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심리학 2 --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눈물의 씨앗인가? 오래 참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는 것인가? 사랑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이론과 설이 있는데 심리학 교과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론은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스턴버그의 "삼각형" 이론이다. 그가 1986 년에 Psychological Review 라는 저널에 발표한 이론이다. 이 저널은 포괄적인 이론을 주로 싣는 저널로서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되는 저널이다. 그래도 뭐 그렇게 심오하거나 과학적인 이론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그나마 여러 "사랑론" 중 체계적이라고 본다.

스턴버그는 사랑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1) 친밀감 (Intimacy, 애정으로 번역하려다 사랑이란 말과 너무 비슷해서). (2) 열정 (Passion), (3) 판단과 의지 (Commitment) 사랑한다는 의식적 판단과 관계를 지속 시키려는 의지.

친밀감 (Intimacy) 은 "따뜻한 감정" 적 요소로서 가까운 느낌, 또는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리키고 잘 해주고 싶은 마음,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등이 포함된다.

열정 (Passion) 은 "뜨거운 동기" 로서 육체적 끌림이나 성적 관계에 관련된 요소이다. 가슴이 뛰고 같이 있고 싶어 안달인 그런 것도 열정과 관련이 있겠다. 열정은 동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스턴버그의 생각을 쫓아가 보자.

판단/의지 (commitment) 는 "차가운 인지" 적 요소로서 단기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결정과 장기적으로는 그 관계를 지속시키겠다는 의지를 의미한다. "그땐 그게 사랑인줄 몰랐어요." 어쩌고 하는 게 단기적인 의미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 같이 살아야지" 하는 게 장기적인 의지이고.


그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조합하여 여러 가지 남녀 관계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Harry Met Sally" 라는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처음에는 그냥 친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이 (1) 이었다가 열정 (2) 과 의지 (3) 를 가지게 된 관계로 발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반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열정 (2) 으로 시작해서 의지 (3) 와 친밀함 (1) 을 키워나가는 관계로 나아간다. 열정도 친밀함(애정) 도 없지만 그냥 관계를 지속하자는 의지 (3) 만 있는 관계의 예는 죽지 못해 같이 사는 오래된 부부이거나 아니면 옛날에 집안 어른끼리의 결정으로 결혼한 부부가 처음 만난 날의 경우이다. 오래된 부부관계는 열정 (2) 은 식어 약하고 애정/친밀함 (1) 과 관계 지속의 의지 (3) 만 있는 경우도 많다. 하기야 30년 같이 산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보기만 하면 가슴이 뛴다면 병원에 가봐야 할지도 모른다. 심장 전문병원. 이 삼각형 이론은 남녀 간의 사랑 뿐 아니라 罐?형제간이나 친구간의 사랑도 설명한다. 물론 이 두 가지 사랑은 열정의 요소는 없고 주로 친밀감과 의지로 구성된 사랑이라 본다.

세 가지 요소 중에 (2) 열정이 남녀 간의 사랑의 가장 특징적인 면이지만 가장 한시적이고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면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랑에 대한 판단이나 의지 (3. commitment) 는 의식적으로 통제가 가능하고 따라서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요새는 사랑을 두뇌의 화학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이 유행인데 그 중 많이 거론 되는 것이 도파민 (Dopamine) 이다. 사랑에 빠져서 날아갈 것 같은 희열감이 들고 잠도 안 오고 배고픈 줄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 도파민의 작용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마약의 효과와도 관계가 있어서 코카인은 뇌신경이 도파민을 수거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서 도파민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열정이 도파민과 관계가 있다면 친밀감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과 관계가 있다. 얼마 전에 사랑하지 않는 사이라도 성관계를 가지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친밀감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보도된 바 있다.


그래서 남녀 간의 관계를 호르몬이나 신경물질의 관점에서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욕정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 - > 열정 (도파민) -> 친밀감 또는 애정 (옥시토신 또는 세로토닌)

처럼 나열해 볼 수 있겠다.

사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머릿속으로 정의가 안 떠올라도 가슴으로 대충 다 안다. 포리스트 검프도 아는데. 문제는 어떻게 사랑을 얻느냐가 더 큰 관심사가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에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이 "아빠 내가 학교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가서 내가 좋아한다고 얘기하려고 해." 그래서 내가 했던 말이 "아들아 네 목적은 그 여자애가 널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섣불리 좋아한다고 하면 너만 손해 보는 수가 있단다." 이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다. 남들은 정직이 제일이라고 가르친다던데.

