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동탄에 갔다. 거기 친구가 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동탄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지 못할 거리도 아니다. 일단 수서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뒤에, 수서에서 SRT 를 타면 15분이면 동탄에 닿는다. 물론 왕복 차비가 15,000원 이지만,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그 돈을 쓰는 것쯤은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쓴다기 보다 친구가 거기 있어 다행한 느낌이 좀 더 크다. 나는 주기적으로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수서역으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기차를 타고 여기가 아닌 어디 다른곳에 가는 여정을 나는 몹시 매우 많이 좋아한다. 금요일에도 친구와 만나 와인을 마시면서, 내가 여행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설사 도착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런데 내가 거기에 있었지, 존재했지. 나는 그곳에 존재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에서부터 벌써 너무 좋아. 사실은 여행을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아. 그 과정에서 나는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간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잠깐이나마 존재한다는 것. 친구는 내가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목적 없이 이동하는 것보다는 방향을 설정해두고 이동하는 편이 더 움직이기에 낫다. 자, 저기에 가야 하니까 이 길을 지나치자, 하고.
약속시간보다 두시간 반 앞서 도착했다. 가방 안에는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권의 분량이 얼마 남지 않아 그걸 마저 다 읽고 다른 한 권을 읽어야지. 부러 일찍 도착하려고 했던거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낯선 도시에 왔으니 걷고 싶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의 근처 까페에 들어가는 일이 내가 원래 계획했던 일이었는데, 거긴 나중에 가고 지금은 걷자. 그렇다면 어디로 걸을까? 무작정 주변을 도는 것보다 나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가고 싶다. 목적지로 가는 길을 구경하고 싶다. 지도를 열고 '서점'을 넣었다. 동탄역 롯데백화점 안에 영풍문고가 있다고 했다. 아니, 거기 말고. 거긴 지금 내가 있는 곳이잖아. 다른 데. 쭉쭉쭉 화면을 위로 올리는데, 어라,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고 한다. 1.6KM 떨어진 곳에, 도보로 31분 거리에! 좋았어, 바로 여기다! 그리고 지도를 다시 본다. 핸드폰 충전을 위한 케이블을 챙겨오지 않았고 보조배터리도 없다. 수시로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보고 걷는 것보다 어디 한 번 외울수 있나 볼까? 길은 단순했다. 한참 걷다가 스타벅스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걷고, 그렇게 또 쭉 걷다가 엘지전자가 보이면 .. 오케. 접수. 그렇게 나는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스타벅스는 언제쯤 나올까. 내가 걷는 길의 왼편에는 상점들이 있었지만 좀 썰렁했다. 신도시 특유의 썰렁함이 있었다. 어쩌면 주말이라 그런걸까. 내가 걷는 곳의 오른편은 고층 아파트가 한없이 이어졌다. 이름도 다른 아파트들이 계속 계속 끊임없이 나왔다. 이 아파트에 사람들이 다 있을까?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스타벅스를 만났고, 좋았어! 오른쪽으로 꺾었다. 걷다가 지도를 보았다. 아, 여기가 맞긴한데, 저 파출소를 끼고 가라는건가 앞에서 가라는건가, 잠시 헷갈렸다. 일단 걸어보자, 하다가 주변을 살피는데 저기,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였다. 좋았어, 도착했다! 나는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들어갔고, 온 김에 책이나 살까, 하고 검색창에 생각나는 책들을 검색했다가, 아이고 왜 재고가 있는거람? 그렇게 책 두 권을 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왔던 길을 다시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까페에 닿았고, 그곳에 들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왕복 한시간 이상을 걸은셈이었다. 커피를 두고 책을 펼쳤다. 뒷부분 조금 남은 책을 다 읽었는데 친구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가방을 싸고 나가서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전하며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똠양꿍에 와인을 마셨다. (네?) 한참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와 쓰러졌다.
