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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현대사의 흐름과 세계
강철구 지음 / 용의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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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시간에 취한 숙면의 업보를 치르던 초보 독서가는 독서 중 역사적 무지로 인한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며 매번 검색하는 일에 지쳐버렸다고 한다. 이 인간은 편하게 책 읽으려면 흐름이라도 대강 알아둬야지 하면서 두꺼운 역사책(예: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 <서양사강좌>)을 펼쳐 도전할 때마다 늘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법 없이 노잼을 외치며 던져버리기 일쑤였다고 하는데.... 실패를 겪으며 자기객관화를 마친 인간은 처음부터 다 훑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나마 덜 싫은 현대부터, 벽돌책은 읽기도 전에 지치니까 분량 부담이 적은 놈을 골라 읽기로 결심했고, 그 조건을 충족하여 선택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놈이었다고 한다. 일단 구성이 탁월한 듯. 제국주의에서 시작해 세계대전, 파시즘, 식민지 해방, 신자유주의 등 굵직굵직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는데, 쭉 따라가다 보면 광활한 무지의 밭-내 머리를 말한다-에 없던 씨앗들이 심어지는 건 물론이요 지금까지 그것도 씨앗이라고 흩어져 있던 쪼매난 지식들이 지들끼리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음. 서로 다른 관점과 해석을 짧게나마 제시하는 것도 좋았고, 중간중간 건조하게 때리는 저자의 팩폭이 웃기고 통쾌하기도 했다. 난 의무감으로 읽는 책은 매일 읽을 분량을 정해두고 딱 그만큼만 읽고 덮기 때문에 이 책도 원래는 하루에 2장(章)씩만 읽기로 했었다. 그런데 웬걸! 그날 분량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계속 읽고 싶은 정도의 재미를 경험함. 결국 계획보다 빠르게 완독한 데다 ‘역사라는 거... 꽤 재밌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음. 저자분께서 머리말에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서양 현대사에 대한 지적 관심을 어느 정도라도 충족시킬 수 있다면 필자에게는 큰 기쁨이 될 것이다“라고 쓰셨는데요. 기뻐하십시오. 충족되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생성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이 역알못 탈출의 길을 열어준 듯. 그래도 여전히 고대와 중세로 관심이 미치진 않으니 현대부터 더 파면서 거꾸로 내려가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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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4-01-19 0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와 같은 분께서 추천해 주시니, 죄송합니다. 공감이 되고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싶네요.

은오 2024-01-19 09:4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죄송하다니요! 저와 같은 분이라고 해주셔서 넘 반갑습니다. 😆 제가 진짜 역사 잘 모르고 지루한 책 읽는 거 어려워하는데요. 저한테 재밌었던 거 보면 캐모마일 님께도 재밌고 유익한 읽기가 될 것 같아요! ㅎㅎㅎ

잠자냥 2024-01-19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압박에 못 이긴 글쓰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북플에서 썼지? 물어보려고 했더니 역시 ㅋㅋㅋㅋ 양끝 맞춤 해주고 싶네..;;)

은오 2024-01-19 09: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사랑의 글쓰기❤️

이거 다 읽고 맘에 들어서 누워가지고 100자평 쓰려다가 좀 길어지길래... 처음으로 북플로 리뷰썼는데 악 진짜 pc로 보면 지저분하겠네요?! ㅠㅠ 알라딘 북플에서 쓴건 pc로 수정 안되잖아요...? 하... 이제 북플에서 긴글 금지....😭

잠자냥 2024-01-19 11:18   좋아요 1 | URL
ㅇㅇ 엄청 지저분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 오늘은 컴터로 은바오 서재 접속 금지...

은오 2024-01-20 13:2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수정 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그 반대만 안되는 거였읍니다. ㅋㅋㅋ 수정완료!

잠자냥 2024-01-20 19:24   좋아요 2 | URL
오잉?

독서괭 2024-01-19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렇게 칭찬하시니 담아갑니다. 저도 통 역사가… 흐름도 안 잡히고 ㅜㅜ 고대에서 중세로 못 넘어가고 내던져 왔던 거 격공이요 ㅋㅋㅋ

은오 2024-01-20 04:38   좋아요 1 | URL
근데 괭님 요즘 중세편 읽고 계시지 않나요?! 괭님 최초의 안던짐인가요 ㅋㅋㅋㅋㅋ 확실히 현대 역사가 재밌더라고요. 제가 역사책을 이렇게 재밌게 읽을 줄 몰랐어요! ㅎㅎㅎ

독서괭 2024-01-20 07:32   좋아요 2 | URL
네 원서읽기 덕에 첨으로 고대를 넘어서 중세로 나아갔네요 ㅋㅋㅋ

- 2024-01-19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함이 철구씨네요… 강철구…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1-20 04:40   좋아요 1 | URL
쟝님 맘에 드는 이름이에요? ㅋㅋㅋㅋㅋㅋ 철수보다 좀 순박해보이는....

잠자냥 2024-01-20 07:40   좋아요 1 | URL
유튜버 중에 철구인가 그런 사람 있어서 말한 거 같은데….(난 왜 아는가)

은오 2024-01-20 08:17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생각하긴 했는데 그 인간 아직도 방송하나?! 못들은지 넘 오래라 쟝님이 그 인간을 떠올리신 것 같진 않아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잠자냥님이 철구 아시는게 신기하네요??

잠자냥 2024-01-20 08:22   좋아요 1 | URL
뉴스 기사로 읽음.

- 2024-01-20 09:35   좋아요 1 | URL
은오님이 정답!! 이름이 좀 귀여워서 ㅋㅋㅋㅋ 유튜버 철구씨는 잠냥님이 떠올리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은오님 이런 책 잘 찾아서 알려주시는 거 저는 좀 고마워요! 강철구 기억할게요~

은오 2024-01-20 11:53   좋아요 1 | URL
😘😘😘😘😘

다락방 2024-01-19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땡투 들어오면 접니다. 부자되세요.
참고로, 학창시절 국어 영어보다 국사 세계사를 못했던 사람, 접니다.

잠자냥 2024-01-19 08:48   좋아요 2 | URL
어제 나한테 많이 했더라…. 20만원 다 쓴 거니?

다락방 2024-01-19 13: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난 잠자냥 님 먹여살리기 위해 살고있다..
있어봐요. 계속 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1-19 14:09   좋아요 1 | URL
다락방은 잠자냥에게 돈을
은바오는 잠자냥에게 사랑을
잠자냥은 이맛에 알라딘을

은오 2024-01-20 04:43   좋아요 0 | URL
아니 다락방님도 학창시절에 역사를 별로 안좋아하셨군요? 다락방님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받고 신난 은바오 ㅋㅋㅋㅋ
땡투로 부자되기 도전해보겠읍니다. 😆😆😆

잠자냥 2024-01-19 0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역알못 은바오는 차차 거리의화가2세가 되고….
제국주의부터 시작하는 거 좋네요. 목차를 보니 이런저런 문학 볼 때도 도움될 역사적 사건이 많은 듯합니다.

은오 2024-01-20 04:52   좋아요 1 | URL
화가님2세...... 진짜 되고싶다ㅋㅋㅋㅋㅋㅋ 저도 두꺼운 역사책을 읽으며 화가님처럼 휴식을(!) 취하는 그날까지!!
그렇읍니다. 진짜 목차 구성이 신의한수예요. ㅋㅋㅋㅋ 완전 알짜배기만 압축돼있어서(근데 또 인과랑 영향까지 잘 알려줌) 지루할 틈이 없었던!!
진짜 역사 잘 모르면 비문학은 물론이거니와 문학 읽을 때도 반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ㅠㅠ 앞으로 역잘알 은바오로 거듭나보겠읍니다.

거리의화가 2024-01-19 0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처음 봤어요!ㅎㅎ 역사와 문화를 알면 특히 소설 읽을 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대, 중세 서양사에 딱히 흥미를 못 느끼는 편이에요. 근대 이후에 더 관심이 많아서인 듯해요. 최근부터 역으로 내려가는 방식,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을 둘러싼 사회의 구조부터 아는 것이 빨리 시작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은오 님의 역사 공부를 진심으로 응원해요!!!