어쨌거나 어떻게 사랑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자료들을 응용해보면

첫 데이트에 놀이 공원 같은 데 가서 롤러코스터를 타라. Dutton 과 Aron (1974) 이라는 사람의 연구에 의하면 심신이 흥분했을 때 사랑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처음 보는 남녀를 좌우로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게 했더니 안정감이 느껴지는 다리를 건넌 남녀에 비해 더 상대방에게 이성적 관심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까다로운 척 하면서 관심을 보여라. 아무 남자나 데이트 신청하면 언제나 뛰쳐 나가는 여자라거나 치마만 두르면 다 쫓아다니는 남자라는 인상을 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콧대 높은 척하고 눈길 한번 안주면 또 인기 없다. 원래 콧대가 높아서 아무나 하고 데이트 안하는 인상을 풍기면서 자기한테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한다.

관계에 장애가 좀 있어야 열정에 불이 더 잘 붙고 로맨틱하다니까. 알아서들 하시라.

종종 얼굴을 비춰주는 것이 유리하다. 단순히 눈앞에 자주 보이면 익숙하게 되고 그러면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단순 노출 효과 (mere exposure effect) 라는 것이다. 물론 단순 노출 효과는 열정보다는 친밀감 증진에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싫다는데 너무 자주 들이밀면 역효과가 난다.

뭐 더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올리고 나중에 생각나면 추고하기로 하고 노무현 대통령 민주 평통 연설에 대하여 한마디 하자. 노무현 얘기 이제 그만 하려고 했는데 영화 대부 3편에 나오는 알 파치노 대사처럼 자꾸 나를 끌어들이는 일이 생기는데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연설을 보고 막말이니 말투가 어쩌니 하는데 내가 연설을 보고 느낀 것은 거꾸로 노무현 대통령이 참 국민들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또 국민들을 존경하고 있구나 라는 것이다. 저렇게 자기 속을 털어놓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은 상대를 존경할 때 하는 것이다.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릅뜨고 “본인은…" 으로 시작하는 옛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설을 생각해 보면 졸병들 앞에 줄 세워놓고 훈시하는 인상인데 졸병들 앞에 세워놓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 없다. 그런데 졸병 때가 그리운 사람이 많은가 보다.

따지고 보면 한때나마 노대통령처럼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정치인도 없었던 것 같다. 왜 국민들이 그를 사랑했던가? 그가 국민들을 아래로 깔아 내려 보면서 연설하지 않고 국민들을 대등한 상대로 보고 하소연했기 때문이 아닌가? 또 그렇게 거침없이 속에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그의 순수함이 좋았기 때문 아닌가? 그러나 열정은 식는 법이다. 그러니까 노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의 사랑을 얻기를 포기하고 대신 국민을 짝사랑하는 태도로 남은 1년간을 마무리 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선일보를 위시한 언론들도 이제 연말도 되고 했는데 하루만이라도 노무현의 장점에 대해서 한번 써 보도록 노력해보시라. 똑같은 얘기 매일 일면 톱에다 쓰면 쓰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지겹지 않은가. 요샌 한겨레 신문까지 덩달아 그러는 것 같다.  노대통령의 스타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넓게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뭐 꼭 노대통령이 아주 잘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잘 잘못에 비해 너무 언론이 심하지 않은가 싶다는 것이다.  사실 현 미국 대통령에 비하면야 아주 훌륭한 대통령 아닌가? 그러니 부시를 바라보고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가슴을 쓰다듬으며 연말 연시를 맞도록 하자. 메리 크리스마스!

http://wnetwork.hani.co.kr/newyorker/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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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의 허상

최근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만 18살 이상 성인 1000명과 학생 3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약 12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두 해 전에 견줘 약 1권이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 매체의 맹위 속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을 다행스럽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절망적이다.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삶의 공허를 견디는지, 혹은 파편화된 정보들을 어떻게 사유의 틀로 바꾸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책을 읽지 않고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자의 삶이지 세속인의 삶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공글리고 있는데 금방 어떤 기억이 아프게 틈입한다.

