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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시사in>의 작년 마지막 호 별책부록으로 주었던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만화 부문에 이 책이 있음을 알게 된 이후였다. 당시 이 만화책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찬사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출간일 후 1년 6개월이 지나야 도서 정가제(출판일 후 1년 6월 이내의 신간은 할인율 최대 10%, 적립률 최대 10%의 제한을 받는다.)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구입 리스트에 올려놓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은 후 나도 모르게 “대단한데?”라는 혼잣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의아했던 점은 책의 제목이 <100도씨>라는 점이었다. 물의 끓는 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제목이 <100도씨>가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가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 십 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이 책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만화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너무 어렸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배운 현대사에서도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었다. 또한 물론 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사실상 운동권은 이미 그 맥이 끊겨 민주 항쟁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다만 내 마음 한 구석에 6월 민주 항쟁이 남아 있던 것은 화학공학과 과방에 있던 이한열 열사의 피가 묻어 있는 과 깃발과 학생회관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 있던 이한열 열사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지나가지만 이한열 열사의 사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학생회관 옆에 있는 이한열 동산에서 남녀가 앉아 있어도 그 앞에 있는 비석을 읽어 보는 사람은 없으며 매년 6월에 중앙도서관 앞에서 하는 이한열 열사 추모식조차도 참석 인원이 적고 게다가 공부하는데 왜 시끄럽게 하냐는 불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의 혜택을 넘치게 누리고 있으면서 그들의 피와 땀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1987년 6월엔 분명 사람은 “끓었었다“. 다만 꾸준히 <열>이 제공되지 않는 한 다시 물은 식게 마련이다. 그 결과가 이한열 열사가 누군지도 모르는 오늘의 모습이 아닐까? 예컨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박종철이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던 선배인 박종운은 2004년 4월에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 수사 2단장으로서 고문치사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했던 고문기술자 정형근 한나라당의원이 있던 당에서 말이다. 이렇게 한 번 끓었던 사람이 오히려 더 차갑게 식는 모습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런 점에서 나는 100도씨가 끝이 아니라 계속 <열>(그게 우리의 관심이 될지 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이 공급되지 않는 한 계속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본다.
최규석 만화가는 책을 덮고 나면 막연히 ‘아 소중한 민주주의’ ‘오오 위대한 민중’이란 감정이 아닌 단단한 생각들이 남길 바랬다고 하였지만 나 역시 앞선 사람들의 피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 생각이 한계인 듯 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마음 한 구석에 끓기 위한 씨앗을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비록 단단한 생각들은 아니지만 만화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