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앗.
보통은 걸을 때 머릿속에서 상황극에 열중하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근무중에 찾아와서 지금 대환장 지점이다. 머릿속에서 드라마 그려지고 있네. 오늘 머릿속 상황극의 남주는 누구일까요? 키가 185센치다. 아 상황극을 못끝내겠다. 상황극에서도 나는 일을 하고 있어.. 그런데 ... 아아 부끄러워 상황극에 대해 말하지 말자. 어휴... 제발 멈춰, 멈춰라! 일 해야 한다 ㅠㅠ
그리고 복숭아에 대해서.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복숭아를 사먹는게 어째 매번 실패다.
복숭아 좋아한단 말에 제부는 매해 여름 내게 복숭아를 박스로 보내주는데, 올해는 제부가 보내준 복숭아 박스도 맛이 없었고, 내가 시장 가서 사먹은 것도 맛이 없었고, 마트 가서 사온 것도 맛이 없었고, 엄마가 사다준 것도 맛이 없었다.
경비일 하시는 아빠가 아파트 단지 주민으로부터 몇 개 받아오신 복숭아만 유일하게 맛있었다. 왜 복숭아 실패하지요?
그러니까 몇해전 여름, 그 때 그 사람이 날 보겠다고 한국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기 전, 내 손을 잡고 동네를 걸으면서 과일가게를 찾았다. 과일가게에 들어가서는 복숭아 좋아하니까 박스로 사주고 싶다고 복숭아 한박스를 사준 적이 있다. 여름이었다. 아 쉬바.. 상황극에 복숭아 과거까지, 완전 집에 가서 술마실 각이네. 마침 늦은 생일 선물로 와인도 받았겠다. 오늘은 와인을 마실까. 그런데 상황극은 어떡하고 내 머릿속 추억은 또 어떡하지.
여름이 다 가고 있어서 미치겠다. 너무 아쉽다.
나는 여름이 지나갈 때마다 미칠것 같은 기분이 된다.
상황극도 추억도 그래서이다.
붙잡고 싶은데 나는 한번도 떠나가는 것을 붙잡아본 적이 없다.
붙잡아도 어차피 다 갈거면서.
여름의 끝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