지난주 보았던 동네 서점의 풍경이 그것이다. 조그만 서점인데도 베스트셀러 매대에 순위표까지,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것은 어떻게든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서점인의 안간힘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대뜸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요즘 잘 나가는 책은 뭐예요” 하고 묻고는 베스트셀러 매대로 안내를 받더니, 그 가운데 한 권을 집어 들고 나가는 독자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시내 대형서점들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베스트셀러만을 너무 돋보이게 진열해 놓고 있는 것을 보면 절로 숨이 막힌다. 서점들은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하는 독자의 물음 앞에 무턱대고 베스트셀러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 독서량이 많지 않은 독자의 경우 많이 팔린 책은 무언가 미덕이 있겠지 하는 암시에 따라 구매에 이르게 된다. 베스트셀러가 더 잘 팔리는 사정은 비단 책에 한정된 것도 아니고, 또 우리나라만의 사정도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경우 사정이 좀 더 심각하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출판사가 많은 것도, 일단 그 순위표에 진입하지 못하면 팔릴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몇몇 서점은 그 매대의 운용을 위해 출판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우리 출판 시장은 규모가 작아서 시장 왜곡도 어렵잖게 일어난다. 과다 경품, 과다 이벤트 등으로 베스트셀러의 순위를 왜곡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기대하여 신간의 할인율을 높게 책정하는 마케팅 방식 정도는 아주 고전적인 예에 속한다. 해마다 거듭 논란이 되고 있는 사재기 문제 같은 것도, 속내를 살펴보면 베스트셀러가 되면 주어지는 과다한 부산물에 기인하는 것이다. 잘 팔리는 책에 대해 빈정대자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면 그 책의 성가보다 더 많은 보너스가 주어지는 점이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사실 옷을 살 때는 입어보고, 재봉 상태나 내구성, 필요성, 가격 적정성 등을 잘 따지는 사람들이 오직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사서 읽는 사정은 잘 이해 못하겠다.

책은 다양성 그 자체가 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독자도 이 점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출판 문화의 후진성이 불러오는 피해는 독자에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남들이 많이 보는 책을 나도 읽겠다는 것은 어떤 위안은 될지언정 앞서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간의 경우에만 한정해 보아도 매달 몇 천 종 출간되는 책 중 한두 권만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그 비율을 생각해보면 잘 드러날 문제다. 악화가 양화를 내몰듯 잘 팔리는 악서가 양서를 구축하는 사정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을 읽는 우리 국민 평균치에 가까운 독서량을 가진 독자라면 베스트셀러는 당연, 안 읽어도 괜찮다. 타인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가장 절실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 더 유익하리란 것을 부연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정은숙/마음산책 대표·시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01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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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원> 이청준 지음, 푸르메 펴냄. 9800원

이청준(67)씨는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며 120여 편의 중단편과 11편의 장편소설, 그밖에 동화와 판소리소설, 산문집 등을 열정적으로 선보였다. 장편 <당신들의 천국>과 소설집 <소문의 벽> <서편제> 등을 통해 그는 전통 정서와 산업화 시대의 인간 소외, 사랑과 자유의 본질, 유토피아의 가능성과 어려움 등에 관해 진지한 문학적 질문을 던져 왔다. 새로 나온 그의 책 <퇴원>은 비록 신작 소설집은 아니지만, 주요 문학상 수상작을 한데 묶어 놓음으로써 이청준 문학의 정수를 맛보게 한다. 등단작 <퇴원>과 동인문학상 수상작 <병신과 머저리>,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작 <매잡이>, 한국일보창작문학상 수상작 <이어도>, 그리고 <살아 있는 늪> <날개의 집> 등 중단편 여섯 편이 실렸다. 해설을 쓴 평론가 김경수씨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이 수습된 이후 바야흐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했던 시기의 우리 소설의 발자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이청준 소설의 의의를 설명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797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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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용어에 ‘저평가주’라는 게 있습니다.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주식입니다. 이런 주식은 조만간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올해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월초까지 출간된 책이 4만3천여종. 이 가운데 일부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은 외면당했습니다. 과연 그들이 제대로 평가받았을까요. 대표적인 단행본 출판사 대표 및 편집장 20명에게 놓치기 아까운, 이른바 ‘저평가된 책’들을 추천받았습니다. 주로 인문서라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쯤 눈길을 줘보길,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어나가길, 그래서 지식의 깊이를 더하길 바랍니다.

대표적으로 저평가된 책으로는 ‘조선의 문화공간’이 꼽혔다. 조선시대 500년을 풍미한 사대부 87인의 삶을 이들이 마련한 문화공간을 배경으로 펼쳐낸 독특한 책이다. 10년을 파고든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 조선시대 문화공간에 대한 정밀한 고증과 함께 옛사람들이 남긴 아름다운 작품들이 가득하다. 출판사측은 “대중성이라는 미명하에 흥미 위주로만 나가지 않았고, 미련스럽게 4권을 한꺼번에 낸 게 부담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밝혔다.

