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가 왔고 사라는 버스보이 '잭'과 데이트 하러 나갔다. 로리는 혼자 아이스크림을 안주 삼아 퍼먹으며 와인을 마시고 그러면서 텔레비젼에서 하는 영화 <노트북>을 시청하고 있다. 아마도 뜨거운 데이트를 하고 사라는 늦게 돌아오겠지. 그렇게 혼자 영화를 보면서 하필 왜이렇게 로맨스 영화를 보여준담? 하는데, 다음 영화는 <콘에어>란다. 로리는 콘에어 좋아한다는데, 흐음.. 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에 몰입이 잘 안돼서.. 여하튼 그런데, 아직 열시를 조금 넘긴 시간 문이 열리고 사라가 들어온다. 아니 왜 벌써 들어와? 했더니 사라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버스 보이, 잭과 함께다. 읭? 사라는 만취했다. 프리 샴페인을 잔뜩 마셔가지고 취해버린 거다. 덕분에 일찍 들어왔고 아이쿠야, 술 마시고 무슨 로맨틱 밤이야, 잭은 사라를 사라의 방 침대에 뉘이고는 거실로 나온다. 그렇게 발렌타인데이의 밤, 잭과 로리는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려다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너에 대해 좀 말해줘, 라고 해서 그 둘은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데, 의도치 않게 잭의 어떤 말은 불씨가 되어 로리의 상처를 드러내게 만들었고, 그래서 로리는 울고 잭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와인도 마셨겠다, 로리는 잭에게 기대어 스르르 잠이 든다. 잭은 그녀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자신은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없다. 사실 로리를 보는 게 좋다. 사라와 헤어지는 것도 싫다. 사라랑 헤어지면 로리를 못봐서... 가 아니라 사라를 못봐서.. 라고 자기는 자기에게 부러 말한다.
다음날 소파에서 눈을 뜬 로리는 내가 왜 여기있지? 난 누구 여긴 어디? 하다가 차츰차츰 전날 밤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자신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선을 좀 넘겼음을 그러니까 좀 희미하게 지워버렸음을 깨닫고 이제 그를 피하려고 한다. 이것은 옳지 못해. 바람 피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상대를 속이면서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잭을 좋아하고 잭이 버스보이라는 걸 숨기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신경줄이 팽팽한데...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 로리의 생일이 된다. 토요일인 로리의 생일, 사라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너를 위해 내가 오늘을 정성스레 준비했어. 그녀는 옷을 내민다. 뮤지컬이자 영화인 <그리스>의 주인공들 처럼 옷을 입고 화장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데리고 나가 그리스의 배경처럼 꾸민 야외 극장으로 데려간다. 이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로리는 당황하지만 즐겁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야외 극장에서 역시나 그리스의 존 트라볼타 처럼 꾸민 잭과 빌리도 만나게 된다.
다른 얘긴데,
나는 사라의 이 이벤트가 싫다. 이렇게 나에게 말도 안하고 옷을 준비하고 내가 모르는 장소로 나를 데려가는 게 나는 영 별로다. 게다가 그런식의 놀이 공원, 테마 파크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사라랑 친구할 수 없을 것 같고, 친구 하더라도 친하지는 않고 좀 거리를 둔 친구가 될 것 같다. 게다가 남자들까지 불렀어.. 쓰읍.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옷을 입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 가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물론 사라는 내 친구가 아니라 로리 친구다. 그러니 로리가 이걸 싫어하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짐작을 햇을 것이고. 로리는 사라가 이 날을 위해 최선을 다했구나, 라는 걸 알고 그리고 즐긴다. 나는 그들의 친구가 아니지만 이런건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생일이면 술이나 사줘... 맛있는 음식이랑....테마파크, 놀이공원.. 이런데 데려가지마..
(혹시라도 앞으로 나랑 절친, 베프하고 싶다면 미리 말해둔다. 가장 좋은 선물은 뭐다? 와인과 도서상품권이다. 자매품으로는 알라딘 상품권이 있다. 나를 테마파크로 데려가면 절교당한다. 테마파크 말고 족발집을 선호합니다.)
