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제안,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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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ly Love (Paperback)
Colleen Hoover / Atria Books / 2014년 8월
평점 :
나는 소설에서 작가가 보이는 걸 싫어한다.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가끔 작가가 끼어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떤 느낌을 강제하는 느낌을 갖게 되어서 나는 영 별로인데, 콜린 후버가 이 책에서 내가 싫어하는 그걸 했다. 작가는 끼어들어서 우리의 남자 주인공 마일스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비록 섹스파트너를 찾고 그녀에게 결코 사랑은 주려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녀를 상처입히지만, 그러나 그는 불쌍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배려 있고 잘생기고 자신이 맡은 바 일도 잘하고 섹스 천재이고.. 내가 마일스란 이 책의 남자 주인공한테 그 자체로 반하게 되는게 아니라 작가가 '반할만하지?'를 묻는 것 같아서, 나는 반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혹은 소설은, 작가가 드러나지 않는 쪽이다. 그저 이야기속 인물들만이 거기 있는 소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내가 그 시간을 보내고 내가 그 인물들에 이입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슬프게 하는 소설.
콜린 후버는 이번에 처음 만난 작가이고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나는 콜린 후버를 좋아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는지는 잘 알겠다. 작위적인 설정이나 인물에 대한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끼어들기를 제외하면, 이 책 한 권만으로 평가해보건데, 작가는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통에 대한 극복과 삶에 대한 희망. 인생은 완전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치명적으로 힘든 일도 일어나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아도 잠시잠깐의 순간들로 존재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 그런 메세지라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실은, 이 책이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별을 넷 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데. 나도 읽다가 결국 눈물이 핑돌았다. 번역본에서는 냉소했는데.
'테이트'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오빠가 사는 집에 잠시 얹혀 살기로 한다. 그러다가 오빠의 앞집에서 오빠의 친구 '마일스'를 알게 되고 그에게 끌리게 된다. 마일스 역시 마찬가지, 그녀에게 강하게 끌리고 그녀랑 키스 한 번 해봤더니 와 완전 좋아 너무 좋아 짱좋아 계속 하고 싶다.. 이렇게 되어서 테이트에게 나 너랑 섹스하는 사이 되고 싶어 오케? 하게 되고 테이트 역시 오케이 한다. 대신 마일스는 조건을 내건다. 내 과거를 캐지말고 내 미래를 궁금해하지 말라는 거다. 즉, 우리는 연인이 되는게 아니라 단순히 섹스만 하는 사이가 되자는 것. 테이트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그와의 섹스를 유지한다. 상처받기도 하고 모멸감에 젖기도 하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가면서도 그러나 이 관계를 쫑내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원서에서는 fucked 라고 표현되고 번역본에서는 강간이라고 표현됐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같이 읽는 친구들과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은,
1. 너무너무 극도의 쾌락을 주는 미친 섹스머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
2. 테이트는 그러나 자신을 보는 그의 눈빛에서 그에게도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있고 우리의 관계는 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라는 두 가지 이유였다. 나 역시 이 두 이유에 동의하고 공감하는바, 그렇다면, 어떤 섹스는, 그러니까 어떤 섹스가 주는 극도의 쾌락은, 저기 저 먼 곳 어딘가 저기 무지개 너머에 존재하는 극도의 쾌락은 내 자존감이 짓밟힌 것도 무시하게 하는 그 엄청난 것인가?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나는 내 인생에 가장 극도의 쾌락을 줬던 섹스를 떠올려봐도, 만약 그 섹스 상대가 나를 이렇게 대한다면 헤어질거야" 라고.
친구도 역시 그러겠다고 하지만, 이내 이런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그건 마일스의 섹스만큼은 아니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우리의 극도의 쾌락은 사실 별 거 아닌거였던 걸까?", 그러니까, "우리가 최상의 쾌락이라 여겼던, 엄청난 섹스라 생각했던 그것보다 더 이상의 것이 사실은 아주 많이 있는걸까?" .... 그것은,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조차 용납하게 하는 그 어떤것인가?
사실 테이트에겐 2번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나에게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고, 내가 너를 사랑할거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남자때문에 속이 상하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나를 좋아하고.. 그러니 기대를 갖고 기다리려던 거겠지.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도 없고, 번번이 상처받으면서도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테이트는 그에게 이별을 말한다. 나를 사랑하면서 나를 그리워하면서 그러면서도 뒷걸음질치는 너따위!! 하고 세이 굿바이 하는 것이다. 굿바이 하는 순간까지도 그를 향한 기대를 품고서...
그런 한편 마일스에겐 상처가 있었다. 누나 마음 속에 삼천원 쯤은 있는 거잖아요...
커다란 상처였고 그것은 극복 불가해보였으며 그 상처가 지배하는 불행한 삶이 마일스의 삶이었다. 마일스는 다시는 삶에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런데 테이트를 만났고, 나같은 놈에게 이 사랑이 허락되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밀어내기 와 기타등등으로 내적 갈등 오지게 겪으면서 섹스에 졸라 충실한다. 아, 남자여..
어쨌든 이 야한 소설에서 자고 자고 또 자고 계속 자고 여기저기서 자고 막 그러는 소설에서 사실 하고자 하는 말은, 위에도 썼지만, 이거다.
"The pain will never go away, Miles. Ever. But if you let yourself love her, you'll only feel it sometimes, instead of allowing it to consume your entire life." -p.302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마일스. 영원히. 그렇지만 네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자신을 허락한다면, 그건 가끔만 느끼게 될거야, 네 삶 전체를 그것이 소모하게 두는 대신에 말이지.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그것이 삶을 지배하는 대신, 가끔만 찾아들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것을 허락할 수 있다. 이래서, 콜린 후버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같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