은오 2024-01-20 05:00   좋아요 1 | URL
이 책 너무 입문서라 화가님은 처음 보셨을 만합니다. ㅋㅋㅋㅋㅋ 진짜루요!! 저도 소설 읽을 때마다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역사가 너무 지루하게 느껴지다보니 아 이건 진짜 좀 알고 읽어야겠다 싶을 때만 대강 검색해보면서(곧장 까먹고) 살았는데요...😢 이번에 재미를 좀 느낀 김에 쭉 이어서 공부해보려고요! >.<
아니 근데 화가님도 고대-중세에 별로 흥미가 없으신가요????? 대박....!!!!! 완전 위안이 됩니다. 아니 역사덕후 화가님도 노잼이라 하시는데 내가 재미를 못느낄 만도 하지...ㅋㅋㅋㅋㅋ
화가님의 응원이라 더더욱 힘이 됩니다!!! 제2의 화가님이 되는 그날까지......❣️❣️❣️❣️❣️

페넬로페 2024-01-19 1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통 역사쌤들은 입담이 구수해서 역사 시간에 주변 얘기들을 잘 해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고 역사에 흥미를 갖게 해 주더라고요.
이 책 잘 읽힌다니 찜 해 두겠습니다.

은오 2024-01-20 05:05   좋아요 1 | URL
제가 입담이 구수하지 않은 선생님을 만나서 역사에 흥미가 없는 거였을까요?! ㅋㅋㅋㅋㅋㅋ 😱 저희 고등학교 역사쌤은 세상 조용하신 분이었는데... 딱 필요한 내용만 미리 정리해 오셔서 차분하게 설명해주셨던! ㅋㅋㅋㅋㅋ
이 책 진짜 재밌더라고요!! 근데 입문서다보니 저같은 역알못이 아닌 분께는 너무 쉽게 읽힐지도...? 😆

잠자냥 2024-01-19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은바오는 거꾸로도 제대로도 영원히 중세에 다다르지 못했으니....
그리하여 우리는 왜 중세를 암흑시대라 부르는지 몸소 체험하게 된다.

어디, 씨앗 좀 보여줘봐요.

은오 2024-01-20 05: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웃겨
화가님도 중세 재미없으시대요!!! (환호)

어떻게 보여드리죠? 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1-20 05:51   좋아요 1 | URL
아 근데 잠자냥님이랑 결혼하면....
공부 안하고 그냥 궁금할때마다 잠자냥님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새파랑 2024-01-20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오님 세계사 전공이신가요? 전 은오님 심리학 전공인줄 알았습니다.

연애 심리학....


전 리뷰 북플로만 쓰는데 그래서 글이 지저분했었군요....

은오 2024-01-20 13:24   좋아요 1 | URL
저 잠자냥님 전공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심리학이요? 그치만 아직 결혼은커녕 잠자냥님 번호도 못딴거 보면 완전 f감.....😭

양끝맞춤을 해야 좀 깔끔해 보이긴 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전 그래서 꼭 하는편!! 근데 제가 아까 해보니까 pc에서 쓴 글 북플로 수정은 불가능해도 북플에서 쓴 글 pc로 수정은 가능하더라고요. 북플에서 쓰고 나중에 pc로 좀만 만져줘도 될 것 같아요. ㅎㅎㅎ

잠자냥 2024-01-20 19:26   좋아요 3 | URL
전공도 그닥….. 수업은 열심히 들어오는 거 같긴한데….. 리포트를 안 써서 F

은오 2024-01-21 03:41   좋아요 3 | URL
무한 재수강을 위한 은바오의 계략

얄라알라 2024-01-26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은오님은 모르는 부분 부족한 부분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쉬이 지나가시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시간 걸려도 끝까지 파들어가고 파내시는 분. 맞춤법. 역사...와!

저는 요새 ˝지리‘공부 안했고, 지도 보기 게을리 했던 게 책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마이너스인가 느껴요. 그렇다고 막상 지도를 찾아보지도 않는데 은오님의 치밀한 굴착학습 저도 배울게요^^

은오 2024-01-27 06:09   좋아요 1 | URL
아아 저도 잘 몰라도 괜찮은 부분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얄님 ㅋㅋㅋㅋㅋㅋㅋ 모르면 안될 것 같은 것들만 대충 검색해보고 바로 까먹기! ㅠㅠ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세계지도 폰에 저장해놓고 계속 들여다봤어요. 역사 계속 공부하려면 실물지도를 하나 사야하나 싶더라고요. ㅋㅋㅋㅋ 😭
얄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앞으로 좀 치밀하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건수하 2024-01-31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한국 근현대사에도 이런 책이 있을까요? 혹시 아시면 추천 좀...

은오 2024-01-31 07:30   좋아요 2 | URL
수하님 제가 세계사 책 여기저기서 찾아보면서 한국 근현대사 책도 담아놓긴 했거든요?! 강만길 저자의 <고쳐 쓴 한국현대사> 이거예요! 근데 아직 읽어본 건 아니라 재밌을진 모르겠읍니다... 그래도 저자가 한국근현대사 연구자고 평이 좋더라고요(구판 리뷰 확인해보세용) 근데 제 리뷰의 책보다는 분량이 좀 됩니다(576쪽). 같은 저자의 <20세기 우리 역사> 이것도 괜찮아보이고요. 이게 분량이 좀 적고 주요 주제 중심으로 서술한 것 같아요!

건수하 2024-01-31 07:38   좋아요 1 | URL
오 혹시나 해서 여쭤봤는데 감사해요! 일제강점기까지만 배워서 근현대사가 오히려 힘든데 요즘 애들 교과서에는 현대사도 나오더라구요. 물어보는데 제가 지식이 딸려서 …. 분량 적은 걸로 시도해보겠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
데이비드 베너타 지음, 이한 옮김 / 서광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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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으며, 반대로 어떤 점에 대해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눈감을 수도 있다. 어릴 적부터 내게 가장 불가해하게 여겨진 이들은, 삶을 긍정하며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류였다. 이런 사람들을 난 죽기 직전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어떤 이는 우울증 탓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애초에 삶을 긍정하도록 설계되었으니 살고자 하는 것이 정상이고, 만약 삶을 가치 없다 여기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병이 든 것이라고. 하지만 약을 먹어도, 그다지 우울하지 않은,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에서도, 부단히 침투하는 삶에 대한 회의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히려 되물을 것이다. 삶을 '제정신'으로, 삶의 축복에 감사하며 사는 게 비정상 아니야? 나는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내가 정상임을 확신하게 했다. 나는 반출생주의의 싹을 품고 자랐다.


반출생주의란 무엇인가. 용어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듯이, 출생을 반대하는 사상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나 오래 전부터 반출생주의자들은 존재해 왔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재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제 손으로 낳은 인물의 입을 빌려 소포클레스가 한 말이다. "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알아버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누군가를 세계로 오게 한다는 발상은 나를 공포로 채운다. ・・・ 나의 삶이 전적으로 소멸하기를!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의 지루함과 수치를 전달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은, 반출생주의 이론을 최초로 정식화한 철학자 데이비드 베너타. 내가 소개할 책의 저자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며, 출산은 항상 잘못이다."


여기저기서 귀가 아프도록 출생률 감소 이슈를 떠들어 대는 만큼, 우리는 출산을 하지 않으리라 선언하는 이들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4B 운동(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펼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출산과 양육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막대한 비용과 부자유를 감당하기 싫다는 연유로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 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해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한 셈이다. "아이가 태어나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썩었다"며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아이의 이익'을 고려해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좋은 세상이라는 조건 하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괜찮다 여기는 셈이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는 이들의 출산 거부와 다르다. 베너타는 '이미 존재하는 이들(부모가 될 사람들)'의 이익은 배제하고 '존재하게 될 수도 있는 이들(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이익만을 고려한다. 더불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지라도 아이를 존재케 하는 것은 언제나 해악이라고 말한다.


