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전병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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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라는 것. 구태여 '나는 있다구요.' 라고 당당히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이 알고 타인이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나는 자신감이 없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모든 것을 맡길 순 없었다. 믿음 부족 때문에. 전병욱 목사님의 책은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보는 것인데, 글이 간결하고 쉬우면서도 중요한 핵심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빠르고 부담감이 없어서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자신감의 회복이라는 문제는 확실히 하나님을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생활한다면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믿음을 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이 아주 많은 거 같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이 하나의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른다. 나의 문제를 해결받고 나의 생활에 동력이 되는 믿음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싶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믿고 가야할 바를 잘 알면서도 중도에 흔들리고 혼자 잘 할 수 있다는 육신의 생각이 내 안에 못된 생각을 몰고 올 때, 나는 잘도 넘어간다. 금세 또 후회할 거면서.

책을 보면서 새삼 다시 한번 태도와 표현의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거짓말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편인데, 선하고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을 더 즐겨 쓰는 점이 내가 단점이자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점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평소 하던 행동이 변화될 것이고 내가 할 수 없었던 그런 일들을 주님을 의지해서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새 힘을 얻고 싶은 사람이나 강력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과 연결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한 의미의 회복과 거듭남이 있을 테니까. 말씀을 알아도 깊이 생각하지 못해서 내 것을 만들 수 없었는데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던 성경 구절들을 배울 수 있어서 만족한다. 자신감도 비결은 오직 믿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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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1-2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의미의 자신감이란.. 결국 선함에 대한 믿음으로 읽히네요.^^

거친아이 2007-11-2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얘기가 그렇게 되네요. ^^
자신이 믿고 있는 바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자신감을 잃지도 않겠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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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기반으로 한 믿을 만한 소문이라도, 본인이 체험하는 직접 경험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경험을 하기까지 그 사실은 저 멀리 존재하는 듯하다. 이 책을 추천하고 소개하는 글들은 사람 마음을 혹하게 했다. 원래 그런 목적으로 씌여진 글이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각설하고, 전부터 읽고픈 마음이 가득했던 책이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기대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책장을 펼치자 비로소 나만의 '스밀라'를 만날 수 있었다. 눈과 얼음의 둘러싸여 있는 스밀라를 말이다.

이웃집 소년인 '이사야'의 장례식장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밀라는 눈雪을 읽을 수 있다. 즉, 눈雪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사야의 죽음이 단순한 실족사가 아님을 알아차린다. 스밀라는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스밀라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음을 직접 행동으로 보인 사람이다. 아이의 죽음이란 단 하나의 사건이 촉발시킨 이야기의 깊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 또 이야기의 구조가 얼마나 치밀하고 촘촘한게 진행되는지 읽은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를 만큼 진심으로 감탄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단순히 추리소설이라고 명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추리소설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소설 속에 이렇게 복합적이면서 핵심을 잃지 않고 처음의 것에서 끝까지 잘 맞물리도록 진행시키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설의 재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독자는 개성있는 캐릭터나 이야기 자체에 마음이 뺏긴다. 하지만 <스밀라의 눈에 감각>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었다. 

솔직히 이 소설은 쉬운 소설이 아닐 수 있다. 소설이 말하고 있는 바를 난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자연과 문명의 대립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추악한 범죄와 광기가 빚어낸 잔인과 살인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밀라의 사유, 몇몇 장면에서의 스밀라의 대사와 독설, 정체하는 것을 모르는 스밀라가 생동감 있게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밀라는 사람을 그야말로 흡인하는 것이다. 소설은 고요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띈다. 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곳곳에 자리한 문학적으로 뛰어난 공들인 묘사가 돋보여서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고독하고 강하고 아름다운 스밀라. 눈송이가 흩날리고 얼어붙은 얼음을 보면 이젠 스밀라가 떠오를 것 같다. 사실 덴마크는 알아도 그린란드라는 지명은 내겐 낯설었다. 소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얻은 지식도 적지 않고. 좀 부대끼는 면도 없지 않았지만. 한 소년의 죽음에 깃든 음모와 비밀을 파헤쳐 가는 매혹적인 스밀라를 내 뇌리에서 잊게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이 말에 자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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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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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고전을 원전으로 하여 조선시대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저작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세태다. 과연 '고전열풍'이라 할 만하다. 예전에는 고전이라고 하면 왠지 무겁고 딱딱한 느낌이 들어 가까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몇 권의 정민 교수의 책은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그런 편견들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점점 고전의 세계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만들었다.

