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퇴근후 남동생과 술을 마시며 뉴스를 함께 보고 있을 때였다. 뉴스에서는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입 안에 안좋다는 당연한 얘기를 기사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기사를 내보내는 기자가
"뜨거운 음식을 먹기전에는 후후- 이렇게 불면 온도가 좀 내려갑니다. 이렇게 식힌 후에 드세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나와 남동생은 너무 깜짝 놀랐다. 아니, 뭐 저렇게 당연한 얘기를 뉴스에서 내보내지? 그러면서 둘이 깔깔 웃었더랬다. 뜨거운 음식 후후 불어 식혀먹는거 우리 어린 조카들도 다 아는데! 어떻게 저렇게 배고프면 음식을 먹으세요 같은 당연한 말을 하지?? 저거 하면서 기자도 웃기지 않았을까? 남동생과 나는 계속 웃었다.
'안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소설선집'이다. 분량이 저마다인 단편들을 여러편 묶어두었는데, 이 책이 좋다는 건 오래전부터 빈번하게 들었던 바, 얼마전에 친애하는 서재 지인의 페이퍼에서 소개받았던, 이 책의 표제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 아니, 제일 뒷편에 있더라. 흐음, 제일 뒤에꺼 먼저 읽게 생겼군, 하고는 읽는데 아, 진짜 너무 좋은거다. 체호프는 예전에도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바지만, 그려내는 인물들이 생생하고 판타지를 집어 넣지 않는다. 나는 소설에서 이런 부분들이 정말 좋다. 등장인물들이 그냥 나같은, 우리같은 인간인 거다. 사랑을 하더래도 24시간 쉼없이 상대가 맨날 예뻐보이는 건 아니잖아, 때로는 순간순간 어휴, 저 옆으로 좀 사라졌으면, 싶을 때도 있고, 아오 귀찮게 지금은 말 좀 걸지 말지, 할 때도 있지 않나. 오늘은 늙어보이네, 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할 때도 있고, 으, 저런 점은 좀 싫다..할 때도 있고. 기본적으로 어떤 싫은점이나 단점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기는 하지만, 사랑은 24시간 내내 예쁘기만한 그런 판타지가 아니잖아.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좋았다. 몹시 지친 하루 퇴근해 집에 가서는 와인을 개봉해서 입에 물었다 삼킬 때, 입 안 가득 떫은 맛이 퍼지고 그리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 들어가서 온 몸에 퍼지는 느낌이 들면서, '하아, 바로 이거야' 하는 그런 식의 느낌이, 체호프의 소설 속에는 있다. 너무 좋아요 ㅠㅠ
그리고 <문학 교사>란 단편에서 풋- 하고 웃었다.
화자인 '니끼찐'은 교사이고 마을의 '마냐'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그런 니끼찐이 같이 사는 룸메이트로 동료 교사인 '이뽈리뜨 이뽈리띠치'가 있다. 이 이뽈리뜨 이뽈리띠치가 내가 위에 언급한 저 뉴스같은 사람이었다.
「오늘 날씨는 정말 좋았습니다!」니끼찐이 그의 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런 날 어떻게 방 안에만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놀랍군요.」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지내다가 가끔 말을 한다 해도 누구나 다 오래전에 아는 그런 이야기나 했다. 지금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멋진 날씨로군요. 지금이 5월이니까 곧 진짜 여름이 올 겁니다.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하답니다. 여름에는 밤에 창문을 열어 놓아도 따듯하지만, 겨울에는 이중창을 해도 춥지요.」
니끼찐은 그의 책상 옆에 1분도 앉아 있지 않았지만 따분해졌다. -<문학 교사>, p.22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어젯밤에 자기 전에 읽다가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ㅋ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는거잖아. 너무 웃긴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사람들의 대화라는 게 사실 다 뻔한 말들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라고 하는데 너무 웃긴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사와 지리 교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 그러고보니 말야, 예전엔 날이 더울 때 이런 일이 있었대, 라면서 특유의 지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도 있을텐데....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라니. 뜨거운 음식은 후후 불면 온도가 내려갑니다, 라는 것과 같다. 얼음은 실온에 두면 녹는다.
이뽈리뜨 이뽈리띠치의 너무나 당연한, 그래서 웃긴 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니끼찐은 드디어 마냐와 결혼을 했고,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그 결혼식에 와서 축하를 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거다.
역사와 지리 교사이며 언제나, 누구나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이야기만 하는 이뽈리뜨 이뽈리띠치가 가장 다정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지금까지 당신은 독신으로 홀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은 결혼도 했고, 이제 둘이 함께 사는 겁니다.」-<문학 교사>, p.23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터졌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이 캐릭터 근데 너무 단역이라 조금밖에 안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그 프로그램보다 웃겨... 아아, 나도 나중에 결혼식장가면 결혼하는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지금까지 혼자 살았지, 그렇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이제 둘이 함께 사는거야.
그러다 자식을 하나 낳으면 이렇게 말해줘야지.
너는 지금까지 둘이 살았지. 이제 자식을 하나 낳았으니 셋이 사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큰웃음 주시는 이뽈리뜨 이뽈리띠치 되시겠다.
