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즈'는 부모님을 잃고 고향에서 파리로 온다. 파리에는 큰아버지가 계신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에 너희가 오면 내가 돌보아주겠다 말했던 걸 기억하고 살기가 힘들어 동생들을 데리고 온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큰아버지의 집을 찾아가던 도중, 그녀는 파리의 한복판에서 아주 커다란 백화점을 보게 된다. 그토록 크고 화려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을 처음 보는 터라 드니즈도 그리고 그녀의 동생들인 '장'과 '페페'도 넋을 잃고 그 건물을 바라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큰아버지 집을 찾았을 때,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옷감 가게가 자신들을 거두어줄수 있을만큼 잘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큰아버지는 그들을 반기며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만, 그러나 지금 형편이 너희들을 돌보아줄 수가 없다며 가게 앞의 화려한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저 백화점 때문에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의 가게가 다 망하고 있다고, 저 백화점은 악마라고, 저 백화점은 망해야 한다고.
동생 '장'은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그곳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고 어린 페페는 아이를 봐줄수있다는 아주머니께 맡겨두고 드니즈는 일자리를 구하고자 한다. 큰아버지가 소개해준 다른 옷감가게에서는 더이상 직원이 필요치 않다하고 마침 백화점에 사람을 구한다고 하니 거길 가보라는 거다. 큰아버지는 자신이 그토록 원망하는 백화점에 드니즈가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드니즈에게 네 뜻대로 하라고 한다. 드니즈는 사실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자기 옷차림이 너무 초라하고 한 번도 백화점에 가본 적 없어 두렵지만 설레이기도 하면서 일자리를 구한다. 그렇게 그녀는 백화점 안의 기성복 판매점 직원이 된다.
백화점에서는 갈 곳 없는 판매원들에게 허름한 숙소를 제공해주었다. 그녀는 낮에는 백화점의 유니폼을 입고 그 외에는 자신의 단벌옷과 구두를 수선해가면서 가난한 생활을 한다. 그녀의 차림이 너무나 초라하고 머리도 엉망인지라 백화점 사람들은 그녀를 모욕하며 따돌린다. 아직 수습이라 기본급도 없이 수당만으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따돌리며 수당을 받을만한 판매에 그녀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페페를 맡긴 아주머니께 매달 돈도 드려야 하는데 설상가상 동생 장은 자꾸만 누나에게 돈을 달라며 그녀의 밑빠진 독이 된다. 여자때문에 늘 문제를 일으키며 누나가 돈을 주지 않으면 자기는 곧 죽겠다는 거다. 하아- 나는 장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녀가 백화점에서 자신의 낡은 신발로 일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발이 퉁퉁 붓는데, 자기 신발 사는 것도 미루고 미뤄가며 가진돈을 다 털어 동생에게 줄 때마다 장을 데려다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너같은 밑빠진 독이 진짜 너무 싫다...
백화점 안의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헛소문을 만들어내며 그녀를 괴롭힌다. 누구랑 잤다더라, 남자가 찾아왔다, 헤프다 등등. 그녀는 동생들을 돌봐야해서 결혼 조차 생각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힘들기만 하다. 결국 그녀는 백화점에서 해고되고 다시 또 일자리를 구하며 동생을 돌보고 살아야 하는데, 어느날 밖에서 우연히 백화점의 사장인 '무레'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대화를 통해 무레는 드니즈가 누구보다 백화점의 영향과 현재의 경제적 흐름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백화점 근처의 작은 가게들이 저마다 문을 닫아야 해서 괴로워하며 백화점을 욕할 때, 그러나 물건을 다양하게 갖추고 할인해서 저렴하게 판다면 사실 소비자들에게는 좋고 편하며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드니즈의 생각이었다. 드니즈는 다시 백화점에 입사하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무레에게 계속해 얘기해 백화점의 환경을 바꿔나간다. 백화점안에서 자신이 일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들을 개선하게 하고 무엇보다 임신한 여자를 해고하던 것을 바꾼다. 그녀가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며 다른 직원들에게도 친절하고 또한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백화점 직원들은 이제 그녀를 존경하게 된다.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1883년에 출간됐다. 실제 백화점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작품해설에 대해 읽어보면 에밀 졸라는 백화점에 근무했던 사람들에 대한 취재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화점의 구조와 자본의 흐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노동자의 낮은 위치에 대해 아주 잘 나와 있다. 극심한 노동을 시키고 질이 낮은 식사를 제공하고 비수기에는 무자비하게 직원을 해고하는 일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재고조사는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사 거의 마진 없이 제품 할인을 하더라도 그 제품으로 인해 다른 상품을 판매하며 자본을 계속 회전시켜가면서 운영되어가는 것, 매장의 배치를 부러 여기에서 저기로 떨어뜨려 그 사이사이 매장들에서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것, 백화점 내의 매장이 아니라 외부 장사까지 입구에 허락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보이게 하는 것까지. 백화점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내가 사실 잘 알지 못했던, 관심조차 없었던 백화점의 운영과 자본의 흐름을 이 책을 통해 아주 많이 알 수 있었다. 백화점 점원과 사장의 로맨스를 보려고 읽기시작한건데(차인표와 신애라처럼!) 그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건 아니었다. 비록 사장인 무레는 여성들을 정복하고 싶어하고, 백화점이 나요 내가 백화점이니 여성들을 굴복시키겠다! 하면서 여자들을 바꿔가며 만나고 그 여자들에게 물질적으로도 크게 보상하곤 하지만, 우리의 드니즈는 그런 그를 거절했다. 아니, 나를 거절해? 너처럼 형편 어려운 여자에게 나는 집도 제공해줄 수 있고 돈도 줄 수 있는데? 나를 거절한다고? 너같은 여자는 처음이야... 가 되어서 무레는 괴로워하는 로맨스가, 이 책 안에 있다.
