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 된 요즘.
불현듯 올해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된다.

더울때는 별 생각 없다가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런 생각을 드는 이유는 뭘까?

지겨운 날씨 이야기.
지겨운 감정의 반복.
끝나지 않고 계속 리플레이 되는 게 삶의 진실일까.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의심하지 않았던 그 무엇이 뚝 끊겨버렸을 때의 그 막막함.

나는 생각해내야 한다.
내가 꿈꾸고 있는 걸 이루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그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그게 맞는 거 같으니까. 난 그렇게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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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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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문학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이 빠지다면, 그건 뭐가 좀 잘못됐다는 소리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이 소설의 작품성은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그 유명한 소설을 이제서야 읽었다니.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유명한 문학 작품은 그 책을 보기 전에 여러 영역에서 미리 만나게 되고, 상식처럼 그 내용의 줄거리는 알고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 아래 피상적으로는 '개츠비'라는 한 남자가 '데이지'라는 한 여자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낭만적인 소설쯤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소설은 내포하고 있는 상징을 생각하고, 내가 받은 감상을 떠올리면 이 소설은 그리 간단하게 표현될 수가 없을 것 같다. 개츠비는 이미 떠나버린 옛사랑을 되찾기 위해,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한 점 의심하지 않은 채 개츠비는 돈으로 떠나보낸 사랑 돈으로 다시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밀주업이라는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악착같이 돈을 벌어댔고, 데이지가 사는 곳이 보이는 롱아일랜드 바다 건너편에 큰 저택을 사고 주말마다 화려하고 사치스런 파티를 열면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언젠가 데이지의 모습을 다시 재회함으로써 사랑을 되찾게 되리라는 상황을 소망으로 품고 사는 사람이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말하는 환상과 이상의 중요성이 새삼 거대하게 다가왔다. 나란 사람은 포기가 빠른 편이라 상황이 힘든 쪽으로 흐르면 주춤거리거나 혹은 멈춰버리고 만다. 내가 믿은 바를 끝까지 고수했던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삶이 고달퍼도 목표를 바라보고 자신의 갈 바를 알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꾹꾹 발자국을 새기며 데이지란 꿈을 향했던 개츠비의 태도란 얼마나 위대한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앞으로 향하는 용기를 가진 개츠비. 포기하지 않는 개츠비는 위대하다. 비록 무릎이 꺾이는 순간이 있었다 할지라도 개츠비의 정신은 결코 한번도 꺾인 순간이 없었다.

암울한 시대-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도덕적으로 타락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개츠비의 행동은 숭고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삶은 간혹, 아니 자주 뜻하지 않은 비극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라 개츠비는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부분인 개츠비의 장례식 부분을 읽으면서 나 또한 작품 화자이자 등장 인물인 '닉'처럼 사람들의 무책임과 무관심에 환멸을 느꼈고 실망하고 말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다 사라지다를 반복했다. 또 소설은 개츠비의 꿈을 통해서 '미국의 꿈'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왜 이 작품이 시간을 거슬러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다른 많은 예술의 영역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게 되었다. 피츠제럴드는 소설의 첫부분에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삶의 가능성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민감성을 '창조적 기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맥 빠진 감수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p.11)

