자. 나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고 내가 타야할 버스가 몇 번인지도 알았다. 정류장 앞의 직원으로부터 티켓을 사야했는데, 직원은 미안하다고 네가 타야할 버스가 좀전에 떠나서 기다려야 해, 라고 말했다. 얼마나 기다려? 한시간.. 왓....나의 동공지진을 본 직원은 연신 아임쏘리 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구글지도로 찾은 목적지, 내가 내려야할 버스 정류장을 보여주며 혹시 다른 버스가 있는지 물었고 직원은 저기 저 파랑색 작은 버스를 타면 거기에 간다고 말해주었다. 땡큐베리머치, 나는 그 버스로 향했고 그 버스에 타 어느정도 대기한 뒤 직원이 티켓을 주면서 돈을 받길래 내 목적지를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직원은 알겠다고 했고 그렇게 내게 티켓을 주고 돈을 받아갔다.
맙소사, 내가, 대중교통인 버스를 탔어! 으하하하하하하하. 만세! 씐난다!!
버스 안에는 운전하는 기사님과 티켓을 파는 직원분이 계셨는데 한 정류장에 서자 티켓을 팔던 직원분은 내 뒤의 승객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내리라는 말 같았다. 니네가 찾는 곳이 여기다, 뭐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외국인들이 내렸다. 아하, 내가 어디서 내릴지 미리 알려주면 저렇게 말해주는구나. 그러면 기다리면 되겠어, 하다가, 그런데 버스로 얼마 안걸린다고 본 것 같은데 좀 많이 가지 않았나 싶어졌다. 방송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내가 이걸 어떻게 확인하나, 직원에게 연신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 맞다, 구글 맵! 구글맵을 펼쳐 내 목적지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얼라리여?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흐음.. 검색해볼 때 돌아가는 버스도 있다고 했는데, 이거.. 돌아가는 버스인건가? 그렇게 갸웃하고 있는데 잠시후 직원이 나에게 베트남어로 뭐라 말을 했고 그게 분위기상 너 어디간다고 햇지? 였던 것 같아 나는 화면을 내밀었다. 베트남어여서 내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지나왔고 내려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인것 같았다. 그리고 문을 열더니 내리라는 거다. 왓... 아무튼 그래서 내려가지고, 제기랄 내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해야 되냐, 싶어서 구글맵으로 다시 검색을 했다. 자, 호텔을 찍자, 그리고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나?
걸어가면 40분이 걸린다고 나와있었다. 40분이라니, 걷기에 껌인 거리다. 이정도의 걷기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평소의 나였다면 출발! 하고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 히트텍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으니까요.. 버스 타고 목적지에서 내릴 예정이어서 옷을 벗지 않았어요. 롱패딩은 캐리어에 넣었지만 히트텍까지 벗진 않았어요. 그리고 이곳의 온도는 34도... 히트텍 입고 34도에서 걸었다가 나는 무엇이 될까?
그래서 버스를 검색하려다가, 안되겠다 싶어 그랩을 불렀다. 그랩은 금방 잡혔고 그랩은 훅- 가서 ㅋㅋ 얼마 안돼 호텔에 도착했다. 아아.. 택시 대신 버스 타보기... 실패..인가 아닌가. 버스를 타긴 했으나 목적지에 도착은 택시로 해버린... 껄껄.
