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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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나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 가끔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통해 여러 한국 옛 그림을 보아 왔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수 많은 평품을 보면서도 전혀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저 멋진 그림이네 딱 이정도 생각 밖에는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은 후에 비로소 옛 그림을 어떻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만큼 그 책은 우리 문화 안내서로는 최고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오주석의 책을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그 중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다. 이 책에는 9명의 화가의 12개의 옛 그림이 담겨 있는데 처음 옛 그림을 만나는 사람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많은 그림과 친절한 설명이 담겨 있는 책이다. 순서대로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담겨 있다.

 

 일단 김명국의 <달마상>에서는 흑색 외에 '색이 없는 이유'에 대해 글쓴이는 설명한다. 불가에서 색(色)은 존재를 가리키고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정신의 흐름이 치열하게 나타난 달마상에서는 나타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수묵화는 채색화가 완숙 단계에 접어든 이후 나타난 것으로 무채색을 통해 순수하고 검소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색이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존에 화려한 원색이 아닌 수묵화가 동양에서 발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색깔을 내는 염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나라가 흰색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염료가 없기 때문이지 실생활에서 때가 많이 타는 흰색을 많이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주석 선생은 이와 다르게 해석하는데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안견의 명작 <몽유도원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몽유도원도에 대해 아는 것은 오직 안평 대군의 꿈에 나타난 도원을 안견이 그린 그림인데 현재 일본에 있다는 것 정도만 국사 시간을 통해 알고 있었다. 국사 책에 나온 몽유도원도 그림은 너무 작고 흐릿하여 '이것이 왜 이렇게 명작이라고 칭송받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였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몽유도원도에는 서양의 일점투시도법과 다른 동양의 삼원법, 즉, 고원법(깍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쳐다본 시각), 심원법(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 본 시각), 평원법(높은 곳에서 아래 쪽은 폭 넓게 조망한 시각)이 골고루 담겼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다만 글쓴이는 "서양의 일점투시는 일견 과학적인 듯 보이지만 카메라 앵글처럼 포용력이 부족한 관찰 방식이며… 동양의 고차원적 인본주의, 즉 회화적으로는 삼원법에 의해서만 충분히 표현된다."라고 이야기한다.(p.81) 이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사대주의 혹은 서양중심주의도 문제지만 우리 것만 최고라고 여기는 태도 역시 역겹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윤두서의 <자화상>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히 이 그림은 극사실로 그려졌지만 귀, 목, 상체도 없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충격적이라고 부를만큼 지나치게 강하고 날카롭기만 했던 느낌을 받게 되었으나 실제 옛 사진 속의 모습에는 유탄(柳炭)으로 상체가 그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미완성작으로 남겨진 이유는 이 후 표구상이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문지르다가 지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윤두서의 모습은 얼굴만 남은 강하고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었다.

 

 이어서 유명한 김정희의 <세한도>를 살펴보자. 사실 세한도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어왔다. 즉, 작품 속의 집은 그 오른편이 보이는데 둥근 창문을 통해 본 벽의 두께가 어째서 왼편에서 바라본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와 지붕은 뒤로 갈수록 줄어들어 원근법을 쓴 듯 한데 아래벽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조금씩 높아져 역원근법에 가까우며 지붕의 오른편 시선도 앞쪽에 비해 뒤쪽이 훨씬 가파르니 오류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추사는 <세한도>에 집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집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으로 그래서 창이 보이는 전면은 반듯하고, 역원근으로 넓어지는 벽은 듬직하며, 가파른 지붕선은 기개를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옛 그림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p.171) 물론 마음으로 보야야 하는 것도 맞지만 뭔가 궁색한 변명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글쓴이는 동양 옛 그림을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예로부터 그림 감상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하였는바 화첩을 만들어 보관하여 그림 한복판에 세로로 접은 금이 생긴 것이므로 옛 글 읽듯이 즉, 서양처럼 좌상(左上)에서 우하(右下)로 볼 것이 아니라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읽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그림을 볼 때에는 오른편으로 돌게 하는 것이 올바른 그림 감상법이라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좋은 정보이다. 이렇게 감상하지 않으면 글쓴이가 지적한대로 예컨대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볼 때 시선이 탁 막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은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라는 책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글쓴이가 이야기 하는 '옛 그림 보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까 한다. 글쓴이는 옛 그림 보는 방법으로 첫째 좋은 작품을 무조건 많이, 자주 보아야 하며 둘째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을 통해 작품 내용을 의식하면서 자세히 뜯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물론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실제 박물관 가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실제로 묘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옛 그림을 제대로 보기는 요원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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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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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에 만났던 최규석 만화가는 자신의 작품집 중 가장 애착이 가고 즐겁게 작업했던 책이 바로 <습지생태보고서>라고 하였다. 최규석 작가의 작품 중 자신의 삶을 다룬 만화책은 <습지생태보고서><대한민국 원주민>인데 <대한민국 원주민>은 작가의 어릴 적 삶을 다룬 만화이고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동감을 얻어 내었는지는 모르나 위트와 유머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읽고 나서 뭔가 모를 답답함을 느끼게 했는데 비해 <습지생태보고서>는 작가의 화신인 주인공을 포함하여 4명의 남자와 1명의 사슴이 반지하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인데 혈기 왕성한 남자 4명이 같이 사는 모습 자체가 흥미롭고 특히 동물인 사슴의 얄미운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한다.