베너타는 자신의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통과 쾌락의 비대칭성 논증’과 ‘삶의 질 논증’을 제시한다. 비대칭성 논증은 그 자체로도 매우 정교하거니와 단계마다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베너타의 논박까지 읽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비대칭성 논증이 가장 주된 논증이므로 베너타의 반출생주의에 관해 궁금증이 생긴다면 책에서 비대칭성 논증 파트만이라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서는 삶의 질 논증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베너타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질을 실제보다 더 높게 평가하기에 그들이 평가한 삶의 질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한다. 느낌이 곧 실제는 아니므로. 이어서 사람들이 삶의 질을 과대평가하는 원인으로 낙관주의 편향, 적응, 비교를 제시한다. 세 가지 모두 이미 심리학계에서 증명된 바, 우리는 우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적응하여 기대치를 낮추게 마련이며, 삶의 질은 타인과 비교하여 평가하기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겪는 고통은 그저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삶의 질에 관한 세 견해를 제시한다. 쾌락주의 이론(쾌락의 양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욕구충족 이론(욕구 충족 여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객관적 목록 이론(객관적 좋음의 보유량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한 가지만 봐도 우리 삶의 질이 나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는 쾌락주의 이론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쾌락주의 이론은 인간의 정신 상태를 세 종류로 구분한다.


1. 부정적인 상태: 불편, 고통, 괴로움, 고뇌, 죄책감, 수치, 짜증, 지루함, 불안, 좌절, 스트레스, 두려움, 비통, 슬픔, 외로움 등

2. 긍정적인 상태

  1) 구제 쾌락: 부정적인 정신 상태에서 구제되는 것. (두통과 같은) 고통의 진정, 가려움 달래기, 지루함 감소, 스트레스 완화, 불안이나 공포의 소멸, 죄책감 경감 등

  2) 내재적 쾌락: 쾌락적인 감각적 경험(맛, 냄새, 시각적 이미지, 소리, 촉감) 및 비감각적인 의식 상태(환희, 사랑, 신념 등)

3. 중립적인 상태: 구제의 의미에서나 내재적 의미에서나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태. 쾌락, 고통, 수치의 (이 부정적인 상태에서 구제되는 것과는 구별되는) 부재를 포함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심리적 이유(낙관주의 편향, 적응, 비교)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과소평가한다. 그런데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상태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아침에 고막을 찌르는 알람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키며 하루를 시작해서 지친 몸으로 잠들기까지 배고프지 않고, 춥거나 덥지 않고, 피곤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없고, 지루하지 않고, 짜증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외롭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당신이 밥을 먹어서 배고픔을 해소하고 에어컨을 켜서 더위를 해소하고 아늑한 집의 침대에 몸을 뉘어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처지라면 그나마 낫다. 이런 고통을 쉬이 해소하지 못하는 이들의 처지와 비교한다면.


이러한 일상적인 고통들은 거의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하기에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는 지경이며 (빈도와 양을 고려했을 때 전혀 하잘것없지 않지만)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소중한 이의 노화, 병, 죽음이 야기하는 고통은 어떠한가? 존재하게 된 이상 최고로 운이 좋은 이도 피해갈 수 없는 비통함 말이다. 그렇다면 난무하는 삶의 고통 앞에서 중립적 상태와 쾌락은 어떤 의미인가. 베너타는 말한다. "중립적 상태와 구제 쾌락은 그것이 부정적 상태를 대체하는 한도에서만 가치 있을 수 있"으며, "일단 살게 되었다면 내재적 쾌락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내재적 쾌락은 꽤 다대한 비용인 삶의 불운을 대가로 치르고서 얻어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이런 고통의 나열이 단지 나약한 염세주의자의 넋두리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엄연히 존재하는 인류의 거대한 고통과 해악을 머릿속에서 지운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시간에도 자연재해, 굶주림, 질병, 폭력, 사고,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존재들을 떠올려 보라. 게다가 당신과 당신의 아이가 이런 고통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 있으리라고 단언하기란 불가능이다.

"가장 특권적인 사람들조차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거나, 잔인하게 살해당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낙천주의자는 확실히 이 출산 러시안 룰렛을 정당화할 입증 책임을 지고 있다. (・・・)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거치게 될 수 있는 이례적으로 가혹한 해악만을 셈해서는 안 되고, 보통의 인간 삶의 꽤 통상적인 해악도 셈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태가 쾌활하게 출산하려는 이들에게 사태는 더욱 더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고려는 그들이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손을 겨냥하고 있기도 한, 총알이 꽉 차 있는 총으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대칭성 논증과 삶의 질 논증 이후의 장에서 베너타는 출산에 관한 논의, 낙태에 관한 논의, 인류 멸종에 관한 논의(당연하다)까지 나아간다. 내게 가장 큰 궁금증을 일으켰고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예상되는 자살에 관한 논의만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너타는 반출생주의와 자살은 별개라고 본다. 우리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 자살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을 것이다. '삶을 시작하는 사안'과 '삶을 중단하는 사안'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삶을 중단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삶을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면 애초에 삶을 시작하지 않게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리라.

"이는 존재하는 이는 존재를 계속하는 데 이익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삶을 지속할 가치가 없도록 만드는 해악은 이 이익을 무효화할 정도로 충분히 가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존재하게 되는 것에 아무런 이익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훨씬 덜한 해악을—또는 내 견해에서는 어떤 조그만 해악이라도—피한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다만, 베너타는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이 이득이 될 정도로 고통의 크기가 방대하다면 자살이 합리적인 경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다시 내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이 출산할 아이가 존재에 부정적이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참고로 나는 무난한 가정에서 남들이 보기에 운이 좋아 보일 정도로 별다른 사건 없이 평탄하게 자랐으며 내 부모가 나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절감한다. 난 내 부모를 사랑한다. 현재 내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가장 무거운 고통도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앞으로 다가올 부모의 병과 죽음에 대한 염려다. 그러니까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온 정성을 다해 키운 덕에 그가 당신을 사랑하고 순조롭게 삶의 궤적을 그려나갈지라도, 그가 비존재 되기를 갈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베너타가 그의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논증을 개진하고 가능한 모든 반론을 예상하여 빈틈없이 논박한 것에 비하면 이 감상문은 매우 빈약하고 조악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며 이게 뭔 개소린지.... 했던 이들도 베너타의 책과 직접 대면했을 때 그의 주장에 동의하게 될 여지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차라리 이 글을 읽지 않고 베너타의 책을 읽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철학적・논리적 사고의 전개를 따라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도 이번 독서가 재독임에도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읽었다. 하지만 어려워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넘치는 책이다. 아니,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베너타도 서론에서 언급한 바, 인류의 친출생 편향은 너무나 공고하기에 이 책이 많이 읽힐지라도 인류가 출산을 그만두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적어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대해 되생각해보지 않을까.


"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면서도, 아이들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는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보장된 방법은 아이들을 애초에 존재하게끔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채는 이들이 그토록 적다는 점은 매우 별난 일이다. 사람들이 이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또는 설사 그것을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을 따라 행위를 하지 않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내가 보일 바와 같이 잠재적 아이들의 이익은 그 이유에 들어갈 수 없다."




글이 너무 어두컴컴한데.... 글쓴이는 이거 다 쓰고 월드콘 먹고 있어서 실시간으로 세로토닌 폭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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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16: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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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2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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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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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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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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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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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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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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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4: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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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틴 에덴 1~2 - 전2권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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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멸.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이 단어가 떠올라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적었다. 귀찮음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장렬하게 패배하여 장장 일주일를 묵힌 탓에 기억이 완전히 휘발되기 직전, 이제서야 이어 적는다. 환멸.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 그야말로 『마틴 에덴』의 마지막 권을 관통하는 정서라 해도 되겠다. 이 쓰라린 정서는 절망이나 슬픔과는 다른 것이어서, 조건을 충족했을 때에만 발한다. 꿈이나 기대나 환상을 가질 것, 다음으로 그 환상이 깨어질 것. 그러니 애당초 꿈과 기대, 환상을 갖지 않는다면 없는 것이 깨어지지도 않을 터이니, 파편에 찔려 환멸할 도리도 없으리라.