그렇게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가방에서 반팔 원피스를 꺼내 입고 가방은 내팽개쳐두고 물 하나 챙기고 손만 씻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쌀국수 쌀국수!! 나는 첫 쌀국수를 분보남보 로 하고 싶었다. 내가 제일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먹었던 제일 처음의 쌀국수가 분보남보였다. 비빔국수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건 빨간게 아니라 피시소스를 베이스로 한것이었고 아무튼 겁나게 맛있다. 그래서 무작정 걸으면서 분보남보를 찾아 헤매는데, 보이질 않았다. 분보후에, 퍼보, 퍼타이, 분보싸오, 분짜.. 왜 분보남보는 안보이는가. 그러다보니 너무 많이 걸었고 배가 고팠고 이제 쌀국수집도 안보인다. 나는 구글에서 쌀국수를 검색해 일단 국물있는 쌀국수를 먹자, 하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고 보니 몇해전 호치민에 왔을 때 친구랑도 왔었던 바로 그 식당이었다. 여기가 아마 쌀국수 맛집으로 등록이 된 곳인가 보았다. 직원은 나를 바깥에 앉으라고 했고 나는 너무 좋았다. 이 더운 날씨에 많이 걸어서 겨드랑이에 땀이 차있었다. 그런데 이 더위에 이 더운 바깥에 앉아 겨드랑이에 땀이 찼는데 뜨거운 쌀국수를 먹으니까, 진짜, 와,
너무 좋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겨에 땀찼는데 뜨거운 쌀국수가 이렇게 좋을 일이야? 이것이 바로 이열치열이라는 것인가? 나는 비타민을 내 몸에 제공하기 위해 레몬쥬스도 시켰다. 아 쓰면서 입에 침 고인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맛잇게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정말 너무너무. 이 뜨거운데 이 쌀국수 진짜 최고야. 이 더위에 이 뜨거운 국수가 좋다니, 이것이 바로 노화의 증거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다시 한참을 걸어서 숙소로 향하면서 반미를 포장했고 편의점에 들러 물과 맥주를 샀다. 여행지의 호텔에서 물을 좀 많이 마시는 편이라(평소엔 아닌데) 호텔에서 제공하는 물 만으로는 항상 모자란다. 물을 사고 맥주도 사서 호텔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좀 쉬면서 가지고간 영어책을 읽었다. 왜냐하면, 이번주의 할당량이 있었고 그걸 아직 못읽었는데, 여행을 핑계로 이번주엔 못읽었어, 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굳이 거기에 가져가서 굳이 호텔 침대에서 읽어버렸다. 만세!! 난 짱이야, 최고다! 나같은 사람은 진짜 세상에 나밖에 없고 나는 내가 너무 좋다.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사람 볼 줄 아는 사람, 대단한 사람... 다락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찬란함 있으리니!!
그리고 반미! 나는 반미 너무 좋아하고 맥주는 별로 안좋아하지만 반미에 맥주를 호텔방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 껄껄. 그래서 반미에 맥주를! 아, 호치민의 아름다운 밤이여!!
예전엔 여행이 좋은 이유중에 호텔 조식이 있었다. 호텔 조식 먹으러 가서 폭식하는 게 여행의 큰 즐거움중 하나였는데, 그러니까 죽과 오믈렛과 쌀국수를 먹고 그리고 빵과 버터 딸기쨈과 치즈, 햄, 샐러드용 야채를 가져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더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샌드위치까지 만들어먹는 걸 본 내 애인도 '넌 진짜 짱이야' 라고 했고, 내 남동생도 '누난 정말 짱이야!' 했다. 애인에게는 내가 큰 마음 먹고 반 잘라서 주기도 했다. 엣헴-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까지 아침 폭식이 되질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호텔 조식을 선택하지 않고, 먹고 싶은 날만 돈 내고 사먹는다. 이번 여행에서도 호텔 조식을 선택하지 않았고, 일찍 일어난 나는 또 가방을 싸들고 나가 쌀국수집으로 향했다. 국물있는 쌀국수를 아침이니까 먹고 싶었는데 비빔쌀국수를 포기하기도 싫었다. 식당에 내가 찾는 분보남보는 없었지만 분보싸오가 있더라. 검색해보니 이것도 비빔국수 였다. 오 그래? 아마도 내 짐작이 맞다면, 하노이의 비빔국수는 분보남보, 호치민의 비빔국수는 분보싸오 인것 같았다. 아무튼 호치민을 떠나기 전에 비빔국수를 꼭 먹어야겠는데 내가 앞으로 비빔국수 파는데를 갈지 안갈지 모르겠고 여기에 비빔국수가 있고 그런데 국물도 먹고 싶고... 그래서 그냥 두 개 다 시켰다. 국물쌀국수와 비빔쌀국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뭔지 모르고 시켰는데 라임쥬스였던 것 같다. 비타민 제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이제 두번째 목표였던 카야토스트 먹기를 해야했는데, 검색해보니 카야토스트 파는 가게가 사라진 것 같았다. 과거에 호치민에 있었던 곳이 이제 없어. 내가 그렇게나 동남아를 다녔어도 카야토스트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싱가폴에서 친구가 카야쨈 살 때도 나는 '쨈은 딸기쨈이야! 다른건 다 짝퉁이지!' 했단 말이다. 그런데 얼마전에 싱가폴에서 카야토스트 먹었던 여동생이 싱가폴에서 먹은 것중 제일 맛났다는 거다. 게다가 말레이시아에서 백종원이 카야토스트 먹는 것도 너무 맛있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 동남아니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죄다 과거 블로그였고 눈에 띄는 까페는 그 어디도 카야토스트가 없더라.