‘마주보는 한일사’ ‘근대를 다시 읽는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도 책의 기획이나 내용에 비추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주보는…’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양국의 역사교사들이 매년 양국을 오가면서 토론한 지 5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 5,000년 한·일사를 최초로 공동저술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웅진지식하우스 이수미 대표는 “인문학의 위기가 실감나는 한 해의 희생양”이라고 평가했다. ‘비트겐슈타인 선집’도 그 출간 의의가 높이 평가됐다.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은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사상과 삶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저작들이 7권의 선집으로 완간됐다는 것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면서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할 책”이라고 추천했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와 ‘한미FTA 국민보고서’는 지난해와 올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사태’와 ‘한·미FTA’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출판의 사회적 책무를 상기시켜준 책들이다. 김기옥 한즈미디어 대표는 ‘여러분…’에 대해 “기록하고 반성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대개의 언론매체들과 독자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말했다.

‘여론조작’과 ‘부와 권력을 찾아서’는 저자들의 비중에 비해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한 책으로 거론됐다. ‘여론조작’은 세계적 석학이자 비판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와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권위자 에드워드 허먼의 공저로 미국 패권주의 외교정책과 주류 언론의 기만적 행태를 파헤친 현대 미디어론의 고전. ‘부와…’는 중국학의 대가 벤저민 슈워츠의 주저로 중국의 계몽사상가 엄복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과 그 한계를 되짚어본 책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사가 마리우스 B 잰슨의 ‘현대 일본을 찾아서’도 ‘놓치기 아까운 책’으로 추천됐다. 책세상 문선휘 편집장은 “텍스트의 내용은 물론 장정과 책을 만든 공이 대단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인류사 속의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순수한 기록을 모은 ‘역사의 원전’도 저평가된 책으로 추천됐다. 장인용 지호 대표는 “기획부터 번역, 편집까지 대단한 역작임에도 저자의 전작인 ‘지식의 원전’에 치인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32&article_id=0000204840&section_id=103&section_id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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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⑫ 우리고전 저술가 정민 교수

인문학은 정말 위기일까? 아니면 인문학 바깥에서 비꼬듯 ‘인문학자들의 위기’인 것일까? 적어도 출판 저술의 측면에서 보면 둘 다 아니다. 정민(46)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그 증거다. 이른바 지식기반사회, 콘텐츠 시대를 맞아 인문학적 콘텐츠의 쓰임새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고, 인문학 콘텐츠에 대한 사회경제적 요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인문학이 위기가 아니라 정반대로 최고의 기회를 맞은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정민 교수는 이처럼 인문학이 호기를 맞고 있음을 책으로 입증해내는 저술가다.

정 교수가 처음으로 독서대중들과 만난 것은 1996년 <한시 미학 산책>이란 책이었다. 한시와 미학이라는 요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 법한 두 가지를, 그것도 500쪽에 그림 하나 없는 책으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정 교수는 보여줬다. 곧 고전이란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도전해보고자하는 분야이므로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면 고전이 얼마든지 읽히는 장르로 부활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당시 나이 불과 서른 여섯. 이후 나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껏 이 책은 한시 입문서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후 정 교수는 그야말로 물을 만난 고기처럼 책을 쏟아냈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 같은 잠언 소품집부터 <비슷한 것은 가짜다>같은 묵직한 에세이, 교과서속 암기대상이었던 위인들이 생생한 우리 이웃처럼 살아서 등장하는 <미쳐야 미친다>, 고전 속 문장을 곱씹어 들려주는 <죽비소리> 등 내는 책마다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고전길잡이책도 썼다. 이처럼 모든 연령대를 위한 책, 다양한 버전의 책을 펼쳐보이는 저술가는 실로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한자와 한문과 멀어진 요즘 젊은 세대들이 정민 교수를 통해 고전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다는 점이다.

정 교수가 사람을 놀래키는 점은 저술 작업량도 많지만 항상 책의 수준을 유지하는 점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가 다루는 주제의 폭이 문학을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가장 고리타분할 것 같은 전공을 가진 고전학자가 가장 모던한 감각으로 무장하고 독자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인문학자들과 달리 정 교수가 이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니 그 이전에 그는 왜 이렇게 저술작업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정 교수에게 묻자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거보다 더 즐거운 게 없으니까.”