닉이 개츠비를 처음으로 만나는 대목과 맨 마지막 대목에서 언급된 '초록색 불빛'이란 상징이 주는 여운이 깊다. 소란스런 소리가 사라진 진공 상태의 나를 만들었던 그 글귀는 잊을 수 없다. 멀리서 조그맣게 반짝이더라도, 자신만의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옳다는 것. 나 또한 그런 걸 찾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난 지금 이미 찾았지만 용기 없음에 겁먹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마냥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삶이 마찬가지겠지만, 삶은 불안정해서 다들 갈피를 못잡고 헤매며 산다. 무엇을 잡아야 할지, 무엇을 목표로, 무엇을 목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을 정하는 건 바로 자신의 몫이다. 개츠비란 인물을 통해서 느끼고 배운 생각들이 적지 않다. 자신을 지탱하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걸 배웠다. 이상을 향한 수단과 방법이 잘못됐다고는 하나, 개츠비의 정신은 위대함으로 언제까지나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개츠비가 다시 생각나는 날. 또 이 책을 짚어들게 되겠지. 그리고 망각했던 지금의 이 감동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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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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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선생님의 글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내가 워낙 '시'라는 문학 장르와 친하지 않았었고, '시' 자체를 잘 못 받아들이는 이유가 가장 크다. 전혀 이해 불가능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시를 멀리할까. 그건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이 적어서였을 수도 있고, 이제껏 시를 만나고 대하는 방법이 바르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시를 잘 모르고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과 감성을 건드리는 시구를 만났을 때의 분명한 감동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느끼지만,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시인들은 자신들의 정제된 언어로 들려준다. 우리는 그 언어를 조용히 가슴으로 만나면 되는 거다. 영시지만 한국어로 다 해석되어 언어적 '괴로움(?)'도 없고, 마치 동화 삽화같이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밝은 느낌을 주는 색감의 김점선 화가의 그림도 이 책을 빛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를 아무리 모른다 해도 모를 수 없는 영미권 유명한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들을 추린 시집이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시인들이 더 많지만.)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라는 고백에 담긴 그 사랑의 따스함과 생의 충만함을 알 것도 같다. 시와 더불어 장영희 선생님의 짧은 감상을 담은 글도 시만큼이나 좋다. 내가 느끼는 선생님의 글은 한마디로 긍정성이라는 점이다. 닮아가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글을 읽고 있으면서 새록새록 잃어버렸던 내 안의 감성들을 되찾은 느낌이어서 이런 시집이라면 얼마든지, 라는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시'라는 장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찾게 될 것 같다. (소설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게 이런 마음의 변화는 작은 것이 아니다. 시를 '어떻게' 만나는냐에 따라 시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딱딱하지 않고 어렵지 않아서 '시'를 읽을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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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Save apart time to read,
it's the spring of wisdom.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이다.

Save apart time to laugh,
it's the music of your soul.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Save apart time to Love.
for your life is too short.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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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8-2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참 좋네요,,

거친아이 2007-08-2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연히 알게 돼서 찾아봤어요. 영시라도 짧고 쉬워서 참 좋네요. ^^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마크 로렌스 감독, 드류 배리모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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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잘나갔던 '팝'의 멤버였던 알렉스. 과거의 그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한결같이 지속되는 인기란 없는 법이고, 여전히 다행스럽게도 알렉스는 노래는 부르며 지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인기있는 그때의 가수는 아니라는 점과 그래도 삶은 계속되기에 행사 뛰는 가수가 되었다는 처지 정도?  그러던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더없이 좋은 재기의 기회가 찾아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노래 한 곡을 만들어야 한다. 작곡도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라,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기회가 기회인지라 포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작사는 어떻게 하나. 도움의 손길이 간절할 때, 화분에 물 주러 온 소피의 입에서 자연스레 툭 뱉어놓은 말은 모두 노랫말이 될 법하다.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 두 사람의 출연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고픈 마음을 생기게 했다.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휴 그랜트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골반을 이용한 엉덩이 튕김질은 보는 이를 피식 웃게 만든다. 재밌고 신난 노래도 좋았고, 노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인지라 대부분의 노래가 좋은 편이다. 당연 주제곡도 좋았고.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조금 지겨워졌지만.) 알렉스와 소피의 사랑은 노래가 만들어지는 시기와 동일하다. 노래가 만들어지면서 사랑이 시작되고, 노래가 완성되면 사랑도 완성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전형적이고 예상 가능하지만 그래도 직접 보면 실망보다는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결말을 안다고 해서 재미없는 영화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부당하다.



 티격태격 했지만 오해는 풀리고 결국은 사랑에 이르는 두 사람의 과정이나 노래를 만들면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좋은 노래 한 곡이 탄생되기까지. 완성이란 끝이 있다는 변치 않는 사실이 있기에 그런 것들이 있어도 될 만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불러서 OST가 더 사랑받는 이유도 있겠지만, 주제곡은 정말 노래 자체의 멜로디나 가사가 괜찮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몰이를 했었던 것 같다. 휴 그랜트를 괜찮게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괜찮게 보실 영화. 그의 씰룩거리며 흔들어대는 둔부의 움직임은 다시 생각해봐도 재밌고 퍽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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