이 책의 모든 단편이 좋았지만 <어느 관리의 죽음>은 첫부분에 나와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다. 총 다섯페이지의 짧은 단편인데, 와 , 대단하다. 그러니까 회계관리인 주인공이 오페라를 보다가 갑자기 재채기를 해서 앞자리의 통신부 장관에게 침을 튄다. 으이크 이를 어쩐담 싶어서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이에 장관은 괜찮다고 하는데, 주인공은 연신 사과를 하는거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그러자 장관은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오페라를 듣게 좀 그만하라고 하는거다. 주인공은 너무 당황한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가서 다시 사과를 하고 장관은 아니 아까 다 끝난 얘기를 왜 또 하냐고 빡이 쳐서 대꾸를 하는데, 주인공은 아아, 이것봐 화가 나있어...하고 걱정해서 집에 가 아내에게 이 일을 얘기하는 거다. 아내는 아이쿠 이를 어째, 용서를 구하세요, 하고, 주인공은 직장에 찾아가 또 용서를 구하고... 장관은 아예 무시해버리고...아아 왜 무시하실까, 소심하게 걱정하다가 또 기다렸다 사과를 하고.... 이에 장관은 나를 놀리는거냐며 더 화를 내고.....
아아 읽는 내가 다 쪼그라든 소설인거다.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소심한 사람들이여,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물론 나도 어느 부분에서는 소심하기 짝이없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재미있는 소설집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곧 다시 한 번 읽어볼거다.
벌써 9월 중순이다. 여름에 무풍으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잤었는데 이제 에어컨 없이도 잘 잔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야 시원하지만 가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어제는 뭣때문인지 졸려서 미치겠는데 잠이 오질 않았고, 에잇, 누워있어봤자 뭘하냐, 싶어 다섯시에 일어나 20분간 요가를 했다. 고작 20분이었지만 등 한가득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그리고 출근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 시원한 게 좋았다.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지금 다들 뭔가 좀 쌀쌀하게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요가 덕인지 몸에 여전히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는 길에 까페에 들러 내가 먹을 간식과 커피를 샀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해서 정원에 나갔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새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아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고 그렇게 이십년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늦잠 자는 걸 꿈꾸곤 하는데, 매일매일 '퇴사하면 맨날 늦잠잘거야' 같은거 생각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퇴사한다면,
1. 머리를 빡빡 민다
2. 매일 늦게 일어난다
정도가 목표이다. 지난번에 <비긴 어게인> 보는데 가수 이소라가 너무 편해 보이는거다. 저 머리 딱히 신경쓸 것도 없고, 걍 샤워하면서 훅- 감아치우면 되겠구먼, 생각이 드는 거다. 좋았어!
어쨌든 그렇게 매일 일찍 일어나는 게 싫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침형인간으로 살아오는 게 싫다고 몇 번이나 말해왔지만, 아침엔 아침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더군다나 여름이 지나면 아침이 좀 더 고요해진다. 나는 여름의 이른 아침, 활기, 밝은 빛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이 가을의 아침 고요함도 너무 좋다. 아침 바람, 아침 소리, 아침 빛. 겨울에는 또 겨울만의 아침이 있다. 겨울에는 출근할 때면 아침이 너무 깜깜한 게 싫지만, 그래도 회사에 도착하면 해가 뜨면서 세상이 밝아지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가슴가득 만족감을 준다. 늘 아침형 인간 되기도 싫고, 퇴사하는 즉시 벗어나는 인간이 될거라 말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아침 특유의 성질 때문에 아침을 좋아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쉼없이 이렇게나 아침형 인간으로 살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퇴사할 때쯤이면 나이가 많아서, 내 육체가 나도 모르게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보면 새벽같이 일어나시던데, 나도 퇴사 후에는 나갈 직장이 없어도 새벽부터 눈뜨게 될지도 모르지.
어제는 주문한 책들이 도착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kg 빼고 평생 유지합니다》친구 서재에 올라온 거 보고, 오잉 뭐야, 하고 잽싸게 주문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거 본다고 내가 빼고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아나, 내가 뭔가 달라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톤 체호프'의 책을 읽기 위해 작가소개를 보면 그는 모스끄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의사가 되기까지 생계를 위하여 필명으로 단편을 썼다고 한다. 아니, 본업이 의사고 그걸 하기 위해 부업으로 글을 썼는데 이렇게 잘 쓰다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일전에도 체호프의 단편을 읽었었는데, 뭐 다른게 더 없나, 봤더니 이런 책이 있어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간식으로 사온 보늬밤 몽블랑 데니쉬도 있고, 아메리카노도 있다. 그리고 오늘 또 주문한 책들이 올거다.
매일 시간이 흐르는 걸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고 싶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저 사는동안 즐겁게 사는 것밖에는 없겠구나 싶다. 그래도 나이들어가는 건 좀 초조할때가 있다. 나 괜찮은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초조하고 걱정될 때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순간순간의 날씨나 온도, 습도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산다. 그리고 간식 때문에...
그는 언제나 자신의 경우처럼 남들을 판단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고,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각자 개인의 생활은 비밀 속에서 유지되며,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예민하게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지도 몰랐다. -<개륻 데리고 다니는 부인>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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