백화점의 고객들이 주로 여성이고 그 안의 수많은 화려한 옷이나 잡화에 대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소비를 하는데에서, 그러면서 누구보다 절약하고 가난하고 정절을 지키는 드니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너무 한 명만 성녀화 시키는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녀의 조언들을 받아들이는 사장에게 드니즈는 너는 여자들의 현명한 생각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마디 해주기도 한다.
백화점 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아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었고 그 안의 다양한 인간들에 대한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신념에 대해 생각했다. 주변 소상공인들은 백화점에서 자꾸 확장하면서 자신들에게 협조하라는-백화점에서 일을 하거나 백화점에 물건을 대주거나 돈을 받고 건물을 팔거나 등등- 제안에도 꿋꿋하게 백화점이 망하기를 바란다며 손님 하나 들지 않는 가게를 접지 않는걸 보면서 신념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손님은 없고 돈은 있는대로 다 끌어썼고 이제 망하는 길은 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안돼!'를 외치는 것은 얼마만큼 유효하며 또 굳은 마음일까.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게 가족들이 집을 잃게 되고 먹을것도 떨어지게 되고 병약하여 지는 것은?
드니즈의 큰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자신의 가게에서 오래 일하는 남자랑 결혼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게가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 가게를 물려주는 것은 자식들에게 못할 짓이란 생각에 결혼을 자꾸 일년만, 일년만 미루게 되고, 그 가게 안에서 다른 세상을 일절 보지 못한 상태로 남직원과의 결혼만 기다리던 딸은 병약해진다. 이 때의 프랑스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또 다른 나라들에서도 가업을 잇는 것을 보게되는데,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안정적일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매우 답답한 게 아닐까. 아버지가 그러했으니 아들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가 그러했으니 딸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갇히는게 아닐까.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다른 남자도, 다른 세상도 모르는채로 그 가게 안에서 아버지랑 같이 백화점을 원망하면서 나는 이 남자랑 결혼할 것이다.. 라고만 생각하는 딸은 어떤 세상을 살고 또 어떤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인가.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바라본다면? 대환장 지점인 것이다.
신념에 대해서라면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를 읽고서도 아주 오래 생각한 것이다.
정의롭고 언제나 바른 생활을 할것이며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바른 청년 '캔터'는 다른 사람들이 '저 지저분한 가게가 병을 옮겼어', '저 새끼들이 여기 와서 병을 옮겼어' 라는 말에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 병이 옮는지 확실히 알지 못해요, 그런 식으로 혐오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되는겁니다' 라고 말하며 그 가게를 가고, 그 사람들을 만난다. 동네에서 지적발달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른 학생들이 저렇게 늘상 씻지도 않고 다니는데 병을 옮기고 다닌다며 그의 곁에 가지 않으려고 하자, 캔터는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그 씻지 않는 남자와 악수를 한다. 언제나 올바르게 살고자 생각하고 또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결국 병에 걸리게 되고 하반신에 마비가 오게 돼, 자신이 삶에서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육체적 활동을 평생 할 수 없게 되며, 그런 장애를 가지고 사랑하는 여자를 고통스럽게 만들 순 없다는 자신의 신념으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병이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인지 모른다. 실제 캔터에게 그 병을 옮긴 것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신체적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을때, 그의 남은 삶이 우울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나는 자꾸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거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걸 그도 피해야했던 것은 아닐까? 그의 모든 말과 신념에 나 역시 동의하고 또 지지하지만, 그러나 그가 병에 걸리고나자, 어쩌면 다른사람들이 말하는 장소를, 사람들을 그가 피했더라면, 그는 여전히 건강하게 살 수 있진 않았을까? 그러면 안된다면서 올바르게 행동했던 그 모든 면면들이 결국 그를 병들게 한 건 아닐까? 신념을 가진다는게 그것이 아무리 옳은 방향을 향한다고 해도, 나에게 결국 해를 입히는 거라면, 그걸 그렇게 고집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거다.
