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의 신간을 다 읽고 어제 퇴근길에는 노멀 피플을 읽었고 집에 가서 잠들기 전에는 《기도의 카르테》를 읽다가 잤다. 읽으면서 바로 중고로 등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절반쯤 읽고나자 '내일 아침 출근길에 읽기엔 내 집중력 낭비다 낭비' 하고 다른 책을 골라야지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머리가 잘 돌아갈 땐 다른 책에 양보하세요~
오늘 아침, 어떤 책을 골라서 가방에 넣을까 머리를 감으면서 생각했고 그래서 이 책 저 책 마구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거 올려두다 말고 저거 올려두다 치우고. 그리고 버터를 녹여 간장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서 북플을 보다가 이 책의 리뷰를 보게 되었다.
오오, 재미있어 보인다. 불륜의 심리학 뭐 이러는데, 사실 가장 집중 잘 되는 아침에 읽기엔 이 책도 적절해 보이진 않지만,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이미 가지고 있는것 같아서, 나 이거 있지 않나? 사랑할 때 어쩌고 하는 거 뭐 있었던 것 같은데. 레이먼드 카버 의 소설집 말고, 이런 제목 비슷한 거 나 있어. 그게 이 책이었나? 이걸 읽자! 아침에 이걸 보았다면 바로 이 책이 지금 나와 만날 운명!! 그렇게 나는 바쁜 아침에 밥을 먹고 책장 앞으로 가 초조하게 이 책을 찾는다. 아, 어디 있지, 어디 있지, 어디에 뒀지, 분명 사랑할 때 어쩌고~ 하는 제목에 카버의 소설 아닌 것이 있었단 말야? 하고 저기 치웠다 여기 치웠다 하며 드디어 두둥- 발견! 그러나 아뿔싸리?
내가 가진 책은 이 책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에 책은 <욕망과 결핍, 상처와 치유에 관한 불륜 심리학> 이고 밑에 책은 <연인들의 언어에 숨겨진 심리학>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완전히 다름 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오늘 이 책을 들고 왔느냐 하면, '어? 이거 저 책 아니네?' 하고 다시 꽂아둔 뒤에, 이 책을 들고 나왔다.
이 책에 대해 사실 잘 모르는데 어쨌든 이 책을 들고 나와서 읽기 시작하는데, 오, 이 책은 나처럼 눈 앞의 새우깡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 먼 곳에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쓴 책 이라는 느낌이 뽝 왔다. 그래서 나쁘다거나 안맞는다거나 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느낌이 너무너무 좋다. 너무너무 좋다. 진짜 좋다. 아직 몇 장 읽지도 않고서 나는 이 책을 사람들이 꼭 다들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유퀴즈>에 작가 김영하가 나온 걸 봤더랬다. 김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데, 책을 읽으면 내가 말하고자 했던게 뭔지 거기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거고,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 거라고. 김영하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글을 쓰는 사람은 글에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는데, '짜증난다'는 감정을 디테일하게 살피지 못하고 모든걸 퉁쳐버리는 단어라는 거다.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짜증난다고 발화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사실은 서운함인지, 분노인지 그걸 살펴보고 거기에 적합한 단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김영하에 대해 좋다 싫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고 김영하의 소설도 딱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김영하가 하는 저 말들은 너무 옳은 말이어서 사람들이 저 방송을 보고 책을 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책을 읽다 보면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되는 경우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런데,
《우연한 생》의 '앤드루 H.밀러'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물론 '책을 읽어라!'하는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살면서 누구나 한 번 이상씩은 생각하는 고민, 그러니까 나의 경우 저기 가서 새우깡좀 얻어먹어야 해, 라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어도, 그러면서도 언젠가 한번씩은 '내가 만약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를 종종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그런 고민을 우리는 책을 통해, 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거다. 크- 아직 36쪽밖에 안읽었는데 진짜 너무 좋다.
읽자마자 내 남동생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더 잘했다면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같은 질문을 하노라면, 남동생은 '누나에게는 열개의 자아가 있는데 그중 지금 발현된 자아가 최상이야, 누나의 다른 자아가 발현되면 그건 무조건 지금보다 못해,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마' 라고 말하는거다. 아 진짜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뉘앙스의 얘길 하면 언제나 '더 끔찍할 수도 있는데 지금의 최상이야' 라고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친구 한 명도 내게 그랬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면 지금쯤 더 좋은 직업을 갖고 더 많은 돈을 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하면 '공부잘해서 대기업 간 내 친구도 너보다 훌륭하지 않아' 라고. 내 주변인들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해 얘기하면 항상 '너는 지금이 너의 최선이고 최상이야'라고 해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그런 말들을 들었다고 해도 나는 종종 내가 내린 선택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같은. 그러고보면 내가 진짜 늘상 새우깡만 생각하는 건 아니었어.. 요즘엔 양꼬치 생각, 경장육슬 생각을 더 많이 하긴 한다. 아무튼, 이 책 좋다. 좋습니다, 여러분.
문학이여, 영원하라!! 만세!! 책도 만세!!! 나의 자아도 만세!!
(그런데 저 빨간 책.. 왜 나 있을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