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0년 5월에 만났던 최규석 만화가는 자신의 작품집 중 가장 애착이 가고 즐겁게 작업했던 책이 바로 <습지생태보고서>라고 하였다. 최규석 작가의 작품 중 자신의 삶을 다룬 만화책은 <습지생태보고서><대한민국 원주민>인데 <대한민국 원주민>은 작가의 어릴 적 삶을 다룬 만화이고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동감을 얻어 내었는지는 모르나 위트와 유머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읽고 나서 뭔가 모를 답답함을 느끼게 했는데 비해 <습지생태보고서>는 작가의 화신인 주인공을 포함하여 4명의 남자와 1명의 사슴이 반지하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인데 혈기 왕성한 남자 4명이 같이 사는 모습 자체가 흥미롭고 특히 동물인 사슴의 얄미운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한다.

 

 이 책 제목에 있는 [습지]는 첫번째 만화에서 나온대로 '하등생물이 서식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했고 [생태보고서]'서식하는 종의 생태환경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였다. 결국 [습지생태보고서]라는 제목은 대학 생활 당시 친구들과 생활하던 반지하 자취방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의미하는 것인데 습지로부터 연상되는 축축함,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현실을 최규석 만화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사실 나 역시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 반지하방에서 산 기억이 잠시 있을 뿐이고 이렇게 반지하방에서 남자 4명이 같이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한다. 이른바 [습지]에서 같이 살고 있는 그들의 삶에선 빈궁함이 묻어 나오지만 #10의 [선수]에 나오는 <스코트 니어링 자서전>처럼 이런 소박한 삶을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최규석 만화가의 다른 면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이는 '녹용이'의 경우 끊임없이 이런 빈궁한 삶을 경멸하고 대다수가 원하는 이른바 멋진 삶(8등신 미녀, 스포츠카, 외국인 친구)등을 갈망한다.

 

 바로 이런 대립을 지켜봄으로써 우리는 어떤 삶이 더 '멋진 삶'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만 이 책 맨 마지막에 있는 글쓴이의 글에서는 '인간은 양 극단일 수 없다'면서 때가 묻어도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이를 씻어낼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럽듯 이런 내면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태도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고 하였다. 분명 동양 문화권을 이른바 <중용>을 군자가 취해야 할 태도라고 강조하고 현대 사회에 들어감에 따라 한쪽 극단을 취하는 인간은 점점 드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 수록 오히려 거짓과 불의에 대한 극단적인 엔똘레랑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거짓과 불의에 대해서도 '있을 수 있는 일, 그것 역시 그 나름의 삶'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직 나는 젊은 것 같다.

 

 이 책은 [경향신문]에 1년간 연재된 50여편의 만화를 묶어 출판한 최규석 작가 최초의 장편 만화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나라 만화의 희망과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최규석 만화가의 책을 읽으면서 척박한 삶에서 우리 만화가 나아가는 길을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가끔 교회 목사님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의 욕망이 꿈에 머무르는 이유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교회 목사님들은 음식 먹다가 돌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을 것이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대중 매체(TV와 신문)를 통해서만 알고 있는 목사는 일부 폭력적인 팔레스타인들의 테러 때문에 이스라엘과 다수의 평화로운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실상을 알고 있는 목사라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헤거모니를 잡고 있는 한국에서는 성경무오류설을 믿음에 따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방)은 유대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땅이라 믿으며 그에 따라 현재 유대인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이다. 다만 일부 답이 없는 꼴통 개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과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가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양비론은 굉장히 손쉽게 취할 수 있는 태도로 양비론을 통해 해결책을 구하기는 요원한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대중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실정은 진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유대인의 자본에 장악 당하고 중동 국가 제어를 위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대중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자살 폭탄 테러 때문에 이스라엘인 몇 명이 죽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폭격을 했다고 뉴스를 통해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처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의와 죽음에 대해 알았을 때 느꼈던 충격은 점차 되풀이 됨에 따라 면역이 되가는 듯 하다. 그리고 이제는 지긋지긋하니 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제 3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이 책은 다시 한 번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거짓을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대중 매체)과 달리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이 책이라 나는 믿는다.