백화점 주변의 고집스런 소상공인들의 신념, 캔터의 바르게 살고자 하는 신념 모두 나는 잘 알고 있고 또 나 역시 그들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한다. 나로 말하자면 그렇게 신념을 가진 그들처럼 꼿꼿하다. 나는 바르게 살고자 하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가끔은 이러면 안되는 것 같다는 순간을 마주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 앞에서 나는 백화점에 들어가 취업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그 화려함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사람일것인데, 그러다가 결국은 굶게 되는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신념이 신념이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건 어쩌면 똥고집인건 아닐까?
그리고 백화점 안의 노동환경을 생각한다. 에밀 졸라는 고증을 얼마나 잘했던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과 노동환경에 대해서 잘 써냈지만, 그러나 지금의 백화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너무나 슬픈 현실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나온 백화점 관련 책을 보자.
나는 백화점에 가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가는 백화점의 화장실에서, 내가 이용하는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백화점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마주친적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더랬다.
물건도 사람도, 그리고 CCTV도 참 많은 백화점에는,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든 풍경들도 있었습니다. ‘앉아 있는 백화점 노동자‘,
‘안경을 낀 여성노동자‘,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백화점 노동자‘입니다. 앉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앉을 의자조차 없다는
것이 못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직장 건물은 화려하고 근사한데, 알고 보면 ‘의자 하나 주지 않는 직장‘이라니 말입니다.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매장이 많은 백화점 1층에서는 ‘안경 낀 여성노동자‘또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백화점은 시력이 좋은 사람만
뽑는 것도 아닐 텐데, 거짓말처럼 안경 낀 사람이 이렇게 없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요? 물기 한 방울 없이 깔끔한 ‘고객용‘
화장실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우리는 백화점 노동자를 만나 볼 수 없었습니다. - P9
화장은 물론 액세서리와 손톱까지 관리 규정하는 지침은 실제로 창고를 오가며 육체노동을 하는 백화점 판매직 여성노동자에게 불편을
가져온다. 창고 일을 하고 매장을 오가면서 지저분해진 손톱을 의식하고 지적받으며 다시 손질하는 것은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준다.
그녀들은 백화점의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분서주하며 타인의 시선에 비칠 외모를 거듭 확인해야 한다. 고객 응대 외에도
매장 청소, 재고 정리, 상품 진열, 전산 작업 등 다양한 일을 해야하는데, 딱 맞는 옷, 짧은 치마, 높은 구두 등은 일하기에
불편한 복장이다. - P91
(이미지는 책속에서)
드니즈도 그 안에서 자신이 입은 옷으로, 자신의 헤어스타일로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 진상 고객이 그녀를 모욕하기도 했고 사장으로부터도 외모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1883년에 쓰여진 소설과 2016년의 현실에서 달라진 바가 없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 걸까. 그나마 드니즈는 소설 속에서 사장과 대화하는 직원이 되어 여러가지 복지를 더 좋게 만들게 했지만, 실제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드라마 <사랑을 그대품안에> 에서의 차인표와 신애라의 사랑이 현실가능성이 없으며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을지언정 단지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나.
자, 그렇다면 드니즈와 무레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이 책을 앞으로 읽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말하지 않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옷감 에 대한 얘기 너무 많이 나와서 각주가 너무 많고 그러므로 모르는 용어 많이 나오긴 했지만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에밀 졸라 만세이며 화이팅이고 나는 앞으로 에밀 졸라를 더 읽도록 하겠다. 에밀 졸라 목로주점은 겁나 재미있고 이건 남동생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에밀 졸라 나나는 넘나 재미없어. 지루하기 짝이 없더라. 여튼 나는 에밀 졸라 더 살거다. 아 재미있어. 졸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