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의 '의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리영희 선생께서 돌아가신 것이 작년 12월 5일이고 이 책이 출판된 것이 작년 12월 10일이니 일주일도 채 안된 상태에서 <평전>이 나온 것이 아닌가? 고인의 명성에 기대어 질 낮은 책이 출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작년에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이라는 수준 이하 책이 바로 출판되어 심기를 어지럽혔던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책 역시 그런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안타까운 점은 이 책이 출판 후 한동안 잘 팔렸다는 것이다. 특히 글쓴이 약력을 보면 법정 스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우리 나라 독자들은 책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고 리영희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평전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글쓴이 역시 독립기념관장 및 [친일인명사전] 편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20년 전부터 신문 등에서 고 리영희 선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왔으며 고 리영희 선생님과의 마지막 인터뷰까지 실려 있는 등 앞서 소개한 책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혹여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평전>을 읽고 서평 혹은 리뷰를 쓰는 것은 고역이다. 특히 이 책의 경우 내가 고 리영희 선생에 대해 잘 알면 모르겠거니와 읽어 본 책이라고는 고작 [대화] 밖에 없고 이른바 민주화 투쟁의 열매를 먹고 자란 세대인 나는 고 리영희 선생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적으로 읽기 보다는 책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긍정적 독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 전제로 하고 이 책에서 나타난 고 이영희 선생의 삶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고 이영희 선생님의 삶을 몇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겠지만 거칠게 표현하면 곡학아세 하지 않고 진실과 민주, 평등을 추구하며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해있던 반공주의의 이면을 낱낱히 밝혀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라고 추앙받는 반면에 다른 한 편으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전자인 진실과 민주화를 추구했다는 점보다는 반공주의의 진실을 밝혔다는 점을 좀 더 높게 평가하고 싶다. 

  반독재 민주화를 추구했던 사람은 많았던 반면에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정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비판했던 사람은 드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 때문에 말 한 번 잘못하면 콩밥을 먹어야 했던 일이 비일비재했고 좌빨 혹은 빨갱이라는 낙인은 주홍글씨처럼 평생을 따라다녔으며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다. 그러나 고 이영희 선생께서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에게 '진실'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계속된 반공 교육의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를 읽기 시작하면서 였다. 그 당시 이 책을 읽고 한국전쟁의 진실에 눈을 뜨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전후 남한 사회에 작용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고 리영희 선생에게 바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고 리영희 선생의 제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셈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고 리영희 선생에게 한 가닥 빚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들처럼 투쟁 전면에 나설 용기가 없는 나로서는 고 리영희 선생에 대한 빚을 갚는 방법은 '표'를 행사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나마 대한민국이 다시 잃어버린 5년을 되찾아 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게 된다면 고 리영희 선생께서도 웃음을 지으시리라. 

  마지막으로 좀 더 첨언하자면 이 책은 글쓴이 김상웅 교수가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연재했던 것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각 챕터의 이음새가 허술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승전결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챕터가 독립적이라 챕터가 바뀔 때마다 뭔가 허전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사진을 넣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독자에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사진이 많았을텐데….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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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실 오마이뉴스 연재글이었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사진자료가 더 풍부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의 활자만 읽는 것도 사실 고역이었구요,,^^;;
부동님이 언급하신 김동춘 교수의 책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암향부동 2011-02-15 22:47   좋아요 0 | URL
김삼웅 선생님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입니다. 가보시면 이영희 선생뿐만 아니라 조봉암 선생, 장준하 선생님 등에 대한 평전도 올라와 있더군요.

그리고 사진 자료는 편집 과정에서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사진 자료 같은 경우는 저작권 문제가 생길까 염려되긴 하지만 아시는 분이 출판계에서 일하시는 분이 많으신데 들은 이야기로는 이런 사진 자료 같은 경우는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사진을 찾아서 보내면 전문적으로 라이센스를 받아주는 곳도 있다고 하더군요.어쨌든 아쉬운 점입니다.