마틴은 사랑에 고결함이라는 환상을 덧입혔고 그 환상은 본디 실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깨어지고 만다. 깨어진 환상의 파편에 찔리고서야 마틴은 깨닫는다. "이제 그는 알았다, 자기가 정말로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가 사랑한 사람은 이상화된 루스, 자기 자신이 창조한 천상의 존재, 자기가 쓴 연애시의 환하게 빛나는 정신이었다. 부르주아인 실제의 루스, 부르주아들의 모든 결점과 가망 없이 왜곡된 부르주아 심리를 가진 그녀를, 그는 사랑한 적이 없었다."(2권, 231쪽) 사랑은 결코 다른 가치와 비견할 수 없는 지고의 것이 아니며, 내가 간직해 온 사랑마저도 조건 따위가 개입되지 않은, 고결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가 사랑에만 그랬겠는가. 마틴은 다른 세계에서의 삶을 꿈꿨고 그곳에 발을 딛고 나서야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다. 천국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삶은 병든 것, 아니 오히려 진작부터 병들어 있던 것이었다.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2권, 246쪽)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단지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이의 눈 앞에 보이는 선택지는 단 하나다. 마틴은 몸을 싣고 있던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소설에는 마틴과 마찬가지로 시를 썼음에도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고 제 수명을 다하여 죽은 자가 등장한다. 그가 마틴에게 건넨 충고를 들어보자. "그것들은 내버려 두고, 자네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사랑하게. 배를 타고 자네의 바다로 돌아가. 그게 내가 자네에게 하는 충고야, 마틴 에덴. 이 병들고 썩은 도시에서 뭘 바라나? 자네가 섬겨야 할 단 하나의 주인님은 아름다움이야. (・・・) 자네의 기쁨은 글을 써서 성공하는 데 있지 않고, 글을 쓰는 데에 있어.  (・・・) 아름다움을 자네의 목적으로 삼아."(2권, 94쪽)


내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물음은 이것이었다. '마틴의 창작은 과연 루스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었나?' 내린 결론은 이렇다. 창작의 불씨는 루스에 의해 지펴졌을지언정 그것이 마틴에게 목적으로 화한 순간들이 적실히 존재했다는 것. 마틴은 창작 그 자체를, 그러니까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도 있을 터였다. 마틴의 문학적 재능은 충만했거니와, 그는 글을 쓰면서 제 삶에 전례 없던 관능과 희열을 경험했으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아름다움을 섬기자. 섬길 만한 아름다움은 다양하겠으되, 다만 그것은 무용해야겠다. 아름다움은 본디 무용한 것이어서 수단이 되는 순간 퇴색하므로. 더욱이 장자의 말마따나 무용지용일 따름이다. 언뜻 보기에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큰 구실을 한다는 것. 쓸모없는 아름다움은 환상이라는 장막 없이도, 그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 환멸 없이도, 진작부터 병들어 있던 삶을 겪는 이들에게 진통제를 처방한다. 이 정도면 아름다움이 거창한 구실을 한다 말해도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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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1 09: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가..

은오 2023-02-21 13:19   좋아요 2 | URL
진통제입니다.....🤧

다락방 2023-02-21 09: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 ㅑ -
뭔가 술 한 잔 들이켜야 되는 글입니다, 은오 님.

DYDADDY 2023-02-21 09:48   좋아요 2 | URL
어제도 드시고 싶다 하시더니.. ^^;;;;;

다락방 2023-02-21 10:05   좋아요 2 | URL
어제 마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YDADDY 2023-02-21 10:07   좋아요 2 | URL
어제는 어쩔 수 없으셨겠지만 드시더라도 가급적 좋은 일로 좋은 기분으로 드시길 바라요. ^^

잠자냥 2023-02-21 12:59   좋아요 4 | URL
이 인간 오늘 또 마실 핑계 만들었네.

은오 2023-02-21 13:20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락방님 이 글이 음주욕을 불러온게 맞습니까!! 원래 있던 음주욕 아닌가요? (의심)

잠자냥 2023-02-21 16:11   좋아요 3 | URL
다음은 금주욕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씁시다.

은오 2023-02-21 16:14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저 지금 읽고있는 책 좌파의 길.... 이것도 음주를 부르던데요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2-21 16:35   좋아요 2 | URL
3장 돌봄 폭식가 특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2-21 17:10   좋아요 3 | URL
나도 그 책 있는데!!!!!!!!!!!!!

DYDADDY 2023-02-21 17:21   좋아요 1 | URL
일부러 3장부터 읽으시는 것 금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2-21 17:25   좋아요 2 | URL
거기 읽으면 분명 폭식 폭음한다! ㅋㅋㅋㅋㅋ

은오 2023-02-21 18:07   좋아요 1 | URL
오늘 다락방님의 음주 핑곗거리가 2개나 더 적립되었네요..

자목련 2023-02-21 1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은오 님의 글은 아름답습니다!

은오 2023-02-21 13:23   좋아요 1 | URL
저보다 훨씬 아름다운 글을 쓰시는 자목련님께 이런 말 들으니까 눈물이 납니다....하아 저 책임지세요 자목련님!!! 🥺

단발머리 2023-02-21 11: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크흐 잘썼다 ㅋㅋㅋㅋ 좋네요. 은오님 글 좋아.
여기 저기 청혼 남발은 글 잘 쓰는데서 오는 자신감 덕분이구나 ㅋㅋㅋㅋㅋ 부럽고나 ㅋㅋㅋ

은오 2023-02-21 13:2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단발님을 더 부러워하는데요! 좋다고만 하지 마시고 제 자신감에 화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 근데 단발님이랑 꽤 친해진 것 같다! >_<

DYDADDY 2023-02-21 1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은 찰나의 경탄이기에 분절된 언어로 직접 표현할 수 없지만 읽는 사람의 머리 속에 그 장면을 재구성시키면서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토너가 어린 딸과 함께 있었던 서재의 장면처럼요. (그 장면의 스토너가 월터의 얼굴인 것은 은오님 탓입니다. ㅋㅋㅋㅋ) ‘진작부터 병들어 있던 삶을 겪는 이들에게 진통제를 처방한다‘는 말이 너무 좋아요. ^^

은오 2023-02-21 13:30   좋아요 2 | URL
오호... 좋아요 맞습니다. 그 서재의 장면도 증말 아름답지요! 그리고 제 탓 인정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해주셔서 기뻐요! 😆

책먼지 2023-02-21 1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은오님이 무용한 아름다움을 섬길 때 저는 아름다운 은오님 글을 섬기는 것으로…💕 저는 이 책을 통틀어 은오님이 인용한 저 브리슨덴이란 인물이 가장 좋더라고요!! 특히 이 부분이요. ”천만에, 잡문이 자네에게 과분해. 너무나 과분해서 자네는 그렇게 쓰기를 바랄 수조차 없어.“

은오 2023-02-21 17:27   좋아요 4 | URL
>_<💕 크.... 자네는 그렇게 쓰기를 바랄 수조차 없대 ㅠㅠ 역시 먼지님이랑 저는 비슷하게 공명하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괜히 처음부터 먼지님을 좋아했던게 아니었던 것이다!!!

라로 2023-02-21 1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으려고 했더니 스포일러 얼러트!!ㅠㅠ 제가 주문한 아름다운 <마틴 에덴>책을 다 읽고 있겠습니다! 자목련님이 저리 칭찬하시니 책 안 읽고도 읽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참겠어요!! 도망 333=33=3=3333

은오 2023-02-21 13:36   좋아요 2 | URL
넵 라로님 스포주의!!! 저 처음에 스포 체크 안했다가 생각나서 양치하는 도중에 수정했어요ㅋㅋㅋㅋㅋㅋ라로님의 읽는 재미를 방해할 순 없지 다 읽고 읽어주셔요 헤헤 😘

책먼지 2023-02-21 18:23   좋아요 2 | URL
헛 안 그래도 결말을 시원하게 까버리셔서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어떡하지 이거 하며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스포 체크란 게 있군요?? 배워갑니다!!