내겐 그런 시간들이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이동하는 시간, 다른 곳에 존재하는 시간이. 이번에 동탄에 다녀온 건 좋았지만 부족했다. 다른 곳에 다시, 또 가야겠다. 이번엔 좀 더 멀어야겠다. 머릿속에 장소 두어군데를 지정해두고 스케쥴을 살필 참이다.
책이 도착했다. 지난 한주간 도착한 책들이다. 링크를 달기 귀찮을 정도로 많다.

아니, 사진 찍어놓고야 알았는데, 도대체 어째서 왜 때문에 저렇게 왼쪽으로 기운거야? 왜 한줄로 못맞춰? 나는 확실히 정리에는 소질도 재능도 기본적인 뇌도 존재하지 않는 거야? 어떻게 있는 책 쌓는 것도 못해? 어이가 없다 진짜..아니 왜 저렇게 점점 더 왼쪽으로 가는거야? 사진 보고 빡쳐서 다시 쌓을까 하다가 너무 귀찮아서... 저 책들 쌓는 것도 얼마나 귀찮았게요? 그냥 둔다. 걍, 난 이런 사람이다..
금요일에 기혼 친구와 만나서 인간이란 모두 혼자가 제일 편한데 부부는 너무 세게 묶여있는 것 같다, 그래서 힘든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저렇게 한쪽으로 기운 나의 책탑 사진을 보노라니, 정리정돈이 몸에 스며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거 쌓을 때 옆에 와서 탁탁탁, 일렬로 줄 맞춰주는 사람과... 세상에, 아니, 사진이 저게 뭐냐고... 하아- 씨발 짜증나 ㅠㅠ 그런데 다시 쌓는 건 더 짜증나. 아... 역시 나 어딘가로 다녀와야겟다. 애가 성격이 점점 더 포악해지고 있음. 다녀와야 한다. 내 친구가 너 그냥 비행기 끊어, 얼른 갔다와, 했는데, 그 친구의 말이 내게 적합한 처방인 것 같다. 휴우- 포악해진다, 나는..
(잠깐 책 링크 올릴까말까 갈등중.. 너무 많아서 빡침..)
《눈》, 《써커스의 밤》, 《밤은 부드러워라》이 세 권은 모두 이미 읽은 책인데 다시 산 책들이다. 솔직히 《눈》은 내가 읽은 줄 모르고 리뷰대회 참가할라고 샀다. 책 도착하고 펼쳐 읽을 때까지도 내가 읽은 책인줄 몰랐다. 그러다 한 두 장 읽었나 아니 제기랄, 이거 리뷰로 욕햇던 책 같은데.. 하고 뒤져보니 2019년에 읽고 별 셋 리뷰를 썼더라. 어쩜 리뷰까지 쓴 책이 기억이 안나. 하아- 아무튼 이왕 읽기 시작한 거 다시 읽고 다시 리뷰 수정해 등록했다. 내가 쓴 리뷰는 리뷰대회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틀려먹었어. 사요나라, 적립금..
《써커스의 밤》은 오만년전에 뻘리뷰 써놨길래 다시 읽어보려고 샀고 《밤은 부드러워라》는 몇해전에 처음 읽을 때 피츠제럴드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지루하지 않은 책일것 같은데 내가 왜 지루했을까, 다시 도전하겠어!!
다른 것들은 그냥 다 이래저래 샀는데.. 사실 어떤 책들을 박스에서 꺼내면서 '하아, 이건 왜 샀냐..' 이러면서 짜증도 좀 났다. 뭐랄까, 내가 너무 지난 주에 스트레스를 대박 받았던 것 같다 ㅠㅠ 박스가 와서 내 자리 옆에 쌓였는데, 다른 층의 동료가 와서 보고 빵터져서 이거 다 책이에요? 물었고, 어, 근데 아직 덜왔어... 라고 답했더랬다. 일이 너무 많아서 뜯지도 못하다가 퇴근전에야 박스 뜯고 책 꺼내면서, 어휴, 이건 왜 샀어, 어휴, 넌 또 뭐여... 도대체 너같은 책은 내가 어떻게 알고 샀냐, 막 이렇게 되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스트레스를 책으로 풀지 맙시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