 

 많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는 기억하면서 인샤르는 알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나치 독일에게서 당한 홀로코스트를 그대로 팔레스타인에서 행하고 있다. 인샤르는 첫 인티파다(각성, 봉기를 뜻하는 말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봉기를 뜻한다.)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법적인 구금을 위해 사막 한 가운데 만들어진 감옥으로 인샤르 1부터 3까지 있었으며 그 안에서는 유일한 중동 민주 국가로 자부하는 이스라엘이 말하는 <적당한 압력(moderate pressure)>이라고 표현되는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이는 좁은 감방에 가두는 것에서부터 주먹으로 급소 때리기,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버티게 하기, 눈을 가린 채 묶어두기, 오물과 배설물이 가득한 방에서 수일을 보내도록 하기 등인데 과연 이게 '적당한' 것이고 이런 고문이 자행되는 나라가 과연 '민주 국가'로 자부 할 수 있는지 고개를 꺄우뚱하게 한다.(하긴 60~70년대 우리 나라에도 '민주 국가'였음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 뭐라할 처지는 아니다.)



 흔히 우리는 중동 문제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가지자고 말한다. 하지만 객관적이란 말의 사용은 오히려 진실을 가릴 우려가 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 탄압과 인종 청소에 버금 가는 불법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객관적'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이른바 '봉사활동'으로 이스라엘 키부츠(Kibbutz)에 다녀온 많은 기독교 학생들은 매우 '객관적'으로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과연 이게 봉사활동일까?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의 정책은 식민지 병합 후 일제가 취한 정책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한 쪽 면만 바라보아서는 3차원 입체를 오직 2차원 평면으로만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경우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TV나 신문을 통해서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살펴보지 말고 이런 책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강림하사 성경에 쓰여진 말씀을 부정하고 진정한 중동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훨씬 빠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만약에 만화가 <최규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만화책은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약 일주일 전에 최규석 만화가를 만났을 때 최규석 만화가는 많은 인터뷰나 기사 등에서 '만화에 대한 선입견'(예컨대 유치하다든지 비교육적이라든지)을 먼저 언급하지 않고는 인터뷰나 기사를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인권'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다른 책에 비해 읽어야 될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책을 많이 출판하는 창비 출판사와 이 만화책을 기획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이 곳에 참여한 8명의 만화가의 노력으로 어른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만화를 통해 쉽게 '인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만화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먼저 손문상 만화가는 신문에 나오는 만평 형식으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만화를 그렸고 이애림 만화가는 <그는>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성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만화를, 장차현실 만화가는 <여배우 은혜>라는 만화로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아이가 영화 여배우가 되어 의젓해지는 딸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홍윤표 만화가는 <이상한 나라의 홍대리>라는 제목의 만화로 차별이 만연화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영진 만화가는 <새대가리>라는 만화로 서열화된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정훈이 만화가는 <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를 통해 돈만 밝히는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유승하 만화가는 <축복>이란 만화로 임신한 미혼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최규석 만화가는 <창>이란 만화로 군대 인권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 <그는>이란 만화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대다수는 동성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사실 동성애가 최초로 금기시 된 것은 성경을 통해서인데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애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게 되면 출산율이 감소하게 되어 인구=국력인 상황에서 국가 및 민족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결국 꼭 이성애를 해야 될 당위성을 찾기는 힘든 것이다. 그저 동성애에 대해서는 단순히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왜 하면 안되는가?'에 대해서는 그저 '징그럽다'는 생각 정도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동성애가 나쁜 것이라는 당위성을 찾기 힘든 이상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와 같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함은 명백하고 이를 이 만화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새대가리><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는 서열화된 교육의 문제점을 잘 그리고 있다. 특히 <새대가리>는 검은 종이에 빨간색 바탕색을 기본으로하여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A~C 등급 인간으로 나뉘어 차별받고 자신의 꿈(여기서는 '날개'로 표현된다.)을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지키기 위한 주인공의 눈물겨운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인상 깊은 것은 주인공이 기르던 새장에서 새를 구해줬지만 다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새장으로 돌아온 새들을 보며 주인공이 "미쳤냐 왜 여길 다시 왔냐. 그렇게 살아라 주는대로 감사하며…"라고 독백하는 모습이었다. 자유를 갈망하지 않고 먹을 것만 주면 감사하는 것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와 달리 '자유'도 갈망한다. 물론 사람마다 먹을 것이 우선인지 자유가 우선인지는 다르지만 말이다….
 