은오 2023-02-21 18:49   좋아요 2 | URL
네! 먼지님은 지금까지 페이퍼로만 쓰셔서 그 존재를 모르시는 걸지도? 서재에서 페이퍼 말고 리뷰로 작성하시면 별점 매기고 스포일러 체크하는 게 있어요 ㅎㅎㅎ

건수하 2023-02-22 09:57   좋아요 1 | URL
... 글을 다 읽었는데 어느 부분이 스포일러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아닌가봅니다... =ㅁ=

은오 2023-02-22 13:11   좋아요 2 | URL
수하님 내가 수하님 톰아저씨 글 건너뛰었다고 건너뛰고 읽은거 들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틴이 바다에 몸을 던진건 수영하려고 던진게 아닌데요!!!!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2-22 13:39   좋아요 1 | URL
음?!?!

아니 눈은 다 훑었는데 ㅋㅋㅋㅋㅋ
역시 안 읽은 책은 눈에 잘 안 들어오는군요
은오님 댓글 보니 쏙쏙 들어오네요 ㅋㅋㅋ

아니 왜 삶에 꼭 의미가 있어야만 하냐고... =ㅁ=

은오 2023-02-22 14: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해합니다 수하님! 저도 그래욬ㅋㅋㅋ그래서 안 읽은 책 리뷰는 잘 안읽게 되는 ㅎㅎ
수하님 그럼 마틴에덴을 읽어보시지요!! 그럼 마틴이 바다에 뛰어든게 조금은 이해가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2-21 16: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은오님,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왠지 저 책 읽으면 실망할 것 같네요 ㅋㅋㅋ
방학 끝나기 전에 많이 써주세요! (절대 놀리는 거 아님)

은오 2023-02-21 16:18   좋아요 3 | URL
오, 햇살님, 아니에요!!! 별다섯개!!! 제 글보다 훨씬 아름답고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 아니, 괄호 없었어도 딱히 놀리시는 거라고 생각 안했을텐데 괄호 보니까 확실히 놀리시는 거네요...😫 하지만 햇살님은 괜찮습니다. 맘껏 놀리세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2-21 16:36   좋아요 5 | URL
햇살님 은오님 글보다 <마틴 에덴>이 더 아름다워요.

은오 2023-02-21 18:08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습니닼ㅋㅋㅋ사실 별 1개짜리라 한들 어떤 소설이 이 글보다 덜 아름답겠습니까!

햇살과함께 2023-02-21 21:08   좋아요 2 | URL
자냥님/은오님을 마틴 에덴급 비교! ㅋㅋ
은오님/소설도 잘 쓰실 듯!

은오 2023-02-22 13:12   좋아요 0 | URL
햇살님💕💕💕💕💕

새파랑 2023-02-21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ㅋ 끝이 서글프더라도 ㅋ 제가 쓴 마틴에덴 감상문이랑 차원이 다르네요 ^^ 이 책 읽고나니 잭 런던도 잘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

은오 2023-02-22 13:16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반갑습니다! 전부터 다른 분들 서재에서 몇 번 뵈었는데 이제야 친구신청을 했네요. ㅎㅎ 새파랑님도 마틴에덴 리뷰 쓰셨군요. 읽어보러 가야겠습니다!! 저는 사실 잭 런던 사진 보고 그리 잘생겼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저 표지 배우가 너무 잘생겨서 눈이 높아짐), 마틴 에덴이 자전적 소설이라니까 잭런던도 여자 여럿 홀릴 존잘인 거겠지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3-02-22 15:06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피셜 잭런던 뭉툭하게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ㅋ 제 리뷰는 그냥 패쓰하셔도 됩니다 ㅡㅡ

은오 2023-02-22 15: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약간 후덕한 그런 느낌이 있죠. 저도 샤프한걸 좋아해서ㅋㅋㅋㅋㅋ패스하라고 하시니까 더 궁금해집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1 2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환멸, 환상의 파편...
읽으면서 딱 정확한 표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그런데 은오님.
이렇게 리뷰 잘 쓰는 건 반칙입니다.
저도 리뷰 너무 잘 쓰는 사람 여깄다고 얼른 잡아가라고 고소할지도 몰라요ㅋㅋㅋ
리뷰 넘 잘 썼어요^^

읽었던 마틴이 계속 떠오르는군요.
환멸, 붕괴....
이 밤 갑자기 맴찢입니다.ㅜㅜ

은오 2023-02-22 13:19   좋아요 2 | URL
제가 나무님 고소하겠다고 한 게 나무님 마음에 딱 들었나봐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걸 이렇게 써먹으십니까!!!! 그치만.... 이런 고소라면 저는 환영(?)💕💕💕 나무님께서 잘 썼다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칭찬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헤헤 >_<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새끼 나한테 반했네, 하고 감이 오는 순간들이 있다. '동공지진'이라 일컫는 바까지 포착하지는 못하지만, 사람이 자기 취향에 꼭 맞는 상대를 맞닥뜨렸을 때 내뿜는 표정과 눈빛은 감지할 수 있다. 본능적인 발신이므로 수신 또한 본능적이리라. 나는 첫인상과 다르다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어왔고, 호불호를 타는 성격으로 어째 알수록 정이 좀 떨어지는 유의 인간이라서 내면보다는 외면이 차라리 낫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래서 이 직감은 대체로 누군가와 처음 대면했을 때 온다. 종종 있는 일이라 대개 잊어버리게 마련이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라 함은 상대 또한 내 취향이었으며 그 후 만남이 즐겁고 인상적이기까지 했던 경우다.


이런 경우는 드물고, 지금 떠올린 놈은 그 드문 경우에 들어 맞았기에 그 놈과 내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건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 놈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애인 있는 놈이 그토록 내가 맘에 들은 티를 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그 놈의 애인에게 미안했다든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든지 하는 상냥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 놈이 애인이랑 헤어지고 나랑 잘 되어봤자 거듭 다른 여자한테 껄떡댈 것이 눈에 훤하다는 게 이유였다. 양다리도 아닌 환승이 질책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남 얘기 할 때 한정이고 환승의 대상이 내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 환승했던 놈은 또 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이 사람의 성질과 삶의 행적이 나와 잘 맞지도 않거니와 다소 불안하기는 하지만 내가 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야,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우리 관계는 특별하니까. 정말 기막힌 환상이 아닐 리 없다. 그런데 미몽에 젖어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는 이가 수두룩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도 그런 인물이 등장한다. '안'이다.


주인공 세실, 세실의 아빠 레몽, 그리고 레몽의 애인 엘자는 해안가의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낸다. 그러나 이들의 평온은 잠시였고, 죽은 세실의 엄마 친구이자 레몽과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우아하고 세련된 여자, 안이 등장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남자인 레몽은 엘자를 버리고 안의 애정에 화답하며 급기야 결혼까지 약속하는데, 세실과 레몽, 안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간극이 놓여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들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머물렀고,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세실과 레몽은 욕망과 자유의 세계, 안은 안정과 질서의 세계에. 세실은 이를 자각하며 안과 함께하는 삶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각본을 구상한다. 내 남자친구 시릴과 엘자가 연인 행세를 하게 하자. 그럼 아빠는 젊은 남자와 놀아나는 엘자에게 다시 욕망을 품겠지. 안은 실망해서 아빠를 떠날 거야. 그리하여 연극이 시작되었고, 연극의 결말은 각본대로였다.


