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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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소설 중 가장 정치적이면서, 내가 파묵 소설 중 가장 맘에 들어하는 책.

문득, 나는 정치적인 인간인 걸까 생각하다가 아닌 사람이 있나? 반문했다. 
아무튼 [작가란 무엇인가](파리리뷰)에서 파묵은 이렇게 말했다.

 

 

 

서사시에서 분리된 현대의 소설은 본질적으로 비동양적인 것입니다. 소설가들은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공동체의 기본적인 본능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일단 그의 의식이 속한 공동체의 의식과 달라지면 그는 국외자, 외로운 사람이 됩니다. 텍스트의 풍요로움은 국외자의 관음증적 시선으로부터 옵니다.

일단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는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고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욕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제가 <>에서 생각하는 모델이죠.”

 

<눈>(2002)의 배경인 칼스라는 도시는 터키에서 가장 춥고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파묵이 인맥을 이용해 언론인 출입증을 발급해서 갔을 정도로 온갖 민족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곳이라 정치적 상황도 최악이었다. 그가 소설을 통해 말하려 했던 시대상이 그대로 소설에 나온다. 1999년도였는데도, 소설 속 공간은 마치 7~80년대 투쟁의 시대같이 느껴졌으니까.
이 소설의 분위기와 외지인으로 도착한 주인공 이름 “카를 보고 나는 단번에 카프카의 <성>을 떠올렸는데, 왜 파리리뷰(인터뷰어-앙헬 귀리아-퀸타나Angel Gurria Quintana)에서는 이걸 한번 안 물어봤지ㅎ?
이 소설에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극장 의자에 총탄이 날아가 박히던 순간을, 글인데도 슬로 모션으로 보이게 하던 멋진 서술이었다. 그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눈이 내릴 때면 한 번씩 떠올려보는 소설 속 명장면이라 하겠다.

 

저는 소설이라는 예술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소설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한 사람이 국외자가 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죠. 그러고 나서, 저는 정치적 소설을 써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답니다.”

 

네, 파묵 씨, 당신은 예술을 아는 소설가라고 저는 인정합니다. 예술을 감상용이나 기계적으로 아는 것과 몸소 체득하여 아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걸, 당신의 소설들을 읽은 전 세계 50만 명의 독자들은 아마 느꼈겠지요.

당신은 <순수 박물관>(2008)을 실제로 재현해 보여줬잖습니까^^ 

책 속에 있던 박물관 티켓을 그곳에 가 써먹지 못하는 상황이 슬프네요 ;_;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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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11 0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뭐야. 오르한 파묵을 그냥 한 페이지로 쓸 걸ㅡㅜ...컴 켜기 싫어서 모바일로 정리했더니 온통 오르한 파묵 도배가;;;
이런 식이면, [작가란 무엇인가] 한 권 다 읽기도 전에 페이퍼 50개는 거뜬히 넘기겠음;;;
아, 하루키도 입이 근질근질한데, 참자, 참아야 한다!
정리를 해라우~~ 엉엉

에이,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인간미 넘치는구만, 뭘! (또다른 패르소나)

cyrus 2015-04-1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묵의 소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순수 박물관>이에요. 두 권이라서 조금 지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AgalmA 2015-04-11 16:59   좋아요 0 | URL
저는 <새로운 인생>보고 파묵이란 작가를 새로운 작가로 알게 됐죠^^
요즘 소설들은 두 세권씩 내는 게 무슨 유행인지; 하루키 인터뷰 보니 독자들이 가지고 다니며 보기 쉽게 일부러 두 권으로 나눈다 라고 하는 말 들으니 또 수긍이 되는 듯도. 책 모으는 입장에서는 비용이 더 드니 불만이지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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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은 [작가란 무엇인가](파리리뷰)에서 질투가 제 모든 이야기의 주제가 되지요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기라는 주제(서구화를 열망하면서도 그 모방 욕구에 죄의식을 느끼는 터키의 심리성)를, 자전적이기도 한 이 소설의 형제 관계에서 구사했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로브그리예 <질투>도 떠올려 보았는데, 과연 작가는 그 시대와 문화적 배경, 개인 정체성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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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mi 2015-04-11 0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르한 파묵 작품 좋아하세요?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영문판이 책장 위에서 먼지만 쌓인 채로 바래고 있네요. 이번에 바쁜 일 끝내 놓으면 맘잡고 읽어봐야겠어요.

