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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
오르한 파묵 소설 중 가장 정치적이면서, 내가 파묵 소설 중 가장 맘에 들어하는 책.
문득, 나는 정치적인 인간인 걸까 생각하다가 아닌 사람이 있나? 반문했다.
아무튼 [작가란 무엇인가](파리리뷰)에서 파묵은 이렇게 말했다.
“서사시에서 분리된 현대의 소설은 본질적으로 비동양적인 것입니다. 소설가들은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공동체의 기본적인 본능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일단 그의 의식이 속한 공동체의 의식과 달라지면 그는 국외자, 외로운 사람이 됩니다. 텍스트의 풍요로움은 국외자의 관음증적 시선으로부터 옵니다.
일단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는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고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욕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제가 <눈>에서 생각하는 모델이죠.”
<눈>(2002)의 배경인 “칼스”라는 도시는 터키에서 가장 춥고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파묵이 인맥을 이용해 언론인 출입증을 발급해서 갔을 정도로 온갖 민족들이 부대껴 살아가는 곳이라 정치적 상황도 최악이었다. 그가 소설을 통해 말하려 했던 시대상이 그대로 소설에 나온다. 1999년도였는데도, 소설 속 공간은 마치 7~80년대 투쟁의 시대같이 느껴졌으니까.
이 소설의 분위기와 외지인으로 도착한 주인공 이름 “카”를 보고 나는 단번에 카프카의 <성>을 떠올렸는데, 왜 파리리뷰(인터뷰어-앙헬 귀리아-퀸타나Angel Gurria Quintana)에서는 이걸 한번 안 물어봤지ㅎ?
이 소설에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극장 의자에 총탄이 날아가 박히던 순간을, 글인데도 슬로 모션으로 보이게 하던 멋진 서술이었다. 그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눈이 내릴 때면 한 번씩 떠올려보는 소설 속 명장면이라 하겠다.
“저는 소설이라는 예술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소설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한 사람이 국외자가 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죠. 그러고 나서, 저는 정치적 소설을 써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답니다.”
네, 파묵 씨, 당신은 예술을 아는 소설가라고 저는 인정합니다. 예술을 감상용이나 기계적으로 아는 것과 몸소 체득하여 아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걸, 당신의 소설들을 읽은 전 세계 50만 명의 독자들은 아마 느꼈겠지요.
당신은 <순수 박물관>(2008)을 실제로 재현해 보여줬잖습니까^^
책 속에 있던 박물관 티켓을 그곳에 가 써먹지 못하는 상황이 슬프네요 ;_;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