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으로 인정은 되지 않아도 나는 꾸준히 학생들을 만나 페미니즘을 논의해 왔고 그들은 내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내 요청에 학생들 중 다섯 명이 힘을 보탰다. 새로운 강의 개설에 필요한 모든 서류 양식 작성을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막판에 내가 맡았던 심리학 입문 강의의 후임 교수를 고용할 예산이 없다는 통보를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학과장실로 들어가 그가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근 뒤 자리에 앉았다. 내 수업을 이어받을 강사를 구하는 데 대학 측에서 부담할 비용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미한 금액인지 -그런 강의를 운영하는 데 한 학기당 약 850달러가 든다 -를 지적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만일 저 검은색 가죽 의자와 이 책상을 담보로 잡으면 강의 하나 담당할 교수를 구할 돈은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여성학 강의를 개설하겠다는 학과장 승인 없이는 학과장실을 떠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우리는 한 시간이채 지나지 않아 이겼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때 한 일이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당시 버클리, 컬럼비아, 소르본의 학생들이 하고 있던것과 동일한 종류의 일이었다. 당시 학과장이 정말로 겁을 먹지는 않았기를 바라지만, 그가 겁을 먹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 P104



《여성과 광기》에서 필리스 체슬러는 1970년 미국심리학회에 참석해 그동안 여성들을 향한 부당한 치료와 광기어린 여성으로 대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더랬다. 그로 인해 미친 여자 취급 당했다는 것도. 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니, 그것이 아무리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 해도, 아니 그래서 더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하다고 감탄했었는데, 필리스 체슬러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본인이 교수로 근무하던 대학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여성학이 정식 교과 과정도 아니었고 개설되어 있지도 않았던 때에, 자신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학과장실로 들어가 여성학 강의를 개설하게 해달라고 협박하고, 그리고 결국 그렇게 해내게 된다. 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 지구상에 이런 여성이 내려왔을까. 일전에 남동생이 술에 취해서는 내게 '누나는 지구에 온 목적이 뭐니?' 하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내가 온 목적은 모르겠지만 필리스 체슬러가 온 목적은 알겠다. 그녀는 지구상의 여자들을 해방시키러 왔다! ㅎㅎ 대단한 여성이야.


그렇게 그녀가 여성들의 편이 되고 여성들을 돕고자 했다고 해서, 그런 일들로 권력과 대중들을 적을 삼고 싸웠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그녀의 편이 되어준다거나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건 아니었다. 그녀가 돕고자 했던 여성이 그녀를 배신하는 일들도 더러 일어났다. 그리고 이 일화는 일전에 친애하는 알라디너의 서재에서도 인용문 보고 딥빡쳐서 비댓 남긴 적 있는데, 내가 본문에서 발견하고 다시 한 번 화가 끓어오른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가 내 남성 동료 교수 중 한 명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학생은 임신이 됐고 자궁 외 임신으로 거의 죽다 살아났다. 의지할 사람이 전무했던 그 학생에게 연민을 느낀 나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서 퇴원하면 내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학생을 돌보아 주었다.

어느 날 그 학생이 회복되어 활기찬 모습으로 부엌에서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권력을 남용해 임신 시킨 그 작자를 위해 저녁 식사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놨다. "그 사람은 병원이 무섭대요.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때 한 번도 저를 찾아보지 못했던 거래요. 오늘밤 그가 저를 찾아온다니 너무 설레요."

나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가슴이 아팠다. 그런 인간이 이 어린 여성의 어리석은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했다. 학생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고는 떠났던 그 남자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행복해하면서도, 자신을 들여보내 줬던 여성 스승에게 감사를 어떻게 표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 꽃 한 다발로 내게 감사를 표하거나 하는 데까지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할 눈치였다. 이런 행동은 마치 어머니가 우리에게 날마다 뭘 해 주는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 대역죄인이다.)나는 가부장제와의 싸움은 너무나도 치열한 전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자들 역시 남자들만큼이나 성차별적 이중 잣대에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학생에게 그 남자의 집으로 이사하라고 했다. 그 학생은 강요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내 기준에서는 학대로 보이는 자기 교수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 P138 