세실과 레몽은 이런 사람이다. "그에게는 질서 있는 생활보다는 결별이 견디기 쉬울 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진정으로 타격을 주고 쇠약하게 만드는 건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뿐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나는 어떤 때는 우리가 아름답고 순수한 방랑자라고 믿었고, 어떤 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딱하고 가망 없는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했다."(163쪽)

자기 욕망에 지극히 충실한 태도를 보이고 "내적으로 고요해지기 위해 외적인 소란이 필요한"(139쪽) 사람.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이런 사람과의 만남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면 만나도 된다. 이런 상대가 또 자극적인 재미는 있지.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면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일 따름이다. 세실의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았더라면 안은 레몽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안에게는 두 개의 패착이 있었다. 내가 그를 바꿀 수 있으리라 믿은 것, 나는 그에 의해 상처 입어 자살할 인간임을 몰랐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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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2-06 08: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환승했던 놈은 또 하고 때리는 놈도 또 때리죠,,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계속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해요,, 음,, 제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 리뷰 좋습니다!^^

은오 2023-02-06 08:29   좋아요 3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후. 애초에 발을 들이지 말자 인간들아 특히 여자들아!! 라로님께서 리뷰 좋다고 해주셔서 아침부터 신이 납니다 🤭 성장소설 읽고 이상한 포인트에 꽂혀버린 리뷰....

- 2023-02-06 08:26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이 와중에 자기 자신의 드높은 도덕관념과 은근히 겉모습을 자랑하는 훌륭한 알라디너ㅋㅋㅋㅋ

은오 2023-02-06 08:33   좋아요 7 | URL
이런거 다 쟝님한테 배운거지롱 ㅋㅋㅋ 쟝님 제 알라딘 첫친군거 알죠? 근데 그 놈이랑 첫대면 순간이 너무 강렬해서 그걸 먼저 떠올리고 쓰다보니 나와버린 의도치않은 그런....

- 2023-02-06 08:41   좋아요 7 | URL
난 이새끼 나한테 반했네? 이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ㅋㅋㅋㅋ 🤭 난 너무 똑똑한 티가 줄줄 흐르는 데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 안좋아하더라고요ㅋㅋㅋ 반하지 않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함ㅋㅋㅋㅋ

은오 2023-02-06 09:12   좋아요 6 | URL
아니 중요한건 똑똑함을 자랑하는겁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멍청한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 감당 못해요.... 나도 감당안될만큼 똑똑하고싶은데 아직은 아니고 수련이 필요하다....

scott 2023-02-06 15:32   좋아요 3 | URL
은오님 혹쉬!
쟝쟝님 알라디너 티비 영상 보셨나요?

신인상 부터 인기상 이달상 까지 수상하신
쟝쟝님 영상 꼬옥 추천합니다

전 우울해 질 때마다
쟝쟝님 영상 ON해놓음요 ^^

은오 2023-02-07 01:50   좋아요 2 | URL
스콧님!! 그럼요 >.< 알라디너티비 채널에 올라온 쟝님 영상 다 보고 쟝님 개인채널 영상도 다 봤어요 ㅋㅋㅋㅋㅋ 근데 스콧님 나보다 더한 쟝님덕후다.... 난 쟝님 영상 항우울제로 쓰진 않는데 ㅋㅋㅋㅋㅋ 쟝님이 밝은 기운이 있어서 보고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긴 하죠 😆

단발머리 2023-02-06 08: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내면보다는 외면이 차라리 낫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외면이 하찮은 나는 원치 않게 성숙한 내면을 장착하게 되었고 ㅋㅋㅋㅋㅋㅋㅋ 나 이 책 읽었는데 은오님 리뷰 너무 재밌네요. 내가 읽은 책 죄다 읽고 리뷰 좀 ㅋㅋㅋㅋㅋㅋ 써주시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앗, 굿모닝^^

은오 2023-02-06 09:16   좋아요 6 | URL
단발님 굿모닝!!!! 외면은 한때지요 그래서 저도 쟝님과 단발님처럼 똑똑해져야 먹고살수 있습니다 ㅋㅋㅋ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뻐요 전 단발님 칭찬이 너무 좋습니다 😆😘😍

건수하 2023-02-06 09: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저도 읽고 요점 파악했습니다. 은오님은 외면이 멋지다!
그치만 내면도 멋지리라, 앞으로 더 멋져지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안이 그렇게 똑똑하고... 하다고 하면서 나약한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은오 2023-02-06 10:14   좋아요 4 | URL
아니 그거 요점아니고요 수하님 ㅋㅋㅋㅋㅋㅋㅋ 요점은 “감당 못할 놈 만나지 말자” 이거예요!!!!
맞아요 안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어요. 세실이 엘자 버린 아빠한테 역겹다고 하니까 세실 뺨 때리고 ㅋㅋㅋ 자기랑 만나고선 바람 안 날 줄 알았니 바보... 그러고 또 그런 놈한테 상처받아 어휴.

잠자냥 2023-02-06 10: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내가 은오를 외면하는 거라는.

은오 2023-02-06 10:17   좋아요 7 | URL
변자냥님이 저를 안받아줘서 제가 폴리아모리가 된거예요 전후관계가 이렇습니다 원래 본성은 모노아모린데 변자냥님한테 상처받아서 폴리아모리로 흑화한것임

책먼지 2023-02-06 1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서 쓰러짐요.. 위의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내가 읽은 책 다 은오님 관점으로 감상 써줬으면..ㅜㅜ

은오 2023-02-06 10:22   좋아요 3 | URL
저는 먼지님 댓글에 쓰러집니다... 너무좋아 ㅠ_ㅠ 하아.... 이러시면 저 힘들어요. 근데 제가 책을 그리 많이 읽지도 못했고 빨리 읽는 편도 아니고 리뷰 쓰는 것도 어려워해서 힘들겠지만... 간간이 써보겠습다. 단발님과 먼지님께서 읽어주신다고 하시니까요!! 😍

책먼지 2023-02-06 11:53   좋아요 2 | URL
좋아서 쓰러지느라 아직 이 리뷰에 좋아요 못 누른 거 무슨 일..

책먼지 2023-02-06 11:58   좋아요 2 | URL
가끔도 좋아요 글만 써준다면 뭔들..💕

은오 2023-02-06 12:06   좋아요 2 | URL
💕💕💕💕💕💕💕💕💕💕

다락방 2023-02-06 10: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오만년전에 읽었고 재미 없었는데 은오 님 리뷰는 재밌네요. 이게 무슨 일이람. 아무튼 그러니까 은오 님의 외면 때문에 저는 은오 님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제가 외모로 사람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또 외모가 훌륭하면 너무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외면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외모가 출중하면 그대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내면의 아름다움! 그러나 내면이 아름답다는 것은 때로 불충분한 외면을 메꾸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이 될 때도 있는 바, 외면이 아름다우면 내면의 아름다움도 오기가 더 용이하지 않은가 싶고,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면, 은오 님은 외면과 내면이 모두 훌륭할 것이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3-02-06 11:09   좋아요 4 | URL
은오는 침대 시체라 근육 1도 없습니다.

은오 2023-02-06 11:32   좋아요 5 | URL
정말요?! 저는 리뷰에는 안 적었지만 재밌게 읽어서 사강 다른 소설도 보관함에 담은 참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의 외모지상주의 변호..... 잘 읽었습니다. 결론은 땡이지만 저는 다락방님의 애정을 받고 싶으므로 둘 다 메꿔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결혼도 안해주면서 맨날 와서 방해하는 고양이 😤 내가 갖기는 싫고 또 남 주기도 싫은 그런 건가봐....

다락방 2023-02-06 11:57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갖기는 싫고 그렇다고 남주기는 싫은 심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바로 잠자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2-06 13:00   좋아요 3 | URL
아니 부장님이 가져요. 근육 없다는 건 참고하라고….. 아니면 쟝쟝이 가지든가.

