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의 허상

최근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만 18살 이상 성인 1000명과 학생 3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약 12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두 해 전에 견줘 약 1권이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 매체의 맹위 속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을 다행스럽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절망적이다.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삶의 공허를 견디는지, 혹은 파편화된 정보들을 어떻게 사유의 틀로 바꾸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책을 읽지 않고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자의 삶이지 세속인의 삶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공글리고 있는데 금방 어떤 기억이 아프게 틈입한다.

지난주 보았던 동네 서점의 풍경이 그것이다. 조그만 서점인데도 베스트셀러 매대에 순위표까지,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것은 어떻게든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서점인의 안간힘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대뜸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요즘 잘 나가는 책은 뭐예요” 하고 묻고는 베스트셀러 매대로 안내를 받더니, 그 가운데 한 권을 집어 들고 나가는 독자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시내 대형서점들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베스트셀러만을 너무 돋보이게 진열해 놓고 있는 것을 보면 절로 숨이 막힌다. 서점들은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하는 독자의 물음 앞에 무턱대고 베스트셀러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 독서량이 많지 않은 독자의 경우 많이 팔린 책은 무언가 미덕이 있겠지 하는 암시에 따라 구매에 이르게 된다. 베스트셀러가 더 잘 팔리는 사정은 비단 책에 한정된 것도 아니고, 또 우리나라만의 사정도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경우 사정이 좀 더 심각하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출판사가 많은 것도, 일단 그 순위표에 진입하지 못하면 팔릴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몇몇 서점은 그 매대의 운용을 위해 출판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우리 출판 시장은 규모가 작아서 시장 왜곡도 어렵잖게 일어난다. 과다 경품, 과다 이벤트 등으로 베스트셀러의 순위를 왜곡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기대하여 신간의 할인율을 높게 책정하는 마케팅 방식 정도는 아주 고전적인 예에 속한다. 해마다 거듭 논란이 되고 있는 사재기 문제 같은 것도, 속내를 살펴보면 베스트셀러가 되면 주어지는 과다한 부산물에 기인하는 것이다. 잘 팔리는 책에 대해 빈정대자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면 그 책의 성가보다 더 많은 보너스가 주어지는 점이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사실 옷을 살 때는 입어보고, 재봉 상태나 내구성, 필요성, 가격 적정성 등을 잘 따지는 사람들이 오직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사서 읽는 사정은 잘 이해 못하겠다.

책은 다양성 그 자체가 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독자도 이 점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출판 문화의 후진성이 불러오는 피해는 독자에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남들이 많이 보는 책을 나도 읽겠다는 것은 어떤 위안은 될지언정 앞서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간의 경우에만 한정해 보아도 매달 몇 천 종 출간되는 책 중 한두 권만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그 비율을 생각해보면 잘 드러날 문제다. 악화가 양화를 내몰듯 잘 팔리는 악서가 양서를 구축하는 사정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을 읽는 우리 국민 평균치에 가까운 독서량을 가진 독자라면 베스트셀러는 당연, 안 읽어도 괜찮다. 타인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가장 절실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 더 유익하리란 것을 부연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정은숙/마음산책 대표·시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01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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