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 서문을 다 끝내고 본문으로 들어섰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철안에서 읽기가 필요했다. 내가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기.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험에 대비해 교재를 보다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경험을 한게 대학교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내가 오, 다 알겠어 머릿속에 다 들어가! 하고 시험 보러 갔다가 답을 좌르르르르르르르르륵 써서 냈고 흥분했는데, 그리고서야 아아, 이걸 너무 늦게 알았다.. 하고 안타까웠다. 진작 알았으면 내가 서울대 갔다가 사시 패스하고 지금쯤 대통령...
그만두자, 이런 얘긴..
아무튼 특히나 지하철 출근길 독서는 나를 정말로 짜릿하게 해,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갈 때면 어쩌면... 나도 사실은 초큼 똑똑한 건 아닐까? 막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으하하하. 아무튼 내가 오늘 아침에 지하철 안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기 시작했다는 거다.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빨간 백팩.. 책을 들고 다니기 위한 나의 백팩.. 아니 여러분 가방은 정말 백팩이 짱이지 않나요? 양 어깨에 멜 수 있는 백팩이 가방의 최고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세! 두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무게는 양쪽으로 균일하게 가고 어떤 무게여도 짊어질 수 있는 백팩이 나는 좋아라~
각설하고,
그렇게 읽기 시작한 본문에서 나는 아아, 생식력을 가지지 못한, 자궁을 가지지 못한, 신체적으로 임신할 수 없는 남자들의 열등감을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종종 펜이 페니스를 대체.. 펜이 페니스를 상징.. 이러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굳이 펜을 페니스의 은유로 봐야하는건지, 나는 펜을 펜이라서 쥐었을 뿐인데. 어쨌든 아주 오래전부터 펜은 남성성의 상징이 되었고 문학은 남자들만의 것, 여자들은 글을 쓸 능력도 없고 여자들이 글을 쓴다면 그것은 기이한 것이다!! 뭐 이랬다는데, 글쎄 펜이 페니스.. 나는 딱히 설득되지 않는 편인데, 그런데 펜이 페니스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사실 마리 루티도 펜을 음경으로 보고 강의할 때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그건 뭐 그 사람들의 마음이니 그러라고 하면 되고 내가 알게 뭐람. 어쨌든 펜이 페니스고 문학은 남자의 것! 했던 역사를 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통해 알게 된다.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목적에서 문학적 부권 은유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문학작품은 문자 그대로 언어의 표현일 뿐 아니라 육체로 신비롭게 구현된 권력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따라서 가부장적 서구 문화에서 텍스트의 저자는 아버지이자 창시자이며 낳는 자, 펜을 음경처럼 생산의 도구로 쓰는 미학적 가장이다. 더욱이 저자의 펜이 지닌 힘은 음경의 힘처럼 생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요, 자신의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손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즉 저자는 사이드가 파트리지의 말을 바꿔서 표현한 대로 ‘증식시키는자, 따라서 창시자‘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펜이란 음경의 비유인칼보다 더 강력하며, 가부장제 안에서는 더더욱 성적인 울림을 던진다. -p.78
『율리시스』에서 스티븐 디덜러스가 말했듯, 부권 개념 자체는 ‘합법적 허구’, ‘믿음까지는 아니어도 상상력을 요구한다. 남자는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감각이나 이성으로 확인할 수 없다. 자기 아이가 자신의 자녀라는 것은 그 아이의 존재를 자기 자신에게 설명하기 위해 되뇌는 말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속에 내재한 불안은 (가부장적 남존여비를 암시하는) 남성의 우월함에 대한 재확인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사이드가 묘사한 계보적 형상화가 구현한 허구처럼 말씀으로 보상하는 허구를 필요로 한다. - P76
나는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문학적 힘이나 권위를 굳이 강조하려 했던 그들의 생각과 의도는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의 열등함은 이런식으로 발현되는구나. 한 여자가 열 남자와 섹스하고 아이를 낳아도 그 여자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안다. 알 수밖에 없다. 엄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열 남자는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저 아이의 아버지일까, 의심하고 유전자 검사도 하고, 저 아이가 내 대를 잇는 아이가 아닐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그의 안에 있다. 여성을 향해 혼전순결을 강요하고 정절을 강요했던 것도 왜그런지 다 알겠쥬? 그런 그들의 불안함은 다른식으로 권력 있는 아버지, 누가봐도 아버지일 수 있는 아버지가 되게끔 그들을 유도하는 것 같다.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 괴물》은 바로 그런 남자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 않았는가.