와 너무 딥빡이 와서 돌아버리겠다. 그 남자 때문에 고통을 당해놓고서는 그 남자를 위한 요리를 한단다. 게다가 정작 그녀를 위기의 상황에서 그리고 고통에 푹 절여진 상황에서 꺼내준 다른 여성에게는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사실 고맙다는 말을 다 떠나서 나는 어떻게 그 남자에게 줄 저녁을 차리고 있다는 얘기를, 필리스 체슬러의 집에서 요리를 하면서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떤 여자들은 필리스 체슬러가 경험한 바로 이런 일들을 비슷하게 경험해본 적이 있을텐데 나 역시도 그랬던바, 그렇게 너를 괴롭게 한 그 놈을 다시는 안만나겠지, 하고 마음을 쓰고 있다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는 걸 보고 뒷목 잡고 쓰러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더랬다. 

필리스 체슬러가 자신의 집에 받아들여주고 돌보아준 학생이, 자신에게 닥쳤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를 너무 사랑해! 했던걸까? 그렇게 지나치게 그를 사랑해서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걸까? 그가 한 변명-엄마가 병원에서 돌아가셔서 병원 너무 무셔.. 그래서 너한테 못갔쪙- 했던 것을 그대로 믿은걸까? 아니, 나는 그 학생 조차도 그 말을 믿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변명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그랬기에 필리스 체슬러에게도 굳이 말했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그 학생이 어떻게 됐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저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회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그녀가 그를 '다시' 받아들인 건, 그녀가 그녀 자신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저 남자에게 사랑받는 나' 엿고, 그것이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리하였고, 그래서 그 과정에서 자신을 힘껏 도와준 필리스 체슬러의 뒤통수를 치게 되는거다. 그녀는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가 나를 도와줬다' 하는것보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야 된다'가 더 강하게 자리잡은 거다. 와, 필리스 체슬러는 저 시간의 저 배신감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렇다고 필리스 체슬러가 훌륭한 남성들과만 사랑했던 건 아니다. 필리스 체슬러야말로 이성애에 있어서 헛발질을 간혹 했던 것 같다. 아직 중간 정도밖에 안읽었지만 그러나 이 책은, 여자들 사이에 자매애가 있고 우리가 한 방향을 보고 있어도, 인간이기 때문에 가진 본성, 욕망, 질투, 시기 같은 것들이 마찬가지로 나와 또 다른 여자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건 필리스 체슬러의 책이고 그러므로 필리스 체슬러의 시선과 입장의 반영이겠지만, 그렇다면 다른 누가 쓴다면 완벽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될까? 아닐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한 인간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 누누이 얘기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의롭고 올바르며 똑똑하고 착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수없고 싸가지 없는 쌍년이기도 할 것이다. 딱히 내가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나로부터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을 출근길에 읽고 있고 집에서 잠들기 전에는 침대에 앉아 '메그 월리처'의 《여성의 설득》을 읽고 있다.
















저런 제목과 저런 표지를 가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소설이다. 이렇게 말해도 믿기지 않을 소설의 제목과 표지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소설이다. 재차 강조하는데,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필리스 체슬러의 에세이와 얼마나 닮아있는지 놀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그리어'는 제대로 관심을 주지 않는 부모의 외동딸로 자라 대학을 갔고, 그곳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목소리도 작은 그리어는, 이 일의 부당함을 알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고, 기어코 뭔가 찾아내서 운동해보고자 해도 뜻대로 되질 않는다. 그러던 차에 그리어가 다니던 학교에 너무나 유명한 페미니스트 '페이스 프랭크'가 강연을 오고, 그리어는 그녀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고 페미니즘에 눈을 뜬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이 유명한 프랭크 밑에서 그녀를 도와 일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자리를 찾아가는데, 이 모든 과정들 속에서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모순된 일들이 보여진다.