아무튼 내가 번역본으로 먼저 읽어서 뮤지컬 <그리스>를 알고, 내가 그 뮤지컬을 본 적도 있던 바, 원서에서 당연히 그리스를 볼 줄 알았지만 아니, 그리스가 <Grease>인거다. 응?? 그리스가 greece 가 아니라 grease 였어? 나는 놀라서 grease 를 검색해본다. '기름'이라는 뜻이란다. greece 라고 알고 있던 때에도 대체 이게 극의 내용과 무슨 상관인가 했다. 배경이 그리스도 아니고 그리스로 여행가는 것도 아닌데 제목은 왜 그리스일까, 라고 늘 생각해왔던 거다. 그런데 그리스가.. 아니라 기름이었구나. 그런데, 그렇다면, 왜 기름이지? 하고 뮤지컬 그리스 검색해보니, 아아 이 뮤지컬(혹은 영화)의 제목이 된 그리스는 머리에 바르는 포마이드 기름을 뜻하는 거란다. 아아, 극중에서 남주들이 자꾸 머리를 뒤로 넘겼는데, 바로 그 기름을 뜻하는 거였구나. 와우- 이렇게나 무식했던 내가 이로써 지식 하나를 추가한다. 뮤지컬 그리스는 나라 그리스가 아니라 기름 그리스다. 만세!! 여러분 책,책, 책을 읽읍시다. 지식이 축적된다. 사실 이건 상식.. 이지만.. 뭐든.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잭의 친구 빌리는 로리도 몇 번 만난 적 있었는데 엄청난 근육질이다. 게다가 로리랑 잘 되고 싶어한다. 그는 자신의 육체 탓인지 자신감에 가득 차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테마파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사라와 빌은 파트너가 되어 댄스경연대회에 나가게 되고 너무 눈에 띄고 잘춰서 결승까지 진출할 것 같다. 열시에는 영화 그리스를 봐야 되는데 로리는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이 아니라 저기 보이는 대관람차를 타고 싶다. 그렇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저걸 탈 시간이 없을것 같아.. 저거 타고 싶은데.. 사라랑 빌리는 댄스대회 나가있고... 그러자 잭은 로리에게 '지금 내가 태워줄게' 라고 말한다. 음.. 대관람차를 왜 누가 태워줘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자기가 타면 되는거 아닌가? 그렇지만 이건 로맨스 소설이니까 내가 넘어가주겠다. 아무튼 잭은 생일 선물도 준비 못했는데 이걸 태워주는 걸로 생일 선물을 대신하겠다고 한다. 아니.. 님하... 너무 날로 먹는거 아니냐? 생일 선물 대신 대관람차 태워주기라니.. 너무 날로 드시네. 그렇지만 뭐, 로리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로리의 친구의 남자친구니까.. 아니 그래도 난 좀 별로다. 내가 널 대관람차 태워주는게 선물이야, 라니.. 내 타입 아님.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들이 이십대 초반이라는 거다.
그렇다.
나는 처음 시작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삼십대의 주인공들일줄 알았는데 아닌거다. 잭의 나이가 스물넷으로 나오길래, 헐, 사라는 그러면 이렇게나 어린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하는건가? 생각했는데, 아아아아, 사라 스물두살이고 로리는 이제 막 스물셋이 된것이었던 것이었다. 아아, 너무 젊잖아? 너무 영한데? 내가 그 나이때 뭐했더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철없던 나의 어린 시절이 눈앞에 마구 지나가는데 얼른 저리 가버렷. 훠이훠이~
그렇게 잭과 사라는 자기들끼리 대관람차를 타러 간다. 저기 춤 추는 사라에게 우리 저거 타고 올게 말하려고 하였지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전할 수가 없고 그런데 대관람차는 타고 싶고, 그래서 대관람차를 타러 갑니다. 버스 보이랑 로리가. 오, 신이시여. 도와주세요.
God, save me.
나는 그들이 대관람차 꼭대기에서 혹여라도 키스를 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그러지 말기를 바랐다. 친구의 애인이기도 해서 그렇고, 대관람차 꼭대기 키스 너무 전형적이고.. 아무튼 그랬는데, 그들은 그러지는 않고 함께 별을 보고, 가장 높은 곳에서는 잠깐 무서워하는 로리를 잭이 잡아준다.
자, 여기서 영어의 재미있는 지점에 대해 얘기해보자.