프로이트는 남성을 공포로 물들이는 것은 특히 여성의 거세된 외양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영화들을 얼핏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겉으로 보기에 그로테스크하게 부풀어 오른 임신한 자궁이 성적 타자‘로서 여성에 대한 끌림과 두려움을 일깨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을 창조하고자하는, 즉 출산하고 싶은 남성의 욕망은 작동 중인 더 깊은 욕망을 보여준다. 그들은 여성이 되고 싶은 것이다. - 바바라 크리드,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P116
수잔 루리의 논문 「정신분석학과 영화에서의 "거세된 여성의 구성」은 여성괴물에 대해 일관적이고 중요한 논의를 보여준다. 닐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루리는 남성이 여성을 두려워하는 것은 여성이 거세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거세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프로이트적 입장에 도전한다. 루리는 남성이 여성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남성이 거세당했을 때처럼 여성이 신체가 불구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즉, 여성은 신체적으로 완전하고, 손상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성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세된 여성이라는 개념은 여성이 남성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판타지phantasy일 뿐이다. (나는 시종일관 ‘판타지fantasy‘보다는 판타지 phantasy‘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그것은 주체를 소망충족을 위해 활동하는 주인공으로 묘사하는 프로이트 관점에서의 ‘판타지phantasy‘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판타지fantasy‘는 종종 기발한 행동이나 말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내가 피하고자 하는 의미다.) 특히 남성은 여성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그를 거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그는 자신의 페니스가 여성의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는 입 속으로 사라지는 성교 중에 신체적인 거세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상상한다(루리, 1981-2, 55) - 바바라 크리드,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P29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말도 가져와보자.
원초적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그녀의 생식력에 대한 두려움임이 밝혀졌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공포의 권력』 - P46
글 쓰면서 그것을 아버지이자 창시자 낳는자... 다 갖다 붙이는 걸 보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그 어떤 열등함이 팍팍 전해지지 않나. 그런 권위있는, 그러니까 진실한 아버지가 되는 글쓰는 일을 그런데 만약 여성들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생식력, 그 잘났다고 생각하는 생식력의 가치가 흐려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 글쓰는 여자를 후려치면 된다. 건방지게 감히, 아이도 낳으면서 글까지 쓰려고 해? 남자가 할 수 없는 것도 하면서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도 하겠다고?
‘펜을 드는 여자’는 건방지고 ‘주제넘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구제 불능인 존재다. 어떤 미덕도 그녀의 건방진 ‘결함‘을 메울 수없다. 그녀는 자연이 내리그은 경계선을 괴물처럼 횡단해버렸기 때문이다. - P80
껄껄.
오늘 아침에 이 책 읽으면서 나는 여성 괴물이구나, 했다. 나는 구제불능이여, 나는 건방지고, 나는 주제넘는 사람이여, 나는 괴물이여~ 나는 괴물이다. 어쩔래 ㅋㅋㅋ 용용죽겠지~~ 나는 괴물이지롱~~ 나는 그러나 타인이 나를 괴물이라고 부르든 말든 아무 상관없지롱~ 그러든지 말든지. 껄껄. 니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너에게 달린 문제지 나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튼 사람은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하고 연애도 잘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 어떤 사람과 벗하느냐가 나를 만든다. 나를 좋아하고 나랑 친하게 지낸다면 이런 글 다 이렇게 읽으면서 또 한층 업그레이드 될것이니 얼마나 좋아요? 나를 만난것은 네 인생의 행운이요 축복인 것이다. 나를 만난 것은 네 인생의 최고 정점, 클라이막스!
어제 점심에는 떡만두국을 시켜두고 애놀라홈즈2를 재생시켰다. 아직 내가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에 타부서 남자직원이 식당으로 혼자 들어왔다. 어제는 그 직원이 업무 때문에 혼자 남들보다 좀 늦게 먹게 됐던 것. 이렇게 된거 밥이나 사줄까 싶어 부르려다가, 내가 애놀라홈즈 2 보면서 혼자 밥 먹고 싶은 것처럼 저 직원도 그런 마음일지도 모르는데 괜히 내가 불러서 부담을 주면 어쩌나 싶어 못본척 했다. 어쩌면 그 직원도 나를 보고 못본척 한걸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내가 먼저 밥을 다 먹었고 계산을 하면서 저쪽 테이블도 계산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계산을 마친 뒤 나는 그 직원 자리로 가 말했다. "내가 계산 했으니까 천천히 먹고 와요." 그 직원은 감사합니다! 인사했다. 나는 쿨하게 어깨 힘 뽝 주고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 동생들과의 톡방에서 이 일화를 전한 뒤,
"나 멋진 꼰대라고 불러줘."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퇴근후 타부서 직원하고 술마시다가 이 얘기를 하는데, 다 듣기도 전에 그 직원이,
"설마 저 테이블 것도 계산해주세요 하신거예요?"
이래가지고 그렇다고 했더니 꺅 멋져멋져 했다. ㅋㅋㅋ 그래서 내가 덧붙였다.
"칼국수 집이여서 했어, 아웃백에서 만났으면 그냥 모른척 하고 나갔을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세상 쿨내 진동하는 멋진 꼰대 되시겠다.
아무튼 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다.
(책 위의 하얀건 띠지)
그리고 캐나다 가을 풍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름다워...나처럼.......
점심엔 짜장면을 먹을까 라면을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