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명리학 책이었던가. 어쩌면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였나. 약국을 운영하는 사람이 약국도 잘 되고 사람들도 다 좋은데 자기는 왜이렇게 우울하고 힘든지 모르겠다고 상담을 받으러 온 얘기를 읽었더랬다. 보니, 그 약사의 사주에 역마살이 있건만 그 약사는 동네에서 매일 약국을 하며 머물렀던 것. 이에 상담해준 선생님은 주말에 가까운 지방이라도 다녀오면 많은 것들이 나아질 것이다, 라는 애기를 했더랬다.


강헌의 <명리>를 읽으면서 내게는 전 세계적인 역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무무병존 사주인데 강헌의 말을 빌리자면, '그 범위는 스케일도 넓어서 해외를 드나드는 역마이다' 라고 한 것. 그런데 내 뜻과 아무 상관없이 최근 몇년간 아무곳도 가질 못하니 우울함이 차곡차곡 쌓이는거라. 국내 여행도 하면 안될것 같아 가급적 자제하고 있었는데 내가 또 집에만 못 있겠는거라. 그래서 나는 동네를 산책하거나 서점을 간다.


그렇다.

서점을 간다.

내가 살기 위해서,

서점을 간다.

내 사주에 있는 역마를 다스리기 위해

서점을 간다.

그래서?

책을 산다...

아니,

책을 샀다.

으르렁-



다른데를 가면 되는데, 그런데 나는 다른데 가는걸 별로 안좋아해. 일전에 한 친구는 올리브영에 가는게 좋다고 했더랬다. 재미있다고. 그런데 나는 올리브영 같은데가 재미가 1도 없어. 왜 가는지를 모르겠는거다. 내가 재미있으려면 서점엘 가야해. 그래서 서점엘 갔더니 무슨 일이 벌어지나? 책을 사는 것이다. 


네, 그러니까 책 샀다는 얘기 하려고 사주 얘기 가져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란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넘나 탁월한 거 아님?


자, 그래서 이런 책을 샀다.






자, 그렇다면 왜 이런 책을 샀는지, 내 얘기를 한 번 들어보자. (닥쳐!)
















그러니까, 나는 김진숙 님이 얼마전에 복직했다는 기사를 읽었고, 그리고 퇴직했다는 기사도 읽게 된다.


"37년 싸움을 마칩니다"... 김진숙, 퇴직하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이 기사를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다. 그 눈물에는 아마 여러가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의 신념대로 꿋꿋이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그런데 부당한 해고에 맞서 굴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누군가 때문에 앞으로 노동자의 삶은 달라질 수도 있는거 아닐까. 나 역시 노동자다. 나 역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고 몇해전 회사가 어려웠을 때 내가 해고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허망했던 적도 있었다. 십년 이상 몸담은 회사인데 내 청춘을 내가 바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청춘의 한창때가 모두 여기 있었는데 내가 해고 당한다면, 내 삶은 그 다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거다. 다른 노동자의 얘기는 그래서 지금 노동자인 나에게 더 울림을 준다.


지금은 사망한 전 서울시장 의 성추행 관련 해서도 그래서 나는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상사로 모심으로써 받게 되는 성추행 이라면 아마 이 땅의 여성 직장인들이 다 겪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가 겪었다고 한 일중에 정확히 같은 것들을 나도 겪었던 적이 있고, 그 일로 모멸감에 울기도 했던 터라, 이 땅의 여성 노동자로서 연대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물론, 노동자가 아니었어도 공감과 연대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가 노동자라는 정체성에 그렇게 진심인줄 몰랐는데, 김진숙 님의 기사를 읽으면서 우는 나를 보고, 아, 나는 내가 파악하는 것보다 내가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구나, 싶었다. 물론 그보다는 그렇게 끈질기게 싸워온 그 시간들, 그 신념에 대한 것이 더 마음을 웅장하게 만들었겠지만 말이다.


<소금꽃나무> 라면 몇해 전에 읽었던 적이 있다. 김진숙이 버스안내원으로 근무하면서 옷까지 다 벗겨진 채로 돈을 숨긴건 없는지 검사 받는 장면 같은 것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고 싶어 샀다. 내가 가진 책은 오래전에 처분한 것 같다. 서점으로 가 사실, 소금꽃나무를 살까 김진숙에 대한 글이 실려 있는 <여성노동자 반짝이다>를 살까, 두 권을 꺼내놓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둘 다 샀다. 나는 부장이니까. 책 두 권 살 돈쯤은 있다. 엣헴- 나 이십년 이상 일한 노동자야. 이 직장에 올해로 만 이십년 근무했다. 책 두 권 사는데 뭘 그리 고민해? 여성 노동자로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데 아낌이 없어야지. 흥!! 


(아 나는 진짜 자기합리화 대마왕이야..)