선비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떠올리는 선비라는 이미지는 살림살이는 가난할지언정, 낮이나 밤이나 서책을 끼고 앉아 읊조리며 방 안을 지키는, 대망의 과거 급제를 위해 학문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매번 떠오르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기실 이런 선비들의 모습도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책 속에 등장한 수많은 선비들의 숫자처럼 각자의 삶의 모습은 정말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 홀로 무허가로 정의내린 '선비답다' 라는 정의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었기에 약간은 흥미를 갖을 수 있었다. 옛사람이 남긴 생생한 기록이란 흔적 덕분에 우리는 소소한 일상사를 시작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네 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맨 마지막 장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내 관심과 취향에 맞는 내용과 관련된 글들이 있었서겠다. 그 중에서도 언급된 '독서법'은 좋다 하고 알고만 넘길 것인 아니라 그 마음가짐을 본받아서 기억하고 나도 행동으로 따르리라 다짐하게 했다. 학문을 배우는 자세도 마찬가지고. 선비들을 생활을 엿보면서 가장 본받아야 할 점은 아마도 정신자세일지 싶다. 옛사람이 남긴 옛글이 주는 정서가 마음에 든다. 가슴에 콕 박히는 몇몇 지침들은 대단하지 않았어도 감동적이었다. 잠시 시선을 멈추고 날 사유하게 했던 인상 깊은 대목들은 더더욱 잊을 수 없겠다. <미쳐야 미친다>와 일부 겹친 내용이 실려 있다. 많이 알려진 좋은 글이라 여기저기서 소개되는 모양이다. 선비답다라는 것은 무어다 라고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선비도 여러 가지라는 것.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단편적으로 뚝뚝 끊기는 글이라 영 하나의 주제로 합쳐지지가 않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선비에 관한 읽을거리로 가볍게 보기는 적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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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 사용설명서 내몸 시리즈 1
마이클 로이젠.메멧 오즈 지음, 유태우 옮김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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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중요성이야 새삼 다시 말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중요한 것은 반복을 요구하는 법이다. 먹고 자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건강에 대한 정보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건강이 유지될 때는 사람들은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 알더라도 쉽게 잊어버린다. 그냥 지극히 당연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간혹 크게든 작게든 아플 때가 있는데 며칠 간 크게 앓고 고생했다면, 우린 그제서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이 그냥 당연한 것이 아님을. 진심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고백하게 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몸'의 신비함과 소중함을 점점 더 느끼게 된다. 그 신비하고 소중한 몸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몸'이라는 시스템이 여러 기관들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돌아가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서 얻은 건강 상식이나 정보를 재확인했던 부분들도 있었고, 미처 모르고 있던 부분들은 이 책을 기회로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 자주 접해서 알고 있었지만 정작 불편함을 느껴보지 않아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심장과 혈관의 중요성이나 대장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지 싶다. 다소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던 부분들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게 엮었고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이었지만 내게 있어 간혹 난해한 설명으로 다가온 부분들은 이해를 돕는 일러스트가 있어서 읽기가 수월했다. 딱딱한 전문적인 설명을 벗어나려 한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유용하고 유익한 건강서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노화를 전적으로 막을 수야 없지만 일부분은 자신의 노력으로도 가능하다. 내 몸을 내가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있지만- 자신의 입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며 생활하느냐에 따라 몸은 변화하게 된다. 내 행동을 달리 하면 내 몸은 반드시 변화를 안겨준다는 빼도박도 못할 이 사실. 실상을 말하자면 책을 봤다고 해서 책에 씌여있는 대로 하나하나 신경써서 지키며 먹을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내 몸을 생각하고 내 몸을 진정 아낀다면 내 몸에게 해주어야 할 일들을 정확히 알았다는 거다. '몸'이라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기에 요긴하다.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는 노력을 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의학적 정보와 상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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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gggggggggggggg 2007-11-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ggggg

조휘람 2007-11-1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육하기의 유익한책 부탁들어요!!!!!!!!!!!!!!!~~~~~~~~~~~~~~~~~~~~~~~~!1!!!!!!!!!
 