정 교수는 지금껏 골프를 쳐본 적도, 스키를 타본 적도 없다. 지식을 탐구하고 글쓰는게 재미있어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식을 통한 창조의 욕구는 묘한 쾌감을 동반해요. 어떤 정보 하나를 찾으면 그 뒤로 연관 정보들이 줄서서 대령하고 있었던 것처럼 계속 나와요. 심지어 글쓰다가 피곤해서 무심코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 펼쳤는데 논문과 관련된 페이지나 막힌 생각을 뚫어주는 힌트가 들어있는 대목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것도 생각 이상으로 자주. 그럴 때는 소름이 쫙 끼쳐요.”

의료차트에 자료 빼곡 ‘씨앗창고로’

정 교수는 궁금한 것, 재미난 것이 생기면 거의 자동적으로 뇌가 작동을 시작한다. 요즘 구상중인 ‘조선의 여행문화’란 주제도 그렇다. 어느날 우연히 근대 일본의 여행문화를 다룬 <에도의 여행자들>이란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우리 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여행을 다녔을까?’ 그러면 곧바로 메모가 시작된다. 제목을 정하고, 논문이되건 책이되건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 지 목록을 짠다. 여행의 준비물은? 경비와 규모는? 놀러갔을 때 놀이의 규칙은?…. 다시 며칠 뒤 2차 메모에 들어가 전체 목차의 얼개를 마련한다. 관련된 스크랩이나 복사물도 덧끼운다. 이렇게 매일매일 정리한 파일을 연구실 곳곳에 비치한다.

정 교수의 한양대 연구실은 한마디로 거대한 파일의 성채다. 이 곳에는 다른 교수 연구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수백개의 의료차트를 둥그렇게 꽂아 빙빙 돌려가면서 꺼내볼 수 있게 만든 차트 보관대다. 자료 정리에 골머리를 앓다가 우연히 보고는 ‘저거다’ 싶어 거금을 주고 그자리에서 산 것으로, 정교수 일생에서 가장 성공한 쇼핑이 됐다. ‘조선의 여행문화’처럼 차트집 하나가 책 한 권의 기획안 모양을 갖추면 여기에 꽂아놓고 추가할 것이 있을 때마다 꺼내서 보충한다. 정 교수는 이 물건을 ‘씨앗창고’라고 부르는데, 이미 수백개 파일로 가득차서 더이상 끼울 칸이 없는 상태다.

정교수가 이렇게 뽑아낸 아이디어를 글로 쓰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소통’이다. “<한시미학산책>을 펴낸 다음에 시인들이 잘 읽었다며 편지를 보내왔는데 예상 이상이어서 놀랐어요. 그 다음부터 ‘소통을 염두에 둔 인문학적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논문을 쓰면 우리 분야 여남은명 정도가 읽어보는데, 조금 관점을 달리해서 쓰면 수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무엇이 더 가치있냐가 아니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정 교수는 내용과 문체에서 모두 ‘전달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대중들은 정교수의 문체가 유려하다고 평하지만, 정작 정교수는 글쓰기에 있어 아름다움을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최대한 줄이고, 접속사를 피해 문장을 나눈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글의 리듬, 그리고 언어의 경제성이다. 아무리 공들여 쓴 표현이라도 퇴고과정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도려낸다. 그럴수록 전달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나면 3번 소리 내서 읽어요. 제가 읽고 고치고 아내에게 부탁합니다. 아내가 읽어가다 멈추는 곳이 있으면 그건 문장이 잘못된 거에요. 그런 곳들을 한번 더 고칩니다.”

연암 다산이 ‘지식 정보화’ 스승

더 큰 차원에서는 문체의 힘이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의 힘으로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주제란 시대를 초월하는 사람들 내면 풍경의 보편성, 그리고 지금 사람들에게도 와닿는 옛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는 곧 문학을 통해 문화를 지향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늘 변하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인들의 관심사가 지금 우리 고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현실의 이야기가 옛 사람들 이야기와 포개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에게 이런 철학을 심어준 사람은 그가 책 속에서 만난 스승 연암 박지원이다. 정 교수는 “연암을 만나 생각하는 방식, 글쓰기 습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배웠다”고 말한다. 연암에 이은 요즘 스승은 다산 정약용. 그가 보기에 다산은 “진정한 지식과 정보의 기획편집자”이며, 그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새 스승이다. 새 스승에게 배운 바는 조만간 책으로 나온다. 제목은 <다산의 지식경영>. 다산이 어떻게 당대의 지식과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으로 기획, 편집했는지 살펴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통할 수 있는 ‘지식 정보화 작업’의 고갱이를 탐구하는 책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708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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