AgalmA 2015-04-11 02:54   좋아요 1 | URL
빨강이 두 권짜리라 저도 1권 조금 읽고 독파를 못 했어요; cocomi님의 멋진 리뷰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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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이 자신의 책 중 가장 추천하는 책으로 <검은 책>을 꼽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작가란 무엇인가](파리리뷰)를 보며 그의 언급들을 들으니 왜 그랬는지 알겠다.

흠모하던 보르헤스 + 칼비노 + 중국, 인도, 페르시아 구전 이야기의 알레고리를 프루스트 식으로 조합 + 다다이스트들의 콜라주 + 추리소설 플롯 + 미국에 살면서 그 문화에 대한 흥취 = 실험주의

이걸 알고 접근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반감을 낳을까, 더 큰 궁금증을 낳을까?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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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4-11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검은 책을 읽었는데요 두권 읽는데 근 보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정말 어렵게 읽었습니다. 무슨 미로를 헤메이는 듯 하구요.
역시 소생이 불초해서 그러겠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구요..

어쨋든 이야기가 겉으로는 집나간 아내를 찾는 이야기인데,
끝에 찾았는지 못찾았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어쨋든 아...어려워요..

AgalmA 2015-04-11 12:28   좋아요 0 | URL
이슬람 마니아답게 파묵책 열심히 독파하고 계시군요^^ 저도 파묵의 야심찬 책이라 벼르고 있는데, 왜 늘 독자들 버겁게 2권을 내서는 ㅜ
 

§

오르한 파묵 다섯 번째 소설 <새로운 인생> (1995) 첫 줄 어느 날 나는 책 한 권을 읽었고, 내 인생의 전체가 바뀌었다.”라고 쓰게 만든 소설!

[작가란 무엇인가] (파리 리뷰)에서, 파묵은 <소리와 분노> 펭귄 영어판과 터키어 번역판을 비교해서 읽었다고. 파묵의 화자와 시점 다양화의 촉발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된다포크너의 시점 변화들은 정말 예술! 우리 집에 <소리와 분노>가 있어 기쁘다ㅜㅜ

 

ㅡAgalma

 

 

 

 

 

 

 

 

 

(내친 김에 <소리와 분노> 소설 첫 문단도 옮겨본다)

울타리 틈 구불구불한 꽃자리 사이로 그들이 치는 게 보였다. 그들이 깃발 있는 데로 오고 있었고 나는 울타리를 따라갔다. 러스터가 꽃나무 옆 풀 속에서 뒤지고 있었다. 그들이 깃발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이 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들이 깃발을 도로 놓고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그가 치고 딴 사람이 쳤다. 그러더니 그들이 계속해서 갔고, 나는 울타리를 따라갔다. 러스터가 꽃나무에서 왔고 우리가 울타리를 따라갔고 그들이 멈췄고 우리가 멈췄고 러스터가 풀 속에서 뒤지는 동안 나는 울타리 사이로 보았다.
"어이, 캐디." 그가 쳤다. 그들이 목초지 저쪽으로 건너갔다. 나는 울타리를 붙들었고 그들이 딴 데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Agalma 첨언-‘깃발과‘울타리’가 온 문장 가득이다!(번역이 좀 수상쩍긴 하지만) 포크너는 일상적으로 보이는 듯한 상황을 굉장히 낯설게 하는 재주가 있다! 자, 이제 당신도 자신의 부엌이나 베란다를 낯설게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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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매초 새롭게 세팅되는 인생 아니던가요
    from 공음미문 2016-12-25 09:15 
    ● 인간은 선천적인 전도사이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2007년 끝머리에 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을 읽었다. 제목이 시기와 맞아떨어져서라기 보다 첫 문장 때문이었다. "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꿈꾸었다는 생을 했다. 어떤 책은 한 개인의 연상과 치밀한 우연과 사건들 속에 접전을 벌인다. 나도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네오 2015-04-11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크너 이 첫구절 정말 이상하지 않던가요? 오래전에 읽어서 잘 기억안나지만,,,소리와 분노,,계속 이런식으로 진행했던것으로 알고 있는데,,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포크너의 스타일,시점, 난해함, 캐릭터를 따라하면 노벨상 받을 수 있는 확률 확 올라간다고요~ 파묵 진짜 ㅋ