그리고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는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는데 아래 주소입니다. 한 번 소개글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2613208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아브람 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지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아직 노암 촘스키와 미셸 푸코의 책을 읽어보지 못하였다. 책 읽는데 있어서도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을 읽기로 결심하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시간 순서대로 차례대로 읽어 나가는 버릇이 있다. 이렇게 읽는 이유는 어떤 사람의 대표작만 읽기 보다는 과거부터 읽어 나가 그 사람의 생각의 변화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노암 촘스키의 책은 아직 사지도 못했고 푸코의 책 중 구입한 <성의 역사 1~3권>은 구입해 놓고 먼지만 쌓여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던 중에 두 철학자의 대담과 경연, 성명서를 실어 놓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생각보다 책 두께가 얇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도서관에서 정독하였지만 나의 지적 능력의 한계만 절실히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 소개에서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발언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은 글이기 때문에 쉽고 간결하다.'라고 하였으나 사실 좀 의문이다. 그리고 1장의 대담, 2장의 촘스키의 정치에 대한 글 이후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신념과 생각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두 분 철학자의 대담에 감히 끼어들고자 한다.


 일단 대담에서 가장 큰 화두는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언어 학자 답게 어린이의 불가사의한 언어 습득 능력을 전제로 이를 긍정하고 있는데 반해 푸코는 인간성이라는 개념은 주로 인식론의 지표에 지나지 않았고 시대별 틀의 소산이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진화론자이자 생명과학자 입장에서 촘스키의 입장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즉, 진화를 통해 자연 선택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DNA에 새겨져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전과 DNA를 강조하다 보면 나쁜 과학인 '우생학'에 경도될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푸코가 이렇게 타고난 인간 본성을 부정하는 것 역시 이에 대한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나 그렇다고 사실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생학의 문제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지 우생학을 정치 권력을 어떻게 이용했다는 것은 부차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연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담이 이어진다. 나는 여기서는 반대로 푸코의 편이다. '어느 경우든 정의라는 개념은 계급사회에서 억압받는 계급이 자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 혹은 그 주장을 정당화하는 개념', '만약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과연 사람들이 정의라는 말을 사용할지 확신이 안 섭니다.'(p.80) 라는 푸코의 주장이 타고난 인간 본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정의도 그 중에 하나 라는 촘스키의 의견보다 더 타당해 보인다. 특히 만약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하면 사람들이 정의라는 말을 사용할지 궁금하다는 푸코의 생각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지적이라고 여긴다.

 마지막으로 2장에서 촘스키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국 사회가 좌익, 마르크스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저는 만약 합리적인 파시즘 독재정권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미국 체제를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복잡하고 더 분산된 체계로 이데올로기 통제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마당에, 국가 차원의 검열은 필요치 않고 심지어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p.119)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베트남전 반전 운동을 하면서 앞으로 미국은 이렇게 '정의'를 외치며 침략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지적한 촘스키 교수의 말은 역사를 통해 반성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역사는 반복됨을 느끼게 된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의 입을 빌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조롱하는데 익숙해져 있어'라고 지적하였다. 나 역시 때로 이렇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만났을 때 글쓴이나 번역자가 읽는이와의 소통을 소홀히 생각했다고 비판을 많이 하였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나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겸허히 깨닫고 언제가 다시 촘스키와 푸코를 제대로 만날 날을 기약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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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2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는데 애먹었어요. 저의 무지함을 자책하면서요.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구입해서 마음 먹고 읽으려고 해요.
가격이 좀 만만치 않지만요.^^;;
설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진보집권플랜>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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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가 집권을 해야할까?   

 2MB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주장하면서 2007년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잃어버린 5년'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 책 143쪽에서 언급하듯이 '사람의 입맛이라는 것은 하방경직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좋은 것을 맛보면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요.'라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 맛을 보고 나서 2MB 정권 출범 이후 그 수준이 떨어지자 짜쯩이 나는 것이 바로 잃어버린 5년을 우리가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2012년에 다시 진보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과연 다시 한 번 진보가 집권할 수 있을까? 아니 왜 진보가 집권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는바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되어 줄 것이다. 간만에 추천하는 별 5개짜리 책이니 만큼 웬만하면 일독 하기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간만에 책 읽는 재미를 주는 책  


 그 동안 고시 공부를 하면서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그 원인은 공부 시간 확보를 위해 부득이한 면도 있었지만 책 자제가 주는 '재미'가 덜했던 점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간만에 나에게 책 읽는 재미를 다시 찾아준 책이다. 점심도 걸러가며 3시간을 집중해서 책을 읽었으니 까다로운 나의 독서 편력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이다. 