소설가 김연수는 2년 전에 발표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1인칭. ‘나’. 내 눈으로 바라본 세계. 이제 안녕이다. ‘나’로만 구성된 소설집을 한 권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거짓말쟁이가 돼버렸으니까. (중략)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좀 어렵게 됐다. 그 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이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나’는 유령작가가 됐다. 더 많은 이야기. 내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잠도 안 온다.」

“글을 이십 대 때부터 썼지만 서른 살 넘어서부터 소설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나의 당면 과제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란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돈을 벌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십 대에 등단해서 원고료를 받고 ‘공돈’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심심해서, 시간이 많아서’였으니까. 그런데 그 소설로 돈을 받는다는 게 참… 건방진 소리긴 한데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쓸 때까지 독자는 알 바가 아니고, 내 소설이 안 팔리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소설책들은 많이 나가야 만 부 가량이었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삼십 대 초반에는 힘만 넘쳐서 독자들이 이해하든 말든 그랬어요.(웃음) 독자를 위해 쓴 소설이 아니니까 안 팔리는 게 당연하죠. 독자도 아니까.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후기에 ‘이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라고 썼는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쓰려면 어떤 식으로도 소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독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렇다고 내 소설이 백만 부, 십만 부씩 팔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독자가 이해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연수, 독자와의 소통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선언한 김연수는 사이렌처럼 왕왕 울리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짓눌린 개인의 목소리를 소설로 썼다. 《문학동네》에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소설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으로 출간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계획에 없던 소설이었지만 그의 첫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와 묘하게 이어지면서, 삼십 대에서 사십 대로 넘어가는 한 작가의 변화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91년 5월의 일을 돌아가서 다시 보겠다고 쓴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회고는 아니죠. 처음엔 후일담 비슷하게 되어버렸는데 가다가 이야기가 바뀌었어요. 그때의 관점이 아니라 지금의 관점으로 소설을 썼으니까요. 예를 들어, 프락치에 대해서도 그때의 관점으로 썼다면 절대로 여기 나오는 식으로 쓸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 한국 현대사를 알 필요도 없어요. 이 소설은 개인의 이야기니까.”



 


김연수의 첫 장편 소설은 1994년에 발표한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다. “91년 5월 전까지는 거대한 진리의 세계가 있었어요. 그런데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세계가 와장창 무너졌죠. 그리고 94년쯤 되어 세계가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우리는 레닌과 마르크스를 통해 그것을 가짜, 곧 붕괴될 세계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그것을 진짜라고 믿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그때가 되어서야 ‘나’라는 것을 찾아야 했죠. 뭐가 진짜고 가짠지 알 수 없는 세계에 던져져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데 한 번도 그렇게 사는 걸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썼고, 첫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의 주제는 ‘진실이 뭔가’가 됐습니다.”

그에 비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때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되묻는다. 복원은 하지 말고 지금의 눈으로 ‘해석’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쓴 소설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원동력은 첫 소설을 쓸 때는 굉장히 격렬한 감정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 감정들을 돌아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사람이 됐죠. 그때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으니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래서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죠.”

그때와 지금의 사람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이타적이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려고 했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도 있었고. 지금은 남을 위해 헌신한다는 경험이 사라졌죠. 연애 정도가 남았을까.(웃음) 누군가를 위해 죽을 일이 거의 없지 않나요. 민족을 위해 죽는 그런 세상은 끝난 거죠. 그리고 내 생각엔 다시 오지도 않을 것 같아요. 옛날이 좋았다는 건 아니에요.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가고, 그때 대학생이었던 사람들도 변해간다는 거죠.”