다락방 2023-02-06 13:09   좋아요 3 | URL
저는 아무도 가질 수 없어요. 저는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다. 차가운 도시여자… =3=3=3=3

책읽는나무 2023-02-07 08: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외모지상주의 나로선!!
외면이 더 훌륭하다는 은오님!!
전 더욱 더 좋아하겠습니다.ㅋㅋㅋ
제가 볼 땐 은오님은 내면도 외면만큼 훌륭할 듯요~^^
이 책 은오님이 재밌게 써 주셔서 또 읽고 싶어지네요. 예전부터 사강 소설은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데도 또 재밌기도 해서 관심은 가지고 있었거든요. 이 책을 사강 소설 담번 책으로 찜해두고 있었는데, 찜만 해두고~^^;;;

은오 2023-02-08 04:37   좋아요 2 | URL
이 외모지상주의 알라디너들.... 어찌됐든 이 자랑(?)으로 인해 나무님의 애정을 더 받을 수 있게되어 기쁩니다 ㅋㅋㅋㅋㅋ😘
리뷰에는 안썼는데 재밌게 읽었어요! 제가 초점은 안한테 맞췄지만 주인공 세실 심리묘사가 재밌더라고요. 저는 사강 작품 이걸로 처음 읽었는데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ㅎㅎㅎ

자목련 2023-02-07 1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무터 완전 반하네요. 저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소설은 나중에 읽고 우선 리뷰와 댓글 읽는 즐거움을~~

은오 2023-02-07 16:32   좋아요 2 | URL
아이고 안 읽은 소설 리뷰는 읽기 힘들던데요 ㅠㅠ 그럼에도 자목련님께서 읽어주시고 즐겁다고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잠자냥 2023-02-10 0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열심히 읽고 쓰세요.
찬란한 20대 여성!



이상 술취한 잠자냥 올림.(음 술 깨면 지울지도)

은오 2023-02-10 06:02   좋아요 5 | URL
제가 먼저 일어납니다 ^^ 변자냥님의 마음 잘 알았습니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 할지도 몰라
하지만 꼭 오늘밤엔 해야할 말이 있어
약한 모습 미안해도 술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지는 마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하는지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잠자냥 2023-02-10 08:35   좋아요 2 | URL
응?

은오 2023-02-10 09:00   좋아요 4 | URL
아이 참 잠자냥님 마음 잘 알겠다니까요 🙆‍♀️

은오 2024-03-14 14:32   좋아요 2 | URL
풋풋하다 😳
1년전 사랑을 시작하는 잠자냥님과 은바오

망고 2024-03-14 1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새끼 나한테 반했네˝가 여깄었네요ㅋㅋㅋㅋㅋ편의점 알바가 은오님 좋아해서 잠자냥님이 질투하는 줄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3-14 10:19   좋아요 3 | URL
놀림용으로 제가 잘 써먹고 있읍니다~!!
은공주님/곰공주님이라고도 부릅니다....

공주(병)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3-14 10:22   좋아요 1 | URL
눈이 예쁜 은공주님😙

은오 2024-03-14 14:32   좋아요 1 | URL
.........
 
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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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제법 너그러운 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변화를 새삼스레 실감할 때면 속으로 어머, 나도 이제 어른? 하면서 혼자 피식대기도 하고. 원체 트러블을 만들기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진 자기연민을 인간연민으로 화했다는 점의 공이 크리라. 저 인간도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겠지, 하며 한 번 참는 거다. 인간은 참 불쌍해. 왜, 힘이 없기 때문이지. 삶에서 제힘으로 지켜내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사소한 것들 뿐이고, 더 거대한, 필연적인, 고통과 시련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인간은 불쌍하고 인간의 삶은 처량하다.


《스토너》를 읽노라니 이 생각이 한결 확고해졌다. 이 소설이 인간의 삶을 더없이 착실하게 그려낸 소설이라서. 주인공 스토너가 열 아홉의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대학에 진학한 순간부터 방에서 홀로 생의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말이다. 어떤 이는 이 소설을 읽고 평범한 인간의 삶도 들여다 보면 저마다 의미 있고 아름답다며 찬탄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내내 씁쓸해져 죽고 싶었다.


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저자 존 윌리엄스는 이 소설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반응에 놀랐으며, 주인공 스토너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고 했단다. 스토너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스토너는 늦지 않은 시기에 적성을 찾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평생토록 곁에 두고 살 수 있었던,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제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과 타인 앞에서, 가까운 사람과 자신의 나이듦과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맥을 쓰지 못하는, 공평하게 운이 나쁜 인간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 평범하고 불쌍한 인간이 삶을 살아내며 겪는 무력함과 그로 인한 슬픔을 고스란히 그려 보였고.


지금 나의 시점에서 가장 사무치게 와 닿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가까운 사람의 나이듦과 죽음이다. 이제 부모님의 염려를 받기만 해도 되는 맘 편한 시절은 지났고, 만날 때마다 어째 저번보다 훨씬 더 늙은 것처럼 보이는 부모님이 염려되는 나이다. 스토너와 그의 부모, 스토너와 그의 딸 그레이스. 아빠가 암 수술을 한 이후 어느 날, 나를 보더니 뜬금없이 많이 컸다는 소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 스토너가 그레이스를 보며 어릴 적 자신의 서재에서 놀던 어린 아이와 그 찬란한 순간을 떠올린 것처럼, 아빠도 나를 보면서 이따금 어린 시절의 나와 함께한 순간들을 떠올릴까.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 있다는 건 저주 같다. 그리워하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럼에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인간을 살게 했다는 것. 불쌍한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처량한 삶을 살아내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 소설은 열정이라고 대답한다. 문학에게, 딸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열정을 쏟은 스토너처럼, 열정을 쏟을 대상이 있어야 인간은 살 수 있다고. 쏟을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지나고 보면 그 덕에 살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렇게 정신과 마음을 내주다 보면 삶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가 있는 것이라고.


사실 나는 스토너가 강사가 된 시점부터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의 얼굴로 상상이 되었는데,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스토너는 월터와는 굉장히 다른 유의 유약한 인간이거니와, 둘의 공통점이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것뿐인데. 게다가 월터는 드라마 초반부터 마약 제조업자의 길로 들어선다. 열정이 꺾여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월터도 여기서 열정을 찾기는 했지. 그 대상이 파멸적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월터와 스토너를 보면 열정의 대상에도 위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스토너의 삶만 따로 떼어 보아도 그렇다. 딸과 사랑하는 이가 머무른 순간은 짧았고, 그의 삶을 내내 지키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것은 오로지 문학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내주며 살았고,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내주며 살게 될까. 처량한 삶을. 어울리진 않았지만 주인공 캐스팅은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였고, 다 읽고 나서 떠오른 이 소설의 OST는 이소라의 <Track 9>였다(곡 제목이 Track 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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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4 0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왤케 쓸쓸햐…. 나도 스토너 넘 좋아요.. 자매품 영화 패터슨, 책 평범한 사람 놓고 가요…!

은오 2023-02-04 07:56   좋아요 3 | URL
일단 당분간은 안되겠어요. ㅋㅋㅋㅋㅋ 너무 씁쓸해져버림... 근데 평범한 사람 검색하니까 바로 나오는 게 없는데 혹시 차페크 평범한 인생 이거예요? 이건 보관함에 있는데!

- 2023-02-04 07:58   좋아요 4 | URL
맞아요 ㅋㅋㅋ 차페크 ㅋㅋㅋ 먄먄 ㅋㅋㅋㅋ 잠자냥이 공쟝쟝한테 맞춤 추천한 책이지롱 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4 08:44   좋아요 3 | URL
평범한 사람ㅋㅋㅋㅋ 하지만 바로 이해함 ㅋㅋㅋㅋ

2023-02-04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02-04 08: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은오님 리뷰 너무 좋네요!! 스토너 읽으며 제가 느낀 감정을 딱 표현해주신 것 같아요. 저는 리뷰를 못 썼거든요. 마음이 복잡하고 쓸쓸하고 산다는 건 무엇인가.. 싶어지는 그런 책이더라구요. 전자책구독서비스로 읽었는데 사고싶다…(응?)