 딱딱해 보이는 대담집인 이 책에서 나는 어떤 재미를 찾았을까? 기본적으로 이 책의 대담자인 두 분의 견해와 나의 견해가 비교적 일치했다는 점도 그 원인이겠지만 내가 그동안 무심코 넘겨 왔던 여러 진보에 대한 이야기와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 '재미'를 가져다 준 것 같다.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가?  

 과거 선배에게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진보'=국가보다는 개인의 기본권과 행복을 중요하다 여기는 것 vs '보수'=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를 중요시 여기는 것 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크게 보면 두 집단이 동일하다고 하였었다. 즉, 개인이 행복해지고 강해지면 그 집단인 국가가 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반대로 국가가 강해지면 그 구성원인 개인이 행복해지고 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단순하게 진보와 보수를 나눌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26~27쪽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중언하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나라는 진보가 심각한 과소 상태에 있고 역사적으로 보면 보수를 자체하는 사람이나 정당은 친일파 및 기득권 옹호자이고 그들이 말하는 '자유주의'라는 것이 사실 가진 자의 자유만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진보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는 조국 교수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그런만큼 나는 진보의 입장에서 이 책을 살펴 보아 어떻게 해야 진보가 다시 집권 할 수 있을지 대담자와 함께 고민해 볼 것이다. 
 


다시 진보가 집권할 수 있을까? 


 일단 다시 진보가 집권할 수 있는지 따지기 전에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진보가 집권하면서 잘못한 일에 대해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조국 교수는 진보가 과거 추상적 모델 논쟁에 빠져 대중이 고통을 느끼며 개선을 원하는 구체적인 생활 경제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p.66)과 이른바 왕이 되기를 포기한 영주가 되어 혁신에 미흡했기 때문(p.69)이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정치인, 지식인과 그러지 않은 진보-개혁 진형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p.71)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 첫 번째 이유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이른바 <무상급식>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지방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대선이나 총선에서는 <뉴타운>이라는 프레임에 의해 참패하고 말았던 것이다.(사실 나는 당시 노원갑의 유권자였지만 노회찬이 홍정욱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과감히 이슈를 선점하고 실천하는 진보가 되는 것이 진보 집권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세습과 학벌 사회에 대한 조국 교수 생각에 대한 비판
 

 그러나 삼성 세습에 대한 생각은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삼성의 이중성에 대한 오연호의 질문에 "문제는 있지만 잘나가는 대기업 말고 문제도 없고 잘나가는 중소기업군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p.59)이라는 조국 교수의 답변도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아쉬운 답변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의 예를 들면서 가족기업도 가능하고 세습도 인정할 수 있지만 내부의 '경영의 민주화'가 필요하다(p.123)고 하였는데 노조의 경영 참여을 인정하면 소수의 지분으로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지배하고 세습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학벌 사회에 대한 문제도 그렇다. 조국 교수는 "국공립 대학 통합네트워크"안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며 '서울대 분할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건 나는 두 개의 서울대를 만드는 안일 뿐 학벌 사회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벌 사회와 사학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대학을 전부 국유화하여 적은 등록금으로 어느 곳에서나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서울대를 두 개로 나눈다고 학벌 문제가 해결될까? 이를 보면 조국 교수도 서울대 출신의 모교 교수니 어쩔 수 없이 서울대 교수라는 기득권 보호에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진보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길….  

 오연호는 마지막에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의 매력은 '그가 내세우는 가치', '그의 인간 됨됨이', '권력의지'를 통해 나온다고 하였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번 만큼은 노무현 대통령때와 달리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그 사람 옆에서 지켜줄 것을 다짐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p.s) 조국 교수는 MLB파크의 불펜을 언급하면서 20~30대가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으로 소개하였는데(p.50)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유시민 후보가 인증샷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한 공간이다. 다만… 자정 무렵에는 게시판에 가보지 않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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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전라도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2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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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은 책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중 <전라도 편>이다. 전라도 곳곳을 직접 다니면서 이중환의 택리지를 다시 쓴 책인데 리뷰를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 관심있는 지역에 대해서 발췌해서 쓰는 형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도]를 첨부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같은 서울 촌놈은 구례, 고부, 정읍과 같은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 책을 읽으면서 마치 다른 나라 지역 소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완산(전주) : 후백제의 견훤 - p.54~61

 