 

 이 책 제목에 있는 [습지]는 첫번째 만화에서 나온대로 '하등생물이 서식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했고 [생태보고서]'서식하는 종의 생태환경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였다. 결국 [습지생태보고서]라는 제목은 대학 생활 당시 친구들과 생활하던 반지하 자취방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의미하는 것인데 습지로부터 연상되는 축축함,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현실을 최규석 만화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사실 나 역시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 반지하방에서 산 기억이 잠시 있을 뿐이고 이렇게 반지하방에서 남자 4명이 같이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한다. 이른바 [습지]에서 같이 살고 있는 그들의 삶에선 빈궁함이 묻어 나오지만 #10의 [선수]에 나오는 <스코트 니어링 자서전>처럼 이런 소박한 삶을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최규석 만화가의 다른 면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이는 '녹용이'의 경우 끊임없이 이런 빈궁한 삶을 경멸하고 대다수가 원하는 이른바 멋진 삶(8등신 미녀, 스포츠카, 외국인 친구)등을 갈망한다.

 

 바로 이런 대립을 지켜봄으로써 우리는 어떤 삶이 더 '멋진 삶'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만 이 책 맨 마지막에 있는 글쓴이의 글에서는 '인간은 양 극단일 수 없다'면서 때가 묻어도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이를 씻어낼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럽듯 이런 내면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태도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고 하였다. 분명 동양 문화권을 이른바 <중용>을 군자가 취해야 할 태도라고 강조하고 현대 사회에 들어감에 따라 한쪽 극단을 취하는 인간은 점점 드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 수록 오히려 거짓과 불의에 대한 극단적인 엔똘레랑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거짓과 불의에 대해서도 '있을 수 있는 일, 그것 역시 그 나름의 삶'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직 나는 젊은 것 같다.

 

 이 책은 [경향신문]에 1년간 연재된 50여편의 만화를 묶어 출판한 최규석 작가 최초의 장편 만화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나라 만화의 희망과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최규석 만화가의 책을 읽으면서 척박한 삶에서 우리 만화가 나아가는 길을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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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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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교회 목사님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의 욕망이 꿈에 머무르는 이유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교회 목사님들은 음식 먹다가 돌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을 것이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대중 매체(TV와 신문)를 통해서만 알고 있는 목사는 일부 폭력적인 팔레스타인들의 테러 때문에 이스라엘과 다수의 평화로운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실상을 알고 있는 목사라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헤거모니를 잡고 있는 한국에서는 성경무오류설을 믿음에 따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방)은 유대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땅이라 믿으며 그에 따라 현재 유대인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이다. 다만 일부 답이 없는 꼴통 개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과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가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양비론은 굉장히 손쉽게 취할 수 있는 태도로 양비론을 통해 해결책을 구하기는 요원한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대중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실정은 진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유대인의 자본에 장악 당하고 중동 국가 제어를 위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대중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자살 폭탄 테러 때문에 이스라엘인 몇 명이 죽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폭격을 했다고 뉴스를 통해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처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의와 죽음에 대해 알았을 때 느꼈던 충격은 점차 되풀이 됨에 따라 면역이 되가는 듯 하다. 그리고 이제는 지긋지긋하니 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제 3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이 책은 다시 한 번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거짓을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대중 매체)과 달리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이 책이라 나는 믿는다.

