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니체는 ‘여성의 위대한 재능은 거짓말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외모’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분명 여성비하적인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모든 비난은 언제나 자기가 비난하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 거짓말하기와 외모 꾸미기가 여성의 본질이라는 비난 뒤에 있는 것은, 그래서 도대체 여자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체념 섞인 두려움이다. 여성은 심지어 완전히 발가벗었을 때조차 언제나 무언가를 입고 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그 무언가마저 끝내 벗긴다면, 그때 여성은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 그래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을까?
 |
|
정이현은 오래 전부터 남성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매혹시킨 여성이라는 알 수 없는 물 자체에 대해 말해왔다. “아니, 20, 30대 싱글 여성들의 재치 발랄한 일상을 그린 트렌드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그 정이현이?”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첫 단편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실린 단편들을 보자.
소설 속 여성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순결한 처녀, 무지하고 가련한 가정주부, 깔끔하고 지적인 커리어우먼, 세련된 프리랜서, 발랄하고 순진한 소녀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녀들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속물적 계산법에 철저한 존재들로 판명된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거짓말은 당연하고 심지어 살인과 시체유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겉으로는 가부장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연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가장(假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발칙한 여성들. 한 마디로 그녀들은 배우다. 그녀들의 순진함, 순수함, 우아함, 섬약함, 섬세함 등이야말로 가장 그럴듯한 연기이자 가면이다. 그렇다면 여성다움이라는 가면 뒤에 가려진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진실된 본질이라는 것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서둘러 말하면 ‘아니오’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찾아본 단서는 다음과 같다. “솔직히 나도 가끔씩 내가 ‘오은수’를 흉내내며 사는 건 아닐까 궁금해요. 내 이름이 오은수가 맞는지, 내 이름과 진짜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가면을 벗긴다고 해서 그 속에 맨얼굴의 진실은 없는 것이다. 가면 속에는 또 다른 가면이 끝없이 포개져 있을 뿐이다. 소설 속 ‘오은수’가 평균적인 삼십 초반 싱글녀를 흉내 내며 사는 것처럼, 그러다가 실연한 여주인공을 흉내내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흉내 내며 산다.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에 본래의, 진실한 ‘오은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은수’의 원본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특히 상품들이 내쏘는 인공조명으로만 간신히 자신을 비추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아란 바로 그렇게 조각난 상품의 그림자들로 이루어진 투명한 그림자일는지도 모른다. 그림자 바깥은 없다. 그러니 실체도 없다. ‘오은수’가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부유하는 먼지처럼 하찮은 자신을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 ‘기준점’으로 선택한 ‘김영수’가 사실은 실체 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현실은 가장 진짜 같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정이현의 소설은 그런 진짜 거짓말의 세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번쩍거리는 상품들로 가득 찬 삼풍백화점이거나(‘삼풍백화점’), 거짓말로 꾸며낸 상품사용 후기로 도배된 인터넷쇼핑몰(‘1979년생’)과 같은 곳 말이다. 과장된 꾸밈과 거짓말로만 이루어진 바로 그곳, 영혼 없이 그림자놀이를 하는 그곳, 아케이드 서울이야말로 우리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표지에 그려진 붕 뜬 싱글녀는 오늘도 아케이드 서울을 유영한다.
〈심진경|문학평론가〉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