AgalmA 2015-04-11 12:40   좋아요 1 | URL
진짜 이상해요. 이 책은 원서로 읽은 분 얘기를 좀 듣고 싶더군요. 책이 얇으면 직접 봐볼까 할텐데ㅎ; 포크너 특유의 장문도 아니고 이건 다 단문인데도 기이하니 참 알 것 같으면서도 모호한 내용; 포크너 단편은 안 그렇던데, 장편은 정말 ˝미로 개장했는데, 들어 올래?˝ 이러는 기분-,-;

AgalmA 2015-04-1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크너를 제대로 보려면, 파묵처럼 원서로 봐야될 거 같아요. 다 읽고 나면 노벨상 도전? ㅎㅎ

네오 2015-04-11 16:56   좋아요 0 | URL
노벨상 도전? 한다고요 ㅎㅎ

AgalmA 2015-04-11 16:58   좋아요 0 | URL
일단 저는 원서 안 볼 거니까 탈락입니다ㅎ 한글 읽기도 바빠요ㅋ
 

 

 

 

 

 

 

 

 

 

 

 

 

 

 

 

 

 

 

 

 

 

 

 

 

 

 

 

 

 

 

 

 

 

 

§ ‘위안부’ 문제의 횃불이 세상에 언제 등장한 지 아십니까?

1992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발언의 근거가 된 위안부관계 문서를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한,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씨는 이렇게 말했다.

 

“19918월 한국에서 김학순 씨가 처음으로 본명을 밝히고 나왔다. 199112월에 일본군 위안부였던 두 분과 전 군인 군속 및 그 유족들이 함께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도쿄 지방 재판소에 제소했는데, 그 단계에서 일본 정부는 관여를 부정했으며 자료도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연히 내가 그런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조사해 19921월에 아사히신문에 싣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부정할 수 없게 된 정부는 관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주석 p292, 이하 페이지 언급들은 모두 이 책에 기반함)

 

 

양국(일본/한국) 정부의 회피만큼이나 한국 대중 또한 현실문제에 있어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그게 묻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위안부문제는 단순히 전쟁피해에 대한 배상차원의 과거사문제가 아니다. 저자 우에노 지즈코의 다음 말은, 역사 앞에 낱낱이 흩어져 있는 우리의 허점을 정확히 찌른다.

 

 

젠더사의 관점에서 위안부문제는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역사 방법론과 관계된 근원적 물음과 연결되고 있다. 그것을 위안부문제만큼 절실하게 나타낸 예는 없다. 단지 사실이라는 점에서 위안부’의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변화한 것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사실그 자체가 매춘(이라는 사실)에서 강간(이라는 사실)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피해자의 치욕에서 가해자의 성범죄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데 반세기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p141)

 

 

실증 사학 아래 일본의 자유주의 사관파는 위안부문제에 대해 구술이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고 공문서 사료가 없다는 식으로 문제를 일축했으나, 앞서 소개한 요시미 요시아키 씨 같은 역사의 진실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이가 있어 사료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고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다. 사료가 있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지배 권력 측이 요구하는 정통 사료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되는 또 다른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다. 이거 지금 이 사회에서도 많이 느껴지는 점 아닌가? 세월호 가족들과 뜻을 합친 사람들이 찾아낸 증거들, 난항이 거듭되고 있는 세월호 특위 · 특별법과도 연결되지 않는지?