나도 그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리어의 절친의 편지를 그러나 프랭크에게 전하지 않고 친구에게는 '사람을 안뽑는대' 라고 말하면서 고민하는 것도 그렇다. 자신에게 사회활동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 친구였고, 단짝 친구로 언제나 있었고, 프랭크의 단체에 지원해보라 한 것도 친구였지만, 그런데 친구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싫다. 나만 할거야.. 가 되어버리는 거다. 그리어 자신도 친구가 이 단체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할지 너무나 잘 짐작하는데도 그렇다. 또한 그리어는 채식주의자인데 페이스 프랭크의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고서는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드러내지 못한다. 페이스 프랭크가 주는 고기를 앞에 두고 페이스 프랭크에게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는 말을 할 수 없어 억지로 고기를 씹는 그리어는 인상적이었다. 이 책 역시 절반 밖에 못읽었는데, 처음엔 페미니즘에 입문하는 보통의 에세이 느낌이었다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 깊어진다. 그리어를 주인공으로 읽다가 그 친구가 본격적으로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또 깊어지고, 그리어의 남자친구인 '코리'가 컨설턴트로 아주 잘 나가는 것 같다가 갑자기 삶이 변화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코리는 본격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에 투입되면서, 내가 자라면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었네를 실감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이야기까지 점점 더 깊어졌다면, 그 후에는 얼마나 더 깊어지는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하며 읽는 중이다.


여기에서 모두가 선망하고 열정적으로 따르는 '페이스 프랭크'는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정희진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나도 그렇지만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입문하면서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처음 읽고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존경하게 되니까. 우리는 자신이 가는 방향에서 어쩔 수 없이 롤모델을 설정하는 것 같다. 입문 시점에서 그렇다면, 쭉쭉 앞으로 나아가면서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면서 롤모델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경향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당신을 보고 잘 왔지만, 그런데 이제 나는 다른 길로 갑니다 혹은 더 나아갑니다, 가 될 수도 있겠다. 롤모델로 설정해두고서는 우리는 그 사람에게 환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잘못할 리 없어, 저 사람은 무조건 옳지, 저 사람과 같은 편에 서야지, 하고.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다른 면을 보게 될 수도 있고 '어 이건 아닌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하게될 수도 있다.


아직 절반정도 밖에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그 뒷부분에는 페이스 프랭크에게 실망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 이 사람이 내가 기대한 것처럼 완벽한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그런 부분이 나오지 않을까? 페이스 프랭크 역시 그 자리에서 모두의 인기와 유명세를 가지고 견디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필리스 체슬러가 겪었던 일들이 수차례 찾아 왔었겠지.


《여성의 설득》은 선물 받고 책장에 꽂아둔 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일본 소설 '고지마 노부오'의 《포옹 가족》읽었다가, 고구마 천 개 먹은 기분 되어서 선택하게 된 책이었다. 우앗 집에는 가정주부가 필요하다고 하는 이런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답답하다, 뭔가 여자인 소설가가 쓴 책을 읽고 싶다!! 하고 책장 앞에 섰다가 여성의 설득이 눈에 뽝- 들어온 거다. 크- 그랬는데 절묘하게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와 한 셋트가 되어버리는 것. 대박... 내안의 필리스 체슬러의 기운이 여성의 설득을 골라냈다. 대박....


그나저나 베티 프리단이 글로리아 스타이넘 미워하는거야 알고 있었지만, 케이트 밀렛 때문에 대충격 받고 있다. 그러면서 성의 정치학도 얼른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얼른 읽고싶다, 당장!!


어제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당장 읽고 싶어 샀는데, 지금 붙들고 있는 책들도 다 읽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2월의 같이읽기 도서도 시작해야 한다. 도대체 이렇게나 읽고 싶은 책들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루가 24시간인 것도 모자라고 1년이 365일인 것도 모자라다. 나에게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휴..