관람차의 꼭대기, 별들과 가장 가까워지는 위치에서 잭과 로리는 별을 본다. 분위기 좋다. 낭만적이다. 게다가 옆에 앉은 사람은 나의 애인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잭은 로리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리는 고맙다고, 나도 기쁘다고 말한다.
"생일 축하해, 로리." 내가 그를 보려고 몸을 돌리자 잭이 말한다. 나직하고 진지학. 나는 끄덕인다. 웃으려 해보지만, 내 얼굴 근육이 그걸 해낼 수 없다는 것만 깨닫는다. 눈물이 터질 것처럼 입술이 떨린다.
"고마워, 잭. 생일을 너랑 함께 보내게 돼서 기뻐……." 나는 말을 끊고 말을 바꾼다. "너희들이랑."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 -책속에서
아아, 저 부분. '너랑 함께 보내게 돼서 기뻐'를 '너희들이랑' 으로 바꾸는 것은, 영어라서 더 찰지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맥 라이언' 나오는 영화 <프렌치 키스>를 봤었는데, 티격태격하던 여자와 남자가 함께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남주가 갑자기 여자에게 I love you..라고 하는 거다. 그게 사실 자신의 진실한 감정이었는데 그 말에 돌아보는 여자를 보고 남자가 뭔가 덧붙여서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니가 뭔가를 하는걸 사랑한다'로 만들어 버렸던 거다. 이게 지금 정확히 대사가 기억이 안나는데(아주 오래전이니까요) I love you 가 I love you to~ 이런 식으로 되어버리는거다. 이게 번역으로는 이 맛이 잘 안살잖아? 나는 그래서 로리가 저렇게 잭에게 말할 때 어떻게 되어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너를 너희들로 어떻게 바꾸지? you 는 복수형도 you 잖아?
자, 보자.
'Happy birthday, Laurie,' Jack says, quiet and serious when I turn to look at him.
I nod and try to smile but find that my face muscles can't do it, because my mouth is trembling as if I might cry.
'Thank you, Jack,' I say. 'I'm glad I got to spend it with you-' I break off, then add, 'you guys,' for clarity. -p.89
아...you 라고 말했다가 you guys 라고 add 했구나. 재미지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대관람차 타고 꼭대기에서 로리는 꺅 비명을 지르고 잭은 그녀를 붙잡는다.
Our car crests the summit and jolts over the brow of the wheel, rocking as the breeze catches it, making me squeal and grab hold of the bar with both hands. Jack laughs easily and puts his arm round me, the side of his body a warm press against mine.
'It's okay. I've got you.'
He gives me a brief, bolstering aqueeze, his fingers firm round my shoulder, before he lounges back and lays his arm along the bak of the seat again. -p.89
우리는 잠시 정상을 점했다가 덜커덩 바퀴 마루를 넘어간다. 마침 산들바람고 부딪혀 좌석이 흔들린다. 나는 꺄악 비명을 내지르며 양손으로 안전 바를 냅다 잡는다. 잭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내게 팔을 둘러준다. 그의 옆구리가 나를 따뜻하게 압박한다.
"괜찮아. 내가 잡았어."
그가 잠시지만 힘차게 나를 조인다. 그의 손가락이 내 어깨를 견고하게 감싼다. 그러다 다시 느긋하기 기대앉아 팔을 원래대로 의자 등받이에 올려놓는다. -책속에서
저기 저 부분. 괜찮아, 내가 잡았어 하는 부분. 이거 번역본으로 읽을 때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원서로 보는데 I've got you 가 너무 좋은거다. 뭐랄까, 안전해지는 느낌적 느낌? 그러면서 당연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레오나 루이스의 노래가 생각났다.
I got you
대관람차...나도 타봤다. 홍콩에서. 엄마랑........ 우리 엄마, 나 때문에 대관람차 타봤다. 내가 엄마 대관람차 태워드렸다. 울엄마 생일 아닌데도 그랬다. 내가 잭보다 낫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치만 저 때의 잭은 스물넷 꼬꼬마니까...
(엄마와 내가 탄 대관람차)
(우리 엄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내 페이퍼 갑자기 방향을 잃고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요? I got you 로 제목 써두고 페이퍼 쓰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울엄마 홍콩사진 검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