이제 법리 싸움은 다음을 말한다. “법리는 위정자(강자) 측 사정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때 법적 투쟁이란 사전에 '상대방의 씨름판'에 올라갈 것을 강요받는 불리한 싸움”(p149)이라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가 전쟁 당시에는 (납치, 강제에도 불구하고) '공창제'가 합법이었다는 것과 거슬러 올라가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리상의 벽에도 막혀 있다. 이미 박정희 정권일 때 알량한 배상금까지 받아 챙긴 마당 아닌가(※그 돈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어디로 간 건지 행방도 묘연하다). 또 세월호 생각이 겹치지 않는지? 피해보상금도 주는데 국민 세금 낭비해서 굳이 선체 인양은 왜 하는가, 말하는 자들의 논리 말이다.

 

 

이런 역사적 인식의 문제들은 어느 나라든 현재적인데,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입구에 있는 테오도어 루즈벨트 동상에 대해서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p150, 주석 p293)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동상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은 게 인터넷에 아주 많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느끼며 코멘트를 달고 있는 글은 발견할 수 없었다. 내 글에 누군가의 사진이 언급되는 게 실례일 것도 같고, 저작권 문제도 있어서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한번 찾아보시길. 얼마나 이상한 동상인지. 루즈벨트는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있고, 그 양편으로 흑인 노예와 아메리카 원주민이 수행자처럼 있다. 식민주의적인 표상이라고 원주민 단체가 항의하고 있음에도, 이 동상은 미국의 노예제, 정복사(“원주민 관점에서는 학살”)에 대한 반성의 허위성을 보여주며 굳건히 거기 서 있다.

 

 

저자는 위안부문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으로,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여성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억압해 온 고통의 기억과 침묵의 시간을 깨고 증언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1961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에 유대인 피해자들이 증언하기 위해 나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피해의 기억은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과 그것을 들으려 하는 귀가 존재함으로써 처음 현실로 떠오른 것이며, 그곳(아우슈비츠-Agalma 해석)에 누가 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죄-Agalma 해석)로서 있는 그대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p158)고 말이다.

그들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다. ‘위안부문제도 과거의 사실이 아니며, 1년 전 세월호의 억울한 죽음과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도 결코 과거의 사실이 될 수 없다. 내가 여기서 다 언급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시대의 피해자분들의 아픔도 과거의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아닌 것을 아니었다로 끝내고 넘기지 말아야 하며, 끊임없이 역사와 사실을 재심해야 한다. 진실이 하나인 것처럼 믿고 싶어 하지만, 역사는 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그 역사를 만들어 온 우리 자신처럼. 어제의 고민과 내일의 고민을 동시에 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처럼.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한-일 양국 간의 정치적 쟁점인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반세기가 지나 용기를 갖고 싸우려 나섰음에도 별다른 해결도 보지 못한 채 한 사람씩 숨을 거두는 이 사태가, 얼마나 더 지속될까, 나는 아득하다. 그녀들이 끌려나갈 때 말리지도 못했고, 돌아왔을 때 안아주지도 못했던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그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은 다 어디로 간 건가. 그 뜻을 이을 형제자식도 없이 다 굶어 죽었나. 위안부 할머님들이 1991년 그렇게 나선 지 올해로 벌써 24년이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비참했던 이 1년을 생각해보건대, 반세기 이후에는 세월호 참사 문제도 해결되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 이 횃불들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책은 역사라는 허위, 가부장제 권위주의 사회의 허위, 국가와 국민화의 허위 속에 창부로 끌려 나간 여성만의 문제를 담론하고 있지 않다. 저자가 일본 작가지만 오히려 보통의 한국 사람보다 문제를 더 잘 직시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자는 취지가 아니라, 이 책은 인권,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책이라 모두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세월호]와 관련된 책들 또한 마찬가지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것으로 끝내지 말자. 읽고 그다음엔 반드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생각하고, 알리고, 외치고, 모이고, 일어서 나가야 한다. 내 속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어디 있든 출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만난 듯 사람을 향해.

 

 

 

 

Agalma

 

 

 

 

 

 

 

Jan Garbarek [Officium] ( ECM 2125,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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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4-1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접근했고 일본의 힘이 생각보다 쎄서 쉽지 않네요. 세월호, 자원비리문제, 고위직 청문회 등을 보면 우리나라에 진정한 청문회, 조사라는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듭니다. 정파를 초월한 조사,청문회는 불가능한가 봅니다. 공격하는 자도 방어하는 자도 모두 마음에 안들어요....