 

 많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는 기억하면서 인샤르는 알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나치 독일에게서 당한 홀로코스트를 그대로 팔레스타인에서 행하고 있다. 인샤르는 첫 인티파다(각성, 봉기를 뜻하는 말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봉기를 뜻한다.)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법적인 구금을 위해 사막 한 가운데 만들어진 감옥으로 인샤르 1부터 3까지 있었으며 그 안에서는 유일한 중동 민주 국가로 자부하는 이스라엘이 말하는 <적당한 압력(moderate pressure)>이라고 표현되는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이는 좁은 감방에 가두는 것에서부터 주먹으로 급소 때리기,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버티게 하기, 눈을 가린 채 묶어두기, 오물과 배설물이 가득한 방에서 수일을 보내도록 하기 등인데 과연 이게 '적당한' 것이고 이런 고문이 자행되는 나라가 과연 '민주 국가'로 자부 할 수 있는지 고개를 꺄우뚱하게 한다.(하긴 60~70년대 우리 나라에도 '민주 국가'였음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 뭐라할 처지는 아니다.)



 흔히 우리는 중동 문제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가지자고 말한다. 하지만 객관적이란 말의 사용은 오히려 진실을 가릴 우려가 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 탄압과 인종 청소에 버금 가는 불법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객관적'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이른바 '봉사활동'으로 이스라엘 키부츠(Kibbutz)에 다녀온 많은 기독교 학생들은 매우 '객관적'으로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과연 이게 봉사활동일까?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의 정책은 식민지 병합 후 일제가 취한 정책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한 쪽 면만 바라보아서는 3차원 입체를 오직 2차원 평면으로만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경우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TV나 신문을 통해서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살펴보지 말고 이런 책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강림하사 성경에 쓰여진 말씀을 부정하고 진정한 중동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훨씬 빠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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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와 어린이책 - 잃어버린 옛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김환희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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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이른바 동화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관심을 완전히 끊은 지 오래이다. 중학교 입학 이후 부모님께서 동화책,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여지없이 "니가 어린애냐?"라는 핀잔을 주기 일쑤였고 그나마 여유가 생긴 대학교 시절에는 <고전>부터 읽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어린이 책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뻗지 않았었다.(실제로 대학교 도서관 책 목록에서 동화책 구경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 자식이 생기기 전까지 계속될 뻔 하였으나 이 책을 통해 옛이야기와 어린이 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가장 유명한 우리의 옛이야기인 <콩쥐밭쥐>를 예로 들어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나는 콩쥐와 팥쥐의 길쌈 내기가 있다는 것과 결혼 후일담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 외에도 이 책에 소개된 총 14개의 옛이야기 중 내가 원문을 제대로 알고 있는 옛이야기는 한 개도 없었다!! 이와 같이 난잡하게 칼질 당한 옛이야기를 읽고 자란 나는 옛이야기에 대해 금방 흥미를 잃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무협지에 빠지기 전까지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살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차라리 원전 화소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좋아 보인다.

 

 다만 글쓴이는 아이들 인성을 걱정해서 교훈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갈등관계에 있던 인물들이 쉽사리 용서하고 화합하는 것으로 해서 작위적으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흔한데 이보다는 악행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옛사람들의 믿음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현실적 조언이 되어 교육적으로 더 나을 수 있다고 밝힌다.(p.36) 그러나 실제 악행이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가? 악행을 하고도 행복과 천수를 누리는 사람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 왔다.(대표적으로 전모씨가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악행은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조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참혹한 결말로 인한 아이들 정서를 생각해서라도 용서하고 화합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 역시 오히려 현실적인 조언이고 독자의 정서를 감안한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이 책 전체적으로 글쓴이는 비록 동화책의 특정 화소가 유아 독자의 정서나 교육에 좋지 않더라도 되도록 원전 그대로 동화책을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듯하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는 옛이야기를 구성하는 화소를 모두 포함한 옛이야기 동화책이 좋다고 본다. 다만 칼질된 옛이야기 동화책 때문에 이른바 <잔혹동화>가 유행한다는 등의 논거를 드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원전 그대로 동화책을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잔혹동화>가 유행한다고 보는 것은 너무 인과관계를 단순화시킨 것으로 보이며 또한 설혹 잔혹동화가 유행한다고 하더라고 그 독자층은 유아가 아닌 중고등학생이거나 성인이 분명한바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물론 내가 잔혹동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주장은 편협한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 비교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동화책은 필연적으로 글과 그림 이렇게 두 요소가 결합된 것인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터널> 챕터를 제외하고는 그림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머릿말에서 글쓴이가 국립어린이도서관에서 책을 복사해서 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분석이 글 위주로 되어 아쉽다고 하였으니 다음에 나올 책에는 글뿐 만 아니라 그림에 대해서도 많은 비중을 둘 것이라 믿는다.