<에덴의 악녀>는 2월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인 나오미 울프의 책을 읽다 알게 되어서 샀다. 검색했더니 절판인게 아닌가. 중고로 나와있길래 잽싸게 주문했는데, 이게 그러니까 우주점 주문이었고, 그래서 이 책을 사기 위해 다른 책을 더 샀는데, 그것은 바로 이 책.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를 박스에서 꺼내면서, ...응? 이건 뭐야????????????? 했다. 내가 에덴의 악녀 사면서 두 권 다 샀다는 건 알았지만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산줄은 몰랐지? 나 이거 읽고 싶었어?















<샤프롱>도 그 박스에서 나왔다. 앗, 이거 서점에 갔을 때 살까말까 망설이면서 들었다놨다 한 책이긴 한데, 샀어?? 아무튼 이 책 있다. 이거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까먹을듯.


아무튼 내가 서점에 자주 간다고 했으니 또 서점에 가서 산 책이 뭐가 있냐면, 이번에는 알라딘 중고책방 갔다가 이걸 샀다.















괜찮아, 잘했어. 아니, 깨끗하더라고요.. 이거 아주 오래전부터 장바구니에 있었던건데, 마침 중고책방에 있었고, 마침 깨끗했고... 샤라라랑~ <철학자와 마녀>

















<H마트에서 울다>도 교보 갔다가 사가지고 왔다. 처음부터 내가 이 책을 사려고 간 건 .. 아닌가? 맞나? 그런건 기억조차 희미하고, 여하튼 올 때는 가방에 이 책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을 사서 가방에 넣고 내가 한 일은, 이삭토스트에 가서 토스트를 먹은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껄껄. 아니 티비에서 유퀴즈 재방송 보다가 이삭토스트 회장님..의 이삭토스트 에 대한 이야길 듣게 됐고, 엄청나게 줄 서서 사먹게 됐다는 그 소스가 궁금한거여.. 마침 서점 빌딩에 이삭토스트가 뽝- 있어가지고 이삭토스트 가서 토스트 먹는데, 제일 기본을 먹자, 하고 햄치즈 토스트 시켰는데 양배추가 없는 것이다. 맛있게 다 먹고 나서 나갈 때 카운터에 가서 직원분께 여쭸다. 제가 먹은건 양배추가 없던데 사진처럼 양배추 먹고 싶으면 뭘 시켜야 하나요? 그러자 '햄스페셜 토스트'라고 알려주셨다. 다음에 그걸 다시 먹어봐야겠어. 불끈! 아이스아메리카노랑 먹으니 찰떡이었다.



주말에 또 서점에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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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3-03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디 보자~~코로나 시대의 다락방님의 무무병존 사주에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면???? 어디 보자~~앗!! 답이 나왔어요!!
세계 여행서, 국내 여행서를 읽으시면 되겠어요ㅋㅋㅋㅋ
그리고 앞으로 계속 밥벌이를 하면서 계속 책을 사실 사주이시군요?^^

다락방 2022-03-03 10:53   좋아요 3 | URL
제가 여행서 읽는 걸 좋아하진 않거든요. 저는 제가 나다녀야 좋아요 ㅋㅋ 지금도 집 근처 동네 한바퀴 돌고, 시장 가고, 서점 가고 그러는데, 아마도 당분간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점 가서 책 사면 되죠, 뭐. 하하하하하.
돈 열심히 벌고, 열심히 책 사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빠샤!

transient-guest 2022-03-03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걸어서 서점에 가고 책을 골라서 사들고 온다는 건 요즘 같은 시절엔 판타지 같습니다. 제가 아는 책이 보이네요. 요즘도 가끔 책을 찾아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던 중학교 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한 칸 서점으로 시작해서 건물을 올린 곳도 많이 있었는데 이젠 서점을 한다는 건 그냥 망테크 같은 세상이라서. 역마살을 다스리기 위해 걸어서 서점에 다녀오신 다락방님은 맥주 한 잔의 시원함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마시는 life라서 랜덤하게 술 마실 친구도 술 마실 기회도 그립네요.

다락방 2022-03-03 10:54   좋아요 2 | URL
어디든 걷고 싶고 가고 싶은데 제가 집을 나서면 갈 곳이 서점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도 서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가면 이렇게 어김없이 뭔가 사오게되지만, 뭐 그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니겠습니까. 후훗.
일주일에 딱 하루만 마시는 삶이라니, 으.. 저도 그래야 하는데 전 너무 내킬때마다 마시네요. 몸 관리라는 걸 저도 해야되는데 왜 이모양으로 살고싶은 대로 사는건지.. ㅠㅠ

