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일드 44》를 보았다. 일전에 보고 별로라고 내가 평을 해두었던데 책 내용도 영화 내용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서, 이번에 차일드 44 2편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기념하여 영화를 다시 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을까.. 무엇이든 보고 읽으면 어떻게든 내 안에 남아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천국에는 살인자가 없다(였나 범죄가 없다였나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는 소련은, 자기들이 사는 땅이 천국이므로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그런 범죄는 일어날 리 없기 때문에, 일어나서도 안되는 좋은 나라가 소련이기 때문에, 살해당한게 뻔한 아이들의 시체를 부모에게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사고사로 결정을 한다. 여기에 의문을 품게된 우리의 주인공 레오(톰 하디)는 이 사건을 수사하려다가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아내와 둘이서 힘겹게 범인을 찾고 해결해나가게 된다.
레오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랐고 보육원에서 뛰쳐나와 어찌어찌 정부 요원이 되었다. 자신이 가진 힘이 무언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각 없이 그는 전쟁 영웅이었으며 뛰어난 정부 요원으로 살고 있는데, 자신이 가진 힘 때문에 아내가 어쩔 수 없이 청혼에 예스를 하게 됐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레오의 성장기라 이 책을 좋아했던 기억은 떠오른다. 최근에 남자 작가의 미스테리 소설 읽으면서, 아, 톰 롭 스미스처럼 쓰기는 힘든거구나, 역시 톰 롭 스미스가 대단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톰 롭 스미스 책 재미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영화속에서 나온 인물인 조연 '바실리'(조엘 킨나만)에 대한 것이다.
바실리는 레오가 영웅이 되어가는 전쟁에서 힘없이 구석에 숨어있는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정부 요원이 됐지만 레오보다 계급은 아래이고 자신이 한 일로 레오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그는 내내 레오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데, 본인의 생각으로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걸 잘 못하는 캐릭터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삶의 고민 같은 걸 하는게 힘겨운 장소와 시간에 살고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열등감에 시달리는 그는 레오의 자리를 탐냈고 레오의 아내를 탐냈다. 그렇게 그는 레오를 모함하면서 레오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고,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레오의 아내를 차지하고 싶다. 다른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어도 레오의 아내에게 전화해 레오를 버리고 내게 오라고 하는 사람인거다. 레오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데 결코 레오처럼 될 수 없으니-레오는 레오고 바실리는 바실리다- 그런 바실리가 행복할 리가 없다. 계속 어떻게든 레오가 했던것처럼 하고 싶지만 일은 자꾸 어긋난다. 치밀한 계획과 자신의 생각으로 해나가는 게 아니니 뭐가 잘 될 리가 없다.
자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는 인식 없이,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고 자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바실리는 레오가 되고 싶었는데 어떻게 바실리가 레오가 된단 말인가. 바실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해보이는 레오를 그대로 따라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본인이 어떤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먼저 있어야 하는 거다.
이 바실리라는 인물을 보는데 자연스레 영화 《이탈리안 잡》이 떠올랐다.
여러명의 도둑이 함께 도둑질을 하기로 했고, 그렇게 큰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 장면이 있다. 저마다 큰 돈으로 하고 싶은, 혹은 살고 싶은 모습이 있었다. 누군가는 좋은 오디오를 사고 싶었고 누군가는 좋은 차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스티브'(에드워드 노튼)는 딱히 대답하지 못한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사고 싶은지에 대해 자기도 잘 모르는거다. 이 멤버들이 함께 뭉쳤지만 결국 배신이 일어났고 모든 돈을 스티브 혼자 먹어치웠는데, 이에 도둑 멤버들이 그에게 돈을 돌려받기 위해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그가 갖춘 것들이 이 멤버들 각자의 원하는 것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스티브는 자신의 집을 (도둑)동업자들의 말에서 빌려와 오디오를 갖추고 집안을 꾸며뒀던 것. 우리가 말했던 걸 얘가 다 샀네, 라는 뉘앙스의 말이 영화 속에서 나온다. 스티브는 좋은 오디오를 갖췄기에 행복했을까?
바실리와 스티브를 보면서 열등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를 보면서 열등감에 쌓이고, 그 열등감 때문에 그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맹렬히 바라봤자, 그 사람처럼 될 수 없다.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고 같은 상황에 처한다해도 내리는 결정이 다르며 또한 그 과정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다. 모두가 같은 결과를 낼 수도 없고 같은 만족감을 가질 수 없으며 같은 삶의 형태를 갖출 수 없는 거다.