실패.
이제 세번째 목표, 사이공대학교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첫날 걸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 다른 거리로 가야했다. 중간에 전자제품 파는 곳에 들러 파파고 번역 써가며 보조배터리를 하나 샀고, 자 이제 보조배터리도 있겠다, 고고! 하고 걷고 또 걸었다. 킴 투이 책도 사이공 대학교 근처에 가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학 근처에는 서점이 있을 것이고 그 서점엔 책이 많지 않겠는가? 그렇게 걸어서 걸어서 사이공대학교에 드디어 도착!
크- 내가 그렇게나 와보고 싶어했는데 드디어 왔구나! 크- 감개무량! 내가 해냈다. 적어도 이 목표는 이루었어!!
사이공대학교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적막했다. 그래도 이곳저곳 구경하고 나가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사람을 피하는게 아니라 나한테 다가오는거다. 야, 저리가. 나는 먹을 것도 없어. 저리가라고. 그리고 가려는데도 자꾸 나에게로 온다. 냐옹냐옹 거리면서 와. 아, 너 혹시 목마르니? 길고양이들 밥도 밥이지만 물 마시기가 힘들다던데, 그러면 물줄까? 나는 내가 가져온 물을 꺼내 뚜껑에 따라 바닥에 놓아주었다. 일전에도 친구랑 이렇게 했더니 고양이가 씬나게 먹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이공대학교의 고양이는 물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꾸만 냐옹 거리면서 내 발에 제 얼굴을 비빌려고 하는거다. 야, 저리가, 이러지마.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고양이든 강아지든 만지기도 싫은 사람이야 저리가. 이러지마. 나는 육성으로 내뱉었다. 야 안돼 오지마. 그리고 좀 피했는데 다시 또 와서 내 발에 얼굴을 문댈라고 하는거다. 야 저리가, 안돼. 이러지마. 이러면서 나는 냥이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물을 챙겨가지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도 너무 무서웠다. 이 냥이, 나 따라오면 어떡하지. 이놈아, 나 뱅기 타고 한국 간다고!! 그랬는데 돌아보고 자꾸 돌아보니 한참을 제자리에서 나를 보던 냥이는 천천히 뒤돌아 사라졌다.
미안해..
자, 이제 나는 킴 투이의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검색한다. 다시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어쨌든 큰 서점이 있다. 중간에 잠깐 멈춰 서 호치민 동상 사진도 찍어보고 그리고 서점에 도착했다. 내가 찾아보자니 막막해 나는 킴투이 책의 표지를 보여주며 이 책 있냐 물었고 직원은 컴퓨터로 조회를 해보더니 없다고 했다. 나는 킴투이의 책 세 권을 보여주었는데 다 없다는 거다. 하는수없이 나와 다시 검색하니 근처에 서점이 또 있었다. 나는 가서 또 물었고 역시 없다는 답을 들었다. 아..
많이 걸었고 배도 고팠다. 점심때까지 17,000보 이상을 걸었고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나는 지도에서 한식당을 검색했고 조금만 걸으면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은 매우 고급스러웠고 ㅋㅋㅋ 나 혼자인데도 6인용 룸을 주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치찌개도 시키고 별로 안좋아하지만 너무 더워서 맥주도 주문했다. 고급진 서비스를 받았는데 아니나다를까, 나갈 때 보니 세금을 따로 붙이더라. 그래도 이렇게 먹고 2만원 안되는 돈을 내고 나왔다. 세상에 김치찌개 무슨 일이야 ㅠㅠ 반찬들 다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나 무슨 일이야. 왜 호치민에 와서 김치찌개 먹고 있어 ㅠㅠ
일전에 하노이에 갔을 때도 그랬다. 한참 쌀국수도 먹고 너무너무 맛있는 베트남 밥도 먹었는데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은거다. 정확히는 김치찌개에 소주! 그게 너무 간절한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 때도 하노이에 혼자 갔었는데 한식집 찾아 들어가서 김치찌개랑 소주 시켜가지고 먹으면서, 하 나는 진짜 한국 씨발 졸라 사랑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러면서 흡입했더랬다. 이번에도 그런데 또 김치찌개 타임이 와버렸고... 그렇게 나는 김치찌개를.... 하하하하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책 거리(street)를 지나게 된다. 여긴 전날 보았던 곳이기도 한데 규모가 크진 않아 킴 투이 책을 물어보진 않았더랬다. 그런데 이 날은 안되겠다 싶어 책 거리의 한 상점에 들어가 킴 투이 책이 있냐고 화면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아 이 작가 알아 캐나다로 간 작가지, 하는거다. 오 맞아 맞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아니? 내게 묻길래, 한국에서 읽었어, 라고 했다. 아 그래? 근데 우린 이 책이 없어, 라는거다. 그래서 아쉽게 헤어지려다가 나는 파파고에 베트남어로 돌렸다. 혹시 킴 투이의 책은 베트남에 번역이 안된거니? 라고. 그랬더니 화면을 본 직원은 말했다.