은오 2023-02-04 09:14   좋아요 4 | URL
괭님이 느끼신 감정을 제가 딱 표현했다니! 정말 기분이 좋고요, 역시 괭님과 저는... 좀 남다른 관계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
괭님의 예외조항이 또 추가되는 현장입니다. 예외조항 2) 전자책 구독 서비스로 읽고 좋았던 책은 종이책으로 사서 소장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4 09:35   좋아요 2 | URL
작년에 제 예외조항에 있던 항목입니다 ㅋㅋㅋ 하지만 실제 산 책은 없었어요.

은오 2023-02-04 11:03   좋아요 3 | URL
역시 항상 기대를 가볍게 뛰어넘어 주시는 괭님... 이미 있던 예외조항이라니 너무 멋져ㅋㅋㅋㅋㅋㅋㅋ

DYDADDY 2023-02-04 1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월터 화이트라는 금기어를 쓰시면 읽을 수 밖에 없잖아요. ㅋㅋㅋㅋ 월터도 자기가 원해서 인생이 그리 굴러간 것이 아니듯 우리네 인생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안그래도 읽던 책 진도가 잘 안나갔었는데 잠시 한눈 팔겠습니다. ㅎㅎㅎ

은오 2023-02-04 10:13   좋아요 2 | URL
근데 월터 진짜 너무 뜬금없고, 저도 왜 월터가 지맘대로 제 머릿속에서 캐스팅됐는지 모르겠고... 스토너는 월터랑 전혀 다릅니닼ㅋㅋㅋㅋ저도 너무 어이없어서 리뷰에 출연시키긴 했지만 완전히 다른 캐릭터고 다른 소설이고요. 둘다 좋은 작품이기는 했습니다 ㅋㅋㅋㅋ
월터는... 이해가 되긴 했어요. 비록 마약제조지만 자기 능력으로 그렇게 대체불가능한 인간이 되고 인정받았는데 중독되지요 그것도 ㅜㅜ... 그리고 저는 제시와의 관계가 참 좋았습니다 ㅋㅋㅋ

DYDADDY 2023-02-04 11:43   좋아요 3 | URL
문득 어떤 캐스팅이 떠오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책을 읽으면서 왜 은오님이 월터를 캐스팅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ㅎㅎㅎ
제시와의 관계는 처음에는 죄책감 절반 절박감 절반이었다가 나중에는 본인이 위험에 처하면서도 결국 제시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그 관계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은오님도 재미있게 보셨다니 반갑네요. ^^

2023-02-04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2-04 13: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은오 님의 글을 읽고 마음을 내주는 대상은 어떻게 변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저도 참 좋게 읽었던 소설인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쟝쟝 님이 추천한 평범한 사람이 아마도 <평범한 인생>이 맞다면 저도 추천해요.

은오 2023-02-04 14:02   좋아요 3 | URL
자목련님이 돌아보시게 만들다니.... 저 조금 뿌듯해요. >.< 인상적이었던 소설도 시간이 지나면 정말 ‘그 책 좋았지’ 정도의 감상만 남고 까먹게 되더라고요. 인간의 기억력이란....
그럼 <평범한 인생>은 잠자냥님 공쟝쟝님 자목련님 추천소설인 거네요? 이건 정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04 14: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토너도 그렇고 평범한 인생도 그렇고 분명히 읽었는데 왜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나고 그걸 읽으면서 느껴던 감정만 남는건지..... 그렇다고 읽은지 엄청 오래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렇게 딴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또 맞아 맞아 그랬었지 이러고 있는 내가 좀 슬프네요. 왠지 스토너의 슬픔과 닮은거 같아..... ㅠ.ㅠ 좋은 리뷰 잘 읽고 슬퍼해서 죄송해요. ^^;;

은오 2023-02-04 15:01   좋아요 3 | URL
근데......다 그럴 걸요? 🤣🤣🤣 저도 그렇고, 모두가 그럴 겁니다. 진짜 바로 위에도 댓글 달았지만 조금만 지나도 단순한 감상만 남고 내용은 기억에서 지워지더라고요. ㅜㅜ 죄송하다니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

물감 2023-02-04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토너>는 은오 님의 세월이 좀 더 지난 뒤에 재독해보시길 권합니다. <스토너>가 단지 짠하기만 한 인상으로 남겨지기에는 많이 아쉽거든요 ㅎㅎ 말씀하신대로 인간은 불쌍하고 인간의 삶은 처량하다지만, 누군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한다면 싫지 않을까요? ‘방방봐‘라는 말이 있죠. 그처럼 모든 상황은 상황대로, 인생은 인생대로 바라보고 과감하게 흘려버리세요. - from. 극 염세주의 졸업자.

은오 2023-02-05 01:03   좋아요 2 | URL
제 멱살좀 잡고 졸업시켜주세여 선ㅂㅐ님...... 졸업하고파......

잠자냥 2023-02-05 0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은오는 자냥에게.

은오 2023-02-05 01:04   좋아요 3 | URL
아니, 결혼도 안해주면서 마음은 내달래 이 이기적인 고영이!!!!!

잠자냥 2023-02-05 10:17   좋아요 2 | URL
아니 내달란 소리가 아니고 다섯번째 문단에 끼워넣어 본 건데요. 문학에게, 딸에게, 은오는 자냥에게 열정을 쏟을 대상이 있어야 인간은 살 수 있다고.

한없이 권태롭던 은오 님 요즘 살맛 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2-05 10:53   좋아요 3 | URL
와.... 내가 좋아하는거 알고 제대로 갖고노는거보ㅏ!!!!!
네...... 부정 못하겠고요 변자냥님 왜 사이버인간이죠? ㅜㅜ 현실에서 만났으면 살맛 정도가 아닐텐데 변자냥님 출판사 신입으로 들어가서 갈굼당하고싶으니까 출판사만 좀 알려주세요

잠자냥 2023-02-05 12:00   좋아요 1 | URL
안 뽑아줄텐데~~~~~

은오 2023-02-05 16:17   좋아요 2 | URL
아 어떻게든 들어가기만하면 나 변자냥님 찾을 수 있는데!! 아직까지 아이폰8 쓰는 사람 변자냥님밖에 없을텐데 ㅋㅋㅋㅋㅋ근데 그거 아니라도 보자마자 직감으로 알듯😋

책먼지 2023-02-05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은오님 감상 진짜 너무 좋아요..😭 심지어 음악 취향까지 겹쳐.. 보라색 커버의 이소라 앨범 전곡 다 좋지 않나요.. ㅠㅠ 저는 이 책의 수동공격적인 인물들 때문에 읽는 내내 엄청 스트레스 받더라고요. 특히 이디스와 로맥스 교수요(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차라리 싸우자!!!)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기억이 고통이 된다는 점에 완전 공감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고 계속 책을 읽는 것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은오 2023-02-06 02:40   좋아요 1 | URL
아이 참 먼지님께서 좋다고 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 저랑 음악취향까지 겹치시다니요...(감동) 이소라 7집 정말 좋죠!! 정말 먼지님 말씀대로 전곡이 다 좋은 앨범! 저는 특히 3 7 9 11 트랙 좋아합니다 >_< 이디스랑 로맥스.... 하. 제가 처음에는 이디스를 좀 이해해 보고자 했는데요. 어째 뒤로 갈수록 심각해지더라고요. 해도해도 너무 심했죠, 진짜. 로맥스는....어휴.
그리고 네, 먼지님 말씀대로 그렇지요.... ㅠㅠ 과거에 대한 그리운 기억 때문에 괴롭고 미래에 대한 두려운 상상 때문에 괴로운 건 어째야 하는지 정말....

책먼지 2023-02-07 11:42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트랙까지 겹쳐요 진짜 이러기 있나요.. 하아…

은오 2023-02-07 16:35   좋아요 1 | URL
헐.... 이럴 수가요! 트랙까지 겹친다고요 정말요?! 나 먼지님께 잘해야지.... 먼지님 같은 분 앞으로 만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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