바실리가 레오의 자리를 빼앗는데 성공했고, 영화속에서는 실패했지만 만약 레오의 아내도 오케이, 하면서 바실리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바실리는 스스로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오야 이거봐라 약오르지 용용 죽겠지, 해도 레오는 자기 나름대로의 자리에서 아내를 잃고 직업을 잃은 것에 슬퍼하면서도 나름의 삶의 모습을 찾아 행복을 느끼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레오는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나라의 문제점을 볼 수 있었고 자기가 속한 조직의 문제점을 볼 수 있었다. 문제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삶에 기쁨과 행복은 또다시 그를 찾아들 것이다.
가짜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나는 나일 뿐이고 너는 너일 뿐이다. 너 행복해보여 너처럼 되고 싶어, 라고 해도 너처럼 되었을 때 내가 행복한지는 다른 문제다.
2020년에 나름 계획했던 것들을 지킬 수 없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겠지. 나는 2020년에 예정되어 있던 말레이시아를, 베트남을, 슬로베니아를 취소해야 했다. 이틀후인 내년부터는 가능해질까?
그래도 2020년에 계속한 게 있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꾸준히 해왔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얼마전 트윗에서는 올해 잘한일에 대한 트윗이 유행했더랬다. 나는 매일 잘난척을 끼고 사는 사람인데도 올해 내가 잘한게 뭐지, 라고 하면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해온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였다. 여행이 취소되었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우울했지만, 그래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는 꾸준히 해왔네. 이렇게 꾸준히 뭔가 한다는 것은 차곡차곡 쌓여 힘이 되는 것 같다. 같이하자고 해놓고 같이 했더니, 그렇게 우리가 함께 읽은 책들이 아주 여러권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 어떤 책들은 어떤 이들에게 특별히 더 좋은 책이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잘한게 없는 것 같아, 시무룩했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걸 계속 해오고 있음을 알려주더라. 무언가 꾸준히 한다는 것만큼 잘했다 할만한게 또 있을까. 그렇게 나는 나의 2021년에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역시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함께 또 하자고 말해주었기에 가능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가 2021년의 작은 목표라면, 성경 완독하기 역시 추가된 작은 목표가 되겠다. 2021년 한 해, 나는 성경읽기를 꾸준히, 매일 해볼 참이다. 시간이 쌓여갈수록 내가 읽어가는 장수도 늘어갈 것이고 어느 순간 완독에 다다르겠지. 그 날이 기다려진다. 그 날이 오기 위해서라면 차근차근 읽어가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꾸준함이 필요하다.
오늘은 사흘째 오늘의 성경읽기를 마쳤고 창세기 8-11 장이었다. 오늘도 읽으면서 머릿속에 의문투성이 되어 사실 나는 내가 이걸 완독할 수 있을지, 무사히 읽기를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고작 창세기 11장까지 읽었을 뿐인데 어처구니 없어서 머릿속 물음표 된게 여러번이다. 창세기에서는 아들의 탄생과 함께 아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딸의 이름은 탄생과 함께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의 아내가 될 때에야 비로소 아, 딸도 있구나, 그 딸의 이름은 무엇이구나 알게 된다. 나는 이 읽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이가. 천지창조부터 가부장제가 함께였구나, 가부장제의 시작과 최고봉은 성경이구나, 깨닫는 것은 내게 무심히 넘길만한 부분이 아닌지라, 천지가 창조되고 인간이 물로 심판받을 때는 지금과 다르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노아는 저 시간에 저 곳에 있었던 거다, 하고 나를 다독이고 있다. 지금 여기의 내가 불쑥불쑥 화가날 때마다, 아니야, 그러지마, 저기는 아주 옛날이야, 한다. 덕분에 나는 내가 기존에 읽었던 《가부장제의 창조》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리고 읽다 중단했던 《만들어진 신》을 읽고 싶어졌다. 100쪽까지 읽고 팔아버렸는데 다시 사야지. 올해의 마지막 구매가 될것인가. 두둥-
성경을 읽으면서 2021년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이런게 나중에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 기록해놓을라고 한건데 하다보니 자리도 모자라고 ㅠㅠ 에잇 이게 아닌가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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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와 성경 완독으로 꽉 채워 보내야지. 으쌰!!
다른 목표는 세우지 않기로 한다. 1년간 할 건 이 두 개로 충분해.
자잘한 것들은 그때그때 세워가며 살아야지.
코로나 상황 봐서 여행도 집어 넣고(가능할까? ㅜㅜ), 코로나 상황 봐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만나자고 청도 해보고 그래야지. 플랭크 한달 챌린지는 오늘이 24일차고 공식 휴일인데, 이번 한달 마치면 당분간 도전하지 않아야겠다. 개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서 매일 그만둘까 싶지만, 이를 악물고 하고 있다. 한번에 오래 버티는 거 너무 힘들어서 30초 40초 쪼개가며 어떻게든 하고 있어. 장하다, 책사줄까?
몰티져스 몇 개 먹었다. 사실 좀 많이.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