 

 결국 비록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던 옛이야기와 동화책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환기 시키고 글쓴이의 많은 노력이 담긴 노작으로 옛이야기 연구에 있어 이정표가 될 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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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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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를 보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추천사가 있다.(대표작으로 MBC 느낌표 도서인 <과학 콘서트>가 있다.) 그는 "이 책을 통찰력 있는 과학책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고민 없이 강추한다."라고 추천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재승 교수가 과연 '고민 없이' 강력 추천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이 책이 시체라는 굉장히 낯설면서도 섬뜩한 소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깊이 있게 생찰해 위트 넘치게 써 내려간 매력적인 책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이 책을 '고민 없이' 누구에게나 강력 추천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여자인 경우라면 아마 이 책을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만큼 이 책을 읽다보면 죽음과 시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그대로 책에 드러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 이후 자신의 시체가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단순히 용인에 위치한 선산에 내가 묻힐 자리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죽음'이, 어떤 '시체 처리 방법'이 가장 좋을지에 대해 하나씩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매장>의 경우 얼마 전 있었던 '보람 상조'의 수백억 횡령 사건 등에 비추어 보면 너무 허례의식이고 낭비가 심하며 이른바 묻힐 곳을 지관(地官)을 통해 찾아보는 풍수지리의 경우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니 만큼 피하고 싶은 시체 처리 방법이다. 게다가 썩 꺠끗하지도 않다. 이어서 <화장>의 경우 화장으로 인한 공해(다만 극히 극소량으로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및 화장 끝나고 다시 납골당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 역시 매장과 다를바가 없으며 화장하는 모습은 그렇게 볼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또한 이 책 앞에서 소개하는 것과 같이 <시체 기증> 방법은 언뜻 보기엔 나름 괜찮아 보이나 해부학 실습실에서 머리에 담배를 물린다든지 창자로 줄넘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사람의 손에 내 시체를 넘기고 싶지 않고 그리고 여러 실험(예컨대 충돌 실험)등에 기증하는 것 역시 내가 나이 든 상황에서는 뼈가 약해지는 등 정밀한 실험 결과를 얻기 힘든 것이 사실인바 이 역시 그렇게 인도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글쓴이가 여러 가지 시체 처리 방법 중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방법은 스웨덴에서 개발된 <냉동 건조 방법><조직 분해 방법>이다. 그 중 냉동 건조 방법은 액화질소와 초음파를 이용하여 인체를 잘게 부수어 냉동 건조 시킨 후 비료로 쓰는 방법인데 2MB가 좋아하는 '친환경' 시체 처리 방법이라 하겠다.(다만 나는 2MB가 자신의 몸을 냉동 건조하지 않는다는데 내 전재산과 오른 손목을 걸 용의가 있다.) 또한 조직 분해 방법은 잿물과 고온을 이용하여 인체를 가수 분해하는 방법인데 조직 분해 후 생기는 액체는 하수구로 흘러드러가고 남은 뼈는 쉽게 부술 수 있어 처리에 용이하다. 나는 이와 같은 방법이 좋다고 여기나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알 수 없는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다만 글쓴이는 이와 같은 시체 처리 방법을 죽은 자가 결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자신의 시신 처리를 두고 세밀하고 복잡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필시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 들이기 힘들어서 그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고통이 된다면 남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에 동감하는 바 내가 뇌사자가 되어 내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 시체의 처분은 내 아내나 혹은 자식, 혹은 둘 다 없다면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맡길 생각이다.

 

 결국 이 책은 그동안 금기시 되어 온 시체 처리 방법에 대한 역사적, 환경적, 사회적 연구를 집대성한 것으로 글쓴이는 화장장, 해부실험실 등을 직접 몸으로 누비며 현장감 넘치는 책을 완성하였다.(다만 나는 너무 현장감이 넘쳐 좀 불만이긴 하다.) 또한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넘쳐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인 죽음과 시체에 대한 글을 <조직 분해>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마 의사가 되어 해부학을 배우지 않는 한 이 책을 통한 지식과 정보와 통찰력을 얻기엔 힘든 것으로 보이는 바 이 책과 함께 시체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책 원제목인 STIFF는 속어로 시체인데 만약 책 제목이 '시체'라면 아무도 안 사볼 것이므로 번역 과정에서 인체재활용이란 제목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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