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정치권력의 매개체와 희생자가 아니고서는 정치 권력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적이 아닌 무언가로 권력을 파악해야 하고, 권력을 단순한 지배가 아닌 잠재력으로, 위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것으로, 단순히 탄압적이거나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p.385
어제 퇴근길에 기사 하나를 읽었다. '추적단불꽃'의 활동가였던 '불'이 본인의 실명을 밝히고 민주당 선대위에 합류했다는 거였다.
기사1. <추적단 불꽃>의 '불', 민주당 선대위 합류... "국힘 승리하면 여성의 미래 어려워"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기사2. '추적단불꽃' 박지현, 민주당 선대위 합류.."대선에 2030 여성 목소리 내겠다" [스팟+터뷰] (daum.net)
추적단불꽃의 '불' 박지현 씨는 27살의 여성이다. 추적단불꽃 활동을 할 때에도 '그러다 정치하려고 하냐'는 비아냥을 들었다고 했는데, 어제 이 기사들의 인용중에는 '이력은 팔아먹고 출세는 해야겠냐'는 조롱의 댓글도 달려있었다. 기가막혔다. 왜, 출세를 하면 안되는가? 왜 정치를 하면 안되는가? 박지현 위원장 본인도 '정치하면 안되느냐'고 비아냥에 되물었다 했는데, 디지털성폭력 근절에 앞장섰던 활동가가 정치를 하는 것이 왜 욕먹을 일인가?
박지현 위원장 본인도 인터뷰에서 힘에 대해 얘기했다. 본인을 포함한 활동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잘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에 힘을 갖고 싶었다고, 그래서 고민 끝에 선대위에 합류하게 되었다 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너무나 잘 알겠다. 나 역시도 내게 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대해 수없이 많이 생각해봤더랬다. 하고싶은 말이 있을 때, 내 목소리가 저 멀리까지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내 뜻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때, 우리는 힘을 원하지 않나. 그런데 박지현 위원장이 그런 힘을 갖기를 원하고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그 힘을 붙잡으려고 한 것이 왜 조롱의 이유가 되어야 하나. 박지현 위원장은 고민을 많이 했고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 활동가와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했다. 그런 시간들을 전하는 입장문에서는 혹여라도 자신의 결정 때문에 실망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염려도 들어있었다.
어쩌면, 어떤 부분들에서는 그러니까 어느 지점에서는 누군가는 실망하거나 서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내가 바라는 정당으로 가지 않았느냐는 서운함 같은 것들 혹은 정치인이 되지 말고 활동가로 남아주지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박지현 위원장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어제 처음 기사를 봤을 때는 왈칵 눈물이 나왔다. 자신이 옳다고 행한 바를 보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젊은 여성이 힘이 필요해 이제 정치인이 되려고 하다니, 나는 이 스토리 자체가 너무 벅차오르는 거다. 나는 감히 생각도 못한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 젊은 여성을, 나는 진심으로 내 힘을 다해 응원한다. 하시라. 더 큰 힘이 필요했던 만큼 충분히 지지를 받고 탄력을 받고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 읽었던 시사인에서는 성평등국가로 알려진 아이슬란드를 찾아간 기사가 실렸다. 경제위기 이듬해인 2009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최초로 여성 총리가 당선됐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는 승무원 출신이며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라고 한다. 여성의원들의 수도 주춤하다 점점 더 늘어갔다고 한다. 2021년 9월 총선에서는 48% 까지 올라갔다고. 해적당 쉰나 의원은 한국의 기자에게 말한다. 국회의사당 입구의 동상을 보았느냐, 그것은 1923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여성 잉기비외르그 H. 바르나르손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2001년 세워졌다면서 그간 남성 위인 동상은 많았지만 여성 위인 동상은 21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동상에 그가 한 말이 적혀 있어요. '숫자가 변화를 가져온다. 여성 의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시사인 748호, '세계1의 성평등 사회, 아이슬란드를 가다', P.30
나는 여성의원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 그래서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것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더라도, 여성의원들은 많이 보여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내가 이수정을 그리고 신지예를 욕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들 본인의 결정에 누군가는 잘못됐다고 혹은 서운했다고 했을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결정을 내린 본인들이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뭐가 됐든 당시에 그들은 박지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더 큰 지지가 필요하다고 느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걸 하고자 하는데 지금 이것보다 더 큰 지지가 나를 받쳐준다면, 하는 생각은 그들이 결정을 내리는데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시라. 정치인이 되시라. 그리고 많이 보여지시라. 내가 장혜영 의원을 후원한 것도 그가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서였다. 하시라. 보여지시라. 그래서 더 많은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롤모델이 되어주시길 바란다. 어린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니, 라는 물음에 판에 박힌 대답들이 아닌 다양한 대답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거기에는 정치인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길 바란다. 국회의원이 돼야겠어, 대통령이 돼야겠어, 가 거침없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이 변해야 하고, 그건 아이슬란드의 쉰나 의원의 말처럼 숫자가 더 많아져야 가능할 것이다.
여성들이여, 더 많아지자. 우리, 더 많아지자.
굳건히 버티고 살아남고 그리고 더 많이 보여지자.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면서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더 젊은, 더 어린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더 많아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