 오늘날 후백제에 대해 남은 사료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뿐일 것이다. 그러나 김부식의 경우 신라→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한 나머지 고구려와 후백제에 대해서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후백제의 견훤은 삼국사기 50권 끝에 보면 매우 사악하고 잔인한 악당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것을 감안하면 사료에 남아 있는 견훤에 대한 평가는 잘 걸러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 신정일은 '대다수의 학자들은 자료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한 늘어놓고 있으며 물왕말 일대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라 곳곳에서 소설 속 인물들까지도 부활되고 있으며 지역마다 잊힌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혈안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p.61)

 

 

 

전주 : 정여립은 모반자인가 그 시대의 스승인가? - p.63~74

 

정여립 모반사건, 혹은 기축옥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에 일어난 것으로 천여 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에 대해서는 기존 사서에서 모반자로 혹세무민하는 사람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다가 단재 신채호에 의해 점점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인물이다. 정여립은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대동계를 조직하고 학문과 예법 뿐만 아니라 육예(六藝) -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모두 가르쳐 주는 등 기존 성리학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 사람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남에서 학문하는 사람 중에 정여립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모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자살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 사건이 임진왜란 3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은 임진왜란 때 국토가 유린된 이유가 기축옥사를 통해 수많은 조선의 인재들을 희생시킨 벌로 일어났다고 수근거렸다고 한다. 특히 <관동 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이 기축옥사를 담당했는데 자신의 당파(서인)을 위해 동인을 무차별 처벌하여 '인간백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도 신선하다. 정말 정여립 모반사건은 조작된 것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그리고 만약 기축옥사 때 조선의 인재를 죽이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의 피해가 이렇게 컸을까? 역사엔 '만약'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심히 궁금해진다.

 

  또한 단재 신채호는 근대에 들어 정여립 모반 사건에 대해 재조명하면서 아래와 같이 평가하였다.

'이미 안정된 사회의 인물은 늘 전 사람의 필법을 배워서 그것을 부연하고 확장할 뿐이니, 인물 되기는 쉬우나 그 공이나 죄는 크지 못하며, 혁명성을 가진 인물(정여립 같은)은 매양 실패로 마칠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한 말이나 한 일의 종적까지 없애 버림으로써 후세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영도(零度)되고, 오직 3백 년이나 5백 년 뒤에 한두 사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이가 있어 그의 유음(遺音)을 감상할 뿐이요… 인격적 자주성의 표현은 없고 노예적 습성만 발휘하여 전 민족의 항성을 파묻어버리고 변성만 조장하는 나쁜 기계가 되고 마나니, 이는 사회를 위하여 두려워하는바요, 인물 되기를 뜻하는 사람이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이다.' 즉, 안정된 사회에서는 큰 인물이 나기 어렵고 혹여 혁명적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이렇게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이 우리 나라 역사에 몇 명이나 될까?

 

 

 

고부, 정읍 : 조병갑과 동학농민운동 - p.134~148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좋은 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있지만 <조병갑>처럼 탐관오리로 오늘날까지도 악명을 떨치는 방법도 있다. 어찌되었건 조병갑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실력자이던 조 대비의 조카이자 이조판서 심상훈과 사돈 간이었는데 가장 큰 평야가 있던 고부에 군수로 부임하면서 사단이 발생하게 된다. 그의 악행에 대해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보다 웃긴 것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고부군수에서 파면된 후 새롭게 고부군수에 임명된 사람들이 전부 군수 임명을 거절하였고 1년 동안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 척하다가 복권되어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는 점이다.

 

 신임 고부 군수가 부임을 거절한 것은 이른바 '빽'이 좋았던 조병갑의 유임 공작이 치열했고 빽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였으며 특히 근신하는 척하다가 고등재판관으로 승진되어 오히려 동학교주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보면 당시 조선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에게 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보인다.

 

 

 

나주 : 임나일본부설 - p.218

 

글쓴이는 이 책에서 나주시 반남면 자미산 일대에는 나주 반남 고분군이 있는데 그 고분군의 주인공을 마한의 부족장으로 보고 있으나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마한은 서쪽에 있는데…남쪽은 왜(倭)와 접해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에 접해 있다.'고 기록된 것을 근거로 왜는 현재의 나주 일대에 근거해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에 두고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맞섰던 강력한 정치 집단의 하나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주 반남 고분군은 한반도 내에서는 그와 같은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으며, 일본의 천황릉으로 추정되는 고분군들과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허구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한편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fact)가 있다면 무조건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한 번 진지하게 사실 유무에 대해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나 일본이나 스스로에게 불리한 역사는 감추려고 노력하는 마당이라 진실은 저 너머에 계속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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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지금 국사학과에
다니고 있는 역사학도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에게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했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라 전공도 국사학과을
선택했는데,,, 이 친구가 역사책만 보지 말고 과학책 읽기를 권해주고 싶네요.
 