24시간이 작업 시간

소설 쓴 지 12년째. 그는 근성 있는 프로 작가다. 단편 위주의 한국 문단에서 묵직한 장편을 발표하는 몇 안 되는 귀한 작가다.

“제가 힘이 좋아요.(웃음) 등단할 때도 장편으로 했고. 24시간이 내겐 작업 시간이에요. 글 쓸 때는 작업실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고 밥도 잘 안 먹어요. 그렇다고 글을 열심히 쓰는 건 아니고. 잠을 많이 자요. 글이 막혀도 자고, 생각이 안 나도 자고, 마감이 오면 못 자니까 미리 자 두고.(웃음) 보통 원고지 40매 쓰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리고, 단편 하나 쓰는 데 2주 정도 걸려요.”

“주로 작업실에 처박혀 글을 쓰는 타입인가요?”

“그렇죠. 아,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좀 달랐어요. 그 소설은 카페나 지하철에서 썼어요.”

“번역 일은 어떤가요?”

“번역은 좋아하는 일이에요. 돈 버는 일. 큰 고통 없이 할 수 있어서 많이 하는 편이죠.”

“무라카미 하루키 식은 아닌 거네요.”

“일이니까.”

“하진의 소설 『기다림』을 번역했는데 어땠나요?”

『기다림』은 번역하기 쉬웠어요. 소설가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이죠. 이 작가는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죠. 그대로 번역만 하면 완벽한 문장이 나오죠. 소설도 재미있었고, 마지막 반전도 마음에 들었어요.”

“동시대 소설가들의 작품에 자극을 받나요?”

“소설을 많이 읽어요. 소설 보는 게 재밌고, 소설 속에서 비슷하게 공유되는 시대감각도 읽죠. 그런데 일본소설은 잘 안 봐요.”

“의외네요.”

“일본소설은 문장 읽는 맛이 없어요. 대화는 있지만 지문을 최소화시켜서 방송극 대본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야기는 살지만 작가의 스타일이 안 살죠. 미국 소설, 영국 소설을 많이 봐요. 프랑스 소설도 잘 읽지 않아요. 노통브 같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같은 프랑스 작가라도 『플랫폼』『투쟁 영역의 확장』을 쓴 미셸 우엘벡은 좋아해요. 작가가 자기 색을 드러내는 소설이 좋아요.”

“그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같은 소설은 어떤가요?”

“소설 문장은 『보바리 부인』처럼 쓰는 게 맞다고 봐요. 그렇지만 그렇게 사회를 반영하는 건, 글쎄요.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보바리 부인』은 최고의 소설이고, 무척 아름다운 문장이죠. 내가 아름답다고 하는 건 좀 다른 감각에서 하는 말이에요. 사실 플로베르의 문장은 지금 읽기엔 버거울 정도예요. 예를 들어, 설탕이라고 쓰면 될 것을, 어디서 수입한 원료로 만들었고, 그 성분은 뭐고, 상표는 어떻게 생겼고 하는 식으로 원자의 단위까지, 최소한의 단위까지 단어를 찾아 쓰는 식이니까요. 나는 그 틀이 마음에 들어요.”

“소설에 어울리는 문장이 따로 있을까요?”

“소설용 문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예쁘게 쓴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간략하게 쓴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뭐랄까,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문장이 소설의 문장이죠. 스토리에, 전체 이야기에 공모하는 문장이죠. 이야기에 필요 없는 문장은 다 뺀다는 게 나름의 원칙이에요. 전체적인 생각이 있고, 그 생각에 맞춰 장면을 찾아내고, 그것을 글로 쓰면 책이 되죠.”

“시로 먼저 등단을 했는데, 소설 쓰면서 시적인 것에 영향을 받거나 하진 않나요?”

