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이는 시간들은 곧 실력이 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오랜 시간 '오늘의 요리'를 올리면서 18번째 요리까지 왔다. 감개무량이다. 나는 역시 짱이다. 뭐하나 딱히 성공한게 없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는 정신! 나는 정말이지, 뭘 해도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예전부터 들었다. 물론 언제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 안된걸 보면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건지, 원...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또! 했다.
요즘 엄마랑 백종원이 나오는 프로를 즐겨보는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시리즈를 다 본터라 무척 아쉬웠다. 맛있게 먹으면서 그 음식과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걸 엄마랑 나는 아주 재미있게 보던 터였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시리즈를 다 봐서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보았지만 그 프로만큼 만족감을 주는 프로가 없어서 요즘엔 그냥 나오는대로 아무곳이나 보곤 했는데, 그러다 우연히 백종원이 음식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봤다. 그 누구냐, 남상미가 나오는 프로였다. 백종원 요리 만드는 거 볼까, 하면서 보는데, 아니 글쎄, 칠리새우를 너무 간단하게 하는거다! 그전에 새우튀김도 너무 간단하게 하던터라 보면서 '엄마, 내가 새우튀김 만들어볼게!' 했었는데, 아무래도 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튀긴 후에 그 기름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 금세 포기했다. 그런데 '버터갈릭새우'와 '칠리새우'를 너무 간단히 하는게 아닌가. 평소에 새우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버터갈릭과 칠리라면 양념 맛으로 먹는게 아닌가. 으하하하하. 그렇게 지난 토요일, 두 요리에 도전했다.
일단 버터 갈릭 새우는, 기존에 오일파스타 혹은 감바스 요리에 쓰기 위해 준비해둔 작은 새우가 좀 남아 있어서 그걸로 했다. 본격적인 요리는 칠리새우인지라, 조금 있는 새우로는 갈릭버터새우에 도전한 것.
1.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간마늘을 볶는다.
2. 간마늘이 노릇해지고 좋은 향이 나면 새우를 때려넣고 볶는다.
3. 새우가 익은것 같으면 버터를 크게 한스푼 넣고 볶는다.
4. 액젓을 '조금' 넣고 볶는다.
끝!
여기서 키포인트는 4번이다. 액젓. 백종원 레서피에는 한스푼이라고 되어있지만 다른 블로거들이 쓴 글을 보니 '액젓이 신의 한 수' 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액젓 한 스푼은 너무 많다'는 글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스푼만 넣었는데, 넣자마자 망삘... 으윽, 넣지말걸, 하는 생각을 넣자마자 했다. 마늘향과 버터향으로 온 집안을 향기롭게 하던 것이, 액젓 넣는 순간 꾸리꾸리해지는 거다. 그리고 맛을 보니 너무 짰다. 으윽. 액젓을 넣으라고 했는데 넣지 않는 건 아마도 맛이 없을 것 같고, 다음에 할 때는 액젓을 조금, 아주 조금, 넣었다는 시늉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새우로 완성한 <갈릭 버터 새우>
본격적 요리,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칠리 새우에 도전한다.
1.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간 마늘을 볶는다.
2. 마늘이 노릇해질때쯤 새우를 넣고 볶는다.
3. 새우를 넣고 볶다가 버터를 넣고 볶는다. (여기까지는 위의 갈릭버터새우와 동일하다)
4. 케찹2+고춧가루1+설탕1+식초1+간장1 을 넣고 볶다가 물을 조금 넣어 마저 볶는다.
끝.
그렇게 완성된 <칠리 새우>
맛은 있었지만, 내가 중화요리집에서 먹었든 칠리새우와는 약간 다른 맛이었다. 엄마는 계속 맛있다고 했지만(갈릭버터새우 보다 칠리 새우가 더 좋다고 하셨다), 나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어쨌든 지난번 실패에 이어 이번엔 성공해보고자 시금치베이컨볶음도 했던 터라, 그렇게 한상을 차려냈다.
근사한 술상이었고 맛있게 먹었다.
최근에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상이 좀 바뀌었고, 바뀐채로 고정되고 있다. 금,토요일에는 이렇게 술상을 차려서 <하이에나>를 본다. 특히나 토요일의 <하이에나>는 너무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다. 혼자였던 정금자가 패거리를 만들게 되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게다가 치열하게 싸울 것 같아 너무 좋다.