<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참 게으른 것 같다. 맨 처음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고 이번에는 되도록 빨리 읽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12월 중순에 기말고사, X-mas, TOEIC 시험으로 이어지는 콤보에 정신줄을 놓다가 이제야 바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나마 2010년을 지나기 전에 다 읽은 것이 다행이랄까? 2011년에는 좀 더 독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시간 계획을 잘 짜기로 결심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 내용에 대해 살피기 전에 이 말은 하고 가야겠다. 나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를 싫어한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서점에서 재구입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대중이 좋아하는 책이란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편하게' 해주는 책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편한 책' 보다는 읽고 나서 나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책'(뭔가 끓어 오르게 만드는 책)이 더 좋은 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인 Michael J. Sandel 교수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상하게 '불편한 책'이면서도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던 책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이명박이 휴가 때 이 책을 가져가 읽었기 때문이라는데 있다. 정의와는 수억 광년 떨어진 듯한 이명박이 이 책을 읽었다는 점도 우습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보면 행동하지 않는 독서는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모습도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독서는 편한 현실도피 수단이 된다는 내가 존경하는 어느 분의 자조적인 말씀이 현실화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누구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면 칭찬을 하지 이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다. 과연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물론 어느 정도 독서량을 이룰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과거 소극적인 지식인과 같이 책만 많이 읽는다고 모든 것을 해결되지는 않는다. 바로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다면 독서가 현실도피 수단이 되는 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나는 여기서 주로 '스포츠(Sports)의 상업성'에 대한 글쓴이의 주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나 자신이 FIBA 공인 농구 2급 심판이고 여자보다 농구가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포츠와 관련된 글쓴이의 주장에 관심이 갔다. 먼저 글쓴이는 "VIP 관람석의 확대가 팬들과 경기 사이의 관계, 그리고 팬들 사이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일으킨다."(p.33)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그리고 스포츠 구단이 이익을 내는 미국 사회에서는 모르겠으나 대다수 모기업에 의존하고 적자에 허덕이는 국내 스포츠 구단에서는 이익을 낼 수 있는 VIP 관람석 문제를 이렇게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또한 이른바 '연고 이전' 문제도 글쓴이는 지적한다. 연고 이전은 K-리그에서 <북패륜>, <남패륜>으로 불리는 경우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에서도 현대가 인천을 버리고 서울로 입성하기 위해 수원으로 야반도주 했던 적이 있었다. 이는 구단주들이 좀 더 이익되는 큰 시장이나 좋은 입성 조건을 제공하는 지자체로 이전하기 때문으로 이를 막기 위해 글쓴이는 지역 사회가 스포츠 구단의 주인이 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p.37) 나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수많은 미국 프로 구단에서도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 적용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배아문제>에 대해 살펴 볼까 한다. 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배아>, 특히 <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과거 불교계에 계시는 분과 어디부터 생명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그분은 <배아>부터 생명으로 보고 배아를 이용한 연구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셨다. 그러나 "만약 배아가 생명이라면 수정된 이후 착상되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살인으로 보아야 합니까?"라는 저의 질문에 말문을 돌리셨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글쓴이도 본질적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그러나 87쪽에서 91쪽에 이르는 부분은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글쓴이의 태도가 굉장히 애매하게 나타나 있다.) 나는 배아는 본질적으로 '생명'이 아니며 착상 후 심장과 뇌가 생기는 순간부터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배아 연구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은 배아 연구 윤리에 대한 교육 및 강력한 가이드라인 규제가 동반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글쓴이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왜 도덕인가>를 통해 다시 한 번 '정의''도덕'에 대해 살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었다고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좀 더 정의로워졌는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 저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아 좋은 책 읽었다'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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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과 전공하시는 분답게 생명윤리 쪽으로 서평을 쓰셨네요,
이런 관점의 글을 읽어볼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생명윤리에 관한 샌델의 입장을 알 수 있는 책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있습니다.
저는 나름 흥미롭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정의><도덕>의 인기에
미치지 못한게 아쉽기도 했습니다. 저는 <도덕>보다 먼저 <생명의 윤리>를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