 또한 <축복>이란 만화는 미혼 임신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나는 만화가와 달리 차라리 낙태를 합법화 시키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이 만화와 같이 미혼인 학생이 임신한 것이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임신하게 되면 순식간에 약자가 되는 것이 바로 여성이고 이 만화에서는 태아 역시 '인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치 않은 임신이라도 아기를 낳는 것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임신 여부 및 출산 여부는 여성의 선택 문제로 두는 것이 옳다고 보이며 그런 점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길이라고 본다.(물론 남성이 이를 악용하지 않도록 비용 부담 문제 등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창>이란 만화가 기억에 남는다. 최규석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누가 봐도 잘못한 후임병이 있는 경우에도 때리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것을 묻고 싶었다고 하였는데 이게 작가의 의도라면 좀 더 지면을 할애하여 후임병을 나쁜 사람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본인의 경우 역시 상병 달 때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맞았는데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단 한 번도 후임병을 때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분명 몇 번 고비는 있었는데 나는 이등병, 일병 시절 맞으면서 절대 후임병을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을 다행히 지킬 수 있었다. 살펴보면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오히려 자기 자식에게 더 폭력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민감해질 수 있다면 군대에 만연한 폭언과 구타는 사라질 것이다.
 
 요즘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한도 축소되고 '인권'보다는 '경제 성장'(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경제 성장인지는 의문이지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시사in>의 작년 마지막 호 별책부록으로 주었던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만화 부문에 이 책이 있음을 알게 된 이후였다. 당시 이 만화책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찬사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출간일 후 1년 6개월이 지나야 도서 정가제(출판일 후 1년 6월 이내의 신간은 할인율 최대 10%, 적립률 최대 10%의 제한을 받는다.)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구입 리스트에 올려놓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은 후 나도 모르게 “대단한데?”라는 혼잣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의아했던 점은 책의 제목이 <100도씨>라는 점이었다. 물의 끓는 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제목이 <100도씨>가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가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 십 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이 책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만화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너무 어렸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배운 현대사에서도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었다. 또한 물론 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사실상 운동권은 이미 그 맥이 끊겨 민주 항쟁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다만 내 마음 한 구석에 6월 민주 항쟁이 남아 있던 것은 화학공학과 과방에 있던 이한열 열사의 피가 묻어 있는 과 깃발과 학생회관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 있던 이한열 열사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지나가지만 이한열 열사의 사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학생회관 옆에 있는 이한열 동산에서 남녀가 앉아 있어도 그 앞에 있는 비석을 읽어 보는 사람은 없으며 매년 6월에 중앙도서관 앞에서 하는 이한열 열사 추모식조차도 참석 인원이 적고 게다가 공부하는데 왜 시끄럽게 하냐는 불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의 혜택을 넘치게 누리고 있으면서 그들의 피와 땀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1987년 6월엔 분명 사람은 “끓었었다“. 다만 꾸준히 <열>이 제공되지 않는 한 다시 물은 식게 마련이다. 그 결과가 이한열 열사가 누군지도 모르는 오늘의 모습이 아닐까? 예컨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박종철이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던 선배인 박종운은 2004년 4월에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 수사 2단장으로서 고문치사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했던 고문기술자 정형근 한나라당의원이 있던 당에서 말이다. 이렇게 한 번 끓었던 사람이 오히려 더 차갑게 식는 모습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런 점에서 나는 100도씨가 끝이 아니라 계속 <열>(그게 우리의 관심이 될지 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이 공급되지 않는 한 계속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본다.

 

최규석 만화가는 책을 덮고 나면 막연히 ‘아 소중한 민주주의’ ‘오오 위대한 민중’이란 감정이 아닌 단단한 생각들이 남길 바랬다고 하였지만 나 역시 앞선 사람들의 피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 생각이 한계인 듯 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마음 한 구석에 끓기 위한 씨앗을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비록 단단한 생각들은 아니지만 만화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