AgalmA 2015-04-10 14:58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요. 아마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힘은 여론을 크게 일으켜 물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텐데 `(그들에 의한) 언론 탄압` `잘못된 언론` 탓을 하며 무력해지진 말아야 할 문제겠지요.

네오 2015-04-1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세월호도 위안부문제처럼 해결돼지 않고 길어질수 있단말이죠?

AgalmA 2015-04-10 15:06   좋아요 0 | URL
안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자원외교문제, 총선 등등 국직한 사안 생각해서 눈치보기 밑밥만 계속 던질 공산이 크지요. 천안함도 사실 덮힌 거잖습니까

네오 2015-04-1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뭐,.이번에 세월호특위도 그런유형이겠죠, 시행령이 유족의 뜻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못해서요,.전 그런의미에서 국회의원정수를 좀늘려으면 해요, 다양한 민의를 좀더 전파하도록 거 왜, 2등도 국회에 진출할수만 있다면 괞잖은데 말이죠,

AgalmA 2015-04-10 16: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지지부진했던 특위 과정 보면서 누가 그렇게 생각 안했겠습니까(보수x통 빼고)
저도 국회의원 정족수 늘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놈이 그놈이다, 세금먹는 식충이라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일할 국회의원을 뽑으면 되는 거죠.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데, 의지하고 전가하기만 할 시대가 아니라는 걸 국민 모두가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오 2015-04-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일할이라는 말에 격하게 동의할수밖에 없군요,. 그런데 이글 끝에 행동하라고 요청했는데 그 실천적 방안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냥 직설적으로 진보정당에 가입을 권하고 싶군요, 혼자만의 게토화로 머물지말고 정당정치가 제대로 운영되도록이요,

AgalmA 2015-04-10 19:00   좋아요 0 | URL
네, 동의합니다. 진보쪽이 너무 흩어져있어 개인이 다 추스리기 어려운 감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정당가입, 언론의 바로 세움을 위해서는 뉴스타파, 국민Tv, 여러 팟캐스트 등 후원의 형식도 소극적이지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저도 동참하고 있어요.
그 언론이 죽었으면 이 언론으로 다시 살릴 수도 있는 거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0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회의원 수는 늘리고 대신 월급은 깎아야죠. 제가 알기로는 국회의원 세비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입니다. 우리보다 부자나라인, 보수들이 복지병에 걸렸다고 그렇게 씹던 북유럽 복지 강국은 오히려 한국보다 1/2배, 1/3배 세비가 낮습니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얼굴 마담들만 국회 진입하는 걸 막을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국회의원을 국회에 진출 시킬 수 있으니깐 말이죠. 세비 70% 삭감하고 대신 국회 의원 수 늘리면됩니다. 그러면 비용 부담이 늘지 않으니 말이죠.

AgalmA 2015-04-10 16:09   좋아요 0 | URL
네, 국회의원 한 사람당 1억 3천인가? 연봉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서 등 수행원 월급은 별도인지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지금의 급여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월급 깎는 거 동의합니다 ㅎ! 월급 적어서 싫다 그러면 국회의원 하지 말라죠. 국민이 월급주는 사장 아닙니까ㅎ
저는 공무원 연금도 실적에 따라 차등분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MB는 혜택을 받을 사람이 아니고, 손해배상을 해야 할 1순위고요.

양철나무꾼 2015-04-10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심오한 페이퍼에 또 음악 얘기를 하는 불초한 소생을 용서해 주새요.전 얀 갸바렉을 그냥 간과할 수 없었다는~--;

AgalmA 2015-04-10 23:55   좋아요 0 | URL
심오는 제게 붙일 게 아니라 역사 자체겠지요. 이런 글은 책임감이 많이 느껴져서 맘이 참 무거워요.
얀 갸바렉 음악 들을 때마다 차렷 자세하게 하는 엄중함이 있죠^^...들을 때마다 감상용은 정말 아니다 합니다ㅎ
양철나무꾼님 뽐뿌 덕분에 작가란 무엇인가 당장 빌려 읽고 있어요ㅎ! 유용하면서도 재밌는 책이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