I think so.
그래, 이런 아이러니가 있다. 사이공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간 작가의 작품을 한국에서는 읽을 수 있지만 사이공에서는 읽을 수 없는, 이런 아이러니가 있다. 살다보면 이런 아이러니가 있어.
킴 투이 책 구입은 실패.
그리고 숙소까지 걸어와서 룸에 들러 손 씻고 양치하고 가방 던지고 책만 챙겨서는 1층 bar 로 내려와 멍때리다 책보다 하면서 맥주도 마시고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 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은 딱 정해둔게 있었다. 바로 분짜! 마침 오던 길에 분짜 파는 곳을 알아두었더랬다. 철저한 나. 샤라라랑~ ♡
분짜 시켜두고 넴도 시켰다. 히히. 아 너무 맛있었어. 분짜는 사랑입니다.
호치민 떠나기 전에 분짜 먹고 싶었는데 너무 잘됐다. 으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저녁을 먹었으니 또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 날 총 걸은 거리는 24.500 보였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보고 숙소로 돌아와 책을 한 권 챙겨 또다시 1층 bar 로 내려왔다. 와인을 주문해두고 책을 읽다가 멍하니 바깥을 보다가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컵라면을 먹을까 진짜 엄청 갈등하다가 내일 호텔 조식 먹을 예정인데 방해받을까봐 꾹 참았다. 최대한 배고픈 상태로 호텔 조식을 먹겠어. 그래야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퍼를 두 그릇 먹을 수 있다! 그렇게 꾹 참고 아침이 되어 고양이 세수를 한 뒤에 호텔 레스토랑에 갔다. 죽, 죽이 있을까? 크- 있었다. 나는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죽이 진짜 너무 좋다.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 죽을 한 사발 들이마신 뒤 쌀국수도 먹고 오믈렛도 가져왔다. 오믈렛에 뭐 넣어줄까? 요리사가 묻는데 에브리씽!!! 답해서 오믈렛을 가져와 먹고, 잠시후 쌀국수도 한 번 더 갖다 먹었다. 이것은 나의 호치민 마지막 쌀국수가 될것이야! 크- 베트남에 가면 호텔 조식으로 먹는 쌀국수도 기본 이상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백프로 진실이고 사실이다. 여러분, 베트남에 가면 호텔 조식 쌀국수, 포기하지 마세요! 진짜 최고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번에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걸었다.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자, 아침 먹고 걷자, 하고는 이번엔 또 안가본 길로 걸었다. 거리 한복판에 갑툭튀..동물원이 있더라. 동물원겸식물원 이었는데 들어갈까 하다가 말았다. 그렇게 걷고 호텔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겼는데, 내가 가지고온 컵라면이 눈에 밟힌다. 다시 짐에 넣기 싫어, 라기 보다는 먹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체크아웃 전에 후다닥 컵라면을 먹었다. 나란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체크아웃하고 그랩 잡아서 공항으로 슝- 와서는 공항 라운지로 가 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맥주도 한 잔 하고! 그리고 비행기 타서 또 스테이크 먹고 와인도 마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칸다 뽀에버 보다가 스톱하고 잠도 좀 자고 그리고 내렸다. 내리자마자 집에 가서 밥먹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간절했는데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좀 안된 시간이었다. 당장 내일 아침 일어나 출근해야 하니 김치찜만 만들어두자, 짐은 내일 풀자, 하고 김치찜을 후다닥 만들었다. 내일 아침의 나를 위해. 지금 먹고 싶었지만 이거 먹고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 그렇게 김치찜 만들어두고 샤워를 하고 자려는데 아무래도 짐을 풀지 않은게 영 걸려.. 그래서 그냥 그 밤에 짐도 풀어 정리했다. 빨래는 내일 돌리더라도 짐을 풀고 정리하자. 그렇게 짐을 풀고 정리하고 자정을 훌쩍 넘기고.... 다음날 일어나 전날 만들어둔 김치찜에 밥을 먹고 월요일을 맞았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입국심사 하는데 내게 비자 없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없다고 답했는데, 다음에도 없다고 답해도 되는걸까? 내가 규정을 어긴 건 아니다. 베트남은 한 달 이내에 재방문일 경우에는 비자가 필요하지만 한 달 을 넘어서면 필요없는게 맞으니까. 그런데 자꾸 물으니까 없다고 대답하는 게 그래도 되는건지 잘 모르겠다. 5월달에 하노이를 또 예약해 두었는데(네?) 그 때도 비자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나는 비자를 만들어 두어야 할까? 이 생각을 며칠째 하고 있다. 비자 만들까? 왜 자꾸 물어요, 비자 있냐고? 왜요?