한번은 수전이 패널로 여성 권력에 관해 발언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마거릿 대처가 여성 입장에서 긍정적 권력을 표상할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이 총리가 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심리학적으로는 그 여성 총리의 성취가 여성들이 힘을 부여받은 느낌을 받고 남성들은 여성도 권력을 가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무의식적 차원에서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수전은 이부분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 P125

여성학 교수들은 각자 자기만의 강점을 십분 활용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학은 아직 학계에 속해있지 않았다. 찾아낼 수만 있다면 여성의 역사와 페미니즘 사상의 역사를 가르치고 여성에 의한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급진적이고도 위험한 일로 여겨졌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원 및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탁아시설과 강간위기센터를 설립하고 부인과 진료의뢰 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체육과목 학점이 인정되는 여성 호신술 강의도개설했다. - P105

《미즈》는 《여성과 광기》에서 두 장을 발췌해 실었다. 1972년6월, 《뉴욕》은 환자와 치료사 간 섹스에 관한 내용을 표지 기사로실었다. 여성과 광기》에서 해당 주제를 다룬 장을 인용했다. 헤드라인은 "관능적인 정신과 의사들" 이었고 부제는 "일단 누워서어디가 아픈지 말해 봐요"였다. 표지에는 늙은 남자와 젊은 여성환자가 정신분석 의자psychoanalytic couch 위에서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 실렸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 표현 방식까지 내가 제재할도리는 없었다. - P153

한 달쯤 지날 무렵, 《여성과 광기》에 대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극찬이 담긴 긴 서평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 표지에 실렸다.
내 세대에 그토록 화려한 칭찬을 받은 페미니즘 작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고 담당 편집자는 승리의 냄새를맡았다. 그렇다. 신문 하나가 그 정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에이드리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에이드리언,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있습니다. 삶이 변화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그렇듯이요. 당신이 쓴 서평 덕분에 그들은 내 책을 읽게 됐을 테니까요.
그로부터 20년 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지면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대표 작품 《트라우마》를 소개하면서 나는 마음의 빚을 갚았다. - P162

사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성적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뿐이다. 나는 그의 생각들과 그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를 사랑했다. 나는 극히 명석한 두뇌를 가진 여자들에게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반짝이는 대화를 위해서라면 그들의 싫은 면도 참곤 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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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 쓰레기는 태워버려야 합니다.
    from 마지막 키스 2023-01-18 08:16 
    제2장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다루고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를 설명하며 시작한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를 써내고 크게 유명해지는데, 그렇게 적극적 활동을 하다가 후에 등장한 더 젊은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인기를 빼앗기게 된다. 그게 너무 싫어서 다시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그녀가 여성성의 신화 후속편으로 펴낸 《두 번째 단계》는 그녀에게 이전의 명성을 가져다주는데 실패한다. 검
 
 
청아 2022-02-09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출근길에는 필리스 체슬러를 읽고 밤에는 <여성의 설득>을 읽으시는군요! 너무 근사합니다. 👍 저도 다음달에 저 두권살께요!! 우리나라 대학에도 여성학관련강의가 너무 부족하더라구요. 저도 책때문에 몸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ㅎㅎ

다락방 2022-02-09 11:02   좋아요 3 | URL
아 미치겠어요. 이 두 권 끝낸 다음에 2월 같이읽기 책 들어갈랬는데 이 두 권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한 권 먼저 끝내자니 다른 한 권이 너무 궁금해서 안되겠고.. 몸뚱아리 왜 하나인가요 ㅠㅠ

저는 엊그제 <One-Way Ticket>받았답니다? 현재 9페이지까지 읽었어요. 얇아서 좋긴한데 이건 또 언제 읽나요? 아직까지는 문장들이 쉬워서 잘 읽히기는 하는데 그래도 확실히 한국어보다 속도는 느려요. 와 읽을거 왜이렇게 많아요? 초조합니다..