“시를 읽는 걸 좋아하고, 세상 모든 시인들을 존경해요. 시인은 모국어를 제일 잘 다루는 사람이죠. 시를 읽다 보면 이것을 이렇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구나 감탄하죠. 그런데 시적인 것은 소설에 들어오기 힘들어요. 시적인 것은 뜬금없잖아요. 소설은 시적인 문장으로 쓸 수 없어요. 소설의 문장은 보여주거나 글이거나 대사이기 때문에 은유를 쓰면 헷갈립니다. 가급적 은유를 안 쓰는 게 좋죠. 소설은 소통의 문제니까요. 예를 들어 (테이블 위의 설탕통을 가리키면서) ‘이것은 설탕이다.’라고 하면 되는데 ‘염전에서 삼일 된 소금’ ‘이별하고 나서 본 아침 하늘빛’ 이렇게 하면 소통이 안 돼요. 대부분 소설에 나오는 사물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지시만 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은유가 들어가면 헷갈려요. 특히, 개인적인 은유, 원관념이 사라진 은유는 쓰지 않아요.”

오래된 것 속에 이야기가 있다

김연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직접 듣는 것보다 한 다리 건너서 듣는 ‘그랬더라’ 식의 이야기를 더 선호한다는 점.

“어떤 사람이 내게 직접 해 준 이야기는 글로 못써요. 누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면 정보가 매우 부실해요. 굵은 이야기 줄기 하나만 남아 있어요. 거기에다 상상을 채워 넣으면 그 사람하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지만 소설가 김연수가 쓸 수 있는 세계는 그다지 넓지 않다. “나는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정체성을 넘어가는 이야기를 쓰긴 힘들 것 같아요. ‘나는 누구인가’까지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늘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가 궁금하거든요.”

다르게 표현하면 김연수는 사진첩의 작가다. “내가 궁금한 걸 다르게 표현하면 이런 거죠. 집집마다 가면 사진첩이 있잖아요. 다들 웃고 있는 사진들이 꽂혀 있는…. 그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진만 남아 있어요. ‘촉감’이나 ‘감정’ ‘소리’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가 궁금해요. 그게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는 의미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보통은 없어지는 거죠. 기억에 저장이 돼도 정확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사라지죠.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이에요.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한다면 그런 감각들로 이루어진 시간을 지나오는 존재라는 거고, 그 감각들은 찰나의 것으로 존재하죠. 남는 것은 사진 같은 흔적이고, 그런 것들은 몇백 년을 가잖아요. 그런 흔적들 속에 인생이 깃들여져 있고, 거기에 이야기가 있어요.”

오래된 것 속에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거리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오래된 거리, 손때가 묻은 물건에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의 페이지가 몇 페이지 찢겨 있다. 그러면 정말 쉽게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왜 찢었을까, 상상을 하는 거죠. 복원은 불가능하지만 소설가가 자신의 역량과 지식을 동원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실제 일어난 일과 최대한 비슷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프로 소설가, 소설 쓰기의 비결을 말하다

김연수는 상복이 많은 작가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휩쓴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소설 쓰기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많은데… 비결이 뭐 있겠어요.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이 제일 힘들죠. 그때 회의도 들고, 다른 거 해 보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고. 그 시기를 지나오는 게 막막해 다들 비결을 찾는데, 그 비결이라는 건 시간을 견디는 거라고 봐요. 소설을 쓰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하니까.”

그 역시 그와 비슷한 막막한 터널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소설을 쓰면서 헤매지는 않아요. 헤매기에는 나이가 많죠(웃음). 창작은 영감과 노력의 문제인데 소설은 노력에 가까운 것 같아요. 노력을 투여하면 소설이 나오고 투여하지 않으면 소설이 안 나와요. 아무리 영감이 있더라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십 대에 좋은 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요. 삼십 대 후반, 노력과 영감이 절정에 이르는 단계에 제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지금 제게 ‘절정기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오십 대에도, 육십 대에도 소설은 쓸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영감은 쇠퇴하지만 몸에 밴 노력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쓰고 있지 않을까요.”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1&cont=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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