거리의화가 2022-03-03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 나들이 정말 좋죠^^ 저는 이사와서 이 동네서점이 제가 사는 위치에선 멀다는 걸 알게 되서 슬프더라구요. 더 가까운 위치에 서점이 생기면 좋겠어요ㅠㅜ 그리고 에덴의 악녀 말씀하신 책이 이것! 나중에 후기 들려주셔요ㅎㅎ 책사기 위해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ㅋㅋ

다락방 2022-03-03 10:56   좋아요 1 | URL
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도 서점이 있어요. 저녁 먹고 간단히 산책할 때는 거길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이즈가 작아 책이 많이 없어요. 그러면 또 답답해져서 마음 먹고 큰 서점에 나가기도 하고요.
에덴의 악녀 얼른 읽어야겠어요. 지금 다른책 들고 나왔는데, 아니 세상에 왜이렇게 당장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은거죠? 좋으면서 싫으네요. 역시 책은 계속 살 수 밖에 없을것 같아요. 흑 ㅜㅜ

그레이스 2022-03-0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자와 하녀!👍

다락방 2022-03-03 10:56   좋아요 3 | URL
오 좋은 책인가요? ㅎㅎ

바람돌이 2022-03-03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진중공업앞에서 김진숙씨가 복직 겸 퇴임식을 하면서 연설장면이 유튜브로 나와 있습니다. 김진숙씨의 그 북받쳐오르는 눈물이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해주는 연설이었습니다.
저는 사주 안봐도 압니다. 제 사주에도 역마살이 있을 거라는걸..... 실제로 못나가니 책으로라도 다른 세상으로 갔다 와야지요. ^^

다락방 2022-03-03 10:58   좋아요 1 | URL
네 SNS보면 유튜브 올라와 있더라고요. 긴 시간 신념을 지키면서 사느라 그러는 틈틈이 다른 약자들에게 연대하느라 그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먹어야 했을것 같아요. 숭고함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고요. 존재 자체가 빛나며 또 감사한 분입니다.

저는 책으로 다른 세상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책을 읽지만, 실제로 제 육체로 나가는게 너무 필요해요 흑흑 ㅠㅠ

프레이야 2022-03-03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금꽃나무 오래된 책을 가지고 있어요
요즘 뉴스에 나온 은발이 된 그분 연설하는 거 보고 울컥 눈물이 나더군요.
저도 역마살이. ㅎㅎ 근데 현대의 역마살이란 게 또 좀 넓게 해석해서 온라인 상의 활발한 활동도 포함되더라구요.
서점여행은 언제 어디서나 넘넘 좋아요.
사고픈 책이 너무 많은 게 탈이지만요.
책디자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업!
그나저나 다락방 님 1664 좋아하는군요.

다락방 2022-03-07 16:47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오랜시간 알라딘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역마살 때문이겠군요! 맙소사.. 이 역마살을 어쩌면 좋나요. ㅎㅎ
저 블랑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고 맥주도 취향이 아닌데요, 저 날은 되게 향이 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더라고요. 호가든 마셔야겠다 싶어 마트를 갔는데 호가든은 없고 블랑만 있더라고요. 그래서 블랑 사가지고 와서 내리 두 캔을 마셨답니다? 후훗.

mini74 2022-03-03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마살과 책의 상관관계 !! 다락방님 ㅎㅎ 사막에서 패딩도 파실 분 입니다 ㅎㅎ 서점가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ㅎㅎ

다락방 2022-03-07 16:48   좋아요 1 | URL
ㅋㅋ 사막에서 패딩 ㅋㅋㅋㅋㅋㅋㅋ
서점 너무 좋지요. 가서 책 잔뜩 사고 싶은데 잔뜩 사면 들고 오는게 너무 무거워요. 지난번에는 잔뜩 사야지, 하고 백팩 메고 간적도 있답니다? 껄껄.
이제 책 그만 사야겠어요. 사놓고 안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안되겠어요.
라고 늘 하던 말 그냥 한 번 또 해봅니다. ㅎㅎ

- 2022-03-06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소금꽃 나무 그 책 있어요. 20대에 본 아직도 가지고 있는 책 ^^ 20년 노동한 다락방님을 좋아해요..
우리 부장님… ㅠㅠ 책 많이 사요 ㅠㅠㅠ 에구구… 우리 그러자… ( 그렇게 저는 ..카드 할인 알람에 눈을 번뜩이며 알라딘에.. 접..속…했었지… 내 노동이 허무해질 때마다 역시 의미를 의미있게 해주는 나의 책구매….)

다락방 2022-03-07 16:50   좋아요 0 | URL
알라딘 신한카드 접속하면 할인해준대서 내가 이번달엔 신한카드로 파바바박 지를거구요, 롯데카드 이벤트 한대서 롯데카드도 만들었어요. 13만원 이상 쓰면 13만원 알라딘 적립금 준대. 나는 리뷰대회는 안되겠고 이런거 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우리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사고 싶은 거 다 사자. 집이라든가, 집이라든지, 집이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