청아 2022-02-09 11:11   좋아요 1 | URL
받으셨군요!! 북웜은 영어랑 친해지고 읽는 속도 높여주는데 도움이 많이 될거같아요. 저는 큰 욕심 안내고 매일 한 두 페이지라고 꾸준히 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다락방님이 전에 올려주신 팝송해석도 가끔씩 하려고요. 저도 책 욕심땜에 늘 초조해요ㅋㅋㅋ

다락방 2022-02-10 08:44   좋아요 1 | URL
잭 리처 책도 이런 단어들로만 적혀 있으면 좋을텐데 어젯밤에 읽다가 모르는 단어 너무 많이 나와서 어휴, 내가 내용 파악 제대로 하고 있냐... 이러면서 슬펐어요. 흑흑 ㅜㅜ

persona 2022-02-09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상대를 언젠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만나는 거거나 반복된 폭력으로 학습된 무기력이 생겨버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하는 편인데, 내가 누군가의 변화에 희망을 갖고 누군가를 개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부터 더이상 그건 사랑이 아닌 거 같아요.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얼른 헤어지는 게 늘 나은 선택 같아요.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니까요.

다락방 2022-02-10 08:41   좋아요 2 | URL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는 페르소나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람은 물론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지만 그것은 본인의 깨달음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누군가에 의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요. 나쁜 연애에 대한 페르소나 님의 말씀에도 동의하지만, 제 경우에는 이성애 세뇌가 세상에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더했어요. 사랑은 많은 순간 해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파괴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해야만 받아들여지는 사랑이라면 그건 버리는 쪽이 맞다고 봅니다. 으 싫어요..

독서괭 2022-02-09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포옹 가족>이 책장에 잠자고 있던 <여성의 설득>을 불러내게 한 것이로군요? 고구마 많이 드셨지만 좋은 결과도 있었네요 ㅎㅎ 그런데 내용이 정말 소설 같지가 않네요.
저 2월책 나오미 울프 10페이지 정도밖에 안 읽었지만 무척 재밌을 것 같습니다 ㅋ 저도 요즘 잠들기 전에 막 초조합니다. 책 읽어야 하는데 싶어서.. 리뷰도 써야 하는데 싶어서.. 그러다 애들이랑 같이 잠들어 버리면 망하는 거죠 ㅠㅠ

다락방 2022-02-10 08:42   좋아요 1 | URL
저도 나오미 울프 책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얼른 읽고 싶은데 필리스 체슬러 책 끝내고 싶어서 아주 초조합니다. 몸은 하나지 시간은 없지 읽어야 할 책은 많지.. 아 돌아버리겠어요 정말. 저는 필리스 체슬러 끝내고 나오미 울프 도전하면 아주 그냥 가열차고 맹렬하게 읽어버리겠어요. 후다닥 끝내버리겠습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님, 화이팅!!!

2022-02-10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02-09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설득, 담아갑니다.
필리스 체슬러는 뒤에서도 여전히 열일 하십니다. 천재는 다 이렇게 사나 싶어 슬프기도 하고, 그럼에도 천재에게도 365일 24시간일 뿐이라서 체력을 안배하고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다락방님, 천재에게도 1년은 365일 하루는 24시간 뿐입니다. 명심바래요 ㅎㅎ

다락방 2022-02-10 08:43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안드레아 드워킨.. 까지 읽었어요. 인간이란 자고로 복잡한 동물 아니겠습니까. 어떤 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놀랍기는 해도 저는 안드레아 드워킨이 좋아요. 막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뜬금)
단발머리 님 댓글 읽고 나니 오늘 점심도 늘 그랬듯이 잘먹어야겠단 다짐을 하게 됩니다. 빠샤!!

공쟝쟝 2022-02-10 11:49   좋아요 0 | URL
잘먹어야쥬! 잘먹어야합니다! 다락방님을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은 (이미 많이 실망했을 거예요 ㅋㅋㅋㅋ 무슨 페미니스트가 상황극을 하며 멧돼지를 잡나!!ㅋㅋ 우리들은 이미 실망을 가진채로 다락방님을 롤모델 삼았기 때문에) 다락방님이 잘먹기를 원합니다. 와구와구 얌냠~

다락방 2022-02-10 12:10   좋아요 1 | URL
너무 잘먹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잘먹겠습니다. 잘먹고 씩씩하게 살아야지. 읽고 쓰면서 살아야지. 우리 힘차게 살아가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