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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ㅣ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평점 :
생일날 아침 유코는 은빛 강가에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승려의 미간이 깊은 실망을 나타내며 찌푸려졌다. 태양이 물결무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개복치 한 마리가 자작나무들 사이를 지나 나무다리 아래에서 사라졌다.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슬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p.11)
열일곱 유코는 눈(雪)에 반하고 숫자 7에 반한다. 그래서 눈에 대한 시를 쓰기로 한다. 승려인 아버지는 그것이 마땅찮았지만, 유코는 매 겨울마다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기로 한다. 겨울이면 아침에 눈을 보러 가 눈에 대한 시를 쓰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시가 너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궁정에서 사람이 오지만, 그는 자신이 7년간 시를 더 써야 시를 잘 쓸 수 있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가 궁정에 가서 왕에게 시를 지어주고 읊어준다면, 그는 대단한 월급을 받게 되는걸까?
눈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고 있는지 잘 알겠고, 그 순백을 찬미하는 것도 잘알겠다. 그래서 유코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여인의 '눈같은 한쪽 가슴'에 반해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피부가 투명한 여인에게 미움과 사람을 동시에 느끼며 반하고, 얼음속 흰 얼굴 여인에게 감탄한다.
책 띠지에는 '한 권의 소설이면서 한 편의 시가 되는 이야기'라고 적혀 있는 '막상스 페르민'의 이 책, 《눈》은 그 찬사가 어긋나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이 짧은 소설 한 권 내내 눈앞에 설경이 펼쳐져있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차분하게 시를 짓며 살아가는,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일평생을 아름답게 보내기로 약속하는 청년 유코를 만날 수 있다.
유코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하고 그렇게 한다. 겨울이면 77편의 시를 쓰겠다 하고 그렇게 한다. 그러면 그는 봄,여름,가을엔 무얼할까?
봄이 오자 유코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는 초록으로 물든 정원에서 벚꽃 잎의 향을 맡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름이 오자 그는 산월山月이 내려다보는 숲에서 꿀 향기를 맡았다.
우기가 시작되자 강가 이끼 속에서 버섯을 하나 발견했다.
한 해 내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향들을 맡으며 지냈다. (p.30-31)
하아-
아름답다. 물론 아름답다. 여름과 우기, 초록으로 물든 정원.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게다가 그걸 관찰하고 향기를 맡는 청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니, 그런데 그 아름다운 봄,여름,가을을 볼 동안, 그리고 겨울에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는 동안, 그의 밥은 누가 해주었을까? 매일 외출하고 돌아오는 그의 옷은 누가 빨아주었을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다.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의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나에게 '이 아름다운 소설에서 그런 생각하지마, 작가가 쓴 것만 보고 생각해' 라고 자꾸 되뇌었지만, 그러다가, '아니 어떻게 그래? 어떻게 여자가 드러나지 않아? 이 생활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데?' 라고 불쑥불쑥 화가 나는 거다.
이 짧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유코에게 레몬같은 젖가슴을 내주거나, 그를 반하게 만드는 여자들 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성적대상이 되는 여성. 그가 사시사철 놀고 먹으면서 시를 쓰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있을 동안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자가 없고, 그의 아버지 역시 승려로서 그에게 '너 앞으로 뭐할거야' 몇 번이고 되뇌지만, 재생산노동에 관여하는 여성도 등장하지 않는다.
유코가 시를 쓰는 동안, 우기구나 얼씨구나 좋다 아름다워 샤라라랑~ 할동안, 밥과 설거지는, 빨래는 누가 했을까? 그가 외출하고 돌아온 뒤에 벗어둔 옷과 신발은 누가 빨았을까? 그가 나가기 전에 먹는 밥은 누가 차려줬을까? 그런 것들에 대한 일절의 생각없이 더 깊은 시를 배우겠다고 훌쩍 떠나다니...
물론 이 소설의 시작이 유코의 열일곱이니 지금으로 보면 청소년이다.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지원을 받아야 할 때. 이 책은 1999년에 지어졌고, 일본인 유코가 주인공이지만,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태어난 '막상스 페르민'이 지어낸 이야기이다.
나는 그런 이 책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관찰하고 앞으로는 시인이 될거야, 라고 생각하고, 더 깊은 시를 쓰기 위해 공부하러 갈거야, 하고 길을 떠나는 이 삶. 야... 진짜 팔자가 늘어졌구나... 라는 생각을 해버리고야 만것이다.
아아, 눈이여.
니가 나를 잘못만나 고생이 많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몇 해전에 읽었다면, 아아, 이것은 정녕 한 편의 시로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아름다워 했을지. 그러나 지금의 내게 와서 고생이 많아. 지금은 이 아름다움은 다 무어야, 모든 고통들은 뒤로 숨어버린, 고통과 노동을 뒤로 넘겨버린 아름다움이잖아, 하게 된달까.
눈이 아름답고 초록이 아름다운 거 누가 모르나. 우기의 빗소리 같은 거 가만 듣고 있는 거 얼마나 여유로운가. 그걸 어느 한 사람만 알 수는 없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데, 왜 어떤 이에겐 한가로이 즐길 것이고 어떤 이에겐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은 그 곳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길래 유코는 딩가딩가딩~ 할 수 있을까. 입맛이 쓴 것이야, 나는.
내가 아무리아무리아무리아무리 오늘 출근길에도 '이건 그냥 한 편의 시같은 소설이야' 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그래서 그래 아름답게만 보면 되는거야, 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소. 그래, 왜 사람들이 이 소설은 한 편의 시야, 라고 하는지 알겠어, 그렇지만 눈같은 젖가슴 가진 여자를 보고 발기하는, 시만 쓰는 청년이라니. 글쎄. 뭐랄까, 앞으로의 유코는 노동에 참여할까? 아내가 물을 긷고 밥을 하는 동안 먼 산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답답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시를 쓰는 동안,
밥은 누가 하나요?
리뷰대회에 참가하려고 이 책을 사서 오늘 출근길에 펼쳤는데 첫 장을 읽자마자 내가 읽었던 책이라는 걸 알겠더라. 검색해보니 처음 이 책을 2019년에 읽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지 않고 끝까지 다시 읽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게다가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으니까 내가 그 때 놓친걸 이번 재독에서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번 재독에서 나는 지난번의 별 셋에서 별 하나를 더 깎아내야 했다. 처음 읽었을 때 리뷰에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책에는 시체에 반한 유코가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 시체냐? 백인 여성의 시체인거다. 예술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승을 찾아 떠나는 길에 예의 금발의 백인 여성 시체를 맞닥뜨리는데 그 시체 보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그 시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룻밤을 꼬박 새운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싸이코패스야 뭐야?
게다가 유코는 하얀 젖가슴의 여자에게 반해서 그 여자의 젖꽂지를 밤새 빨아놓고 다른 아름다운 여성에게 반해서 밤새 젖꼭지 빨았던 여성이 찾아오자 거절을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은 일상다반사 이지만, 눈의 아름다움에 미치듯이 여성의 아름다움에 끌려 젖꼭지만 빨다 내팽개치는 게-하룻밤에 일곱번의 사정을 했단다. 대단해요!!- 영 꼴보기 싫단 말이지.
읽으면서 내내 놀고들 있네, 했다.
진짜 이 책속의 남자들, 놀고들 있다.
(사진은 오늘 아침의 캐나다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