<하이에나>가 끝나면 <부부의 세계>가 하는데, 이건 토요일자를 보고 엄마랑 '이 프로는 다시는 보지말자' 했다. 다음주부터는 안보고 자야겠다. 보고나면 재미있는 게 아니라 짜증만 나서... 아무튼, 엄마랑 그렇게 둘이 잘 지냈고, 일요일에는 집에 오신 아빠를 위해 칠리새우에 다시 도전했다. 전날 엄마랑만 먹어 미안했기에 아빠에게도 해주겠노라 큰소리 쳤었다.
다시 도전하는 칠리새우에 나는 케찹을 더 많이 넣었다. 달콤새콤이 좀 적었던 느낌이야. 케찹과 설탕을 좀 더 많이 넣고 식초도 좀 더 많이 넣었다. 물도 더 많이 넣었는데 처음엔 으윽 망..인가, 했지만, 볶다 보니 이게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완성된 칠리새우는, 두번째 답게, 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았다. 두번째가 항상 더 나은 법이지 않나. 첫연애의 나쁜점은 두번째 연애가 보강해주고, 첫섹스의 서투름은 두번째 섹스가 합이 맞도록 도와주고, 첫요리의 서투름은 두번째 요리에서 좀 더 나아진다. 아닌가요, 여러분?
그의
경험상, 두 번째 섹스는 항상 더 근사했다. 여전히 새로우면서도 약간은 익숙한, 여전히 낯설면서도 약간은 친숙한 두 번째 섹스.
그래서 첫 번째 섹스보다 언제나 더 만족스러웠다. 첫 번째 섹스때 터너는 정말 대단했다. -책속에서
4시간 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내 가장 오랜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섹스는 두 번째 할 때가 최고다.' 첫 번째 섹스 때는 피차 가식이나 예의를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경향이 ㅇㅆ지만 두 번째 섹스 때는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게 된다. 상대방에게 썩 괜찮은 섹스 파트너로 보이기 위해 본인으로서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기교를 굳이 발휘할 필요더 없어진다. 따라서 정신이 분산되지 않으니 당연히 흥분이 고조되고 만족감이 상승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대방의 몸을 이미 알고 있으니 상대방에게 극도의 쾌감을 안겨줄 수 있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두 번째 섹스에서는 첫 번째와는 차원이 다른 절정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책속에서
아무튼 그렇게 완성한 두번째 <칠리 새우>
매우 맛이 좋았다. 나중에 이모 놀러오면 해줘야지. 후훗. 시간도 얼마 안걸리고 재료도 집에 있는 것들로 충분하다. 새우를 좀 더 큰 거 살까 망설였는데, 엄마는 이정도 사이즈가 한입에 쏘옥 들어가니 좋다고 하셨다. 백종원, 땡큐!
주말동안 책을 한 장도 읽지 않았지만 토요일에는 책장 정리를 했다. 여기에 있는 책을 빼고 저기에 있는 책을 여기로 옮기고, 그렇게 팔 책들을 또 빼내면서, '아아 괜히 시작했다' 하고 이천번쯤 후회했다. 책을 빼고 다시 꽂는 상황이 너무 힘든거다. 흑흑 ㅠㅠ 그러다보니 책을 읽을 의욕 같은게 1도 생기질 않았어. 어쨌든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빼서는 중고샵에 판매를 등록했고, 어젯밤에 그 중 두 권에 대한 주문이 발생했다. 한 권은 천원에 판매하는 책이었다. 아하하. 나 표지 없어서 500원에 파는 책도 있다. 밑줄 그은 책은 천 원에 판다. 아주 저렴하게 모십니다. 게다가 여전히 만족도 100프로 달성... 완벽한 인간인 것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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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집앞에 나가 밤벚꽃을 보았다. 엄마는 낮에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했지만, 낮에는 지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에 나올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거리에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길인데, 그 길은 갈 일이 별로 없어 그렇게나 벚꽃이 지천인지 어제 처음 알았다. 엄마는 신나했고 거리는 조용했고 나는 그렇게 벚꽃 아래 엄마 사진을 뒤에서 찍었다.
꽃은 도대체 뭐길래 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좋을까. 한 밤의 꽃구경이었다.
월요일이 오는게 싫어서 잠을 자지 않고 버텼던 어젯밤이 있고 덕분에 오늘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래서(!) 책을 샀다. 커피도 샀다. 내게로 오고 있다. 월요일은 무릇 이런것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