어쩌면 조만간 베트남 비자 만들었다는 페이퍼가 올라올지도...
호치민의 더운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여행을 하는 타입은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내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고 내 여행을 하는 것도 나니까. 그러니까 나는 보통 여행지에서 어떤 목적지를 정하면,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목표라기 보다는 그 목적지에 가는 길이 목표이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습인지를 보는게 내게는 더 즐거운 일이다. 결국 목적지에 다다른 건 중요하고 또 성취감도 주지만, 그러나 나는 그 과정을 사랑한다.
내 삶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이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목표들이 있었고, 그러니 내 순간순간의 선택들은 그 목표를 향해 이루어졌지만, 그러나 그 과정이 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때로는 고통을-주었고, 나는 그 과정을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 결국 그 목표를 이룬 나에 대해서도 뿌듯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이런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과정을 떠올리면서 더 흡족해한다.
'최정화'의 《책상 생활자의 요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하는 방식,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의 자세들은 요가를 할 때 여실히 드러난다. 내가 억지힘을 써서라도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는 것 말고 또 깨달은 것은 약하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힘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데 센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힘을 잘 쓰지 못했다.
나는 강해지고 싶었다. - P67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그것이 요가에도 반영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나보다 훨씬 먼저 그래서 더 오래 꾸준히 요가하는 여동생은 요가를 하다가도 힘이 들면 멈추고 쉬었다가 다시 하거나 아니면 오늘은 이만, 하고 끝낸다고 했다. 언니 힘든데 왜 억지로 해, 라면서.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내가 재생한 영상(혹은 수업)이 끝을 알릴 때까지 버텼다. 중간에 하지 못하는 동작들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중간에 이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쉽게 요가를 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겼다. 여동생은 수시로 요가를 하고 거의 매일 하지만 나는 안한지 오래되었다. 한 번 틀어두면 내가 거기에 집중해서 기어코 끝내고야 만다는 걸 아는 까닭이었다. 나는 고지식하고 이런 나를 여동생은 언제나 우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요가를 대할 때의 태도는 내가 삶을 대할 때의 태도와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연애를 시작할 때의 내가 그랬으니까. 안돼 끝이 있을텐데 시작하지 않을거야! 라고 이를 악물었으나 상대가 '한 번 해보자' 고 설득하는 바람에.... 안돼안돼 했다가 그 연애를 해버렸고, 물론 그 연애는 내 인생 연애였고 내 삶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내게 선물했지만 결국 이별이 왔음에 혼자 울면서 내뱉었더랬다. 거봐, 내가 안한다고 했잖아!!
호치민 거리를 걸으면서 내 여행을 대하는 자세를 그리고 내 삶의 자세를 생각했다. 요가를 하면서도 그랬는데 여행을 하면서도 그랬다. 내가 이런 사람이면 이런 여행을 할 것이고 이런 운동, 이런 연애를 할 것이었다. 다를 리 없었다. 당연하다.
베트남에 쌀국수 먹으러 가요, 라는 나의 말에 누군가 내게 '그러지말고 관광지도 좀 다니고 그러세요' 라고 했는데 되게 불쾌했다. 내가 나에게 맞는 여행의 방식과 태도를 찾아내 그렇게 즐기고 있는데 왜 그것이 마치 좋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건지.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여행을 한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는 것처럼 내 여행에도 아주, 아주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